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파워피플 [48] - 크레이그 퓨게이트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
글로벌 파워피플 [48] - 크레이그 퓨게이트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
크레이그 퓨게이트(55)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 청장은 따지고 보면 일개 청장급 미 연방공무원이다. 하지만 그가 맡고 있는 일의 무게와 업무의 완성도를 보면 그는 글로벌 파워인물임에 분명하다. FEMA는 연방 차원의 재난 컨트롤 타워다. FEMA는 주 정부의 재난관리청을, 주 재난관리청은 카운티의 재난관리팀을 각각 실시간 지휘하며 재난에 대응한다. 미국인은 이런 재난 체계를 철저히 신뢰한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퓨게이트다. 그는 7400여 부하를 지휘하며 2012년 기준 연 109억 달러(약 11조2400억원)의 예산을 쓰며 재난에 대비한다.
FEMA는 주 정부와 카운티 정부가 감당하기 힘든 재난이나 응급상황에 대처하는 게 임무다. 재난 현장 지원이 주목적이며 각 분야 전문가 지원과 구호 성금 모금도 주도한다. 재난 관련 행정서비스는 물론이고 민과 관의 거버넌스도 주도하는 셈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재난을 총괄해 지휘하는 컨버전스 임무도 띠고 있다. 미국의 재난 구제, 대형 긴급 구호 분야에선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는 그가 사실상 대통령인 셈이다.
세월호 참사에 한국 정부는 우왕좌왕그런 그의 진가가 드러난 것은 미국 중남부 지방을 시속 265~320km에 이르는 토네이도(회오리 바람)가 강타해 첫 피해가 보고된 4월 27일이었다. 한국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우왕좌왕해 전국이 분노하고 있을 때였다. 미국의 상황은 심각했다. 미국 기상청은 이날 아칸소 등 동남부 10개 주에 토네이도 주의보를 발령했다. 이날 토네이도가 아칸소주를 비롯해 인근 미시시피·오클라호마·테네시주 등으로 번지면서 피해자도 확산됐다. 사망자가 16명에 이르렀다. 아칸소주는 신속하게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 방위군을 피해 지역에 파견했다.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미 연방정부의 대응은 신속·치밀했다. 마침 그 순간 아시아 순방 마지막 방문국인 필리핀 마닐라에 있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고 책임자로서 재난 상황을 지휘했다. 오바마는 “연방정부가 피해 복구와 재건을 위해 존재한다는 걸 알게 하겠다”고 말하며 첫 지시로 퓨게이트 FEMA 청장을 아칸소로 보냈다. 오바마의 명령은 간단했다. “아칸소 주정부와 연락해 연방정부가 지원할 게 무엇인지 현장에서 소상히 파악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마닐라의 오바마는 이어 마이크 비비 아칸소 주지사에게도 전화를 걸어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 질문했다. 오바마는 베그니토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자리를 피해 지역 주민을 위로하는 자리로 삼았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여러분의 조국은 여러분이 피해를 복구하고 재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는 오바마의 발언은 그의 대응 의지를 밝히는 것과 동시에 피해 지역 주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바마가 외국에서 내린 지시는 본국의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전달됐으며 그가 전한 메시지는 국민을 안심시키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토네이도는 다음날인 28일 조지아주 등으로 확산했다. 사망자는 21명으로 늘었다. 조지아·앨러배마·오클라호마주에서 잇따라 비상사태가 선포되는 긴박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FEMA가 투입되면서 미국민은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ABC방송은 “FEMA가 나섰으니 이제 됐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주민의 모습을 방영했다.
실제로 FEMA 청장인 퓨게이트는 평소 훈련시킨 부하들을 십분 활용해 대통령이 흡족할 수준으로 국민을 위해 충실히 봉사했다. 그는 토네이도 피해 지역에 직원들을 급파해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즉각 지원에 들어갔다.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4월 29일 오후 4시30분 백악관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퓨게이트의 판단을 존중했다.
오바마는 피해가 심각하다는 퓨게이트의 보고를 받자 귀국 즉시 지체 없이 토네이도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아칸소주를 긴급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연방정부 차원의 충분한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의 재난특별지구처럼 미국에서도 긴급 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연방정부가 피해 복구비를 지원한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이나 주민에게는 저금리로 복구비를 대출해 준다.
