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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년 <이코노미스트>로 되짚은 한국 경제 30년 ① 1999~2003년 - 위기 극복 위한 경기부양이 부메랑으로

창간 30년 <이코노미스트>로 되짚은 한국 경제 30년 ① 1999~2003년 - 위기 극복 위한 경기부양이 부메랑으로

DJ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정책으로 IT강국의 초석을 놨다. 하지만, 벤처·코스닥 거품의 부작용도 심했다.



세기말, 한국 경제를 짓누른 IMF 관리체제는 경기회복 기대감과 함께 서서히 누그러졌다. 하지만, 재계는 빅딜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5대 그룹 구조조정, 특히 LG반도체와 현대전자 통합은 김대중 대통령이 구본무 LG 회장과 독대하고 나서야 매듭이 지어졌다.

대우자동차의 삼성자동차 경영권 인수도 난산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재벌 해체까지 거론하며 재계를 압박했고, 결국 5대 그룹 빅딜이 성사됐다. 금융권에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은행인 제일은행이 미국 뉴브리지캐피털에 팔렸다.

당시 본지 제목은 ‘파란 눈 은행주인이 온다’였다. 9조원 규모의 자산 매각을 골자로 한 김우중 회장의 대우그룹 구조조정도 핫 이슈였다.



코스닥 열풍에 각종 게이트 터져1999년 상반기 국내 기업은 예상 밖의 흑자 잔치를 벌였다. IMF 관리체제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내수가 살아나고, 기업들의 자구 노력과 구조조정으로 수익성이 크게 향상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저금리 기조도 한 몫 했다. 1999년 중반 종합주가지수는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당시 자산 98조원으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이 사실상 해제 수순에 들어가면서 ‘제2 위기설’이 퍼졌지만 본지는 ‘언제 IMF가 있었나 싶게 소비 심리가 급팽창하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501호(1999년 9월)에 본지가 단독 입수해 보도한 ‘청와대 특별팀 극비작성 재벌개혁 초안’은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이 초안에는 ‘재벌 총수의 전횡적 지배구조타파’, ‘기업지배권의 변칙적인 대물림 관행 근절’, ‘산업자본과금융자본 분리’, ‘재무·사업구조 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초안 작성을 주도한 인물은 당시 김태동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과 김한길 청와대 정책기획 수석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8·15 경축사에서 “우리 경제 최대의 문제점인 재벌의 구조개혁 없이는 경제 개혁을 완성할 수 없다”며 “그동안 추진한 투명성 제고, 상호 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업종 전문화, 경영진 책임강화 등 5대 원칙이 반드시 마무리돼야하고, 나아가 계열 금융회사를 통한 재벌의 금융지배를 막겠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너가 인사와 자원 배분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문제”라며 “오너는 대주주로서 배당금만 받으면 되고 투자 결정 등은 이사회에서 이뤄져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와 동시에 재계엔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 확대로 위기감이 팽배했다. 정부가 대기업을 공격할 때 전가의 보도로 국세청이 등장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 마찬가지였다. 이런 와중에 벤처 열풍의 조짐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났다.

모 영화배우가 벤처에 투자에 2년 만에 30억원을 벌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고, 급성장한 벤처인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 벤처들의 나스닥 상장 열기도 뜨거웠다. 1999년을 마무리하는 ‘99 재계 총결산’ 기사는 이렇다. ‘자산 규모 2위인 대우는 워크아웃 대상이 돼 해체의 길을 걷고 있다. 30위권에 있던 쌍용·동아·고합·아남·강원산업·신호·뉴코아·거평 등의 이름이 사라졌다. 대신 30대 신흥 벤처 부자는 서울 강남의 고급 룸살롱에서 VIP 대접을 받으며 밤의 문화도 바꿔 놓고 있다.’

하지만 벤처 열풍은 곧 버블 논란으로 바뀌었다. 돈과 사람이 몰리고, 코스닥 시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벤처 열풍 후유증이 시작됐다. 546호(2000년 7월) 본지 표지 제목은 ‘닷컴 몰락하나’였다. 한 벤처기업 CEO는 “작년만 해도 창투사에 가서 IR(투자 홍보) 몇 번만 하면 서로 돈을 주겠다고 아우성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대출을 받아야 할 지경”이라고 했다. 1999년 5월 벤처활성화 대책으로 불붙은 코스닥 시장은 2000년 중반부터 급락했다. 556호(2000년 9월) 커버스토리 ‘중병 든 코스닥, 출구는?’에서는 정부의 화려한 이벤트식 정책이 코스닥을 망쳤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내세운 벤처 창업은 이어졌다. 훗날 대통령 선거에서 큰 논란이 된 이명박 전 대통령도 벤처 창업에 가세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질 좋은 금융상품 아이디어를 내는 LK이뱅크, 투자자문회사 BBK, 그리고 이 두 회사를 바탕으로 한 증권회사 e뱅크, 이 3각 축이 내 포부를 달성시키는 산실이죠”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대선 과정에서 BBK는 자신과 상관없다고 말을 바꾼다.

