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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니뇨와 일본 경제 - 엘니뇨에 아베노믹스 발목 잡히나

엘니뇨와 일본 경제 - 엘니뇨에 아베노믹스 발목 잡히나



최근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남미 연안에서 엘니뇨가 발생할 확률은 70%에 달한다. 2009년 이래 가장 높은 확률이다. 기상청은 엘니뇨가 발생한다면 그 강도가 1997년 이래 가장 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페루와 칠레 연안에서 발생하는 엘니뇨는 남미에 폭우를, 동남아에는 가뭄을 가져온다. 일단 엘니뇨가 발생해 맹위를 떨치면 남미와 동남아의 커피·옥수수 등의 곡물과 면화·천연고무·팜유 등의 작황은 형편없어 진다. 국제적으로는 애그플레이션(곡물가격 상승)의 위험이 고조된다.

이 같은 국제 곡물가격 상승은 시차를 두고 식음료 제품의 가격인상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요즘 일본 도쿄 금융가는 엘니뇨가 내수경기와 일본은행(BOJ) 통화정책에 가할 충격을 계산하느라 분주하다. 일시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을 만들어놔 당국의 정책대응이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최악의 엘니뇨 발생 확률 70%엘니뇨가 발생하면 일본의 여름은 비가 잦고 일조량이 줄어든다. 가을까지 평년보다 낮은 기온이 이어진다. 이로 인해 피서지 관광객은 줄고 냉장고와 에어콘 판매가 감소하며 빙과류와 냉음료, 맥주의 소비도 감소한다. 여름 피서객들의 이동이 줄면서 운송업체도 울상을 짓게 마련이며 건설 현장도 노는 날이 늘어난다. 블룸버그 차트를 인용하면 엘니뇨가 발생한 2009년 7월 기린과 아사히 맥주 출하량은 7월 기준으로는 1992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폭우와 서늘한 날씨로 맥주업체들이 여름 성수기를 날려버린 거다.

그간 아베 내각과 일본은행은 4월 소비세 인상에 따른 내수 위축세가 3분기(7~9월)로 접어들면 상당 부분 희석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4월 30일 일본은행의 거시·물가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행 통화정책 이사들은 2분기(4~6월) 성장률 감소는 일시적이며 임금상승을 동력으로 소비는 3분기 다시 회복돼 연간(2014년 4월~2015년 3월)으로 1.1%의 실질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엘니뇨로 여름 특수가 실종되면 3분기 경기 반등세는 애초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커진다. 비 오는 날이 많아져 재정정책 사업의 진척이 더뎌지면 자재 수요와 파트타임 일자리도 일시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최근 다이치생명은 과거 엘니뇨 사례 분석을 통해 “장마가 예년보다 더 길어질 경우 올 3분기 성장률을 0.9%가량 갉아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쿄 증권맨 중 일부는 1993년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상저온으로 유난히 서늘했던 당시 여름은 일본 내각의 ‘경기바닥 진단’을 무색하게 했다. 그 해 6월 경제기획청은 ‘경기는 대체로 바닥에 도달했다’고 판단했지만 이후 장마와 냉해가 엄습하면서 경기가 다시 거꾸러져 경제기획청은 경기바닥 선언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4월 12일 내각부가 발표한 장래 3개월 경기판단지수는 전달보다 15.6포인트 올라 3분기부터 일본 경제가 소비세 인상 충격을 벗어날 것이라는 경제 주체들의 기대감을 보여줬다. 그러나 7년 만에 가장 강력한 엘니뇨가 닥친다면 일본 경제의 3분기 반등 시나리오는 힘을 잃게 된다.

