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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패러다임을 바꾸자 - 정규직 보호벽 낮추고, 비정규직 처우 개선 절실

일자리 패러다임을 바꾸자 - 정규직 보호벽 낮추고, 비정규직 처우 개선 절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저물어가는 2014년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정규직 과보호 완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개선,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이 주요 쟁점이다. 한국 경제가 세계적인 저성장을 이겨내고 장기적인 성장 체질을 갖추려면 경직된 노동시장부터 바꿔야 한다. 경기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에 현재의 일자리 패러다임은 한계가 있다. 다행히 구조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있고, 내년엔 대형 선거 이슈도 없다. 이른바 개혁의 ‘골든 타임’이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자는 것은 기업은 고용을 기피하지 않고, 근로자는 이직을 두려워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자는 의미다. 목표는 선명해도 타협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해서다. 끈질긴 설득과 대화가 필요하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승부처를 들여다봤다.
삼성전자는 2001년부터 운영하던 경력컨설팅센터를 2011년 확대 개소했다.
한국 경제가 아프다. 간호해줄 가족, 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들도 함께 아프다. 올해나 내년이나 성장 목표 달성이 사실상 어렵다.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잘나가던 수출에도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다. 아픈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일단 글로벌 경제 자체가 저성장 흐름에 있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자신의 힘만으로 파고를 넘기 어렵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구조 변화와 주력 산업의 침체, 기업의 수익성 악화 등 여러 구조적 원인이 결합돼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아파야 할지, 지금으로선 예상하기 어렵다.

큰 기대 속에 최경환 경제팀이 출범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면서 곳곳에 회복 신호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진통제 정도였다. 출범 초기 돈 풀기에 힘을 쏟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구조개혁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한 최 부총리는 “구조개혁에 진전이 없으면 경제가 바틀넥(병목)을 돌파해 중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며 “이런 쪽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기 부양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개혁의 출발점이 공무원 연금개혁이었다면, 두 번째 타깃은 노동시장이다.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임금 격차 3배
11월 25일 열린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단 정책세미나에서 최 부총리는 작심한 듯 노동시장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정규직은 과보호하고 비정규직은 덜 보호하다 보니 기업이 겁나서 정규직을 못 뽑고 비정규직만 양산되는 상황”이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노동시장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규직은 계속 늘어나는데 월급도 계속 오르니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선진국 중에서 독일·영국·네덜란드 등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잘나가고 있고, 제때 개혁을 못 한 나라는 어려움을 겪고있다”고 말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12월 4일 한 토론회에 참석해 “기업이 급속한 기술·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산시설, 작업방식 등을 신속하고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고용 조정은 노사의 이해가 충돌 할 수 있는 사안인데 그 요건과 기준의 불명확성으로 불필요한 노사갈등을 낳고 있으므로 요건과 절차의 합리성 판단 기준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힘을 보탰다. 이 총재는 12월 11일 한은 통화정책방향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 부총리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해 “노동 유연성 제고는 분명히 경제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라면서 “여성 인력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는 노력도 중요하며 고령화 대책으로 외국인, 여성 인력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방향도 맞고 시기도 적절하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언제든 반드시 손을 대야 할 문제였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건 꽤 오래됐다. 단기적으로 경제를 부양시켜도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그 효과는 오래 못 간다. 동력을 길게 끌고 가려면 구조개혁이 동반돼야 한다는 의미다. 대다수 국민도 공감하고 있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일자리 부족(43.1%)과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41.6%)를 꼽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근로조건 격차를 줄여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인적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시급하다는 의미다.

핵심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어떻게 손볼 것이냐에 달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과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노조가 있는 대기업 정규직은 월 평균 392만원의 임금을 받지만, 중소기업 비정규직(무노조)은 134만5000원을 받는다. 근속기간도 13.4년인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은 2.3년에 그친다.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가입률 역시 각각 99.5%와 34.2%, 99.8%와 40.9%, 74.9%와 38.8%로 엄청난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좋은 일자리가 과도하게 보호받으면서 상향 이동 가능성이 차단된 게 큰 문제”라며 “이 때문에 세대 간 갈등, 세대 내 갈등이 심화됐다”고 지적했다.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확률 10% 불과
비정규직 채용을 금지해왔던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부에서 ‘파견근로법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근로법)’을 제정하며 비정규직을 공식 인정했다. 일자리를 늘리는 동시에 그들을 보호하자는 도입 취지는 옳았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비정규직 고용 기간을 2년(이후 정규직 전환)으로 정해버린 게 화근이었다.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수용한 것이었지만 막상 시행하자 파견 근로법은 오히려 비정규직에 독이 됐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니 기업 입장에선 재계약을 꺼리게 됐고, 사내협력업체를 이용해 간접고용이란 편법을 쓰는 회사도 늘었다. 원청 기업과 협력업체 직원 간 임금 격차는 더 벌어졌고, 비정규직으로 시작해도 실력만 있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노동이동 실태에 따르면 한국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확률은 약 10%에 그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단순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구도의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마다 각자 처한 사정이 다르고, 같은 비정규직이라도 어디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처우가 다르다. 비정규직이 따로 논의되는 동안 정규직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탄탄히 했다. 업무 성과가 부진해도 해고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연봉은 노사협상 결과에 따라 꾸준히 오른다. 기업 입장에선 정규직에 대한 부담이 커질수록 신규 채용을 꺼리게 되고, 인력이 필요할 때도 상대적으로 보호장치가 약한 비정규직을 선호하게 됐다.