퓨게이트 FEMA 청장은 현지를 잘 아는 티모시 스크랜튼 소방대장을 연방조정관으로 임명했다. 연방조정관은 토네이도로 피해지역의 복구 사업을 총괄한다. 주 정부는 주지사 주도로 복구작업 나섰으며 피해 보상책을 서둘러 마련하는 한편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FEMA로 신속하게 피해 보고를 했다. 토네이도만큼 그 대응도 빠른 모습이다.
토네이도 피해 미국인 “FEMA 나섰으니 이제 됐다”미국 재난 대응의 중심에 있는 퓨게이트는 철저히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철저히 자수성가형인 그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난 대응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면서 입지를 넓혀 왔다. 그는 1959년 플로리다주 동북부 항구도시인 잭슨빌의 해군항공기지에서 태어났다. 해군 상사였던 아버지가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1살 때인 1970년 어머니를 잃은 데 이어 1974년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고아가 된 그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플로리다주 알라추아의 산타페 고교를 다니면서 자원 소방단 활동을 한 데 이어 산타페 커뮤니티 대학 산하 소방대학에서 공부했다. 구급의료대원 학교도 마쳤다. 그런 다음 알라추아 카운티 소방구급대에 들어가 구급대원으로 경력을 쌓았다. 곧 두각을 나타내 이른 시간 안에 간부인 소방경위 자리로 진급했다.
그 뒤 1987년부터 10년 간 알라추아 카운티 소방구급대에서 구급대장으로 일한 다음 플로리다주 재난관리청 부청장을 맡았다. 그의 능력을 눈 여겨 본 젭 부시 플로리다주 지사는 2001년 그를 청장에 임명했다. 젭 부시는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아들이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동생으로 차기 공화당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부인이 멕시코 출신이라 미국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히스패닉계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퓨게이트는 원래 민주당 지지자이지만 뛰어난 능력으로 공화당 소속 젭 부시로부터 자리를 받은 것이다.
퓨게이트는 일복이 많기로 유명하다. 플로리다주 재난관리청장을 지내던 2004년 한 해 동안 이른바 ‘2004년의 빅4’를 겪었다. 2004년 한 해의 허리케인 시즌 동안 찰리·프랜시스·아이반·진 등 4개의 강력한 허리케인이 플로리다주를 덮친 것이다. 한 시즌에 1개의 주에 4개의 허리케인이 연이어 찾아온 것은 유례가 드물다.
1886년 텍사스주가 겪은 이래 미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04년의 허리케인은 모두 특이했다. 예측하지 못한 형태로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불어왔다. 그 해 플로리다주 허리케인 시즌은 8월1일 시작됐는데 이는 1952년 이래 가장 늦게 찾아온 것이었다. 한 마디로 재해를 대비하는 공무원도 일을 처리하기 아주 힘들었다.
퓨게이트 청장은 철저한 대비와 신속 대응으로 2004년 4개의 허리케인에 기민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2005년에는 데니스·카트리나·윌마 등 3개의 허리케인을 겪었다. 당시 허리케인 윌마가 덮쳤을 때 그는 그 지역에 계속 머물고 싶은 사람은 사흘 간 버틸 수 있는 물·식량·비상물품을 준비하라고 사전에 경고했다. 허리케인이 지난 뒤 그는 얼음과 물 및 다른 비상물품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일부 받았지만 전반적으로는 잘 대응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그는 2006년 전국국토지킴이협회 플로리다주 전미주방위군협회의 추천으로 이 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루이지애나주를 휩쓸고 이 주의 중심 도시 뉴올리언스를 강타하면서 미국의 재해대응시스템이 극심한 비난에 직면했다. 프랑스인들이 건설해 프랑스 문화의 영향이 짙게 배인 유서 깊은 도시인데다 재즈의 발상지로 세계적인 관광지였던 뉴올리언스는 제방이 무너지면서 폐허가 됐다.
