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부재 기업, 생존 전략은 - 집단지도체제에 승계작업 가속화
오너 부재 기업, 생존 전략은 - 집단지도체제에 승계작업 가속화
2014년은 재계에서 ‘고난의 해’로 불린다. 10여명의 재계 총수들이 서초동 법원에 모습을 보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은 각종 혐의에서 유죄를 받거나 법적 판단을 앞두고 있다. 최고 경영자 자리가 몇 년째 공석인 기업들도 여럿이다. 이들 기업들은 전문경영인 제도 강화, 계열사 중심의 개별 경영 체제 강화, 경영권 승계에 박차를 가하며 오너 부재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SK그룹은 전문경영인 제도를 강화해 기업을 이끌고 있다. 2014년 유죄판결을 받은 최태원 회장은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에서 사임했다.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동생인 최재원 수석 부회장도 SK E&S와 SK네트웍스 이사회 의장 자리를 내놨다. 오너 형제가 동반 퇴진하자 SK그룹은 사외이사의 비중을 늘리고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이 의장으로 있는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를 강화했다. 기존의 오너 중심 선단식 경영 대신 계열사별 독립 경영을 강화하면서 사안에 따라 협력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특히 계열사의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 결정을 위해 지주사인 SK가 맡고 있던 계열사 사업 관리와 조정 업무를 그룹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수펙스 추구협의회로 이관했다. 지주회사는 지배 구조 개선, 재무관리 강화, 자체 신규 사업 개발에 집중하도록 했다. SK관계자는 “SK는 오래 전부터 전문 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염두에 두고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왔다”며 “2012년 수펙스협의회를 출범시키면서 최 회장은 이미 그룹 경영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SK는 2014년 2월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출범하며 집단의사결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요 계열사 사장들은 수펙스협의회 산하 6개 위원회에 참여해 그룹 공동의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를 계열사 이사회가 추인하는 방식이다. 지난 12월 열린 ‘CEO 세미나’에서 SK 사장단은 사업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 동력 발굴, 재무구조 개선 등 새로운 기업가치 창출을 위해 ‘전략적 혁신’을 2015년 경영전략으로 결정했다. SK그룹은 총수가 부재 중인 상황에서 급변하는 경제·경영 환경에 빠르게 대응하며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전문경영인 체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불황을 맞은 석유화학사업 투자를 어떻게 할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투자 방향을 낸드플래시로 할지, 시스템반도체로 할지 등의 선택은 오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창근 회장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오너가 꼭 필요하다”며 “최선을 다해 공백을 메우려 하지만 사실상 메워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3년 넘게 오너가 공백인 기업도 있다. 태광그룹이다. 이호진 전태광 회장은 지난 2012년 140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후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다. 이 전 회장은 1·2심에서 징역 4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태광그룹은 이후 심재혁 부회장 체제로 운영 중이다. 하지만 태광은 그룹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계열사별 독립 경영 성향이 강하다. 각 계열사별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착됐기 때문이다. 이호진 회장이 계열사 일에 일일이 관여하지 않았고, 주력 사업이 화섬· 금융·미디어로서로 연계가 적었던 것도 전문경영인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배경이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과거에도 회장이 세세한 지시 까지 내린 일은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후유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열사별 전문성은 높아졌지만 오너의 부재로 신성장 산업 발굴과 신규 투자에 애를 먹고 있다. 태광 관계자는 “현상유지만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 돼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태광산업의 영업이익은 2012년 이후 줄고 있다. 2011년 4558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2년 1754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2013년에도 1686억원으로 부진을 이어갔다. 지난해 실적 역시 이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투자가 줄고 있다.
효성그룹도 최고경영자가 자리를 비운 상태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2014년 내내 800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여기에 3형제 간 분쟁까지 벌어졌다. 오너 경영 시스템이 마비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효성 관계자는 “다른 그룹에 비해 오너 목소리가 크지 않았고 3대에 걸쳐 각 사업을 아들에게 독립적으로 쪼개줬기에 큰 영향은 없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차남 조현문씨가 관리하던 효성중공업은 매출이 줄었다. 하지만 주요 원인은 오너십 부재가 아니라 화학과 조선 계열의 나빠진 업황 때문이라는 것이다. 효성 그룹은 이미 차세대 성장 사업 방향을 결정해 놓았다. 신소재로 신사업을 정했고 사업 진행 과정에 맞춰 투자도 자연스레 정해질 예정이다. 오너가 내려야 할 결정을 조 회장 기소 전에 이미 마쳤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효성은 경영권 승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 회장은 최근 장남 조현준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담보를 제공하고 부실 회사를 대신 인수했다. 장남에게 경영권 승계를 안정적으로 해주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된다.
