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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 미술품 되찾기는 달걀로 바위 치기

도난 미술품 되찾기는 달걀로 바위 치기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2차 대전 중 소장자가 스위스의 한 화랑에 위탁해 나치의 파괴 위기로부터 작품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경매에서 1억1990만 달러에 팔려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난 6월 뉴욕대 법대 지하 강당에서 사흘 동안 회의가 열렸다. 200명 남짓한 참석자들이 햇살 좋은 워싱턴 스퀘어를 가로질러 회의장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들과 변호사들, 경매업체 임원들, 그리고 수백만 달러짜리 미술품을 팔고 사는 화상들과 수집가들이었다.

회의를 조직한 뉴욕 브루클린 태생의 크리스 마리넬로가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참석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런던에 본부를 둔 아트 리커버리 인터내셔널(ARI)의 설립자 겸 회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노련한 아트 헌터(art hunter, 도난당한 미술품을 추적해 찾아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로 꼽힌다. 지금까지 그가 되찾은 도난 미술품은 3억 5000만 파운드 어치에 달한다. ‘가짜·위조·약탈·도난 미술품(Fakes, Forgeries, and Looted and Stolen Art)’이라는 제목의 이 회의에는 관련 분야의 중요인물들이 모여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미술품 범죄를 주제로 논의했다. 참석자들이 자리를 잡자 한 변호사가 “3일이라는 시간은 이 모든 문제를 논의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미 법무부와 유네스코에 따르면 미술품 범죄 관련 거래는 지난 40년 동안 범죄 관련 거래 중 마약과 무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익을 올렸다. 미술품 거래가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합법적인 미규제 사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술품 거래는 문제가 생겼을 때도 형사들이 조사할 만한 서류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조각품이나 회화 작품 한 점을 사는 일은 검트리나 크레이그리스트 같은 온라인 직거래 사이트에서 자전거 한 대를 사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집을 살 때 권리증 등의 증서를 반드시 챙기지만 수백만 달러짜리 미술품 거래는 서류 한 장 없이 이뤄진다.

거래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술품 판매에 관한 내용을 공개할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미술품의 유일한 소유권 계승(chain of title)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소장 이력(provenance)’은 빈 칸과 변칙, 추측으로 가득 차 있어 별 도움이 안 된다. 미국에는 인구 2100만 명 당 한 명의 미술품 범죄 담당관이 있으며(미국을 통틀어 16명에 불과하다), 영국 경시청엔 2.5명밖에 없다(한 명은 시간제 근무자다).

회의 연사로 나선 사람 중 밥 골드먼과 보니 매그니스-가디너는 FBI의 멀더와 스컬리(드라마 ‘엑스파일’의 주인공)다. 이들은 FBI에서 ‘미술품 절도’ 부서를 운영 했는데 팀의 규모가 작고 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금발 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밥은 FBI를 떠나 화이트칼라 범죄 전문 변호사가 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도난 미술품을 되찾는 일에 열정을 품고 있다. 밥은 연사들 중 처음으로 이 일이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규제가 부족한 탓에 미술 시장 전반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크리스티와 소더비, 두 경매사의 매출을 합한 금액이 연간 110~120억 달러에 이른다. 또 ART뉴스(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미술 잡지)의 2008년 조사에서는 개인적인 미술품 판매 금액이 연간 약 3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FBI에 따르면 미술품 범죄로 발생하는 수입의 규모는 연간 60억~80억 달러로 추정된다. 영국에서는 해마다 약 3억 파운드어치의 미술품과 골동품이 도난당한다. 이는 마약밀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이며 자동차 절도 피해보다 규모가 더 크다. 물론 모든 불법 거래를 정확히 추적하기가 불가능하고 도난이나 약탈, 또는 위조된 미술품의 일부는 수차례 반복해서 판매되기 때문에 이런 수치의 정확도는 매우 떨어진다. 도난 미술품 중 제자리로 돌아오는 작품의 비율은 약 10%에 불과하며 미술품 절도에 대해 기소가 제대로 이뤄지는 비율은 그보다 더 낮다.
 달걀로 바위 치기
헤지 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언은 2005년 사적인 거래를 통해 반 고흐의 ‘밀밭을 배경으로 한 여인’(사진)과 고갱의 ‘목욕하는 여자들’, 두 작품을 1억2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하지만 이들 작품의 소장 이력에 대한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회의에서 연사로 나선 또 다른 왕년의 FBI 요원 앤서니 아모르는 2006년부터 보스턴에 있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의 보안 책임자로 일해 왔다. 그는 1990년 이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5억 달러 상당의 미술품 행방을 추적 중이다.

