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LSAN - 울산이 낳은 갑부 신격호 현대가(家) 영토 곳곳에 깃발
ULSAN - 울산이 낳은 갑부 신격호 현대가(家) 영토 곳곳에 깃발
지난 4월 24일 찾은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둔기천을 건너 대암체육공원을 지나자 푸른빛의 대암호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어 나타난 대저택. 이곳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별장이다. 주변에 나무가 빽빽해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없지만 소박하고 실용성 있게 지은 집이 평소 신 총괄회장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듯했다. 대신 대암호 자락까지 연결된 정원은 상당히 넓어 보였다.
왕복 2차선 도로 맞은편엔 그가 태어난 생가가 복원돼 있다. 신 총괄회장은 1922년 둔기리에서 5남5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20년을 살았다. 울산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정든 고향집을 나와 무작정 일본행 밀항선에 몸을 실었다. 둔기리 부락은 1970년 울산공단의 용수공급을 위한 대암댐 건설과 함께 수몰됐다.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던 주민은 집과 전답을 뒤로 하고 인근 삼남면과 울산 시내 등지로 생활 터전을 옮겨야만 했다.
“올해도 마을잔치 가야지. 해마다 하는 것인데...” 띄엄띄엄 떨어진 농가에서 만난 주민들의 관심은 5월 3일로 예정된 마을잔치였다. 수몰 소식을 들은 신 총괄회장은 1971년 옛 고향 사람들과 함께 ‘둔기회’를 만들고 그 해부터 사재를 털어 매년 5월 첫째 토요일에 별장 마당에서 위로를 겸한 마을잔치를 열고 있다. 주로 전국에 흩어진 신씨, 선씨, 이씨 세 가문의 가족이 중심이다.
이주 당시 둔기마을에는 80·90가구가 살았는데 이젠 후손이 늘어 850가구, 1500여 명으로 잔치 규모가 커졌다. 잔치에 초청받은 주민들은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고 노래를 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참석자들에게는 상품과 선물세트, 여비 등이 지급된다. 신 총괄회장의 생가 인근 농가에 사는 이씨 할머니는 “40년 전엔 가마솥 걸어놓고 밥 짓고 돼지 잡았는데 요즘엔 뷔페 음식으로 나온다”며 “흩어진 친척과 부락 사람들 만날 수 있는 기회라 매년 참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재단·과학관 신 회장의 울산 사랑신 총괄회장의 ‘울산 사랑’은 이뿐만 아니다. 그는 2009년 연말에는 570억원을 출연해 사회복지법인 ‘롯데삼동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울산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사회복지법인으로 소외계층 지원을 비롯해 농어촌지역 문화수준향상, 공평한 교육기회 제공 등 다양한 지원활동을 펼친다. ‘삼동’은 고향 이름에서 따왔다. 신 총괄회장의 맏딸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1년 개관한 울산과학관도 신 총괄회장의 사재에서 나왔다. 사재 240억원을 롯데장학재단에 출연하고, 재단이 과학관을 지어 울산시교육청에 기증하는 방식으로 건립됐다. 울산시교육청은 과학관 내 최신 전시 체험물과 기자재 설치를 위해 110억원을 투자했다. 신 총괄회장은 울산시에 과학관이 없어 시민들이 과학체험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사정을 전해 듣고 건립비용 전액을 지원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고향 인근 삼동초등학교 학생들의 수학여행비와 장학금을 지원하고 멀티미디어실을 설치하는 등 지역에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아무래도 수몰된 지역이어서 고향에 대한 신 총괄회장의 애정이 남다르다”며 “그룹 차원에서도 창업자의 고향이기 때문에 울산 지역 투자나 사업 진행에 각별함이 있다”고 말했다.
울산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현대그룹의 ‘모태 도시’로 불린다. 하지만 최근엔 창업자 ‘고향 도시’에 대한 롯데의 영향력 확대가 눈에 띈다. 우선 롯데의 주력인 쇼핑 사업의 질주다. 2001년 오픈한 롯데백화점 울산점은 지난해 매출액 4000억원을 기록하며 롯데백화점 33개 점포 중 8위를 차지했다. 현대백화점 울산점(매출 4000억원)과 울산동구점(2000억원)의 틈바구니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다. 바로 옆 롯데호텔, 영플라자, 롯데시네마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호텔업에선 단연 선두다. 울산의 특1급 호텔은 롯데호텔(211실)과 현대호텔(284실) 등 단 2곳. 현대호텔이 현대 관련 기업들의 지원에 힘입어 꾸준한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입지면에서 롯데호텔에 밀린다는 평가다. 현대호텔이 동구 방어진 지역으로 치우쳐 있는데 반해 롯데호텔은 울산 최대 상권인 삼산지구 한복판에 위치해 숙박과 연회장소로 인기가 높다. 롯데호텔은 또 내년 3월 남구 달동에 특2급 비즈니스호텔인 ‘롯데시티호텔’을 오픈한다. 지하 4층~지상 17층, 객실수 354실 규모로 준공 예정이다. 개점하면 롯데호텔과 롯데시티호텔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09년 이후 5년 동안 멈춰 있던 강동관광단지 내 워터파크 리조트사업도 최근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울산시 북구 정자해수욕장 부근에 위치한 강동관광단지 워터파크 리조트는 당초 선진개발이 지상 29층, 객실 546실 규모의 콘도미니엄이 포함된 리조트를 조성하기 위해 2007년 2월 부지 조성공사에 들어갔던 곳.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추가 공사비 조달 등이 어려워지면서 공사가 지연되다 2009년 5월 공정률 37%인 상황에서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
이후 시공사가 롯데건설로 변경되면서 사업재개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올 들어 롯데건설이 콘도미니엄 규모를 축소하고 관련 기반시설을 변경해 줄 것을 울산시에 요구하며 사업 재개 뜻을 비쳤다. 롯데건설은 휴양 연수형 복합리조트로 개발 콘셉트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콘도형 객실 수와 실외 워터파크 규모를 줄이고, 골프연습장 대신 지역 관광여건을 고려한 연수시설 및 오토캠핑장, 판매문화시설을 확장하는 변경안을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울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현대가(家) 기업들이 개별적으로 울산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비해 롯데는 그룹차원에서 사업 지도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며 “그동안 정유회사의 성장과 함께 ‘울산=현대’ 이미지가 많이 희석됐는데 롯데그룹의 가세로 그 현상이 더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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