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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에 밀려난 시대의 아이콘

신기술에 밀려난 시대의 아이콘

가족·친구들과 비디오 대여점의 여러 코너를 돌아보며 모두가 즐길 만한 영화를 찾는 과정 자체가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기술의 진화를 주시할 때는 너무 오래 한눈을 팔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더 새롭고 빠르고 종종 더 사용하기 쉬운 신기술로 넘어가는 역사의 전환기를 놓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술분야에서 다윈의 진화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는 없는 듯하다.

세계 최대 기업·제품·브랜드라도 예외는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인텔·델 등 한때 PC 업계를 주름잡던 대기업들의 희미해져 가는 존재감은 최근의 사례에 불과하다. 조랑말 특급 우편(Pony Express)으로부터 블랙베리 단말기에 이르기까지 급부상하는 신기술에 밀려나 사양길에 접어든 과거 시대의 상징적 기술들을 돌아본다.
 조랑말 특급 우편(1860-1861): 전신 서비스로 대체
조랑말 속달 우편은 일반 우편으로 한 달 걸리는 배달기간을 10일 정도로 단축한 당시로선 초특급 서비스였다. 1860년 ‘조랑말 특급 우편’ 이동로 지도.
1800년대 중반 미국 동해안에서 서해안으로 서신을 전달할 때는 우편 서비스가 있었다. 그러나 더 긴급한 메시지일 경우엔 ‘조랑말 특급 우편’을 이용할 수 있었다. 미국 중부 미주리주에서 서해안의 샌프란시스코로 서신을 보내는 데 10일 정도 걸렸다. 400쌍의 마부와 말이 1900㎞ 노선을 달렸다. 요즘 기준으로는 느린 편이지만 당시엔 엄청 빠른 서비스였다. 우편 서비스(다시 말해 역마차)를 이용해 같은 거리로 보낼 때는 적어도 한 달 이상 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랑말 특급 우편이 존재한 기간은 약 19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전신선을 통해 동서 해안을 연결하기 위한 작업이 이미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전기신호로 메시지를 보내면 모르스 부호를 통해 해석할 수 있는 기술이다. 1861년 10월 24일 웨스턴 유니언이 최초의 대륙 횡단 전신 시스템을 완성했다. 조랑말 특급 우편은 곧바로 쓸모없어져 서비스가 중단됐다.
 이스트만 코닥(1888-현재): 디지털 사진으로 대체
디지털 사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쇼핑몰·드러그스토어· 테마파크 등 거의 어디를 가든 코닥 로고를 만날 수 있었다.
코닥이라는 이름은 한 세기에 걸쳐 사진의 대명사처럼 쓰였다. 지역에서 유일한 필름은 아니었지만 가장 돋보였다. 쇼핑몰·드러그스토어·테마파크 등 거의 어디를 가든 코닥 로고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 디지털 사진이 부상하는 동안 필름에 의존해 사업을 키우려던 전략이 제 무덤을 판 꼴이 됐다.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 본사를 둔 코닥은 2012년 큰 손실을 입은 뒤 파산을 선언했다가 구조조정을 거쳐 1년 뒤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얄궂게도 코닥의 핵심사업 몰락을 초래한 제품의 개발에 그들 스스로 단초를 제공한 측면이 있었다. 1975년 코닥 엔지니어 스티븐 새슨은 100x100 픽셀 해상도의 흑백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실용적인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했다. 하지만 그 뒤로 소니·후지·캐논·니콘 같은 경쟁사들이 그 기술을 활용할 때까지 수 년 동안 손 놓고 있었다.

현재 코닥의 사업에서 필름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올해는 슈퍼8 카메라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영화제작자들의 관심을 다시 사로잡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8㎜의 실물 필름 릴을 이용하는 휴대형 기기다.
 블록버스터 비디오(1985-2013): 넷플릭스로 대체
반은 휴대전화, 반은 통신 단말기인 블랙베리는 휴대전화 통신망과 실물 키보드를 통해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엔 영화를 보고 싶지만 영화 티켓이나 DVD보다 비용을 훨씬 적게 들이고 싶을 경우 동네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를 빌려보는 사람이 많았다. 가족·친구들과 여러 코너를 돌아보며 모두가 즐길 만한 영화를 찾는 일은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2004년 블록버스터 체인 전성기 때 휘하 체인점 수 9000개, 직원 수 6만 명 정도에 달했다. 요즘 블록버스터는 그들 웹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와 알래스카 등 몇몇 주에 50개의 가맹점 형태로만 존재한다.