피난 명령이 너무 늦게 떨어져 사람들은 미처 도시를 탈출하지 못했으며 수 만 명의 피난민이 대형 운동 경기장에 피난하며 고통을 겪었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카트리나가 강타한 지 5일 뒤 현장에 방문해 비난을 자초했다. 선진국이자 강대국인 미국도 재난 앞에선 별 수 없다는 비웃음이 전 세계에 번져갔다.
당시 FEMA 청장이던 마이크 브라운이 재난 대응을 총책임졌으나 그는 격렬한 비난에 시달렸다. 판사 출신으로 재난 대응 분야에 전문성이 부족한데도 부시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이 자리에 임명됐다는 지적까지 받으면서 그는 2005년 9월12일 사임했다. 당시 부시는 퓨게이트의 전문성을 인정해 그를 후임으로 고려하기도 했지만 결국 당시 다른 소방구급 전문가인 데이비드 폴리슨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그러는 동안 퓨게이트는 플로리다에서 명성을 얻었다. 재난 사전 대비도, 즉각적인 경보도, 사후 수습도 뛰어났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그런 그를 눈 여겨 봤다. 공화당의 부시가 재선 뒤 물러나고 민주당의 오바마가 집권한 뒤 그는 FEMA에 입성했다. 2009년 폴리슨이 물러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퓨게이트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당시 오바마는 “크레이그는 이 업무의 적임자이며 과거의 실패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플로리다주를 떠나 FEMA 청장에 발탁된 뒤로도 크레이그의 일복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2011년 취임 이후 지금까지 87건의 대규모 재난을 처리했다. 그는 ‘와플하우스 매트릭스’라는 이름으로 재난 현장 파악법을 고안했다. 현장 상황에 따라 재난의 등급체계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긴급 구조와 지원의 정도와 신속도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는 웬만한 일이 있어도 가게 문을 여는 ‘와플하우스’라는 이름의 특정 체인점의 상태에 따라 재난 지원의 정도를 결정하게 했다.
예로 특정 지역에 있는 ‘와플하우스’ 체인점이 정상 영업을 하면 재난 피해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지나쳐도 괜찮으며 체인점이 피해를 입고 제한적인 메뉴만 제공하면 그 지역은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한다. 이 체인점이 문을 닫으면 엄청난 피해를 본 것이니 전력을 다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이론은 퓨게이트 출신지이자 와플하우스가 어느 동네에나 있는 남부에서는 먹히지만 와플하우스가 별로 없는데다 개점 철학과 정책이 다른 스타벅스나 던킨 도넛이 주로 진출한 다른 지역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받는다.
FEMA 청장이 된 퓨게이트는 ‘선더 볼트(벼락) 훈련’으로 불리는 비상훈련을 불시에 진행한다. 재해 대비에는 훈련을 통해 비상 매뉴얼이 실전에 잘 적용될 수 있는지, 어느 부분이 현실성이 없는지, 어느 부분이 개선이 필요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그는 불시에 긴급대응센터를 방문해 가상의 사태를 상정한 비상훈련을 실시한다. 일종의 훈련재해경보를 내리는 셈이다. 재해 대응조직은 항상 긴장을 잃지 않아야 하며 어떤 특수한 상황이 와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민주당·공화당 모두 신뢰하는 재난 대응 전문가퓨게이트는 재난 대응이 시대 변화와 함께 해야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항상 FEMA와 디지털 미디어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그렇게 실천해왔다. 이를 위해 이용자들이 사진이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GPS 정보 등을 FEMA에 보내 재난 상황을 널릴 알릴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개발해 보급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이용해 디지털 미디어를 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디지털화는 재난관리의 효율을 크게 높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퓨게이트의 활약으로 과거 법조인 출신 마이크 브라운 청장시절 카트리나가 닥쳤을 때 땅에 떨어진 FEMA의 권위를 완전히 되찾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오바마의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과거의 FEMA는 완전히 사라졌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한국에서도 FEMA와 같은 재난·구조·구호 컨트롤 센터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인력·장비·예산이 뒤받침 되는 이 같은 조직은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자리를 누가 맡아 어떻게 국민과 호흡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면서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나가느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FEMA와 크레이그 퓨게이트는 살아 있는 벤치마킹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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