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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FTA 득실 따져보니 - 한국에는 텅 빈 선물상자 배달

한·중 FTA 득실 따져보니 - 한국에는 텅 빈 선물상자 배달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가서명됐다. 빈 수레가 요란했다. 한국은 농수산물시장 보호에 치중하느라, 우리 수출의 99%를 차지하는 제조업 분야에서 적지 않은 손해를 봤다. 이렇게 한국이 개별국과의 FTA에 매달리는 사이, 세계 주요국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Mega-FTA)으로 이미 방향을 틀었다. FTA 선도국을 자처하던 한국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가 맺은 FTA 성과도 시간이 갈수록 퇴색되고 있다. 새로운 통상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2014년 11월 10일 한·중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윤상직 산업 통상자원부 장관(왼쪽)과 가오 후청 중국 상무부장이 한·중 FTA 협상 종료에 관한 합의의 사록을 교환하고 있다.
협상의 기본은 주고 받는 것이다. 덜 주고 더 받으면 잘한 협상이다. 그 반대면, 실패한 협상이다. 2월 25일 우여곡절 끝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가서명됐다. 한·중 FTA는 어떤 협상으로 기록될까? 가서명 직후 정부가 내놓은 설명 자료를 보면 ‘꽤 잘한 협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정부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드러내고 싶은 것만 드러냈다. 포장은 그럴 듯한데, 속은 텅 빈 선물상자가 한국에 배달된 셈이다. 왜 그런지 보자.

이번에 영문으로 번역된 협정문은 상품·서비스·투자·금융·통신 등 22개 챕터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우리 경제계가 가장 관심을 둔 분야는 ‘FTA 협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상품 양허 부문이다. 양허란, 쉽게 말하면 양국이 서로 개방을 허락하는 것을 말한다. 양국은 2013년 9월 7차 협상 때 교역 품목의 90%, 수입액 기준으로 85% 이상을 개방하기로 합의했다. 역으로, 양국 모두 교역 품목의 10%(수입액 15%)는 개방하지 않고 보호하기로 한 것이다. 이 합의에 따라 양국은 8차 협상 때 1차 상품 양허안(개방 계획서)을 교환했다. 교역 품목의 10%는 개방을 원치 않는 초민감품목, 나머지는 일반품목(즉시 관세철폐~10년 내 철폐), 민감품목(10년 초과~20년 내 철폐)으로 분류했다.

결과적으로 한국 협상단은 중국의 패에 말렸다. 중국은 2단계(8~13차) 협상 내내 집요하게 한국의 농수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우리 측 협상단 관계자는 “중국이 매우 고압적인 자세였고, 협상 태도도 불성실했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은 개방에 대한 우려와 반대가 컸던 농수산물 시장을 지키려다 제조업을 내준 꼴이 됐다. 중국은 챙길 것을 거의 다 챙겼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양측이 개방하지 않기로 합의한 품목 10%도 지키지 못했다.
 비개방 품목 비중 한국 7.8%, 중국 9.4%
양국의 협상 테이블에 오른 교역 품목은 우리나라가 1만2232개, 중국은 8194개였다. 양측 합의대로라면, 한국은 1200여개, 중국은 800여개를 초민감품목으로 지정해 시장을 열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협상 결과 한국은 합의한 10%에 못 미치는 7.8%(960개 품목)만 보호하는 데 그쳤다. 이와 달리 중국은 9.4%(766개 품목)를 보호하는 데 성공했다. 수입액 기준으로 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한국은 합의 기준인 15%에 한참 못 미치는 8.8%만 지켰다. 중국은 15%를 꽉 채워 챙겼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는 협상 실패로 260여 개 품목, 9억5000만 달러(약 1조500억원)어치를 중국에 양보한 셈이다. 이를 두고 협상단 수석대표인 우태희 통상교섭실장은 “서로 이익균형을 통해 협상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우 실장은 3월 2일 통상차관보로 수평이동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중국에 교역 흑자국이고 양국 교역 규모를 감안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첫 상품 양허안에 초민감품목을 몇 개 지정했는지, 이 후 몇 개 품목이 어떤 이유로 제외됐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협상단 관계자는 “상품 협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외교상 대외비”라고 했다. 이와 관련, 협상단 다른 관계자는 “솔직히 말하면, 지킬 수 있는 시장도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전체 상품 양허 수준을 비교해도 한국이 밀린 협상이다. 발효와 동시에 즉시 관세가 철폐되는 품목은 한국이 전체의 49.9%지만, 중국은 20.1%에 불과하다. 수입액 기준으로 따져도 한국은 51.8%, 중국은 44%다. 10년 내에 관세를 철폐해야 하는 품목은 한국이 전체 교역 품목의 79.2%(수입액 기준 77.1%), 중국이 71.3%(수입액 기준 66.2%)다. 정부는 한·중 FTA 설명 자료에서 “중국 전체 품목의 91%(수입액 85%)에 대한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됨에 따라 국내 수출 업체의 전반적인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같은 논리면, 이는 한국 전체 품목의 92.1%(수입액 91.2%)에 대한 관세가 사라져 중국 수출 업체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뜻이 된다.

