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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 희비 엇갈린 조선 빅3 - 대우조선 웃음, 삼성重 눈물, 현대重 피눈물

위기 속 희비 엇갈린 조선 빅3 - 대우조선 웃음, 삼성重 눈물, 현대重 피눈물

어려운 업황에 조선업계 CEO들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왼쪽부터).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유럽발(發) 재정위기가 불거지고 수 년 간 업황이 지속적으로 나빠진 조선 업계로 치면 ‘주부’ 자리에 최고경영자의 약자인 ‘CEO’를 넣어 ‘위기의 CEO들’이라 칭할 만하다. 조선업에서 세계 1위를 다투는 한국에서, 그것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조선 업체라는 큰 선박을 이끄는 선장으로서 당황한 선원들을 다독이며 불황 파고를 넘어야 하는 위기의 상황이다. 다만 똑같은 위기 속에서도 최근 조금씩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분위기다. 각각 대표이사로서 우리나라 3대 조선 업체를 진두지휘하는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과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고재호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이야기다.
 대우조선만 흑자 행진
애당초 이들은 업황이 침체된 와중에 구원투수 격으로 등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대영 사장과 고재호 사장은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가 본격적으로 몰아친 2012년 어려운 상황 속에 전임자들로부터 바통을 물려받았다. 권오갑 사장은 현대중공업이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 신고식을 치렀다. 셋 모두 각 사 내부 출신 전문경영인이란 점에서 비슷한 길을 걸었다. 대외적으로는 물론 임직원들에게서도 난국을 타개할 적임자로 그만큼 인정을 받았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취임했던 고재호 사장은 대우조선해양의 뚜렷한 실적 개선 속에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에 비해 박대영 사장은 삼성중공업의 실적 난조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권오갑 사장도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현대중공업이라는 거함을 어떻게 이끌지 고심 중이다.

고재호 사장의 대우조선해양은 극심한 업황 침체 속에 지난해 ‘나홀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3분기 매출이 4조2228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4%, 영업이익은 1350억원으로 16.6% 각각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만 103억원으로 89.0% 감소했다. 3분기 연속 흑자로 지난해 조선 빅3 중 유일하게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한창 잘나가던 때와 비교해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우려보다 양호했다. 회사 관계자는 “영업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액화천연가스(LNG)선과 컨테이너선 부문에서의 사업 호조로 영업이익이 증가했다”며 “전년 대비 환율 변동이 심해져 당기순이익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3월 6일 현재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증권가 예상치는 양호한 수준이다. 매출 4조2248억원, 영업이익 1328억원, 당기 순이익 871억원으로 흑자 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경쟁사들이 ‘어닝 쇼크’로 우울한 연말을 보냈던 것과 대비된다. 세계 1위 현대중공업은 지난 한 해 매출이 52조 5824억원으로 전년 대비 3.0% 감소했고 영업손실 3조2495억원, 당기순손실 2조2061억원이라는 창사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세계 2위 자리를 지켰던 삼성중공업도 같은 기간 매출(12조8791억원)과 영업이익(1830억원)이 전년보다 각각 80.0%, 76.7% 감소했다. 두 회사는 지난해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대규모 공사손실충당금이 발생해 어려움을 겪었다. 일반 상선의 건조 물량이 줄어든 것도 매출 감소에 악영향을 줬다.