아모르에 따르면 한 야간 경비원이 경찰관을 사칭한 두 남자에게 문을 열어줬는데 그들은 렘브란트의 ‘갈릴리 바다의 풍랑 속 예수’(1633)와 베르메르의 ‘콘서트’(1664) 등을 훔쳐 달아났다. 그 경비원은 “역사상 가장 값비싼 민간 보안상의 실수”를 저질렀다고 아모르는 말했다.

밀턴 에스터로(85)는 ART뉴스의 소유주였던 38년 동안 수많은 미술품 범죄를 보도했다. 그는 미술관의 열악한 보안이 미술품 절도를 부추긴다고 말했다. “1911년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뒤 루브르 미술관의 보안팀이 소장품 목록의 점검을 실시했을 때 또 다른 회화 작품 323점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매그니스-가디너는 놀랍게도 그런 상황은 요즘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코 시당국은 4000점의 미술 소장품 중 실종된 수백 점의 행방을 찾기 위해 미술품 전문 형사를 고용했다.

크리스 마리넬로가 마리안 로젠버그와 함께 연단에 올랐을 때 회의실은 사람들로 꽉 찼다. 로젠버그와 마리넬로는 나치가 약탈한 미술품의 지속적인 거래를 종식시키려는 싸움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현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난 미술품 관련 사건에 연루돼 있다. 로젠버그는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한 유대계 미술상 폴 로젠버그의 손녀다.

폴 로젠버그는 1911년부터 파리 보에티에 거리에 있는 자신의 화랑에서 프랑스의 부유한 고객들을 구워삶아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던 젊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비싼 값에 사들이도록 했다. 들라크루아와 로댕, 세잔, 마네, 드가, 모네, 르누아르, 로트렉, 모딜리아니, 브라크, 마티스, 그리고 자신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이웃사촌이었던 파블로 피카소 등이 그 미술가들이다. 하지만 로젠버그는 400점에 이르는 세계 수준의 소장품 대부분을 나치에게 빼앗긴 뒤 뉴욕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다른 수천 가구의 유대인 가족과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자신의 소장품을 되찾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 로젠버그는 그 작품들을 수백 달러씩에 구입했지만 오늘날 그 그림들의 가치는 수백만 달러에 이른다.

그의 손녀 마리안은 그 중 아직 행방이 묘연한 60여 점을 여전히 찾고 있다. 그녀는 최근 마리넬로의 도움을 받아 모네의 ‘수련’(1904)과 마티스의 ‘벽난로 앞 푸른 옷의 여인’(1937)을 되찾았다. 마리안 측은 이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던 두 미술관에 헤르만 괴링이 마티스 작품에 대한 나치 독일의 소유권을 주장한 서류 등 증거 자료를 제시해가며 설득한 끝에 작품을 넘겨받는 데 성공했다.

최근 꽤 유명해진 사건이 또 하나 있다. 나치 미술상 힐데브란트 구를리트의 아들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와 연관된 사건이다. 힐데브란트는 1938년부터 나치가 ‘퇴폐미술(degenerate art)’로 낙인찍은 작품(거의 모든 현대 미술품)들을 독일의 국가 소장품에서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틀러가 진정한 고향이라고 여겼던 오스트리아 린츠에 세워질 총통미술관에 전시할 미술품(주로 옛 거장들의 작품)들을 사들였다. 이 작업은 곧 압수의 성격을 띄게 됐고 유대인 수집상들의 갤러리와 집들이 주된 공략 목표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말 모뉴먼츠 멘(전쟁 당시 연합군을 도와 나치의 약탈로부터 미술품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단체로 13개국 345명의 전문가로 구성됐다)의 조사를 받은 힐데브란트 구를리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미술품을 반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나치에 협조했던 다른 미술사학자들과 화상들, 그리고 뮌헨의 미술관 간부들과 함께 스위스-리히텐슈타인 조직망을 이용해 약탈한 미술품을 팔 시장을 형성했고 그 시장은 오늘날도 여전히 돌아간다.