2000년 말에는 정현준 게이트가 터졌다. 그 해 11월에는 현대건설이 1차 부도를 내고, 대우자동차도 부도가 났다. 중산층 위기와 청년 실업 고착 문제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다뤄진 것도 이 즈음이다. 박사 출신이나 회계사·변호사·세무사 등 전문직 자격증 소지자가 일반 기업이나 공무원 채용 시험에 몰린다는 뉴스도 화제가 됐다.

2002년 5월, 신용카드 남발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자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신용카드 남발에 신용불량자 폭증2001년 8월, 한국은 약 3년 8개월 만에 IMF 자금을 전액 상환하며 IMF 체제에서 조기 졸업했다. 외환위기가 남긴 상흔은 컸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사회와 경제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당시 본지 평가는 이렇다. ‘외환유동성, 금융시장, 거시경제지표 등 긍정적인 변화를 보였다. 외환보유액 급증, 외채 감소 등 외환 유동성 개선은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지속했고, 외국인 직접투자와 증권투자 자금도 지속적으로 유입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1인당 국민소득, 물가 등도 안정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부실 기업과 금융회사가 대거 퇴출 됐다. 하지만 부정적인 변화도 만만치 않다.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소득 불균형이 악화돼 양극화가 심화됐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경쟁 우려도 컸다. 본지는 ‘은행들이 기업 대출은 기피하고 가계 대출만 늘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높은 금리로 신용이 낮은 개인에 과다하게 대출하는 것은 은행들의 경영 건전성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했지만 허사였다.

2001년 9월 11일에는 미국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무너지며 세계 증시가 급락했다. 앞서 줄줄이 터진 정현준·진승현·이용호·윤태식 게이트는 정·관계를 뒤흔들며 DJ 정부 레임덕을 가속화 시켰다. 한편, 김대중 정부는 임기 중반부터 경기 부양을 위해 신용카드 사용 장려 정책을 폈는데 이에 대한 우려도 이미 2001년 말 제기됐다. 당시 블룸버그 통신은 ‘신용카드 정책이 한국 경제 성장에 일조했다’고 분석했지만, 본지는 ‘신용카드 8000만장의 그늘’이라는 칼럼을 통해 신용카드 남발이 엄청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급기야 2002년 중반 소액대출 정보를 금융사가 공유하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7월 가계 대란설’이 불거졌다. 본지는 ‘신용 불량자 양산→사채시장 의존 심화→개인파산 러시→금융회사 부실→경제 주름살의 악순환’을 우려하면서 소비자 워크아웃 제도 도입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2002년 연초부터 논란이 컸던 주 5일제 근무제도는 7월 금융권을 시작으로 시행됐다.

재계에는 한·일 월드컵 영향으로 ‘히딩크 신드롬’이 단연 화제였다. 오랜 침체에 시달리던 건설업계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당선으로 제2 특수 기대감이 퍼졌다. 다소 잠잠했던 아파트값이 강남을 중심으로 급등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기러기 아빠·엄마’ 현상도 사회 문제로 부각했다. 2002년 말에는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빌려준 4억 달러의 용처를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초에는 헤지펀드인 크레스트 시큐리티스가 SK 주식을 대량 매집하면서 재계 전반에 적대적 인수·합병(M&A) 위기가 퍼졌다. 헤지펀드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SK 최태원 회장은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2003년 4월에는 국내 8개 전업카드회사가 회생 자구안을 발표했다.

인원감축, 비용구조 개선, 조직 통폐합 등의 내용을 담았다. 당시는 2002년 말 38만명이던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가 75만명으로 급증한 상황이었다. 결국 카드 대란이 터졌다. 여기에 화물연대와 두산중공업·철도파업까지 겹치고,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서 노 정부 경제팀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다.

본지가 전문가들의 견해를 모은 기사의 제목은 ‘이렇게 무능한 경제팀이 있었나’였다. 소비시장도 꽁꽁 얼어붙었다. ‘신용불량자 급등, 대출 억제, 취업난 등 사회적인 여건이 소비를 진작시키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이 본지 현장 르포 결과였다. 결국 2003년 국내 경제성장률은 2.9%에 그쳤다. 전년 대비 4.5%포인트나 하락한 수치다. 당시 정부는 부랴부랴 경기부양책을 내놨지만 때를 놓쳤다.

당시 전문가들은 ‘정부가 계속 경기 침체를 부인하고 부양책 사용을 부인하다가 갑자기 재정정책을 발표하는 등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했다’는 진단을 내놨다. 그 해 여름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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