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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cope REPORTER AT LARGE - 찬 바람 맞은 이탈리아 바람둥이들

periscope REPORTER AT LARGE - 찬 바람 맞은 이탈리아 바람둥이들

‘내연녀’를 권리로 여기던 기혼남들이 경제난으로 이중생활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게 돼



카페와 레스토랑의 노련한 웨이터들은 휴가철 내연녀와 들러붙어 시시덕거리는 단골 고객을 모르는 척하곤 했다.
이탈리아에선 8월 휴가철이 되면 부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해변으로 피서를 떠난 동안 남편들은 로마에 남았다. 남편들이 도시에 남는 표면적인 이유는 ‘회사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배우자 아닌 애인과 함께 여유롭게 시간 보내는 일을 가리키는 완곡표현인 경우가 많았다. 어떤 변명이나 거짓말을 둘러댈까 걱정할 필요 없이 말이다.

카페와 레스토랑의 노련한 웨이터들은 휴가철 애인과 들러붙어 시시덕거리는 단골 고객을 모르는 척하곤 했다. 이탈리아에는 “8월 중순엔 내 아내가 당신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풀어 말하면 “내 부인이라니, 누굴 말하는지?” 정도의 의미가 된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날 이야기다. 마치 얌전한 척 분위기 깨는 새침데기처럼 유럽의 경제위기가 이탈리아의 사회 풍습을 빠르게 바꿔놓고 있다. 살림에 보탬을 주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기혼여성이 갈수록 늘어난다. 따라서 그들은 여름에도 도시를 떠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중 가정생활 유지비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고 있다.

이탈리아의 극심한 불황으로 바람기 많은 남편(그리고 몇몇 경우엔 바람난 부인)들의 예산이 빠듯해지면서 고급스러운 선물과 은밀한 로맨틱한 식사 같은 가외 지출을 숨기기가 어려워졌다. 오후의 금지된 밀회 뒤에 이어지는 관행적인 5코스 점심식사는 옛날얘기가 됐다는 뜻이다. 요즘의 정부들은 배달시킨 피자조각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곳을 찾는 남녀가 모두 부부가 아닌 불륜 커플들이었던 때도 있었다.” 보르게세 공원을 내려다보는 카페 델레 벨레 아르티의 웨이터 마르코가 말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여름철에 전통 부부가 훨씬 더 많아졌다. 그에 따라 분위기도 바뀌었다.” 정부의 긴축과 세금규제 강화조치도 제약을 준다. 몰래 데이트 여행에서의 호텔 숙박비를 업무 출장비로 위장하는 관행이 더는 묵인되지 않는다. 이탈리아인들의 바람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그뿐이 아니다.

세컨드 하우스에 대한 재산세가 부활됐다(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폐지했지만 마리오 몬티 총리가 다시 도입했다). 그에 따라 한낮의 밀회에 필수적인 둘 만의 아지트를 계속 보유하기가 힘들어졌다. 48세의 기혼자 세무 변호사 ‘잔카를로’가 실명을 쓰지 않는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최근 새로운 세금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로마에 있는 자신의 원룸 아파트를 임대해야 했다.

“내 연애생활이 엉망이 돼 버렸다”고 그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는 6년여 동안 그 아파트에서 역시 기혼자인 46세의 애인을 만나 장시간의 로맨틱한 ‘점심’을 나눴다. 그 아파트가 없으면 “호텔 숙박료를 숨길 방법이 없다. 그리고 특히 우리 나이에는 세워둔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누려 애쓰기에는 너무 늙었다”고 그가 말했다. 두 사람은 결국 헤어졌다.

이 문제를 조사한 이탈리아 심리학자 플로린다 브루콜레리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이렇게 썼다. “요즘엔 경제난 때문에 바람 피우기가 적어도 결혼 생활만큼이나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 됐다. 사실상 두 집 살림을 계속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

바람둥이들의 위기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지 ‘파노라마’가 커버 스토리로 다룰 정도로 심각해졌다. 제목은 ‘연인들도 위기를 맞았다.’ 기사는 이탈리아 남성들이 오랫동안 하나의 권리처럼 누렸던 ‘세컨드’를 포기해야 하는 슬픔 이면의 원인들을 파헤쳤다. 기자는 경제난, 그리고 지금은 소셜미디어 때문에 부정이 쉽게 들통날 수 있다는 사실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기자가 줄줄이 인용한 익명의 남성들은 애인 없는 삶이 공허하게 느껴진다고 하소연한다.

많은 이탈리아 기혼자들은 바람기를 당연한 일로 여겼다. 이탈리아에는 “2가 있으면 반드시 3도 있다”는 속담도 있다.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눈썹 끝을 올려 말할 때는 어떤 커플이나 모두 어딘가에 제3의 파트너를 숨겨 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지난 7월 프랑스에서 발행된 여론조사 ‘세계 섹스 아틀라스’에 따르면 이탈리아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바람을 많이 피우며 그 바로 뒤를 이어 프랑스, 스페인 순이다. 미국은 17위다. 하지만 외도의 시인에 기초한 이 조사는 남유럽인들의 허세로 왜곡됐을지도 모른다.

불륜이 속성상 은밀하고 기만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자발적인 고백에 기초한 신뢰할 만한 통계는 물론 입수하기 어렵다(누가 자신의 불륜에 관해 정직하게 말하겠는가?). 불륜이 얼마나 만연했는지의 더 정확한 통계는 이혼법정에서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2012년 이탈리아 이혼변호사 협회는 지난 5년간의 이혼소송 자료를 토대로 부정행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이탈리아 남성의 55%, 여성의 42%가 배우자외의 이성과 부정행위를 했거나 현재 하고 있다. 또한 40~50대가 가장 불륜을 많이 저지르는 연령층이며, 모든 간통의 60% 이상이 동료간에 발생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리고 그 조사에 따르면 기혼남성의 7%가 다른 남성과 동성 연애를 한 반면 레즈비언 애인과 바람을 피운 기혼여성은 5%였다.

지리적 측면에선 밀라노가 이탈리아에서 외도의 수도로 등극했으며 로마·볼로냐·토리노가 그 뒤를 이었다. 배우자의 부정이 들통나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은 비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의 발각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불륜이 들통난다고 반드시 파경에 이르지는 않는다. “이탈리아에선 혼외관계를 더는 비극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 조사 보고서 작성자 중 한 명인 지안 에토레가사니 변호사가 말했다. “전체 이혼 커플 중 간통 때문에 갈라서는 비율은 40%에 불과하다.” 솔직히 요즘 누가 독신으로 살 만큼 여유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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