공산품(제조업) 협상은 말문이 막힐 정도다. 한국은 한·중 FTA 발효와 동시에 5885개 공산품의 관세를 즉시 없애야 한다. 공산품 전체의 58.9%에 달한다. 이와 달리 중국은 전체의 20.3%(1366개 품목)만 즉시 철폐한다. 10년 내에 관세를 철폐해야 하는 공산품 품목은 우리가 전체의 90%, 중국이 71.7% 다. 수입액 기준으로 하면 한국은 79.9%, 중국은 66.4%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전체 공산품의 2.9%만 양허제외나 부분 감축으로 보호할 수 있다. 품목으로는 292개, 수입액으로 하면 50억 달러다(전체의 6.5%). 하지만, 중국은 전체의 9.8%(661개 품목)를 개방하지 않아도 된다. 수입액 기준으로는 14.9%(240억 달러)다.
 한국 기업이 바라던 품목은 빗장 닫아
2월 25일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이 한중 FTA 가서명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 데도 정부는 ‘이익 균형을 맞춘 협상’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엔 ‘농수산물 시장 개방을 최소화했다’는 명분이 깔려 있다. 실제로 한국은 협상 테이블에 오른 2240개 농수산물 중 29.8%인 668개 품목(수입액 기준 60%)을 개방하지 않는다. 중국은 7.2%(수입액 기준 44.2%)다. 정부가 FTA 보도자료 첫 머리에 ‘농수산물 개방 최소화, 정부는 약속을 지켰습니다!’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액은 1453억 달러(약 160조원), 수입액은 901억 달러(약 99조원)다. 그렇다면, 농수산물의 대중 교역액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기준으로 수출은 11억1600만 달러(약 1조2300억원)에 불과하다. 수입액은 48억2000만 달러(약 5조3000억원)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대중 수출의 0.8%, 수입의 5.3%에 불과한 농수산물 시장을 양보받고, 우리 수출의 99%를 차지하는 제조업을 내준 꼴이 됐다.

정부가 협상의 치적으로 강조하는 ‘개성공단 생산제품 원산지 인정’도 속내를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정부는 ‘현재 개성공단에서 생산중인 품목을 포함한 총 310개 품목에 대해 원산지 지위를 부여키로 해 기체결 FTA 중 가장 우호적인 결과’라고 설명한다. 2013년 약 5개월 동안 가동이 중단됐던 개성공단의 2012년 생산액은 약 5억 달러다. 이 중 수출 비중은 겨우 10%에 불과하다. 더욱이,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조항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기존에 체결된 FTA에서도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한 협정이 많았지만, 실제로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이 특혜 관세를 적용받은 사례는 ‘0건’이다. 지난해 2월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 중 관세청이 발급하는 원산지 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특히, 한-EFTA 협상 땐 개성공단 품목 267개를 한국산으로 인정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63개에 불과했다. 인도·페루·아세안과 맺은 FTA도 사정은 비슷하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되지도 않은 제품을 원산지 인정받았다고 자랑한 것이다. 정부가 이번 한·중 FTA 설명 자료에서 ‘개성공단에서 생산 중인 품목 310개’가 아니라 ‘생산 중인 품목을 포함한 310개’라고 명시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한 셈이다.

협상의 질적인 면에서도 아쉬움이 많다. 일단 한국의 대중국 수출 주력 상품은 대부분 장기 관세 철폐 품목에 묶였다. 예를들어, 중국은 한국의 기술력이 압도적인 유기발광다이오드(LED)는 아예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한 대중 수출 1위 품목인 LCD패널은 10년 내 철폐 대상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중국은 확실히 실리를 챙겼다. 양측은 원칙적으로 매년 관세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선형 철폐’ 방식을 채택했다. 가령, 관세가 10%인 제품이 10년 내 관세 철폐 품목으로 지정되면 1년에 1%포인트씩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LCD패널은 10년 내 철폐 품목이면서도, 8년 간은 관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9년차부터 내리는 것으로 합의했다. 현재 중국의 LCD패널 관세는 5%, OLED는 6%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디스플레이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10년 후면 한국이 기술력 우위를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익명을 원한 협상단 관계자는 “LCD패널의 조기 개방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중국이 매우 완강하게 버텼다”고 말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정부
또한 중국이 관세를 즉시 없애는 품목 중엔 전기·전자 품목이 많은데, 이 역시 속 빈 강정에 가깝다. 이들 제품 대부분은 우리 기업이 중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것이 많고,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채택한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이미 무관세를 적용받는 제품이 상당수다. 또한 한국 주요 기업이 중국에 생산기지를 둔 지 오래됐고, 그동안 중국은 한국에서 수입한 중간재가 수출용으로 쓰이면 무관세 혜택을 줘왔기 때문에 한·중 FTA로 관세 인하 혜택을 보는 상품군은 정부 홍보보다 훨씬 적다고 봐야 한다.

