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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P가 바꿀 일본의 식생활] “선택의 폭 확대” vs “농가에 부담”

[TPP가 바꿀 일본의 식생활] “선택의 폭 확대” vs “농가에 부담”

태평양을 빙 둘러싼 12개 국가. 그 나라들 사이의 거대한 통일경제권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5년 반의 교섭을 거쳐 잠정합의에 도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그것이다. 일본·미국·캐나다·호주 등 참여국의 국내총생산(GDP) 합계는 3500조엔으로 전 세계의 약 40%에 육박한다. TPP가 발효되면 일본이 수입하는 전체 9018개 품목 중 95.1%의 관세가 철폐된다. 과거에도 대담한 무역 자유화는 있었으나 이렇게 많은 국가를 상대로, 전폭적인 시장 개방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인의 생활이 완전히 바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세 사라져도 실질 가격 인하폭 크지 않을 듯
일단 여론은 호의적이다. 잠정합의 후 언론사들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약 60%가 TPP에 찬성한다고 대답했다. 일본 소비자들은 수입품을 지금보다 싸게 살 수 있고, 가계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듯하다. 38.5%에 달했던 소고기 관세는 TPP 발효 16년 후엔 9%로 떨어진다. 돼지고기에 붙는 관세도 제로에 가까운 수준까지 내려간다. 오렌지나 사과·소시지·파스타·요구르트 등 일상 식품도 큰 폭의 관세율 인하 또는 철폐가 예상된다. ‘감자칩 20엔, 규동 110엔, 콜라 10엔’ 등 일찌감치 인터넷에서는 여러 관측이 떠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소매가격이 얼마나 내려갈지는 제조사나 유통업자들에게 달렸다. “가격이 대폭 하락할 것이라는 생각이 주를 이루지만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 한꺼번에 사들일 경우, 단가 인하에는 큰 영향이 없을 걸로 본다”(관동지역의 한 대형 소매업자). “우리 영업 담당은 TPP보다 시장 동향에 더 신경을 쓴다. 관세보다 변동폭이 크기 때문이다. 가공육은 가격이 내려갈 것이란 설이 있지만 결국 상사(商社) 등에 이윤을 빼앗기지 않을까 우려된다”(도쿄의 한 대형 소매업자). 수입품의 가격은 환율, 원자재 가격, 당시의 수급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 관세 역시 그러한 요소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정육 등 유통량이 많은 기간 상품은 경영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유통업자도 가격 인하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가격이 낮아질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수입 식품이 증가해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건 확실하다. 벌꿀이 그렇다. 벌꿀의 경우, 현재 일본 내 수요의 90%가 수입산이고, 이 중 80%가 중국산이다. 중국산이 많은 것은 단지 가격 때문인데,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적지 않다. TPP 발효 후에는 중국 이외 국가의 수입품도 늘어날 것이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의 ‘마누카 허니’는 항균작용이 뛰어나고, 감기나 인플루엔자 예방 효과가 있는 인기 벌꿀이다. 현재 일본에서 1병에 2000(약 2만원)~8000엔 정도하는 고급품이나, 앞으로는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매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생산자 입장에서 보자면, 피해가 더 클 것이다. 일본의 농가 숫자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연 매출 700만엔 이상의 대규모 농가 수는 비교적 안정돼 있는 반면, 소규모 영세농가는 끊임없이 줄어들고 있다. 농산물 수입이 늘면 경영 규모가 작은 ‘약자’를 중심으로 농가의 도태 흐름이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물론 TPP로 일본의 모든 농가가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다. 영향은 생산 품목이나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농림수산성은 지난 10월, 일본 내 주요 40개 품목을 대상으로 TPP로 관세가 내려갈 경우의 영향을 분석해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되는 품목이 22개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당근은 지금도 관세율이 3%로 낮은 편이기 때문에, 철폐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포도 역시 그렇다. 거봉이나 피오네 같은 일본 제품이 인기를 누리고 있고, 수입 포도보다 가격이 3배나 비싼데도 잘 팔리는 걸 보면 영향이 크지 않으리란 전망이 가능하다. 농림수산성은 쌀·보리·소고기·돼지고기·유제품·설탕 등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산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당국의 견해와는 커다란 온도차를 느낄 수 있다. 사과가 대표적이다. 국제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향이 제한적’이라지만 농가에서는 이전보다 품질이 좋아진 뉴질랜드산 사과가 일본 내에서 유통되는 것에 강한 우려를 표시한다. 체리 역시 주 산지인 야마가타 지역에선 값싼 미국산 체리 유입 증가를 걱정한다. 농림수산성조차 ‘장기적으로는 관세 인하의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 축산 분야는 특히 동요하고 있다. 육우의 최대 산지인 가고시마현 농협 관계자의 목소리는 떨린다. “아베 정부는 ‘성역은 지켰다’고 말한다. 뻔뻔하다. 오히려 한마디라도 좋으니 사과하라고 말하고 싶다. 소고기를 포함해 중요 다섯 가지 항목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농림수산상인 모리야마 히로시가 우리 현 출신이라, 우리 사정을 헤아려 줄거라 생각했지만 완전히 속았다.”
 농수산물 수출 늘린다는 日 정부 목표에도 차질
지난 10월 전국 지방자치단체장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TPP 발효로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답한 지자체는 24.7%였다. 역으로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답한 지자체는 2.6%에 불과했다. 홋카이도·이와테·미야자키·가고시마 등 축산업이 발달한 지자체는 위기감이 특히 강하다. 산지에서는 TPP에 따른 영향을 단순히 수입의 증가, 감소 여부로 따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불안한 미래에 따른 농민의 의욕 감퇴, 창농(創農) 부진 등 보다 광범위한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그것이 정부와 농민의 인식 차이다.

