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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박근혜정부 ‘민영화=악’의 함정에 빠져

Issue - 박근혜정부 ‘민영화=악’의 함정에 빠져

LH·한국전력·수자원공사 개혁 과정에서도 논란 되풀이 가능성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한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서울 용산역 KTX 승강장에 열차가 정차해 있다.



지난해 세밑을 뜨겁게 달군 철도 민영화 논란이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로 일단락됐다. 수서발 KTX 운영사 설립을 민영화 꼼수라고 반발하며 파업을 시작한 지 22일 만이다. 수서발 KTX 운영사는 예정대로 법인 등기와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면허 발급을 마쳤다. 국회가 철도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소위를 구성하기로 했고, 민영화 반대 여론은 국회 논의를 일단 지켜보자는 쪽으로 돌아섰다.

지금까지는 감정이 고조돼 철도 발전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불가능했다. 수서발 KTX 운영사에 ‘민간 자본을 참여시키지 않는다’고 약속한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수서발 KTX 운영사 설립을 민영화로 보는 시각에서 가장 큰 우려는 수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자본의 참여 가능성에 있었다.

수서발 KTX 운영사 설립이 앞으로 전개될 공기업 개혁의 성패를 가늠할 주춧돌이 될 수도 있다. 지난해 3월 6일 서승환 당시 국토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논란이 됐던 수서발 KTX 운영방식에 대해 “현재 코레일 독점 방식도, 민간에 주는 것도 다 문제가 있다. 제3의 대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앞서 국토부가 수서발 KTX 운영권을 민간에 넘기겠다고 했다가 철도 민영화 논란을 자초한 직후다.



공기업 개혁의 동력 강공책으로 확보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국토부 계획을 반대했다. 이후 제2철도공사 설립안이 나왔다. 여론은 이를 ‘민영화 꼼수’라며 반대했다. 정부가 전액 투자하는 공기업 방식으로는 민간업체만큼의 운영 효율을 기대하기 어렵고, 운임 인하 효과도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정부는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코레일 자회사 설립안이다. 이마저 무산되면 철도구조 개혁은 물 건너 갈 상황이었다. 철도노조의 전면 파업과 국민적 반대 여론에도 정부가 단호하게 추진하는 이유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철도구조 개혁은 박근혜 정부가 내건 공기업 개혁의 시험대 성격이 짙다”고 했다. 그는 “반대에 부딪혀 독점체제를 깨지 못하면 나머지 공기업 개혁의 명분과 동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강공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수서발 KTX 운영사는 코레일과 공적 연기금이 각각 지분의 41%, 59%를 출자해 만든다. 민영화 비판에 직면한 정부는 이 회사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대책을 세웠다. 주식 양도·매매 대상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지방공기업으로 한정했다. 이를 어기면 철도면허를 취소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고속철도사업의 민간 개방을 기다린 기업들 입장에선 다 차려진 밥상의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정부가 걷어간 셈이 됐다. 2012년 1월 12일 당시 국토해양부가 마련한 철도 경쟁체제 간담회에는 동부건설·대우건설·두산산업·금호그룹 등 20개 민간업체가 참여해 큰 관심을 보였다. 이날 간담회는 수서발 KTX 운영권을 민간에 개방한다는 정부의 첫 설명회였다. 간담회에 참여한 한 그룹의 관계자는 “수익이 보장되는 알짜 노선이어서 사업 다각화를 꾀하는 기업들이 오래 전부터 기다려 왔었다”고 말했다.

새 법인의 지분 참여 대상인 연기금 운용기관들은 이번 논란의 결과를 내심 반기고 있다.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하면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2012년 국민연금 기금운용 성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0~2012년 국민연금기금이 SOC 부문에 투자한 수익률은 7.7%였다. 지난해 연간 목표수익률인 6.1%를 웃도는 실적이다.

국토부는 수서발 KTX 운영사의 자본금을 5000억원까지 확보할 계획이다. 59% 지분을 갖는 공적 연기금이 2950억원을 투자한다. 국토부와 코레일은 수서발 KTX가 연간 6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중 7%를 투자에게 배당할 경우 공적 연기금과 코레일은 각각 200여억원, 140여억원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배당을 제외하고도 250억원 이상의 유보금이 남아 재투자나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데 쓸 수 있다.

정부 방침대로 공공기관의 참여만 허용된다면 수익은 모두 공공부문으로 환원된다. 코레일 몫은 적자 보전과 철도 공공성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재투자된다. 공적 연기금 투자자들이 가져간 수익은 연기금 운용 수익률 개선과 안정화로 이어져 국민부담이 그만큼 줄어든다. 정부가 수서발 KTX 법인화를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영화의 이론적 정의를 떠나 돈의 흐름으로 보면 정부의 주장이 틀리지 않다.

일부에서는 수서발 KTX 법인의 실질적 지배를 코레일이 하기 때문에 건전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을 거라고 우려한다. 정부가 성공 사례로 꼽는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분리는 운영 주체를 완전히 분리시켰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는 게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한 방법일 수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기금 투자자들이 의결권행사 등으로 제대로 감독하지 않으면 새 자회사가 코레일 간부들과 정치권의 낙하산 안착지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법인을 설립하는 목적을 이루려면 주식을 처분할 때 매입가로 넘길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프리미엄이 붙으면 매수자가 가져가는 배당금이 높아져 요금 인상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 의심 풀어줄 소통 능력 키워야코레일 노조의 파업에 맞서 정부가 천명한 ‘원칙 앞에 타협 없다’는 방침은 앞으로 이어질 공기업 개혁 작업에서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코레일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자 기획재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공공기관 정상화 계획 운영지침을 발표했다. 공공기관의 복리후생을 공무원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라는 게 골자다. 대학생 자녀 학자금 무상지원과 가족 무상 건강검진, 채용 우대조치를 금지하도록 했다.

다른 공기업 개혁 과정에서 민영화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전기·수도 민영화 시나리오가 온라인을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코레일 사태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믿으라는데 왜 안 믿느냐’는 식의 감정적 대응이 국민의 반발과 의심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김동건(70) 서울대 명예교수는 “민간에 맡기려니 특혜 시비가 나오고, 제2 철도공사를 만들기엔 재정이 부담돼 고육지책으로 나온 게 자회사 설립”이라며 “왜 이런 방안을 내놨는지 국민에게 보여줘야 타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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