뿐만 아니다. 중국은 리튬이온축전지, 자동기어변속장치, 선박용 엔진, 음향기기 부품, 굴삭기, 합금강, 자동차, 레이저프린터, 핸들, 클러치, 스킨케어 화장품, 샴푸 등 우리 기업이 노리던 분야를 대거 비개방 품목에 포함했다. 또한 즉시 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한 플라스틱 금형, 프로필렌, 스위치부품, 초산비닐 등은 이미 중국이 기술력을 갖춘 분야기 때문에 우리 기업이 무관세 특혜를 입더라도 중국을 공략하기 쉽지 않은 시장이다. 대중 수출액이 수입액보다 13배가 많은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중국은 우리 기업이 개방을 바라던 파라자일렌(PX), 테레프탈산(TPA) 등을 개방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면 한국은 합성수지나 합성고무 등을 개방하기로 해 값싼 중국산이 대거 유입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FTA 수혜 품목이라고 밝힌 전기밥솥·냉장고·세탁기·에어컨·진공청소기 등 중소형 생활가전은 대부분 10년내 관세 철폐 품목에 묶였다. 이 품목들은 중국 업체의 기술력이 한국 턱밑까지 쫓아온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우리가 즉각 또는 5년 내에 관세를 없애기로 한 시장들은 양국 간 기술력 차이가 거의 없거나 역전된 것이 많다. 우리 시장이 무관세로 열리면 값싼 중국 제품이 밀려 올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중국의 도시화 확산으로 수출 유망 품목으로 꼽히는 보일러의 경우, 중국은 현행 10%인 관세를 10년 동안 연 1%포인트씩 인하하기로 한 반면, 한국은 8%인 관세를 즉시 철폐하는 불균형 협상을 맺기도 했다.

정부가 최고 치적으로 여기는 농수산물 협상 역시, 따지고 볼 게 많다. 정부는 “기체결 FTA 대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국내 농수산물 시장을 보호했다”고 강조한다. 협상 결과 한국은 전체 농수산물 품목의 약 70%만 단계적으로 개방(자유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전에 우리나라가 10개국과 맺은 FTA의 농수산물 자유화율 역시 78%에 이른다. 무엇보다 한·중 FTA에는 무관세 품목으로 분류된 농수산물 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가 도입되지 않았다. 세이프가드는 관세 철폐된 농수산물 품목이 일정 기준 이상으로 수입이 급증하면 FTA 이전의 기존 관세율까지 인상할 수 있는 제도다. 한·미, 한· EU FTA에는 이 제도가 도입됐다. 다시 말해, 발효 즉시 또는 5년 내 관세가 사라지는 425개 농수산물은 아무리 중국산이 밀려와도 막을 방도가 없다는 얘기다. 더욱이, 중국산 농수산물은 우리나라가 100~400% 관세를 붙여도 국산보다 더 싸게 유통돼 우리 식탁을 점령한 것이 많다. 이와 관련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중 F TA 발효시 농산물 수입은 105~209% 늘고, (농수산물 시장)에 광범위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내다봤다.
 협정문 번역 끝나면 더 많은 문제 나올 수도
상품 협상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성과는 저조하다. 정부는 ‘(중국의) 건설·환경·엔터테인먼트·유통·법률 등 유망 시장 일부 개방’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건설과 법률 시장 진출은 상하이자유무역지대(FTZ)에 투자한 기업에 한정해 적용된다. 중국은 이미 2013년에 상하이자유무역지대에 투자한 모든 외국 기업에 특혜를 주는 규정을 발표한 바 있다. 때문에 건설·법률 등 서비스 시장 개방이 한·중 FTA의 성과처럼 홍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급증하고 있는 중국 소비자의 우리나라 온라인 쇼핑몰 역직구(직접구매)와 관련, 업계에서는 특송화물 무관세조항이 도입되기를 기대 했지만, 중국의 반발에 막혀 이루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한·중 FTA는 개방 수준이 낮고 관세 철폐 속도도 상대적으로 매우 더딘 협정”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거대 중국 내수시장의 선점 기회를 확보했다’는 정부의 홍보 역시 일방적인 자평에 불과하다는 냉소가 많다. FTA에 정통한 한 국립대 교수는 “협상은 내 살을 내주고 뼈를 끊어오는 육참 골단의 자세로 했어야 하는데, 농수산물 몇 개 지키려다 제조업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협상이 됐다”며 “향후 협정문의 한글 번역 작업이 끝나면 더 많은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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