현장의 불안에 기가 눌린 듯, 정부는 11월 25일 ‘TPP 관련 정책’을 발표했다. 농가 보호 대책이 골자였다. 축산농가에 대한 손실 보상책을 확대했고, 소득 보전 비율도 80%에서 90%로 늘렸다. 사탕수수 농가를 지키기 위해, 단가 조절제도 대상 품목을 늘리는 방안도 담겼다. 자생력이 강한 산지나 농가의 생산성을 한층 더 높인다는 목표와는 맞지 않는 정책이다. 그러나 농가를 전통적인 지지기반으로 삼아온 자민당으로서는 이들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농업대책을 담당한 고이즈미 신타로 농림부 회장은 우루과이라운드 대책과 같은 ‘바라마키 정책(정부의 무분별한 대규모 재정지출, 일종의 나눠주기식 정책)’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늘 강조해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에도 예전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가 전략으로 추진되는 농수산물 수출 확대 또한 걱정거리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현재 6100억엔(약 5조9000억원)인 농수산물 수출을 1조엔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워뒀다. 하지만 일본은 재배, 생산 안전관리 방법이 국제 기준과 다른 경우가 많다. 이 ‘갈라파고스 규격’이 장애물로 작용해 일본 수출품이 해외 시장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문제가 그대로인데 수입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사실 가격이나 농가 피해보다 더 민감한 부분은 식품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다. 이미 소비자 단체들은 ‘식품 수입이 가속화되면, 일본에서 인정되지 않는 첨가물이나 잔류 농약 기준치를 넘는 식품이 검사를 피해 유입될 가능성이 커진다’ ‘향후 유전자변형 표시 의무도 미국 측의 요구에 응해 완화될 것’ 등의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국민의 식량과 건강을 지키는 운동전국연합회(전국식건연)’은 20년 전부터 식품안전문제에 힘써온 농협 계열의 단체다. 최근 이들의 가장 중요한 활동 테마는 당연히 TPP다. 사카구치 마사아키 사무국장은 이전에 본 비디오 영상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미국의 어느 농장에서 사과를 쌓아놓은 트럭이 멈추고, 위에서 샤워기 같은 장치로 농약을 뿌린다. 그 후, 트럭은 창고에 들어가 사과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온다. 마지막으로 트럭만 농약을 씻어내는 영상이다. ‘수확 후 농약 살포가 허용되지 않은 일본에서 이런 짓을 한다면 출하 정지를 당하겠지만, 이런 수입품들은 OK 사인을 받고 일본 수퍼에 당당히 진열된다. 지금은 농약에 거부감이 있는 소비자가 구입을 안 하면 되지만 수입품이 점령하면 앞으로는 선택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유전자변형 제품 아님’이란 표시를 할 수 없다면?
실제로 TPP가 발효되면 항곰팡이제를 사용했다는 표시 의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원래 일본에서는 수확이 끝난 농작물에 농약을 사용하는 게 금지돼 있다. 고육지책으로 일본은 미국산 농산물의 항곰팡이제를 ‘첨가물’로 분류해 수입을 허가했는데, 첨가물은 표시 의무가 있다. 항곰팡이제를 사용했다고 표시하는 한 미국 농산물은 경쟁상 불리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첨가물 심사를 없애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11월 발표된 일·미 교환문서에는 ‘양국 수확 전 및 수확 후에 사용되는 항곰팡이제, 식품첨가물에 준하는 젤라틴 및 콜라겐에 관한 대응에 있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쓰여 있다. ‘역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유전자변형(GM) 식품 표시도 ‘미국의 요구로 지금보다 규제가 완화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다. 해외 다큐멘터리 영화 ‘몬산토의 부자연스러운 음식’이나 ‘세계가 먹을 수 없게 되는 날’을 본 일본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영화를 보지 않아도 많은 일본인은 GM 식품에 혐오감을 갖고 있다. 옥수수 캔·낫토·두부·간장 등에 구태여 ‘GM 제품이 아닙니다’라고 표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식품표시법이 의무로 규정한 건 ‘GM 작물을 사용했을 경우’뿐이다. ‘사용하지 않았다’는 표시는 업체가 자율적으로 한다. 그러나 GM의 사용, 비사용 여부를 표시할 자유가 TPP로 인해 아예 사라진다면 어떨까? TPP 발효 후에도 식품 안전기준이 바뀔 우려는 없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도쿄대학대학원 스즈키 노비히로 교수는 “향후 두 나라간의 협정으로 결정될 부분”이라며 “미국이 과학적 근거에 기초해야 한다며 일본의 표시제를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유전자조작 위험성을 입증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GM이 아님’이라는 일본의 표시제는 GM 농업이 발달한 미국 입장에서는 불만이다. 마치 유전자변형 자체가 위험한 것처럼 소비자가 오인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스즈키 교수는 이어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GM이 안전하지 않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그러한 표시를 하는 것을 그만둬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일본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S, 기업이 진출한 국가에서 정당한 경제 활동에 방해를 받았다고 판단해 해당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크다.”