힐데브란트 구를리트는 1956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지만 아들 코르넬리우스가 약탈 미술품의 판매를 계속했다. 2010년 취리히에서 뮌헨으로 가는 기차에서 세관 검문을 받았을 때 실직 상태의 구를리트는 스위스 미술상으로부터 받은 빳빳한 500유로짜리 지폐 9000유로를 지니고 있었다. 그 일로 세관은 구를리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뮌헨에 있는 그의 수수한 아파트에서 피카소, 샤갈, 고갱 등의 작품 1280점을 찾아냈다. 최소 10억 달러 상당의 가치를 지닌 그림들이었다.

일부 미술상들 사이에 이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파우스트식 거래: 나치 독일의 미술 세계(The Faustian Bargain: The Art World in Nazi Germany)의 저자 조너선 페드로풀로스 교수에게 한 익명의 미술상이 이렇게 말했다. “뮌헨의 미술 시장에는 구를리트 가문이 상당량의 미술품을 소장(또는 판매)했다고 알려졌다.” 상세한 작품 목록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중 가장 값나가는 축에 속하는 작품 하나가 세상에 알려졌다. 폴 로젠버그가 은행 금고에 보관해뒀다가 1941년 9월 5일 나치에 약탈 당한 마티스의 ‘앉아 있는 여인’(1921)이다.

마리안 로젠버그와 마리넬로는 즉시 이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독일 정부에 반환을 요청했다. “구를리트에게도 편지를 썼다”고 마리넬로는 말했다. “그는 그 작품을 우리에게 팔겠다고 말했다.” 마리넬로 측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구를리트는 그 작품을 경매에 붙여 수익금을 절반씩 나눠 갖자고 다시 제안했다. “우리의 유일한 제안은 조건 없는 반환이었다”고 마리넬로는 말했다. “우리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을 우려해서다.”

구를리트는 결국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마리넬로가 그 그림을 돌려받기로 한 시점을 몇 시간 앞두고 구를리트는 자신의 변호사를 해고했다. 이 일로 반환이 지체되는 동안 엉뚱한 사람이 그 작품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로부터 3주가 흐른 뒤 마리넬로는 마침내 그 그림을 넘겨받기로 했지만 구를리트는 그림을 돌려주지 못한 채 2014년 5월 5일 사망했다.
 약탈과 반환
렘브란트의 ‘갈릴리 바다의 풍랑 속 예수’. 1990년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뒤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구를리트의 집에서 발견된 미술품의 소장 이력 조사를 맡은 위원회의 잉어보크 베르크렌-메르켈 위원장은 2014년 6월 12일 마티스의 ‘앉아 있는 여인’이 “나치의 약탈 미술품이며 법적으로 폴 로젠버그의 소장품에 속한다”는 데 동의했다.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 구를리트는 약탈된 미술품이 피해자의 후손에게 반환돼야 한다고 명시된 독일 정부와의 합의서에 서명했지만 자신의 소장품을 스위스 베른에 있는 쿤스트무제움에 유증했다. 이 미술관은 현재 그의 기증을 받아들일지 검토 중이다.

마리안 로젠버그와 그 가족(90대의 노모가 아직 생존해 있다)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하지만 사실상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1988년 44개국이 조인하고 2009년 47개국이 재확인한 워싱턴선언에는 나치가 압수한 미술품은 반드시 출처가 확인돼야 하며 관련된 모든 기록과 자료를 중앙등록기관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소장자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미술품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한 고려가 요구된다고 돼 있다.

미국 관리들의 말대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히틀러의 약탈행위를 막으려고 미군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따라서 약탈 미술품을 반환하지 않는 것은 나치에 동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목표가 공개적으로 달성된 적은 아직 없다. 일례로 지난 5월 29일 독일 경매업체 노이마이스터(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바인뮐러로 알려졌다)는 독일 미술상 중 최초로 나치 시대의 기록을 공개했다. 이 회사는 약탈 미술품의 목록을 온라인(lostart.de)에 올렸다.

바인 뮐러는 1936~44년 나치가 약탈한 미술품 총 3만 2000점을 팔았고 1958년 사망하기까지 35회의 경매를 더 열었다. 바인 뮐러의 약탈 미술품 목록(2013년 에어컨 박스 안에서 우연히 발견됐다)은 힐데브란트 구를리트의 목록보다 거의 세 배나 더 길다. 규제가 없는 미술 사업의 특성이 약탈 또는 도난당한 미술품의 판매를 더 용이하게 만든다. 그 작품들의 진짜 소장 이력은 번번이 간과된다.

