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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cope INTERVIEW WITH AMBASSADORS - 러시아로부터 배우는 분쟁 해결법

periscope INTERVIEW WITH AMBASSADORS - 러시아로부터 배우는 분쟁 해결법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 “관계 개선과 실질적인 협상을 동시에 추진해야”
브누코프 대사는 20년 이상 중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중국통이다.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일화를 좋아하는 듯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10월 어느 강연장이었다. 그 자리에서 브누코프는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에 대한 일화를 소개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우주로 출발하기 전 이 씨는 아주 독특한 요청을 했다. 우주에서 김치를 먹고 싶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에게 물어보니 평범한 김치는 우주에 가져가기가 어렵다고 하여 결국 우주 김치를 개발했다.”

2013년 12월 6일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브누코프는 20년 이상 중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중국통이다. 러시아 외교부에서 동북아시아 지역을 담당했던 지역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동안 동북아 국가를 수없이 많이 방문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인상이 어떻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브누코프는 “한국은 중국, 일본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차이점이 많은 국가”라고 운을 떼며 “중국과 일본이라는 녹차 대국 사이에 위치했으면서도 많은 한국인이 커피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때 그가 소개한 일화는 고종과 커피에 얽힌 이야기였다.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당시 정동에 있었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1년 여를 지냈다.

이때 러시아 공사의 아내가 고종에게 커피를 대접하면서 고종은 한국인 최초로 커피를 맛봤다.”(그 전에 이미 조선에 커피가 전파돼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관파천이라 불리는 이 고종의 러시아 공사관 피신은 한국과 러시아 외교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래서인지 주한 러시아대사관 접견실에도 당시 러시아 공사관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2014년은 한러 수교 24주년이 되는 해이지만 사실 양국의 공식 외교관계는 그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과 러시아는 1884년 조·러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고, 이듬해인 1885년 서울 정동에 러시아 공사관이 들어섰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소비에트연방이 수립되면서 국교가 단절됐다. 그로부터 1990년 한러수교가 이뤄지기까지 두 나라는 가깝고도 먼 관계에 머물러야 했다.

수교 체결 후 20여 년 동안 양국 관계는 빠르게 발전했다. 특히 2012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각각 당선되면서 한러관계는 한층 더 진전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신북방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푸틴 역시 동북아 지역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브누코프는 “푸틴은 2012년 취임 첫날부터 러시아의 대외정책 법령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그 법령에서 푸틴은 한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 협력국가 중 하나로 명시했다.”

브누코프는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아무런 분쟁이 없다”며 양국 관계를 높이 평가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과거사와 영토를 둘러싸고 긴장관계를 이어간다. 러시아도 과거 중국과 국경을 놓고 갈등이 있었으며 현재 일본과 영토 분쟁 중이다.” 그러나 브누코프에 따르면 러시아는 동북아에서 일어난 분쟁들을 지혜롭게 해결나가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은 약 4300㎞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그런 만큼 국경선을 확정하기가 어려웠지만 충분한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의 소지가 전혀 없게끔 합의를 마쳤다.”

일본과의 영토분쟁도 그렇다. 러시아는 현재 쿠릴열도를 실효지배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를 북방영토라 부르며 자국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는 나쁘지 않다. 러시아는 쿠릴열도의 영토분쟁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과 여러 차례 협상을 가졌다. 브누코프는 “푸틴이 2013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수 차례 만나 그 사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협상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수십 년째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중일 3국의 영토분쟁과는 아주 다른 양상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러시아는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브누코프는 말했다. “첫째는 모든 분야에서 관계를 증진하고 더 나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둘째는 외교채널을 통해 실질적 협상에 나서는 것이다.” 여기서 브누코프는 중국의 전 지도자 마오쩌둥을 인용했다.

“마오는 넘어지지 않고 걸어가려면 두 발로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분쟁 해결도 마찬가지다. 관계 개선 노력과 협상이 동시에 가야 한다. “ 푸틴이 아베와 수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는 한편 장관급 회담을 전격 개최해 실질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려는 전략 역시 이런 원칙에서 비롯된 셈이다. “과거 중국과의 국경 분쟁을 해결했던 경험이 현재 일본과 진행 중인 영토 분쟁을 다루는 데도 도움이 된다.”

어쩌면 이는 푸틴의 실용주의 외교를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른다. 2013년 11월 러일 양국은 외교·국방장관 회담을 가졌다. ‘2+2 회담’이라고도 불리는 이 회담은 관례상 아주 가까운 우방 사이가 아니면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러시아와 일본은 그런 우방이 아니다.

사회주의 성격이 남아 있는 러시아와 미국의 최대 우방으로서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일본 간의 이념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러일 양국의 2+2 회담은 많은 외교전문가들 사이에서 의외의 사건으로 꼽혔다. 한국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래 일본은 물론 미국과도 아직 2+2 회담을 갖지 못했다.

브누코프는 “러시아의 외교는 소련식 외교와 다르다”고 말했다. “냉전 체제하에서 외교는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양분됐다. 그러나 오늘날 러시아는 이념이 아니라 국익에 따라 외교정책을 추진한다. 주요 국가들과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현 러시아 외교정책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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