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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은 어떻게 과격파의 소굴 됐나

브뤼셀은 어떻게 과격파의 소굴 됐나

브뤼셀의 무슬림 거주지 풍경은 모로코·리비아나 다름없었다. 지난 3월 22일 테러의 아지트로 알려진 몰렌벡.
약 10여년 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주소가 적힌 메모지를 기사에게 건네줬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종이를 받더니 미터기를 올리고 도시의 혼잡한 고급 호텔가를 빠져나갔다. 곧 구치·티파니·디오르의 번쩍이는 건물과 쇼윈도 풍경이 사라지고 황막한 거리가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B-17 폭격기 조종사였던 친구 부친이 반나치 지하조직의 도움으로 몸을 숨겼던 집을 찾아내 사진에 담는 게 내가 할 일이었다. 브뤼셀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그의 목숨을 건 탈출 과정을 그린 책 ‘프리덤 라인(The Freedom Line)’에 따르면 그가 숨어 있던 동네는 당시 반듯하게 늘어선 파스텔 색깔 벽돌 타운하우스에 중산층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거기는 왜 가세요?” 택시 기사가 물었다. 북아프리카 출신 아랍계의 검은 눈과 억센 검정 머리카락을 가진 얼굴이 백미러에 잡혔다. 방문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아주 달라졌다”며 “온통 아랍인”이라고 말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운전기사는 벨기에의 아랍인 이주사에 관해 장황한 강의를 늘어놓았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북아프리카에서 아랍인을 어떻게 수입해 공장에서 저임 노동력으로 부렸는지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공장들이 대부분 떠난 뒤 이민자들만 남아 수십 년 동안 미래 없이 실업자로 살아가게 됐다. 공식 추산에 따르면 지난 1월 청년 실업률은 23%에 육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를 인용한 유로-이슬람 웹사이트에 따르면 ‘무슬림 취업률 관련 통계는 없지만 외국 출신자의 실업률은 벨기에 원주민의 2배를 웃돈다.’

2004년 내가 찾던 거리는 바로 지난 3월 22일 브뤼셀 공항과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지 몇 시간 뒤 벨기에 경찰이 범인색출에 혈안이 됐던 스카르베크 동네와 붙어 있다.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31명이 숨지고 약 300명이 다친 그 테러 공격의 배후라고 주장했다. IS는 서방의 무슬림에게 독자적으로 봉기해 공격을 감행하라고 촉구해 왔다.

벨기에 당국은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이후 극단주의 무슬림의 수색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고 말했다. 무슬림 이민자 커뮤니티 내 반서방 무장대원들의 존재를 그들이 수동적으로 묵인해 왔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지난 3월 22일 벨기에 무슬림의 한 산하 단체가 그 테러 공격을 가리켜 “조화로운 공존을 원하는 무슬림 커뮤니티 전체와 사회의 노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비난했다. ‘종교뉴스통신사’에 따르면 과거 이 단체는 “자칭 IS라는 단체의 폭력을 성토하지 않은 데 대해 비판을 받았다”).

방위·안보 정보회사인 IHS 제인스 테러리즘·폭동센터 매튜 헨만 소장에 따르면 IS는 지난해 자신들의 온라인 잡지 다비크에 유럽 거주 아랍인의 소외감을 이용하는 전략을 묘사했다. 헨만 소장은 “그들의 구상은 세상을 우리 편 아니면 적으로 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IS는 소외된 집단의 구성원을 자신들의 선동 그리고 급진화와 대원 모집에 신속히 끌어들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벨기에엔 IS의 가용인력 자원이 풍부하다. 블로그 ‘벨지안 아라비스트’와 저술가 피터 판 오스태옌에 따르면 벨기에의 무슬림 인구는 64만 명에 달한다. 피터 판 오스태옌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블로그에 500명 이상이 ‘시리아 또는 이라크에서 활동한다’고 썼다.

오스태옌은 “이 같은 수치는 약 64만 명의 벨기에 무슬림 인구 중 어림잡아 1260명 중 1명꼴로 시리아와 이라크의 지하드(성전)에 가담했다는 의미”라며 “벨기에는 IS 편에서 싸우기 위해 시리아로 건너간 무슬림 숫자가 인구 비율 면에서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나라”라고 말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주기적 경기침체 속에 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벨기에는 이민통제를 강화했다. 워싱턴 DC의 싱크탱크 이민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그것은 1974년 경제 이민을 공식적으로 제한하면서 절정을 이뤘다. 그러나 1990년대 북아프리카·중동·발칸반도에서의 전쟁과 소요를 시작으로 벨기에로 유입되는 정치적 망명 희망자가 증가했다. 2010년에는 벨기에의 이민 인구 중 모로코인과 터키인이 4분의 3을 차지했다. 한편 벨기에의 시민권·문화통합 정책은 연구소에 따르면 “수십 년 동안 일관성 없이 형성돼”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민자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았지만 사실상 고립무원의 상태였다.

그 영향은 쉽게 눈에 띄었다. 2004년 나를 태운 택시가 페인트칠 벗겨진 주택과 케밥 식당이 늘어선 좁은 거리를 따라 나아가는 동안 거리에서 청장년 남성뿐 아니라 검정 히잡(머리 스카프)을 쓴 채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여성들까지 딱히 할일이 없는 듯했다. 최신 유행의 첨단을 걷는 화려한 상가지구와 웅장한 유럽연합(EU) 본사 건물에서 불과 2~3㎞ 떨어진 거리였지만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마침 나는 테러리즘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브뤼셀을 방문했다. 당시 주제는 알카에다였다. 2001년 미국 뉴욕과 워싱턴 DC에 대한 테러 공격에도 불구하고 알카에다는 저 멀리 달아난 듯했다.

브뤼셀 북서부에 있는 루 마리 크리스탱 160번지 주택 앞에 차가 섰을 때의 풍경은 모로코·리비아 또는 알제리나 다름없었다. 길거리의 남자들이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동안 나는 택시에서 내려 몇 걸음을 옮긴 뒤 한때 친구 부친이 나치를 피해 몸을 숨겼던 지금은 쓰러져가는 집을 카메라에 담았다.

운전기사가 “여기 오래 머무는 건 좋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택시에 올라타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실제로 거리는 속담에서 말하는 대로 성냥불을 기다리는 휘발유 통처럼 보였다. 그리고 3월 22일 그중 하나가 폭발했다.

- 제프 스타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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