GM뿐만 아니다. TPP 발효 후, 소고기나 돼지고기 수입이 늘어난다면 성장촉진호르몬을 사용한 축산물 유입 증가를 신경 쓰는 소비자도 있을 것이다. 유럽연합(EU)이나 일본에서는 사용이 금지돼 있지만 미국·캐나다 등지에서는 ‘락토파민’ 등 성장촉진호르몬을 사용해 가축을 빨리 성장시키는 게 일반화돼 있다. 유제품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젖소의 유량을 20%나 끌어올리는 호르몬제 ‘rBST’가 널리 사용된다. 이미 이렇게 생산된 유제품 일부가 일본에 유입되고 있다.
 항생물질 사용한 육류 유입도 우려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항생물질을 사용해 키운 닭의 유입 증가도 우려된다. 항생물질을 사용해 닭이나 소, 돼지를 키우는 것은 일본 농가에서도 행해지고 있지만, 일본은 잔류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 게다가 의약용과 성장촉진용 항생물질이 분류돼 있어, 의약용 항생물질을 성장촉진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된다. EU는 성장촉진에 항생물질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데 반해, 미국은 자유다. 거의 무제한으로 사용해왔기 때문에 항생물질이 효과가 없는 ‘수퍼버그(벌레)’가 증가했다. 수퍼에서 입수한 샘플 닭고기의 절반 이상에서 내성균이 검출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급식에 항생물질을 먹이지 않은 닭고기만 사용하도록 결정한 도시도 있다. 미국의 맥도날드는 올 3월 감염증 치료에 사용되는 항생물질을 투여한 닭고기를 향후 2년 동안 사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항생물질을 투여한 닭고기 사용을 금지하는 움직임이 미국에서 확산되면 남는 닭고기를 일본 등 해외에 팔아 치우려는 움직임이 나올지도 모른다.

어쨌든 TPP는 조만간 발효될 가능성이 크다. 내년 2월 이후 TPP 참여국 간 최종 합의가 이뤄지면 각국 회의의 승인 절차로 넘어간다. 일본은 내년 국회 심의를 거쳐 일본 국내법 개정과 함께 절차를 끝낼 계획이다. 문제는 국민의 과반수가 TPP를 지지하는 일본이 아닌 미국이다. 미국은 2016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 유력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공화당 지명 경쟁에서 유력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두 사람 모두 TPP 추진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꽤 많다. 선거를 거치면서 심의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5년이나 걸린 국제 합의를 이제 와서 무효로 만들 만큼 미국 정치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르면 내년 중, 늦어도 2017년 내에 공식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 일본 경제 주간지 주간동양경제 특약, 번역=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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