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 끝까지 운이 좋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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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을까. 대화장에서나 한몫 벌어야겠네.” “오늘 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 걸?” “달이 뜨렸다?”(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중)
9월 강원도 평창 봉평의 메밀꽃이 졌더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9월 말까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일대에서는 효석문화제가 열렸다. 13회째였다. 봉평은 단 한편의 초단편 소설 덕에 한국인에게 잊지 못할 마음의 고향이 됐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다. 10분이면 읽기를 마칠 수 있는 짧은 단편은 한국 소설 사상 가장 아름다운 밤길을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봉평에서 대화까지 나귀를 타고 달빛 쏟아지는 허연 메밀꽃밭을 지나 밤을 새워 가야 하는 80리 길이다.
눈을 감으면 손에 잡힐 듯한 묘사에 감탄한 김동리는 이효석에 대해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고 말했다. 스토리와 구성을 내세우는 소설가들과 달리 글이 너무나 시적이고 많은 복선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다. 1936년 『조광』에 발표됐으니 벌써 80년 먹은 한국 현대소설의 고전이다. 당시 제목은 ‘모밀꽃 필 무렵’이었다.
출연 인물은 장을 옮겨가면 장사를 하는 장돌뱅이 세 사람이다. 허생원과 조선달은 동년배의 동료다. 동이는 이들의 아들뻘쯤 된다. 봉평장에서 별 재미를 못 본 허생원은 “한 턱 낸다”는 조선달에 이끌려 충주집으로 간다. 충주집에서 그는 동이라는 젊은 장돌뱅이가 충주댁과 농탕질을 하는 것을 보고는 격분한다. 숫기가 없어 자신도 머뭇대는 충주댁에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희롱하는 모습을 보고는 괜한 골통이 났을 테다. 동이의 뺨을 때려 내쫓고 보니 과했나 싶어 허생원은 괜히 미안해 졌다.
얼마 뒤 동이가 황급히 돌아와서는 허생원의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친다’고 얘기를 해주고, 당나귀를 진정시키려 뛰어나가면서 허생원은 동이와 마음의 화해를 한다. 허생원·조선달·동이 세 사람은 봉평에서 대화장을 향해 걷는다.
메밀 꽃이 하얗게 핀 밤길을 걸으면서 허생원은 예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런 달밤, 너무 더워 목욕하러 나갔다 우연히 물방앗간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다는 것이다. 다음날 그녀는 사라졌고 허 생원은 제천을 헤매지만 만나지 못한다. 그 밤의 그녀를 잊지 못해 허생원은 봉평을 떠나지 못한다.
그 여인 또 만날 행운 기대는 착각동이는 제천에서 처녀의 몸으로 자신을 낳고 집에서 쫓겨난 어머니 사연을 얘기한다. 어머니는 의부를 들였지만 망나니였고, 그 모습이 보기 싫어 동이는 열여덟에 집을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 허생원이 발을 헛디뎌 개울에 빠진다.
동이가 허생원을 업는데 이상하게 동이의 등이 따뜻하다. 동이 어머니의 친정이 봉평이고, 제천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에 허생원의 마음이 ‘알수 없이 두둥실 가벼워’진다. 허생원은 제천으로 가기로 한다. 동이도 동행한다. 그러고 보니 동이는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다.
소설은 동이가 허생원의 사생아인지를 확인시켜주지 않는다. 피붙이의 정을 부각시키면서 그저 은근히, 그럴 것이라는 복선만 강하게 깐다. 과연 그 뒷얘기는 어떻게 될까. 허생원이 ‘그 날밤’의 행운을 기대하며 20년간 봉평장을 떠나지 못한다. 달밤이 훤하고 하얀 메밀꽃이 핀 날 생애 첫 여인을 만나는 행운을 누렸으니 어쩌면 달이 훤하고 하얀 메밀꽃이 필 무렵이면 그날의 행운이 또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뜨거운 손 오류(Hot-Hand Fallacy)’에 가깝다.
농구를 하다 보면 유달리 컨디션이 좋은 선수가 있다. 던질 때마다 쏙쏙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그 선수에게 패스가 몰린다. 골을 잘 넣어 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흐르면 처음만큼 잘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처음 운이 좋았다고 끝까지 운이 좋지는 않다는 것이다. 만약 슛 성공률이 30%라면 많이 쏘다 보면 결국 비슷한 확률로 수렴하는 경우가 많다.
슛 성공률이 전반부에 비해 떨어지는 것에 대해 논리적 이유를 대기도 한다. 컨디션이 좋아 보여서 동료들이 패스를 많이 하다 보니 후반부로 가면 체력이 달리고 결국 슛이 부정확해진다는 것이다. 확률론이든 스포츠공학론이든 ‘전반부의 슛 컨디션이 후반부까지 반드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결과는 똑같다.
기업 경영에서도 처음 시장에서 좋은 평판을 받았다고, 후반부까지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면 ‘뜨거운 손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성공한 CEO들이 쉽게 빠지는 오류기도 하다. 매번 알짜기업을 낮은 가격에 인수했던 인수·합병(M&A)의 대가들이 결정적 실수로 위기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뜨거운 손 오류’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허생원이 제천으로 가려는 것은 ‘뜨거운 손 오류’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허연 달이 뜬 메밀꽃 핀 날 성서방네 처녀를 행여 다시 만나는 ‘행운’을 기대하며 마냥 봉평장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이 그녀를 찾아보겠다는 뜻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뜨거운 손 오류’와 반대되는 개념이 ‘도박사의 오류’다. 도박사의 오류는 계속 안 되지만 언젠가는 잘 될 것으로 믿는 심리를 말한다. 도박사들이 계속 돈을 잃으면서도 ‘이번에는 되겠지’라고 믿는 데서 유래했다. 허생원이 빈털터리가 된 것도 ‘도박사의 오류’에 빠졌기 때문이다.
허생원은 젊은 시절 알뜰하게 벌어 돈푼을 모았지만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해서 사흘만에 다 털어버렸다. 결국 읍내를 도망쳐 나올 때 손에 남은 것은 나귀 한 마리뿐이었다. 도박사의 오류는 각각의 확률이 독립돼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투전으로 돈 날린 허생원 도박사의 오류에동전을 여섯 번 던진다고 하자.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50%다. 처음 3번 내리 앞면이 나왔다면 4번째부터는 내리 뒷면이 나올까? 동전은 던질 때마다 매 확률이 50%일뿐 전체 확률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평균 확률을 내세우면 심리적으로는 ‘이번에는 실패했으니 다음 번에는 잘 될 거야’라고 기대하는 게 있다.
야구 중계방송 때 아나운서들이 “이 타자는 3할 타자인데요, 앞선 두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났으니 이번에는 안타가 나올 가능성이 커요”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정말 이 선수는 안타 칠 확률이 높아질까. 안타깝게도 이 선수는 여전히 안타 칠 확률은 3분의 1이다. 앞선 두 타석과 기대확률은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이날 컨디션이 안 좋다면 안타를 못 칠 확률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보자. 허생원에게 ‘뜨거운 손 오류’를 불러일으킨 밤은 어땠을까.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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