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 카드 꺼낸 최윤범…고려아연 분쟁 뒤집을까 [이슈+]
집중투표제 도입 시 최윤범 측 이사 선임 가능 전망도
MBK 연합 “자리 위해 집중투표제 악용”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하 MBK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밀리고 있는 가운데 ‘집중투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MBK 연합이 의결권 기준으로 과반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도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어, 판세가 역전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전날 소액주주 권한 및 보호장치를 강화하는 내용을 포함한 안건을 임시주총에 올리기로 의결했다. 안건에는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과 소수 주주 보호 규정 신설, 분기 배당 도입, 발행주식의 액면 분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앞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지난달 유상증자 철회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이사회 의장직을 내려놓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주목되는 안건은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이다. 이번 고려아연의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은 이사회가 아니라 유미개발의 주주제안으로 상정됐다. 고려아연 지분 1.63%를 보유한 유미개발은 최 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88% 이상인 회사다. 주주제안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상 최 회장 측이 제안한 안건에 가까운 셈이다.
집중투표제란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의 의결권을 주주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주주는 이사 후보자 1명 또는 여러 명에게 의결권을 몰아줄 수 있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MBK 연합 측이 이사회 과반을 선임하지 못하게 되면서 최 회장 측이 이번 경영권 분쟁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현재 MBK 연합의 고려아연 자기주식을 제외한 의결권 지분율은 46.69%다. 최윤범 회장(우호 지분 포함)과 7~8%포인트(p) 격차로 앞서는 모양새다.
MBK 연합은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선임이 이루어지는 경우, 최 회장 측 지분의 의결권을 본인이 추천한 이사들에게 집중해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MBK·영풍 측이 이사회 과반을 선임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의결권 지분은 자신들이 많지만 분쟁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고, 길어진 분쟁은 결국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우려했다.
이사 수 19명 상한설정 안건도
고려아연은 현재 정관에서 집중투표제를 배제하고 있다. 상법 제542조의 7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가 집중투표가 배제된 정관을 집중투표제를 배제하지 않도록 변경하려는 경우, 3%를 초과하는 지분을 가진 주주는 그 초과분에 대하여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집중투표제 안건을 투표할 때 영풍(24.42%)과 MBK(7.82%)는 각각 최대 3%씩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수관계인과 우호세력으로 지분이 더 잘게 쪼개져 있는 최 회장 측의 의결권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MBK는 “이번 임시주총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정관이 개정되더라도, 법률적인 문제를 해소하고 소수주주들의 참여 기회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집중투표제 시행에 따른 이사 선임은 다음 주총부터 돼야한다”며 “최 회장 측의 주주제안은 다른 주주들의 권리와 가치는 무시한 채 오로지 최 회장만을 위한 안건임을 입증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만 고려아연은 “집중투표제가 소수 주주들의 의결권이 사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상법상 대표적인 '소액주주 권리 보호 방안'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고려해 이를 적극 수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고려아연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글래스루이스가 권고하는 상장사 적정 이사 수(20명 미만) 등을 종합 검토해 19명 이사 상한을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가 총 13명으로 구성된 상황에서 MBK 연합 측이 14명의 신규 이사 선임 등을 요구한 데 대한 방어장치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은 “국내 상장사 대부분이 최소와 최대 이사 수를 정관에서 규정하고 있고, 특히 이사의 수가 20명을 넘는 상장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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