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세무조사에 화들짝, 현금 꽁꽁 숨겨
Issue - 세무조사에 화들짝, 현금 꽁꽁 숨겨
시중에 5만원권이 귀하다. 최근 몇 달 새 일부 지역 시중은행은 5만원권을 구하지 못해 교환 한도를 1인당 10장씩으로 제한했다.
문제는 환수율이다. 환수율은 한국은행이 공급한 화폐 발행액 중 다시 중앙은행으로 돌아온 화폐 비율을 뜻한다.
지난 7년 간 80~90%대를 기록한 전체 화폐 환수율은 올 들어 9월까지 68.1%로 급락했다. 특히 지난해 61.7%를 기록한 5만원권 환수율은 올 1~3분기 48%로 떨어졌다.
시중은행에서는 목돈 예금도 자취를 감췄다. 5개 시중은행의 10억원 초과 예금 잔액은 올 8월 말 기준으로 1년 전보다 17조2000억원(6.9%) 감소한 231조5000억원이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기준이 5000만원 이상에서 2000만원 이상으로 강화된 탓에 거액 예금이 줄지어 은행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5만원권 품귀, 거액 예금 줄어금 시세가 급락한 요즘에는 매매차익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 골드바를 사려는 자산가가 늘고 있다. 정부가 금 거래 양성화를 위해 현물시장 설립을 추진하면서 그 전에 미리 사두려는 것이다. 이렇게 확보된 금과 현금은 자산가들의 개인 금고에 보관된다. 이례적으로 홈쇼핑에 등장한 금고 상품이 짧은 시간 안에 동나는 등 올해 들어 가정용 금고 판매량이 급등하는 추세다.
박근혜정부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증세를 하지 않는 대신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세출을 줄이고 세입을 확충하는 것은 물론 2013~2017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27조2000억원의 세수를 추가 조달한다는 것이다. 연초부터 각종 탈세에 대한 세무관리를 강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과세당국의 그물망을 피하기라도 하듯 ‘현금경제’가 확대되면서 ‘지하경제 양성화의 역설’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내놓은 지하경제 양성화 대책을 살펴보면 11월 14일부터 시행된 ‘특정금융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눈에 띈다. 그동안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정보를 조세 범칙 혐의 확인을 위한 세무조사 등 한정적인 범위에서만 활용했는데 11월부터는 조세탈루 혐의 확인을 위한 조사업무 및 조세체 납자에 대한 징수업무에도 FIU 정보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FIU 정보 제공 범위가 넓어져 차명거래, 변칙적인 현금거래에 대한 검증이 한층 수월해졌다. 하지만 FIU의 정보를 실시간 제공받는다는 애초 계획에서 국세청 정보공개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자료가 제공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본래 취지가 흐려진 감이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11월부터 시행된 법률에 따라 세무정리를 하고 체납액을 거둬 들이는 등 후속 과정이 있기 때문에 실제 세수 증가로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 피부미용업·웨딩업 등 현금거래가 많은 10개 업종에 대해 내년 1월 1일부터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하도록 했다. 발급을 거부하는 경우 신고포상금 제도를 운영한다. 현금수입 탈루 혐의가 있는 변호사·성형외과 의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와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탈세 혐의자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고 10월에는 불법 사금융을 집중 단속했다.
그럼에도 10월 국정감사에서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놓고 국회의원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다.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은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연도별, 지방청별, 중점 과제별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입 확보 목표와 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구체성 없이 그저 열심히 하고 있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지하경제 양성화로 공약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실적이 기대 이하라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2014 세입예산안 분석 및 중기 총수입 전망’ 보고서는 ‘FIU 정보를 국세청이 열람할 권한이 확대됨에 따라 세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세무조사에 따른 세수 증가가 과거와 같은 높은 증가율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고소득 자영업자에 대한 세무조사 역시 ‘기존에 매년 해오던 조사를 통해 별도로 세수를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지하경제 양성화 대책의 세수 효과는 정부 계획 27조2000억원의 60~70%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내다봤다.
신용카드 소득공제 같은 획기적 방안 시급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체적 사안에 대해 세무조사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지하경제를 잡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소득공제 확대 등을 통해 자영업 소득을 파악하는 식이다. 지하경제 분야 권위자인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오스트리아 요하네스 케플러대학)는 자신의 논문에서 ‘한국 정부가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통해 세수를 획기적으로 늘렸다’고 분석했다.
김민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지하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영업자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려면 강력한 당근과 채찍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금을 성실히 신고한 자영업자에게는 인센티브를, 반대인 경우에는 패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차명거래와 자금세탁 과정에서 거액의 불법 지하경제가 이뤄지고 있어 해외에서도 단속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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