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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REPORT - 아사히 신문은 아베의 적?

SEOUL REPORT - 아사히 신문은 아베의 적?

일본 총리의 도발적인 발언은 진보 불신에 빠진 지지층을 의식한 결과다
아베는 “아사히 신문의 경영방침은 아베 정권 타도라는 말을 들었다”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치인의 다소 과격한 발언에도 무덤덤해진 요즘이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월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던진 한 마디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베는 아사히 신문을 지목하며 “아사히 신문의 경영방침은 아베 정권 타도라는 말을 들었다”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총리가 국회 답변에서 특정 언론기관을 향해 도발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아사히 신문의 경영방침이 아베 정권 타도일 리는 없다. 기사나 사설에 아베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런 비판은 어떤 입장이 국민의 행복과 세계 평화에 기여할지를 기준으로 여러 취재 내용을 종합해 판단한 결과다. 아마 아베 총리도 이를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도발적인 발언을 한 데는 높은 지지율로 비교적 여유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 아사히 신문으로 대표되는 진보진영을 향한 지지가 퇴조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012년 말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한 이래 국회 내 진보세력(민주당, 사민당, 공산당 등)은 의석 수에서 아베 정권에 대항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현재 아베 정권을 위협하는 세력은 사실상 아사히 신문 같은 진보 언론뿐이다. 그런데 그런 논조에 대한 독자와 시청자의 지지는 이전처럼 강하지 않다. 특히 최근 일본의 온라인 여론은 진보에 반발하는 경향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진보세력을 향한 지지나 공감이 퇴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약 3년 간 국정을 운영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한 민주당 정권의 실패다.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불행까지 겹치면서 벌어진 일대혼란은 국민들에게 트라우마에 필적할 상처를 남겼다. 뿐만 아니라 지난 세월의 외교문제, 특히 한일관계와 중일관계 악화가 진보 불신의 요인이 됐다.

대표적인 예가 위안부 문제다. 위안부 문제는 1980년대부터 한국 사회에서 연구자를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시작됐으나 1990년대 초에 아사히 신문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한일 정치문제로 급부상했다. 당시는 아사히 신문뿐만 아니라 일본 언론 전체가 한때 침략전쟁이나 식민지 정책으로 아시아에 피해를 입힌 일본이 솔선해서 잘못된 역사를 마주해야 아시아 국가와 우호 증진으로 연결된다는 진보적인 이상을 강하게 품었다. 국민 대다수도 그런 논조를 지지했으며, 그런 흐름 속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에 사죄를 표명한 고노담화가 1993년 발표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오늘날 많은 일본 국민은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측의 노력이 한국측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듯이 보이고, 우호관계는 커녕 대립의 불씨가 됐기 때문이다. 미국 각지에서 위안부 기림비를 세우는 움직임을 보면서 “한국은 일본의 평판을 깎아내리려 위안부 문제를 들고 나왔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가 오늘날 아사히 신문 등 진보계로 쏟아진다. ‘아사히 신문은 한국에 일본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매국 언론’이라는 식이다.

나는 아사히 신문이 선도한 진보적인 논조는 일부 잘못된 부분이 있을지언정 대체로 일본과 아시아의 평화에 공헌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하는 와중에 진보파의 이상은 일본 사회, 특히 20~40대에겐 허울 좋은 소리로 여겨지고 배척당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아베의 발언에 대해 온라인에서는 ‘언론 탄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는 한편 ‘잘했다’고 지지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이다. 나는 지지파의 대부분이 군국주의를 지향하는 전형적인 우익이 아니라 ‘진보 불신’에 빠져 갈곳을 잃은 평범한 시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계층이야말로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각을 노리는 아베 정권을 떠받치고 있는 것 아닐까.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 필자 다케다 하지무(일본)는 아사히 신문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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