미국의 노장 미술상 리처드 페이건은 1957년 처음 갤러리를 열고 독일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미술을 전시했다. 뉴욕 회의에서 페이건을 비롯한 많은 미술상들이 미술계에는 “(이런 현실을) 못 본 척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에스터로도 같은 생각이다. “미술상 중에는 불법은 아니더라도 비윤리적으로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미술품 거래가 사적으로 이뤄지며 갤러리들은 그런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입밖에 내지 않는다.”

미술상들은 높은 수수료와 수익을 위해 판매를 빨리 성사시키고 싶어한다. “미술시장이 미쳐간다”고 에스터로가 말했다. “가격이 미친 듯이 날뛴다 … 5년 전 포브스는 세계 억만장자 900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올해는 1346명으로 늘었다. 요즘은 부자들이 집이나 말, 여자친구를 사들이는 대신 미술품을 사 모은다.”

최근에 알려진 사적인 거래 중에는 1억3500만 달러에 팔린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언이 6350만 달러에 구매한 빌렘 데 쿠닝의 ‘경찰 가제트’(1955) 등이 있다.

코언은 또 2005년 반 고흐의 ‘밀밭을 배경으로 한 여인’(1890)과 고갱의 ‘목욕하는 여자들’(1902), 두 작품을 1억 2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2006년에는 헤지펀드계의 거물 케네스 그리핀이 8000만 달러에 재스퍼 존스의 ‘잘못된 출발’(1959)을 사들였다(존스의 공개 경매가 기록은 1740만 달러다). 하지만 이들 작품의 소장 이력에 대한 문제는 단 한번도 제기되지 않았다.

제이콥 파인 아트의 제인 제이콥 사장은 소장 이력 조사 전문가이자 미술사학자로 이번 뉴욕 회의를 공동 조직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2주일 안에 구매를 성사시키고 싶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서류를 제대로 검토하고 신중을 기하려면 몇 달은 걸린다.”

미술상들에게도 면허제도가 있어야 할까? 행동수칙과 규제기관도 필요할까? 뉴욕 회의에 참석한 미술상들은 그런 제도를 고려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목표를 이룰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방법도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페이건은 말했다. “마스트리히트 미술제에서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의 소유 이력이 정확하지 않은 작품 한 점이 퇴출되는 걸 봤다. 그러자 그 작품을 내놨던 미술상은 개인적으로 작품을 판매해 거금을 벌어들였다. 미술계 내에 의사소통이 부족하다.”

의사소통의 부족과 워싱턴선언을 준수하지 않는 경향은 미술관과 화랑, 경매회사들까지 확산돼 있다. 1919년 프로이센 주정부의 재무장관을 지냈고 ‘퇴폐’ 미술가 여러 명을 지원했던 후고 시몬은 나치에게 다수의 미술품을 압수당했다. 최근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된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를 소장했던 그는 1937년 스위스의 한 화랑에 그 작품을 위탁했다. 시몬의 증손자 라파엘 카르도소는 시몬이 나치의 박해 때문에 그 작품을 내놓았을 거라고 믿는다.

문제는 시몬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그 작품을 위탁했느냐, 아니면 강요에 의해 그렇게 했느냐다. 그가 이 작품을 내주고 돈을 받았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절규’(이 작품은 4개의 버전으로 제작됐다)를 파괴의 위기로부터 구했던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카르도소는 이 작품을 경매에 부쳤던 노르웨이 선박업계의 거물 페테르 올센이 금전적 보상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카르도소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도덕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공적이 기억되고 존경 받아야 한다.”

어쨌든 경매는 진행됐고 ‘절규’는 2012년 5월 1억199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뉴욕의 억만장자 리언 블랙에게 팔렸다. 블랙은 나중에 이 작품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대여했다.

코르도소는 작품의 소장 이력과 약탈 미술품 문제에 무신경한 미술관들의 태도가 귀중한 작품을 파괴의 위기에서 구한 사람들의 기억을 손상시킨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 중 하나가 폴 로젠버그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박해를 피해 뉴욕으로 도망친 뒤 이스트 57번가 16번지에 화랑을 열었다. 1941년 그는 나치가 ‘퇴폐’ 미술이라고 규정해 파괴하려 했던 그림 한 점을 MoMA에 팔았다. 그 작품이 공공미술관에서 전시되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 그림은 바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모네의 ‘수련’(1904).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한 미술상 폴 로젠버그의 손녀 마리안은 나치에 약탈당했던 이 그림을 최근에 되찾았다.



