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쇼크 그 후 | 중국發 환율전쟁의 나비효과] 원자재 수출국에 재앙 닥칠 수도
[차이나 쇼크 그 후 | 중국發 환율전쟁의 나비효과] 원자재 수출국에 재앙 닥칠 수도
1.9%의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한 중국 인민은행은 이번 조치가 ‘일회성’이라고 밝혔다. 추가적인 평가절하는 없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게 위안화 가치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인민은행은 평가절하를 발표하면서 ‘앞으로 외환시장에서 정해진 환율과 주요 통화들의 환율 변화를 감안해서 기준환율을 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인민은행 자신이 아닌 시장이 위안화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금 중국 외환 시장의 방향은 위안화 가치의 추가 하락 쪽으로 기울어 있다. 여기에 중국은 머지 않아 환율의 일일 변동 허용폭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시장에 누적돼 있던 위안화 하락 압력이 좀 더 빠른 속도로 현실화될 가능성을 뜻한다. 물론 환율의 큰 방향과 조정 속도에는 여전히 당국의 의지가 가미될 듯하다. 이번 평가절하는 지난 1994년 1월 이후 21년여 만에 처음 단행된 것이다. 당시의 평가절하 폭은 50%에 달했다. 정부의 공식환율과 암시장의 환율을 통합하는 방식이었다. 당시의 평가절하는 암시장에서 형성되어 온 ‘진짜’ 환율을 공식환율로 인정하는 조치였다. 그런 점에서 시장에 좀 더 많은 환율 결정권을 부여한 이번 평가절하는 당시와 닮은 꼴이다. 이번 평가절하가 앞으로 어떤 식의 국제적 파장을 낳을 것인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지난 1994년 1월 이후의 사례를 돌이켜 보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1994년 1월 1일 중국의 전격적인 환율통합(평가절하) 조치로 중국의 실질실효환율은 30% 급락했다. 달러에 대한 명목환율이 50% 떨어졌지만, 당시 중국의 물가상승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교역 대상국 통화들에 대한 실질적이고 종합적인 통화가치 절하 효과는 어느 정도 삭감됐다. 그래도 그 ‘30%’는 다른 교역대상국이나 경쟁국들에게 막대한 충격이었다. 결국 1년여 뒤 일본이 뒤를 따랐다. 미국과의 이른바 역(逆)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 가치를 대폭 떨어뜨렸다.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엔화의 실질실효환율 역시 30%가량 폭락했다.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타 아시아 국가들은 환율을 달러에 거의 고정시켜 놓는 환율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매우 컸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안정적 환율’이야말로 무역을 촉진하는 데 매우 긴요했다. 그러나 고정환율제는 중국과 일본의 연쇄적인 평가절하 충격에 매우 취약했다. 중국과 일본에 대한 여타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저절로 대폭 절상돼 버렸다. 무역 경쟁력이 추락했다. 무역수지가 급격히 악화됐다. 동반 평가절하 압력이 급증했다. 자연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1997년 7월 태국이 바트화를 17% 평가절하하며 굴복했다. 금리를 30%로까지 인상하며 버티던 필리핀도 결국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필리핀 페소화는 즉각 10% 추락했다. 1997년 말까지 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통화가치는 60% 떨어졌다. 필리핀 페소는 35% 하락했다. 한국도 비슷한 경로를 밟아야만 했다. 아시아 외환위기였다.
중국 평가절하의 나비효과는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아시아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평가절하에 돌입하면서 국제 유가가 폭락했다. 1997년 초 24달러 정도 하던 브렌트유 가격은 1998년 6월이 되자 1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아시아 주요국들의 환율이 대폭 뛰어 올라 석유를 많이 수입해 소비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러시아가 결국 루블화를 대대적으로 평가절하하면서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1998년 8월의 일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원유수출국 중 하나로 국가 경제와 재정수입의 대부분을 에너지산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불똥은 미국으로 튀었다. 이른바 ‘천재들의 외인구단’으로 각광 받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란 이름의 헤지펀드에 큰 문제가 생겼다. 러시아 채권에 막대한 투자를 해 놓았다가 돈을 다 날려버렸다. 파장이 월스트리트 전반으로 퍼지며 미국 금융 시장이 휘청거리자 대형 금융회사들이 구제금융에 나섰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이 과정에 개입했다. 구제금융이 결정되던 때부터 두 달 사이에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했다. 불붙던 뉴욕 증시의 닷컴 버블에 기름이 부어졌다.