대우조선해양의 선전에는 고 사장의 리더십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크고 작은 수주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는데 있어 ‘영업통’ CEO로서 제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다. 1980년 대우조선해양 전신인 대우조선공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고 사장은 선박사업부문장·사업총괄장 등을 역임하면서 해외 영업에 두각을 나타냈다. 영업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고 사장의 노하우는 잇단 수주라는 결과물로 이어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37척의 LNG선을 수주하는 등 총 149억 달러어치를 수주해 조선 빅3 중 유일하게 연초 수주 목표를 달성했다. 업계 유일의 5년 연속 100억 달러 이상 수주 기록이기도 하다. 올해 들어서도 LNG선 6척,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2척 등 14억 달러어치의 선박을 수주하는 등 출발이 좋다. 이 같은 수주 행진으로 향후 실적 개선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 영업통 고재호 사장 수완 발휘
업계 관계자는 “고 사장은 오랜 기간 현장에서 해외 영업을 도맡으면서 탄탄한 해외 인맥을 구축했다”며 “대우조선해양이 최근 수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그 영향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올 들어 VLCC 2척(총 2억 달러 규모)을 그리스 최대 해운선사인 안젤리쿠시스그룹 MTM(Maran Tankers Management)으로부터 수주하면서도 고 사장이 ‘그리스의 선박왕’으로 불리는 존 안젤리쿠시스 안젤리쿠시스그룹 회장과 평소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는 후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고 사장은 대우조선해양이 안젤리쿠시스그룹으로부터 VLCC를 처음 수주했던 1994년 당시 영국에서 런던지사장으로 근무하며 이 그룹의 핵심 실무진과 인맥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그룹과는 이번 계약까지 총 75척의 선박을 거래할 만큼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고 사장은 지난해 7월 그리스 아테네를 직접 찾아 안젤리쿠시스 회장을 만나 VLCC 4척의 수주 계약을 성사했다. 평소 꼼꼼한 성품인 고 사장은 거래 상대국의 문화나 역사 등을 미리 공부한 다음 본격적인 영업에 나서면서 친화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 사장의 ‘선택과 집중’ 전략도 효과적이었다는 분석이다. 고 사장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선박보다 수요가 안정적인 해양 플랜트의 수주 비중을 확대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이후 유가 폭락으로 급변한 세계 시장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계획을 수정했다. LNG선 등 가스선 위주로 수주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것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에만 37척의 LNG선을 수주했는데 조선 업체 한 곳이 한 해에 LNG선을 30척 넘게 수주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지난해 세계 LNG선 발주 물량이 66척이었으니 과반수를 수주한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기간 현대중공업은 6척, 삼성중공업은 5척의 LNG선을 수주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유가 폭락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해양플랜트 발주가 크게 줄어들면서 경쟁사들이 타격을 입는 동안, LNG선으로 눈을 돌렸던 대우조선해양은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입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통상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는 유가 하락 시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발주량이 급감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업계는 해양플랜트 사업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유가를 배럴당 80달러 정도로 보고 있다. 작년처럼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훨씬 밑도는 경우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해양플랜트를 버리고 가스선 등을 택했던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해양플랜트를 1기만 수주하고도 경쟁사보다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3월 29일이면 임기가 끝나는 고 사장은 3월 현재 연임이 유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영업이익 80% 급감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현존 세계 최대(1만9224TEU)급 컨테이너선 ‘MSC 오스카호’. 대우조선해양은 업황 침체 속에서도 지난해 선전했다는 평가다.
고 사장과 같은 해에 삼성중공업 CEO 자리에 오른 박대영 사장은 최근 회사 실적 부진이라는 암초를 만나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박 사장은 취임 첫해인 2013년만 해도 양호한 성적표를 받아들며 그를 CEO에 임명한 삼성그룹의 기대에 부응했다. 2013년 영업이익이 9142억원으로 업황이 침체된 와중에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들어 영업이익이 1830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1년 사이 영업이익이 80%나 줄어든 것이다. 작년 1분기에만 3625억원의 영업손실과 2724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기록하며 부진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 기록한 연간 수주액은 대우조선해양의 절반 수준인 73억 달러였다. 연초 목표로 했던 150억 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삼성중공업이 해양플랜트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저가 수주에만 집착하다 수익성 악화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장인 박 사장이 급변한 시장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빅3 중 해양플랜트 사업 비중이 가장 큰 삼성중공업으로서는 유가 폭락의 직격탄에도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해양플랜트 4기를 수주, 연초 목표로 했던 연간 수주액인 89억 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32억 달러어치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공정 지연 등으로 5000억원 이상의 공사손실충당금을 쌓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전망도 썩 밝지 않다. 삼성증권은 보고서에서 ‘삼성중공업은 작년 하반기 호조세였던 드릴십 매출 비중이 줄어드는 등 올해 수익성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대重은 노사 문제 진통까지 겪어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FSRU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설비).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9월부터 추진했던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주주들의 반발로 무산되면서 박 사장으로서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증권가는 두 회사의 합병이 삼성중공업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보고 있었다. 비록 고난이 찾아들었지만 박 사장에게는 위기가 곧 기회이기도 하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말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중공업의 실적 부진과 각종 악재에도 박 사장의 유임을 결정했다. 신상필벌을 원칙으로 내세우는 삼성그룹이 박 사장의 유임을 결정하면서 향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을 다시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1977년 삼성중공업에 입사한 삼성중공업 출신의 첫 CEO인 박 사장이 추진력을 발휘해 합병을 성사할 경우 그룹 내에서 박 사장의 입지도 다시 강화될 수 있다.

세 CEO 중 가장 늦은 지난해 9월 취임한 권오갑 사장은 아직 현대중공업에서 실적을 성적표로 받아들지 않아 평가가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세 CEO 중 가장 나쁜 상황에서 바통을 넘겨받았다는 점에서 회사 살리기에 누구보다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다. 노사 문제가 새로운 과제이자 변수로 떠올랐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에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면서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섰다. 작년 10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계열 3사 임원 260여명의 사직서를 받았다. 올해 들어서는 최근 과장급 이상 일반직 직원 15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성과에 따라 연봉제를 도입하는 등의 구조조정을 추가로 단행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현대중공업 노사는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에 있어 지난해 이 문제를 매듭지은 대우조선해양이나 올 1월 말 극적으로 합의점을 찾아낸 삼성중공업과 달리 가장 최근까지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앞서 지난해 말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도출해냈지만 올 초 실시한 노조원 찬반 투표 결과 압도적인 표 차이로 부결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고, 2월 16일에야 임단협이 최종 타결됐다. 회사의 구조조정 계획에 노조원들이 반발하면서 권 사장은 시작부터 험난한 길을 걸어야 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오랜 기간 노사 화합으로 세계 1위 자리를 지킨 기업”이라며 “홍보맨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CEO 자리에 오른 권 사장이 특유의 친화력을 앞세워 노사 화합을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권 사장은 2010년부터 4년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서 실적 개선을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 그런 그에게 있어 노사 문제가 현대중공업에서의 앞날을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어닝 쇼크(Earning Shock) : 기업이 시장의 예상치보다 저조한 실적을 발표하는 것. 또는 저조한 실적을 발표해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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