 위조 미술품과 파베르제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은 최근 사적인 거래를 통해 1억3500만 달러에 팔렸다.
세계 미술계에 대한 유대계 미술상들의 공헌이나 나치 파괴의 피해가 과소평가돼서는 안 된다. 유대계 미술상들의 기여가 아니었다면 다른 어떤 걸작들이 더 사라졌을지 모른다. 또 지금 이 시간에도 어떤 작품들이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햇빛 보게 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뉴욕 회의장 연단에 게자 폰 합스부르크(73)가 등장하자 왕실의 위엄이 느껴지면서 주제가 회화에서 장식품 쪽으로 바뀌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게자 대공,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보헤미아의 황태자로 불린다. 그는 세계 최고의 파베르제(19세기 말~20세기 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석 세공전문가 페테르 카를 파베르제가 궁정용으로 제작한 정교한 금·에나멜 제품) 전문가다.

폰 합스부르크는 해박한 지식과 투박한 오스트리아 억양으로 좌중을 매료시켰다. “내가 감정을 의뢰받은 파베르제의 99%가 위조품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중동 국가에 사는 “한 익명의 독일인”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독일인은 개인적인 거래를 통해 6000만 달러어치의 파베르제를 사들였다. “그가 사들인 모든 물건이 위조품이었다 … 난 그에게 물건 값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 수집가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고 입을 다물어주기를 원했다.

제임스 마틴이 들려준 이야기도 씁쓸했다. 고대유물의 성분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오리온 어낼리티컬의 창업자인 마틴은 첨단기술을 이용해 회화의 위조 여부를 판명한다. 그는 미국의 미술품 위조범 윌리엄 토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토이는 노예의 딸로 60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클레멘타인 헌터의 작품을 위조했다.

헌터의 작품가는 5달러~2만 달러로 “위조 단속 레이더망에 잡힐 염려가 거의 없는 범주에 속한다”고 마틴은 말했다. FBI가 토이의 위조 사실을 밝히는 데 애를 먹고 있을 때 마틴은 사진에서 토이의 스튜디오 안에 그가 키우는 고양이들이 마구 돌아다니는 걸 봤다. 그래서 그는 어떤 작품이 헌터의 진품이 아니라 토이의 위조품인지를 밝혀내는 쉬운 방법을 찾았다. 캔버스에 칠해진 물감 속에 고양이 털이 섞여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토이의 위조 작업은 볼프강 벨트라치(63)에 비하면 약과다. 벨트라치는 35년 동안 수백 점의 그림을 위조해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유명한 수집가들과 미술관들도 속아넘어갔다. 긴 머리에 턱수염을 길러 척 봐도 예술가처럼 느껴지는 벨트라치는 마틴이 조사를 의뢰받은 위조범 중 최고였다. 뉴욕 회의에서 가끔씩 벨트라치의 이름이 거론됐는데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혐오감이 느껴졌다. 페이건은 벨트라치가 위조한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을 사들였는데 마틴이 위조 사실을 밝혀냈다. (지금까지 밝혀진 벨트라치의 위조 미술품은 58점에 이른다.) “내가 아는 한 막스 에른스트 전문가는 이 위조작품들에 진품 증명서를 발급해줬다”고 페이건은 말했다. “이제 그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고 삶은 엉망진창이 됐다.”

벨트라치가 위조한 막스 에른스트의 ‘라 포레’(1927)는 2004년 240만 달러에 팔렸다. 앞에 언급된 감정가가 진품 증명서를 발급한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나중에 한 수집가에게 700만 달러에 팔렸다. 벨트라치는 2011년 징역 6년형을 선고 받았다. 뉴욕 회의의 참석자들은 당국이 그의 범죄를 너무 가볍게 취급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미술품 위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미술 그 자체다. 벨트라치는 자신이 위조한 그림 수백 점이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 걸려 있다고 주장한다. 벨트라치 사건 이후에는 위험을 감수하고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을 사려는 사람이 없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을 위조한 그림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 뒤에는 달리의 작품 역시 같은 신세가 됐다.

마리넬로는 회의를 끝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미술품을 사는 사람이 바보로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작품을 살 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감정가와 소장 이력 전문가, 변호사, 과학자 등을 동원해 진품인지 확실히 검증 받아야 한다.”

미술품 관련 범죄를 저지르기가 그만큼 쉽다는 이야기다. 법 집행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미술상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하며, 미술품 거래 방식이나 규제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따라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위조, 약탈, 도난 미술품들이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마리넬로 같은 사람들을 바쁘게 만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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