21년이 지난 지금, 중국 정부의 평가절하가 발표된 뒤로 이 과정들이 한꺼번에 압축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거의 대부분 나라의 통화가치가 함께 떨어졌다.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도 추락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연내에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심지어 ‘양적완화를 다시 해야 할 것’이란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외환정책의 변화가 가시화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쉼 없이 오르기만 하던 위안화 가치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금융 시장에 만연하던 ‘일방적인 위안화 가치 상승 기대심리’에 중국 정부가 제동을 걸고부터다. 곧 이어 인민은행은 위안화 환율의 변동폭을 상하 2%로 확대했다. 새로 형성된 위안화 하락 흐름이 증폭됐다. 지난해 시동을 건 중국의 위안화 가치 하락 유도는 평가절하를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위안화 가치를 당장 노골적으로 끌어 내리기에는 당시 중국 기업이 짊어지고 있는 외채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외채 상환 부담은 급증한다. 그 부담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미리 달러를 사 모으면 위안화 가치는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하락압력을 받는다. 그래서 일단은 이 외채를 줄이는 자극을 가하는 게 우선이었다. 위안화 방향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돌변시키자 중국의 단기 외채 흐름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유입 규모가 크게 둔화되더니 본격적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외자 이탈은 위안화 가치의 점진적인 하락 추세와 상호작용했다.
중국의 외채 축소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글로벌모니터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이후 약 3500억 달러로까지 누적적으로 불어났던 해외 단기 차입 누적 잔액은 지난해 3분기부터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지난 1분기 말까지 절반 수준으로 줄어 들었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2분기와 지금 3분기에도 계속되거나 가속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과도한 단기 외채 문제가 대폭 안정화되었다는 의미다. 휘발성 강한 단기 외채 부담을 덜어냈다면 중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려 나가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평가절하’라는 신호효과가 매우 강력한 결정을 내려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외환보유액도 빠른 속도로 감소해왔다. 그러나 중국 외환보유액의 감소는 외자 이탈 과정에서 나타나는 파괴적인 현상이 아니라, 기업들의 단기 외채 상환 ‘지원’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외환정책은 미국의 통화정책과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다. 중국의 단기 외채 유입이 급증하고, 그로 인해 위안화 가치가 뛰어 오르기 시작한 지난 2010년 가을은 미국이 제2차 양적완화(QE2)를 개시한 시기다. 2차 양적완화가 종료된 뒤 주춤하던 이 흐름은 2012년 가을 3차 양적완화(QE3)가 시작되면서 재개됐다. 그리고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하락세로 돌려 세우고 외채 구조조정에 나선 시점은 미국이 3차 양적완화를 축소하기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 그리고 21년여 만의 평가절하는 미국의 금리 인상 개시가 매우 임박한 상황에서 단행됐다.
중국은 그동안 위안화 가치를 달러화에 밀접하게 연동시켜 왔다. 그래서 미국이 돈을 푸는 동안에는 중국도 함께 통화를 증발할 수 있었다. 자연히 그림자금융과 부동산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달러에 대한 위안화 가치가 꾸준히 상승하도록 유도해 왔지만, 한동안은 별 문제가 없었다. 양적완화 때문에 미국의 달러화가 대체로 약세였기 때문에 거기에 묶어 놓은 위안화도 제3의 통화에 대해서는 크게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1차 문제는 2012년 가을부터 발생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등장하면서 엔화 가치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평가절하된 엔화에 비해 달러에 묶인 위안화 가치는 급등했다. 지난 1994년 위안화 평가절하 직후 일본이 처했던 상황과 유사했다. 그래서 중국도 지난해 초 들어 달러에 대한 위안화 가치 하락세를 유도했다. 미국의 달러화 공급이 긴축(3차 양적완화 축소)되기 시작한 상황에서 달러-위안 간의 연결 고리를 풀어야만 과도한 통화가치 절상을 피할 수 있었다. 2차 충격은 지난해 여름부터 나타났다. 유로존이 대대적인 평가절하에 합류하면서 유로에 대해서까지 위안화 가치가 급등했다. 그래서 결국 중국은 평가절하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달러와의 연결 고리를 더 느슨하게 하기 위한 조치다.