비정규직 문제 역시 대기업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 부문에 있는데, 전체 노동시장의 문제인 것처럼 인식해 중소기업의 인력 부족이나 생산성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지 못했다”면서 “절대 다수인 중소기업 정규직 근로자보다 급여 수준이 높은 소수의 대기업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하면서 공정성의 문제를 야기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긴 노동시간과 불안한 사회안전망 또한 노동시장을 경직시킨 원인으로 꼽힌다.독일은 개혁 완성에 6년 걸려이런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댔다. 함께 풀어야 할 의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년 연장을 앞두고 연공서열식 임금제도를 손봐야 하고, 고용·임금·근무방식의 다양성도 고민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과 통상임금제도 개선 방안도 합의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 시정 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사회안전망을 정비하는 문제도 시급하다. 정규직의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것 역시 논의 못 할 주제는 아니다. 특히 대기업 노조의 반성과 양보도 필요하다. 이제껏 기득권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아서는 곤란하다. 정규직에 대한 보호벽을 낮추되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게 노동시장 유연화의 정확한 목표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하자는 것은 무슨 뜻일까? 기업은 고용을 기피하지 않고, 근로자는 이직을 두려워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자는 의미다. 목표와 과제는 선명한데 타협은 쉽지 않을 것이다. 구조개혁이란 본디 이해당사자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 당연히 시간이 꽤 걸린다. 기간제와 파견근로자 확대, 정규직 해고 보호 완화 등 노동시장 개혁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독일의 하르츠 개혁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시작한 것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어받아 완성할 때까지 6년이 걸렸다. 네덜란드·스페인 등도 하나같이 오랜 기간 대화와 협상을 통해 대타협을 이끌어 냈다.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원회)는 최근 구조개혁 방안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재부에서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바람에 발표가 미뤄졌다. 노동계가 반발해서다. 최 부총리의 강경 발언도 노동계를 자극했다. 이번 합의문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비롯한 5개 의제, 고용·임금·근로시간, 정년연장 연착륙을 위한 임금제도 등 개선 등 14대 과제가 포함됐다. 논의해야 할 의제가 거의 담겼다. 이 시점에 정부가 고춧가루를 뿌린 모양새다. 개혁을 위해 정부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건 맞지만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 특히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재계와 노동계의 ‘통 큰’ 양보가 필요한 문제다. 너무 한쪽으로 몰아붙이면 될 일도 안 된다.기업도 발상 전환해야 - 어렵다고 일단 자를 생각부터 하면…경영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한국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2010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제조업은 4%대, 서비스업은 3%대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0년대 말과 유사한 수준이다.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기업의 지속적인 수익성 악화와 연관이 있다. 하지만 무작정 기업 편만 드는 것도 아니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기업과 근로자가 서로 배려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상생 협력하자는 취지다. 때문에 경영계는 이번 구조개혁을 정규직을 쉽게 해고 하거나, 연봉을 낮출 수 있는 계기로 생각해선 안 된다.

노동시장이 유연화될수록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더욱 커진다. 일단 고용의 유연성으로 절감한 비용을 투자나 고용 확대로 돌릴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이라도 정규직 수준의 처우를 보장받고, 능력이 있으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사다리를 놓은 것도 기업의 책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금지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전에 근로자를 평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전직 지원과 같은 성숙한 노사 문화를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직 지원서비스는 기업이 직원들의 미래를 함께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국내 기업중에서는 삼성전자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2001년 경력 컨설팅센터를 설립하고 직원들의 전직을 돕고 있다. 그 사이 경력컨설팅센터의 숫자도 5개로 늘었다. 지금까지 3537명의 직원이 이 제도를 활용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고, 291명은 창업을 했다. 심리 안정을 시작으로 재취업 후 적응까지 철저하게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매년 고용노동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전직 지원서비스 제도를 홍보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런데 매번 등장하는 우수 사례가 삼성전자뿐이다. 아직 전직 지원서비스가 국내에 깊숙이 뿌리내리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비용 문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직원을 채용할 때도 비용 절감을 위해 아웃소싱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퇴직자까지 관리하기가 만만찮다”고 말했다. 노조 측의 반발도 있다. 근로자에게 ‘전직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말은 ‘희망퇴직 대상자에 포함됐다’는 말과 동일하게 들려서다. 기업이 좋은 뜻으로 프로그램을 도입하려고 해도 정리해고를 위한 사전포석으로 인식하는 근로자들이 많다. 기업의 전직 지원서비스 마련을 의무화하는 법안(정부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제도를 도입하기에 앞서 노사 간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다. 회사가 직원을 위한다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

- 박성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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