‘오너 부재’에 관한 한 한화그룹만큼 할 말이 많은 곳도 없을 것 같다. 김승연 회장은 10년 넘게 검찰과의 악연을 이어왔다. 2004년 대한생명 인수 과정에서 검찰이 수사망을 좁히자 돌연 해외로 출국해 해를 넘긴 다음에야 귀국했다. 이후 검찰의 수사 기미만 보이면 출국을 반복해 왔다. 차남 관련된 폭행사건엔 직접 나섰다가 실형을 살기도 했다. 사회봉사형을 받고 돌아왔던 김 회장은 그룹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 등으로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 선고와 함께 다시 법정 구속됐다. 2014년 2월 파기환송심에서 극적으로 풀려난 김 회장은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채운 후 경영 일선으로 돌아왔다. 김 회장이 출국하거나 구속됐을 당시 한화는 경영기획실을 중심으로 각 계열사 CEO들이 책임경영체제로 빠르게 전환했다. 그룹 최고위 경영인들이 경영위원회를 구성해 각 사 사장단과 의논하며 그룹 대소사를 챙겼다. 2013년 4월 꾸린 ‘비상경영위원회’가 좋은 예다. 한화 원로경영인 4명이 모인 위원회는 대규모 투자와 신규사업 계획 수립, 임원 인사 등 주요 사안에 대해 김 회장을 대신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 역할을 맡았다. 한화 관계자는 “그룹 원로들을 중심으로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여러 차례 논의했고, 그 결과 비상위원회를 설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돌아온 한화는 삼성과의 빅딜을 성사 시키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영 승계작업에도 한층 속도가 붙었다. 지난 12월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실장은 한화 솔라원 상무로 승진했다. 최근 대한항공 사건으로 재벌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진 와중에 인사를 낸 것은 그만큼 승계작업을 서둘러 진행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동관 실장의 승진은 태양광 사업의 성과를 인정받은 것으로 경영 승계와는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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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은 전문경영인 제도를 강화해 기업을 이끌고 있다. 2014년 유죄판결을 받은 최태원 회장은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에서 사임했다.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동생인 최재원 수석 부회장도 SK E&S와 SK네트웍스 이사회 의장 자리를 내놨다. 오너 형제가 동반 퇴진하자 SK그룹은 사외이사의 비중을 늘리고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이 의장으로 있는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를 강화했다. 기존의 오너 중심 선단식 경영 대신 계열사별 독립 경영을 강화하면서 사안에 따라 협력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특히 계열사의 주요 현안에 대한 의사 결정을 위해 지주사인 SK가 맡고 있던 계열사 사업 관리와 조정 업무를 그룹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수펙스 추구협의회로 이관했다. 지주회사는 지배 구조 개선, 재무관리 강화, 자체 신규 사업 개발에 집중하도록 했다. SK관계자는 “SK는 오래 전부터 전문 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염두에 두고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왔다”며 “2012년 수펙스협의회를 출범시키면서 최 회장은 이미 그룹 경영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SK는 2014년 2월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출범하며 집단의사결정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요 계열사 사장들은 수펙스협의회 산하 6개 위원회에 참여해 그룹 공동의 의사결정을 내리고, 이를 계열사 이사회가 추인하는 방식이다. 지난 12월 열린 ‘CEO 세미나’에서 SK 사장단은 사업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 동력 발굴, 재무구조 개선 등 새로운 기업가치 창출을 위해 ‘전략적 혁신’을 2015년 경영전략으로 결정했다. SK그룹은 총수가 부재 중인 상황에서 급변하는 경제·경영 환경에 빠르게 대응하며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전문경영인 체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불황을 맞은 석유화학사업 투자를 어떻게 할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투자 방향을 낸드플래시로 할지, 시스템반도체로 할지 등의 선택은 오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창근 회장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오너가 꼭 필요하다”며 “최선을 다해 공백을 메우려 하지만 사실상 메워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성장 사업 발굴과 신규 투자에 애로
그렇다고 후유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계열사별 전문성은 높아졌지만 오너의 부재로 신성장 산업 발굴과 신규 투자에 애를 먹고 있다. 태광 관계자는 “현상유지만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 돼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태광산업의 영업이익은 2012년 이후 줄고 있다. 2011년 4558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2년 1754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2013년에도 1686억원으로 부진을 이어갔다. 지난해 실적 역시 이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투자가 줄고 있다.
효성그룹도 최고경영자가 자리를 비운 상태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2014년 내내 800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여기에 3형제 간 분쟁까지 벌어졌다. 오너 경영 시스템이 마비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효성 관계자는 “다른 그룹에 비해 오너 목소리가 크지 않았고 3대에 걸쳐 각 사업을 아들에게 독립적으로 쪼개줬기에 큰 영향은 없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차남 조현문씨가 관리하던 효성중공업은 매출이 줄었다. 하지만 주요 원인은 오너십 부재가 아니라 화학과 조선 계열의 나빠진 업황 때문이라는 것이다. 효성 그룹은 이미 차세대 성장 사업 방향을 결정해 놓았다. 신소재로 신사업을 정했고 사업 진행 과정에 맞춰 투자도 자연스레 정해질 예정이다. 오너가 내려야 할 결정을 조 회장 기소 전에 이미 마쳤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효성은 경영권 승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 회장은 최근 장남 조현준 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담보를 제공하고 부실 회사를 대신 인수했다. 장남에게 경영권 승계를 안정적으로 해주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된다.
‘오너 부재’에 관한 한 한화그룹만큼 할 말이 많은 곳도 없을 것 같다. 김승연 회장은 10년 넘게 검찰과의 악연을 이어왔다. 2004년 대한생명 인수 과정에서 검찰이 수사망을 좁히자 돌연 해외로 출국해 해를 넘긴 다음에야 귀국했다. 이후 검찰의 수사 기미만 보이면 출국을 반복해 왔다. 차남 관련된 폭행사건엔 직접 나섰다가 실형을 살기도 했다. 사회봉사형을 받고 돌아왔던 김 회장은 그룹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 등으로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 선고와 함께 다시 법정 구속됐다. 2014년 2월 파기환송심에서 극적으로 풀려난 김 회장은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을 채운 후 경영 일선으로 돌아왔다.
검찰과 악연 많은 김승연 회장은 경영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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