달러와 위안의 연결고리를 풀어내는 중국의 정책에는 ‘국내 사정’도 함께 작용했다. 달러화 공급이 계속 긴축되는 상황에서 달러-위안의 연결고리를 강하게 유지해 놓으면 중국의 국내 통화정책은 미국을 따라 함께 긴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내부 사정은 그러한 긴축을 감당하기 어렵다.
문제는 중국 정부의 환율정책 변화가 외화 유출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평가절하를 발표한 뒤로 위안화 하락 압력이 강해지자 중국 인민은행은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액을 2000억 달러나 사용했다. 중앙은행이 이렇게 외환을 팔면 그 액수만큼의 위안화가 중앙은행으로 회수 된다. 일종의 양적긴축 정책효과가 발생한다. 이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위안화를 다시 공급하면 이 돈이 외화를 미리 사 두려는 투기적 거래의 종잣돈이 되기 십상이다. 위안화 가치 하락과 외환보유액 소진이라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래서 한동안 중국 정부는 주식 시장 방어노력을 중단한 채 환율 안정에 정책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위안화 유동성이 긴축되고 주가는 더 빠른 속도로 하락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그러던 차에 중국 인민은행은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동시에 인하하는 조치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시장에 대한 위안화 공급을 기조적으로 늘리는 정책이다. 자연히 위안화에 미치는 하락 압력이 더해지게 됐다. 그럼에도 통화완화 정책을 단행한 것은 중국이 이제 위안화 약세를 본격적으로 허용할 수 있게 됐음을 시사한다. 기업들의 외채 부담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중국 정부의 판단이자, 투기적인 외화매수세를 잘 통제할 수 있게 됐다는 자신감으로 볼 수 있다. 평가절하 이후 돌연 고정환율제로 돌아간 것처럼 묶여 있던 위안화의 고삐가 앞으로 풀리기 시작할 가능성을 예고한다. 외채 구조조정을 마친 이후에 전개되는 중국의 위안화 약세 정책은 교역조건 개선에 초점이 맞춰진다. 세계 최대 무역국인 중국의 평가절하는 ‘당신들의 물건을 더 이상 비싸게 사주지 않겠다’는 대외 천명이다. 동시에 ‘내 물건을 당신들보다 더 싸게 팔겠다’는 발표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책전환은 원자재 생산국들의 경제를 더욱 더 압박한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내리는 것만큼 중국의 원자재 수입가격은 올라간다. 중국의 원자재 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원자재 수출국들은 판매가격을 인하해야 한다. 원자재 가격 하락 효과는 우리에게도 거의 똑같이 미친다.
일본과 유로존에 이은 중국과 이머징 산업생산국들의 통화 가치 평가절하는 결국 원자재 수출국들의 부(富)를 원자재 수입국, 산업생산국들로 이전하는 흐름을 가속화시킨다. 미국의 달러화 평가절하(양적완화)가 원자재 가격 급등세를 야기했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그 결과 원자재 수출국 중에서는 지난 1998년의 러시아와 같은 ‘루저’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 1997년과 달리 우리의 원화 가치는 중국을 따라 함께 자연스럽게 하락하고 있다. 우리의 수출산업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혜택을 누리게 된다. 똑같이 1000달러짜리 물건을 수출해도 손에 쥐는 원화소득은 증가한다. 평가절하(환율상승)로 발생하는 물가상승 압력은 원자재 가격 하락을 통해 상쇄된다.