엘니뇨에 따른 이상 저온으로 내수위축이 예상보다 길어지면 시장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추가완화(양적·질적완화 확대)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엘니뇨에 따른 국제 곡물가격 상승과 우크라이나 정정 불안의 장기화 조짐은 일본의 생필품과 에너지 가격에 지속적인 상승압력을 가한다. 곡물가격은 이미 엘니뇨 재료를 선반영하며 오름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가뜩이나 소비세 인상으로 물가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이 같은 비용 측면의 물가상승은 가계 살림살이를 더 빠듯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엘니뇨에 따른 소비둔화를 핑계로 추가완화에 나서게 되면 달러-엔 환율이 위로 반응해(엔 추가 약세) 가계의 물가고통을 단기적으로 더 증폭시키는 결과를 불러온다. 중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고물가가 다시 소비를 위축시키고 디플레이션 탈출을 어렵게 만든다. 물가 상승폭이 가팔라지는 만큼 임금이 빠르게 오르면 충격이 덜 하겠으나 지난 춘투(春鬪)에서 노사가 합의한 임금인상폭은 이를 상쇄할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 임직원의 경우 임금인상폭이 대기업 정규직에 비해 제한적이다. 아베 신조와 구로다가 간절히 바라는 경기선순환이 나타기 전에 일본 열도엔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엄습하게 되는 것이다.

서민들이 겪을 물가고통을 감안하면 올 여름 엘니뇨는 구로다 총재의 추가완화 여지와 그 시점을 더 후퇴시키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올 들어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들썩이자 구로다가 완강히 시장의 추가완화 기대를 억누르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

“성장보다 물가를 정책판단의 중심에 놓고 있다”고 밝힌 구로다로선 ‘물가는 예상 경로를 따라 오르고 있는 중’이라며 계속 뒷짐을 지려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경우라면 7월 이후 구로다의 추가완화를 예상했던 시장의 기대는 후퇴할 것이며 이 같은 기대를 선반영해 온 달러-엔도 아래로 밀리게 된다(엔의 강세 전환).

물론 정반대의 시나리오도 가정해 볼 수 있다. 서민들의 물가 고통은 일시적이라고 돌려세운 뒤 7월 이후 양적완화 규모를 더 확대해 달러-엔 환율과 증시를 떠받치는 경우다. 이 경우 정치권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우려, 그리고 시장 내 ‘구로다 테이퍼링(구로다의 양적완화 축소·중단)’에 대한 우려는 배가될지 모른다. 구로다 테이퍼링에 대한 우려라 함은 물가 상승폭이 애초 예상보다 더 가팔라져 출구전략을 펴는 시점도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를 의미한다. 경기회복세가 미덥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환경을 만들어선 당국도 시장도 좋을 게 없다.



3분기 성장률 부진하면 소비세율 추가 인상 불투명단순히 통화정책 딜레마에 국한되는 문제만은 아니다. 아베 총리는 내년 10월 소비세를 현행 8%에서 10%로 추가 인상할지 여부를 올 10월경 3분기(7~9월) 거시지표를 확인한 뒤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엘니뇨 여파로 3분기 성장률이 지지부진하면 2차 소비세 인상에 나서기가 영 쉽지 않아진다. 물론 2차 증세에 애초 부담을 느껴온 자민당 일각에선 그럴싸한 핑계가 생겼다고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2차 소비세 인상이 물 건너 가면 재정의 신뢰는 다시 흔들리고 만다. 아베 내각이 마련한 중장기 재정건전화 방안은 2차 소비세 인상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재정건전화장기 비전 자체도 다시 짜야 한다. 이를 이유로 일본국채(JGB) 시장이 당장 당국 통제권을 벗어나 출렁댈 가능성은 작지만 시장의 장기 불안 요인은 증폭된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향후 구로다의 테이퍼링(국채매입 중단)이 임박해 시장이 겪을 충격을 감안하면 이런 류의 부담은 만들지 않는 게 상책이다.

특히 무역적자 심화와 경상흑자 축소로 일본이 구조적인 적자국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경고음이 고조된 상황에서 재정의 신뢰 추락이 더해지면 일본국채 시장 내 체질변화를 가속화해 일본 금융시장의 대외충격 흡수능력을 약화시킨다. 이래저래 아베노믹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여름을 지나면서 스릴을 더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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