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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나는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Management 전미영의 트렌드 워치 - 나는 기록한다, 고로 존재한다



길을 가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발견한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 끝. 디지털 시대의 또 다른 이름은 어쩌면 ‘기록의 시대’일지도 모르겠다. 과거 아날로그 시절 손글씨로 일기를 쓰던 때와 비교해도 요즘 사람들의 ‘기록본능’은 유난스럽다.

보는 것, 듣는 것, 느낀 것, 방문한 곳, 주고받은 e메일, 진료기록, 쇼핑 내역 등을 모두 저장해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서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삶의 모든 것을 손쉽게 기록하는 시대, 그리고 기록하고자하는 욕구를 일컬어 ‘라이프 로깅(life logging)’이라고 한다. 배가 항해할 때 쓰는 운항일지를 의미하는 ‘log’란 단어를 차용한 것이다.

삶을 기록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기술이 있다면 역시 스마트폰과 관련된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스마트폰의 사진·동영상 촬영 기능은 너무나도 손쉽게 우리의 일상을 기록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심지어 어느 유치원에서 학예회를 했는데 모든 부모들이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느라 정작 그 장면을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보고 있더라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스마트폰의 기록 기능을 극대화한 것이 바로 ‘위치기반’ 서비스다. 구글 맵을 켜놓고 여행을 하거나 심지어 동네를 한 바퀴만 돌아도 내가 움직인 발걸음을 따라 동선이 그려진다. 아예 나의 이동 경로를 기록해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도 있다.

‘EveryTrail’이란 이름의 애플리케이션은 자신이 이동경로를 중심으로 사진과 텍스트를 기록할 수 있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이동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이용자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이동경로가 공유돼 이것을 마치 여행 가이드북처럼 활용하는 사람들도 약 35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스마트폰 발달로 일거수일투족 기록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사진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제품도 있다. 매 시간 인생의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이미지로 남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극대화해 일부러 내가 사진을 찍지 않아도 나의 일상이 이미지로 기록되는 초소형 카메라 ‘메모토’가 바로 그런 제품이다. 손가락 크기 만한 이 제품을 옷깃에 붙여놓으면 30초마다 자동으로 셔터가 내려가 사진이 찍히고, 찍힌 사진은 자동으로 저장된다. GPS 기능이 함께 내장돼 그 사진이 언제 어디서 찍혔는지도 함께 기록된다. 그뿐만 아니라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서도 손쉽게 공유할 수 있다.

기록을 산업화한다고 할 때 가장 큰 부가가치가 생성되는 영역은 ‘의료산업’ 부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폰에 기록된 다양한 형태의 생체기록이 병원의 진료기록과 함께 개인의 건강관리를 위한 정보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용화되는 것 중 미국 조본사가 만든 ‘조본 업’ 팔지는 기록 기능을 헬스 케어에 최적화시킨 제품이다.

이 팔지를 손목에 차기만 하면 나의 일상적인 움직임은 물론이고 운동량, 수면 상태 등이 기록된다. 너무 오래 앉아 있는 사람들에겐 경고도 보낸다. 굳이 헬스케어를 위한 기록 제품이 아니더라도 상용화를 기다리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운동량, 심박수, 활동량, 칼로리 소모량 등 다양한 생체정보 등을 모니터링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스마트 워치나 스마트 안경 등 앞으로 출시될 차세대 스마트 기술의 핵심은 곧 ‘기록기능’인 것이다.



기록된 정보는 양날의 검‘기록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기록된 정보’가 갖는 힘도 대단히 세다. 조사 업계에서 강하게 불고 있는 빅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우선 분석할 수 있는 ‘정보’를 많이 모아야 한다. 사람들이 직접 작성한 ‘기록 정보’는 빅데이터 분석의 유용한 밑자료가 된다. 실제로 이런 기록 자료를 바탕으로 기업들은 ‘맞춤형 마케팅’을 진행한다. 가령 SNS나 블로그에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피부 고민을 기록하는지 분석한 후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고민에 맞춰 적합한 화장품의 할인쿠폰을 발송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기록 본능과 기업들의 아이디어가 모이면 무궁무진한 사업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적잖은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첫 번째 우려는 어떤 기록 정보까지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정보가 어떤 형태로까지 활용되도록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최근 인터넷에서 ‘개인의 검색 기록에 따라 인터넷에서 제안되는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달라진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바로 이런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가려고 비행기 티켓 가격을 검색한 후에 호텔 가격 비교 사이트에 들어가면 가격비교 사이트에서는 이 사람이 호텔을 이용할 가능성이 큰 사람으로 간주하고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더 높은 가격으로 호텔 이용 가격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용 가능성이 큰 사람에 대해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두 번째 우려는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발생하는 걱정이다. 위의 사례처럼 컴퓨터에 저장된 개인의 검색정보, 쿠키정보 같은 것은 사람들이 기업에게 제공하겠다는 동의가 없어도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블로그나 SNS에 올린 정보 역시 빅데이터 분석에 활용해도 괜찮다는 개인의 동의가 붙지 않았지만 다양한 빅데이터 분석 업체들은 이를 무료로 이용한다.

정보의 유효기간도 문제다. 내가 작성한 기록이 언제까지 활용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고민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에 남긴 나의 정보는 물론 내 것이지만 내가 사망해도 그것은 기록으로 남아있다. 기록의 삭제 권한은 기업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록욕망’이 스마트 기기들과 만나 한층 더 팽창하고 있는 ‘기록의 시대’다. 시대의 변화를 거스를 수 없다면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개인과 기업, 사회의 자성적 변화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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