-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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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위안화 평가절하 아시아 외환위기로 이어져
1994년 1월 1일 중국의 전격적인 환율통합(평가절하) 조치로 중국의 실질실효환율은 30% 급락했다. 달러에 대한 명목환율이 50% 떨어졌지만, 당시 중국의 물가상승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교역 대상국 통화들에 대한 실질적이고 종합적인 통화가치 절하 효과는 어느 정도 삭감됐다. 그래도 그 ‘30%’는 다른 교역대상국이나 경쟁국들에게 막대한 충격이었다. 결국 1년여 뒤 일본이 뒤를 따랐다. 미국과의 이른바 역(逆) 플라자합의’를 통해 엔화 가치를 대폭 떨어뜨렸다.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엔화의 실질실효환율 역시 30%가량 폭락했다.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타 아시아 국가들은 환율을 달러에 거의 고정시켜 놓는 환율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미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매우 컸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안정적 환율’이야말로 무역을 촉진하는 데 매우 긴요했다. 그러나 고정환율제는 중국과 일본의 연쇄적인 평가절하 충격에 매우 취약했다. 중국과 일본에 대한 여타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가치가 저절로 대폭 절상돼 버렸다. 무역 경쟁력이 추락했다. 무역수지가 급격히 악화됐다. 동반 평가절하 압력이 급증했다. 자연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1997년 7월 태국이 바트화를 17% 평가절하하며 굴복했다. 금리를 30%로까지 인상하며 버티던 필리핀도 결국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필리핀 페소화는 즉각 10% 추락했다. 1997년 말까지 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통화가치는 60% 떨어졌다. 필리핀 페소는 35% 하락했다. 한국도 비슷한 경로를 밟아야만 했다. 아시아 외환위기였다.
중국 평가절하의 나비효과는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아시아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평가절하에 돌입하면서 국제 유가가 폭락했다. 1997년 초 24달러 정도 하던 브렌트유 가격은 1998년 6월이 되자 1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아시아 주요국들의 환율이 대폭 뛰어 올라 석유를 많이 수입해 소비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러시아가 결국 루블화를 대대적으로 평가절하하면서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1998년 8월의 일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원유수출국 중 하나로 국가 경제와 재정수입의 대부분을 에너지산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불똥은 미국으로 튀었다. 이른바 ‘천재들의 외인구단’으로 각광 받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란 이름의 헤지펀드에 큰 문제가 생겼다. 러시아 채권에 막대한 투자를 해 놓았다가 돈을 다 날려버렸다. 파장이 월스트리트 전반으로 퍼지며 미국 금융 시장이 휘청거리자 대형 금융회사들이 구제금융에 나섰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이 과정에 개입했다. 구제금융이 결정되던 때부터 두 달 사이에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했다. 불붙던 뉴욕 증시의 닷컴 버블에 기름이 부어졌다.
21년이 지난 지금, 중국 정부의 평가절하가 발표된 뒤로 이 과정들이 한꺼번에 압축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거의 대부분 나라의 통화가치가 함께 떨어졌다.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도 추락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연내에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심지어 ‘양적완화를 다시 해야 할 것’이란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외환정책의 변화가 가시화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쉼 없이 오르기만 하던 위안화 가치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금융 시장에 만연하던 ‘일방적인 위안화 가치 상승 기대심리’에 중국 정부가 제동을 걸고부터다. 곧 이어 인민은행은 위안화 환율의 변동폭을 상하 2%로 확대했다. 새로 형성된 위안화 하락 흐름이 증폭됐다. 지난해 시동을 건 중국의 위안화 가치 하락 유도는 평가절하를 위한 준비작업이었다. 위안화 가치를 당장 노골적으로 끌어 내리기에는 당시 중국 기업이 짊어지고 있는 외채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외채 상환 부담은 급증한다. 그 부담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미리 달러를 사 모으면 위안화 가치는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하락압력을 받는다. 그래서 일단은 이 외채를 줄이는 자극을 가하는 게 우선이었다. 위안화 방향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돌변시키자 중국의 단기 외채 흐름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유입 규모가 크게 둔화되더니 본격적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외자 이탈은 위안화 가치의 점진적인 하락 추세와 상호작용했다.
