美 정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美 정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학비 융자 규모가 1조2000억 달러(약 1336조원)를 넘어서면서 미국에서도 한국 못지 않게 학자금 논란이 거세다. 이 같은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져 오바마 대통령까지 거들고 나섰다. 학자금 문제가 교육부문에 국한되지 않고 경제와 정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미 연방정부 기관인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8월 초, 정부가 대학생을 비롯한 학생들에게 직접 학자금을 대출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이 프로그램의 실태를 보고했다. 문제는 심각했다. 연방정부 학자금 융자인 다이렉트론(Direct Loan)을 대출받은 이들 가운데 대출금을 상환하는 비율이 10명 가운데 4명꼴에 불과한 때문이다.
연방정부는 3년 전 샐리매 등 민간 학자금 대출업체에 대한 대출 보증을 중단하는 대신 학자금을 직접 대출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시작된 다이렉트론 프로그램이 연방정부가 직접 융자를 맡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대출보증 수수료 등 학자금 지원 과정에서 정부의 막대한 자금이 단순 비용으로 줄줄이 새자 아예 연방정부가 직접 학자금 대출 현장에 뛰어들었다. 대출 업무 비용을 아껴 학생들에게 학자금 혜택을 더 주겠다는 의도였다.
700만명이 학자금 채무 불이행 상태문제는 대출자 2780만명 가운데 돈을 갚는 비율은 39%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나머지 가운데 35%는 아직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지 6개월이 안돼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유예기간(Grace Period) 혜택을 보고 있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유예기간이 끝난 뒤 채무 불이행이나 상환 연기 신청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12%는 상환을 연기했고 6%는 학자금을 갚지 못한 채 다른 대학에 재입학했다. 채무 불이행 상황에 처한 경우도 8%에 달했다.
CFPB의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재학 중이거나 상환유예 기간에 있는 채무자 외에도 22%가 채무 불이행이나 금융상 이유로 일시적 지불유예 상태에 있다. 가뜩이나 예산절감 문제로 궁지에 몰린 연방정부로서는 아무리 공익성 사업이라도 다이렉트론 프로그램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세금낭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이 프로그램이 지속할지 교육계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잇따라 의문을 제기했다.
CFPB는 현재 연방 학자금 대출잔액이 1조 달러를 넘어섰다고 추산한다. 여기에 민간 학자금 대출까지 포함하면 1조2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불어난다. CFPB의 이번 학자금 대출보고서를 작성한 로힛 초프라는 적어도 700만명의 대출자가 연방이나 민간 학자금을 갚을 수 없는 채무 불이행 상태라고 분석했다.
왜 학자금을 갚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날까? 우선 미국의 경기 침체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일부 대도시를 중심으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고 있지만 미국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도 부진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경기 침체로 세수가 부족하자 연방정부뿐만 아니라 주정부도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의 국립대와 같은 개념은 미국에는 거의 없다. 사관학교 등 일부 특수대학을 제외하고 한국의 국립대와 비슷한 개념의 공립대는 각 주정부가 운영하는 주립대를 들 수 있다. 주립대를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각종 학비 보조를 지원하던 주정부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하자 장학금 규모도 크게 줄었다. 이로 인해 학생들의 학비 부담도 급격히 커졌다.
교육시장의 소비 주체인 각 가정마다 학비를 감당할 자금력이 떨어졌다. 부동산 침체로 주택 가격이 하락하자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크게 줄거나 아예 없어질 정도의 상황이 됐다. 소득 저하로 저축도 줄었다.
학자금이 미국 가계의 가장 큰 부담학자금과 관련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채무 부담이 점점 빠르게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연방준비제도의 1989~2010년 연간 소비자재정조사(SCF)에 따르면 29~37세가 대출받은 학자금은 1만381달러 늘었다. 신용카드 부채 비용과 자동차 구입 대출은 각각 1215달러와 302달러 증가하는 데 그쳤다.
1989년 학자금 대출액은 신용카드와 자동차 구입 대출보다 적었다. 뉴욕연방은행에 따르면 대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주택 모기지를 제외하면 학자금이 20년 만에 평균 대출액 2만7000달러로 가장 큰 가계 부담 요소로 떠올랐다.
미국의 학자금 자료는 조사 주체에 따라 제각각이다. 학자금 자문업체인 에드바이저스닷컴(Edvisors.com)에 따르면 부모에게 빌리는 돈까지 포함하면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받는 학자금 대출금은 평균 4만 달러에 달한다. 석사학위 이상의 전문 학위자들은 더 큰 부담을 안고 사회에 나선다. 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대출받는 평균 학자금은 학부 때 받은 대출금까지 포함하면 5만5000달러를 넘는다. 10년 전에는 4만800달러에 불과했다.
학자금 대출로 진 빚의 규모가 커지자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한 뒤 이를 갚아야 할 기간도 길어졌다. 조사기관인 원위스콘신(One Wisconsin)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 평균 상환기간은 21년에 달한다. 또한 학자금 채무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주택보유율이 36% 낮다.
학자금 대출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내 집 마련도 힘들어진 것이다. 학자금 대출자들의 주택보유율이 낮은 것은 채무 상환으로 인해 주택구입 자금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주택 모기지 심사 과정에서 학자금 채무기록 탓에 대출기관으로부터 외면 받는 신‘ 용 차별’도 한 원인으로 들 수 있다.
학자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오바마 대통령은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연방 학자금 융자인 보조 스태포드론(Subsidized Stafford Loan)의 이자율 상한선을 두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학자금 빚에 쪼들리다 연방상원이 될 무렵에 대출금을 모두 갚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근본적으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활성화되지 않는 이상 대출금 이자율 상한선 설정 등의 단기적 처방으로는 학자금 문제를 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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