블록버스터가 사양길을 걸은 한 가지 큰 이유는 넷플릭스의 부상이었다. 1997년 맥 랜돌프와 리드 헤이스팅스가 시작한 온라인 기반(당시)의 우편 배달 DVD 대여 서비스였다. 경제지 포춘에 따르면 헤이스팅스가 빌렸던 ‘아폴로 13호’의 VHS 테이프를 반납할 때 물어야 했TRANSITION던 40달러 연체료가 어느 정도 불씨를 제공했다. 2000년 넷플릭스를 5000만 달러에 인수할 기회가 블록버스터에 있었다. 넷플릭스의 지난 1월 13일 시가총액 496억 달러에 비하면 푼돈이었다. 블록버스터는 퇴짜를 놓고 거의 코웃음을 치며 넷플릭스 경영진을 사무실에서 내보냈다. 전 넷플릭스 최고재무책임자(CFO) 배리 메카시가 2008년 ‘언오피셜 스탠퍼드’ 블로그에 올린 내용이다.

넷플릭스는 지금 디스크 우편 대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요즘엔 130여 개국에서 갈수록 불어나는 스트리밍 영화, TV 프로그램, 그리고 ‘하우스 오브 카드’와 ‘나르코스(Narcos)’ 같은 자체제작 콘텐트의 컬렉션을 서비스하는 데 상당 부분 신경을 쏟고 있다.
 전화번호부(1886-현재): 구글로 대체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업체나 개인주택의 전화번호를 찾아야 할 경우 사람들은 ‘옐로 페이지’를 들춰보곤 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거의 내내 회사나 개인의 집 전화번호를 찾아야 할 경우 ‘옐로 페이지’를 들춰보곤 했다. 상징적인 노란색 종이와 표지를 본떠 ‘노란책(Yellow Pages)’으로 명명된 이 전화번호부에는 지역에서 전화를 걸 필요가 있을 만한 거의 모든 사람의 이름과 번호가 실렸다. AT&T, 버라이즌 또는 제3의 통신사 같은 지역 전화회사가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 인터넷 그리고 구글과 야후 같은 검색엔진이 부상하면서 순식간에 구시대의 유물이 돼버렸다. 사람들은 크고 묵직한 전화번호부의 수백 쪽을 뒤적이는 대신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기만 하면 원하는 답을 얻었다. 한물가긴 했지만 미국의 옐로북은 아직도 종이책 형태로 발간된다. 다만 예전에 비해 쪽수가 크게 줄었다.
 블랙베리(1996-현재): 애플 아이폰으로 대체
이메일을 즉시 손바닥 위에 펼쳐봐야 할 경우엔 블랙베리가 황금 표준이었다. 반은 휴대전화, 반은 통신 단말기인 블랙베리는 휴대전화 통신망과 실물 키보드를 통해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블랙베리는 사무실과 대학에서 확실한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2006년 11월 웹스터의 ‘뉴월드 칼리지 사전’에 ‘Crackberry’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될 정도였다. 종종 블랙베리 사용의 중독성을 가리키는 크랙베리는 ‘마약’을 뜻하는 crack과 블랙베리를 가리키는 berry의 합성어다.

그러나 2007년 6월 애플의 아이폰 첫 모델이 첨단기술업계 전체에 충격파를 던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이폰은 3개월 만에 100만 대가 팔려나갔다. 블랙베리는 버라이즌과의 제휴로 맞서 2008년 블랙베리 스톰을 선보였다. 누르면 실제로 클릭하는 효과를 내는 터치스크린 스마트폰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블랙베리 기기의 실물 키보드를 사용하던 고객에게 더 친밀감을 주려는 취지의 기능이었다. 제품은 실패했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 뒤 몇 년 동안 애플의 아이폰, 그리고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채택한 휴대전화들이 휴대형 단말기 시장을 대부분 집어삼켰다.

시장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요즘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블랙베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0.5%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블랙베리 프리브(BlackBerry Priv)’로 일부 시장을 되찾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실물 키보드와 데이터 보안 기능을 갖추고 기업 시장을 겨냥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다.

- 루크 빌라파스 아이비타임즈 기자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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