중국의 외채 축소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글로벌모니터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이후 약 3500억 달러로까지 누적적으로 불어났던 해외 단기 차입 누적 잔액은 지난해 3분기부터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지난 1분기 말까지 절반 수준으로 줄어 들었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2분기와 지금 3분기에도 계속되거나 가속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과도한 단기 외채 문제가 대폭 안정화되었다는 의미다. 휘발성 강한 단기 외채 부담을 덜어냈다면 중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려 나가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평가절하’라는 신호효과가 매우 강력한 결정을 내려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외환보유액도 빠른 속도로 감소해왔다. 그러나 중국 외환보유액의 감소는 외자 이탈 과정에서 나타나는 파괴적인 현상이 아니라, 기업들의 단기 외채 상환 ‘지원’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미국 통화정책에 좌우되는 중국의 환율정책
중국은 그동안 위안화 가치를 달러화에 밀접하게 연동시켜 왔다. 그래서 미국이 돈을 푸는 동안에는 중국도 함께 통화를 증발할 수 있었다. 자연히 그림자금융과 부동산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달러에 대한 위안화 가치가 꾸준히 상승하도록 유도해 왔지만, 한동안은 별 문제가 없었다. 양적완화 때문에 미국의 달러화가 대체로 약세였기 때문에 거기에 묶어 놓은 위안화도 제3의 통화에 대해서는 크게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1차 문제는 2012년 가을부터 발생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등장하면서 엔화 가치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평가절하된 엔화에 비해 달러에 묶인 위안화 가치는 급등했다. 지난 1994년 위안화 평가절하 직후 일본이 처했던 상황과 유사했다. 그래서 중국도 지난해 초 들어 달러에 대한 위안화 가치 하락세를 유도했다. 미국의 달러화 공급이 긴축(3차 양적완화 축소)되기 시작한 상황에서 달러-위안 간의 연결 고리를 풀어야만 과도한 통화가치 절상을 피할 수 있었다. 2차 충격은 지난해 여름부터 나타났다. 유로존이 대대적인 평가절하에 합류하면서 유로에 대해서까지 위안화 가치가 급등했다. 그래서 결국 중국은 평가절하를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달러와의 연결 고리를 더 느슨하게 하기 위한 조치다.
달러와 위안의 연결고리를 풀어내는 중국의 정책에는 ‘국내 사정’도 함께 작용했다. 달러화 공급이 계속 긴축되는 상황에서 달러-위안의 연결고리를 강하게 유지해 놓으면 중국의 국내 통화정책은 미국을 따라 함께 긴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내부 사정은 그러한 긴축을 감당하기 어렵다.
문제는 중국 정부의 환율정책 변화가 외화 유출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평가절하를 발표한 뒤로 위안화 하락 압력이 강해지자 중국 인민은행은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액을 2000억 달러나 사용했다. 중앙은행이 이렇게 외환을 팔면 그 액수만큼의 위안화가 중앙은행으로 회수 된다. 일종의 양적긴축 정책효과가 발생한다. 이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위안화를 다시 공급하면 이 돈이 외화를 미리 사 두려는 투기적 거래의 종잣돈이 되기 십상이다. 위안화 가치 하락과 외환보유액 소진이라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래서 한동안 중국 정부는 주식 시장 방어노력을 중단한 채 환율 안정에 정책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위안화 유동성이 긴축되고 주가는 더 빠른 속도로 하락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그러던 차에 중국 인민은행은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을 동시에 인하하는 조치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시장에 대한 위안화 공급을 기조적으로 늘리는 정책이다. 자연히 위안화에 미치는 하락 압력이 더해지게 됐다. 그럼에도 통화완화 정책을 단행한 것은 중국이 이제 위안화 약세를 본격적으로 허용할 수 있게 됐음을 시사한다. 기업들의 외채 부담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중국 정부의 판단이자, 투기적인 외화매수세를 잘 통제할 수 있게 됐다는 자신감으로 볼 수 있다. 평가절하 이후 돌연 고정환율제로 돌아간 것처럼 묶여 있던 위안화의 고삐가 앞으로 풀리기 시작할 가능성을 예고한다.
평가절하에 이은 중국의 돈 풀기 정책
일본과 유로존에 이은 중국과 이머징 산업생산국들의 통화 가치 평가절하는 결국 원자재 수출국들의 부(富)를 원자재 수입국, 산업생산국들로 이전하는 흐름을 가속화시킨다. 미국의 달러화 평가절하(양적완화)가 원자재 가격 급등세를 야기했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그 결과 원자재 수출국 중에서는 지난 1998년의 러시아와 같은 ‘루저’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 1997년과 달리 우리의 원화 가치는 중국을 따라 함께 자연스럽게 하락하고 있다. 우리의 수출산업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혜택을 누리게 된다. 똑같이 1000달러짜리 물건을 수출해도 손에 쥐는 원화소득은 증가한다. 평가절하(환율상승)로 발생하는 물가상승 압력은 원자재 가격 하락을 통해 상쇄된다.
-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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