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LENNIAL MONEY] 한국의 밀레니엄 세대 ‘의욕 상실’
[MILLENNIAL MONEY] 한국의 밀레니엄 세대 ‘의욕 상실’
세계 경제가 어렵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 20~30대의 삶도 갑갑하다. 때론 긴 설명보다 아주 간단한 단어 하나가 모든 걸 말해준다. 지금 한국의 청년들은 자신의 나라를 ‘헬조선(지옥+조선)’이라 부른다. 주로 돈에 얽힌 설움 탓이다. 하나씩 짚어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4분의 3이 대학에 가지만 상당수는 등록금 낼 돈이 모자라 빚을 낸다. 대학 등록금이 좀 비싸도 취업이 잘 되고, 월급이 쏠쏠하다면 괜찮다. 그런데 취업이 안 된다. 모든 불행의 출발점이 바로 이 ‘일자리’다. 청년실업은 한국 사회에서 꽤 오랫동안 회자된 키워드다. ‘이대로 두면 큰일 난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어림잡아 10년 이상 됐다. 그러나 취업 전쟁은 점입가경이다. 청춘을 즐기긴커녕 자격증·인턴·공모전 등 4년 내내 술 한잔 편하게 못 먹고 스펙을 쌓아도 명함 한 장 찍기가 쉽지 않다. 취업 재수생, 삼수생이 쌓여가는데 일자리는 늘지 않고 정규직 전환이 보장되지 않는 인턴 자리 하나에 100명이 몰려 경쟁한다.
숫자만 봐도 어느 정도 답은 나온다. 한국의 연간 신규고용 규모는 약 40만~50만 명. 그런데 대학 졸업자는 50만~55만 명이다. 이 중 절반이 취업 재수를 하니, 다음 해엔 80만 명이 된다. 회사에 다니다 취업 시장에 새로 뛰어드는 올드 루키(경력직 신입 사원)까지 포함하면 대략 100만 명. 대기업이 고용을 1만~2만 명 늘린다고 해봐야 절반은 허탕 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돈 벌 나이가 됐는데 소득이 없으니 생활이 불편하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 생각하는 사람, 즉 ‘프리터(Free+Arbeiter)족’이 늘어간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약 20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절반이 취업난에 밀려 비자발적 프리터족으로 전락한 20~30대다. 취업이라는 일생일대의 장애물을 통과해도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결혼이라도 하려면 이때부턴 진짜 돈과의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한국 신혼부부의 평균 결혼자금은 2억5000만원이다. 주택 마련에 가장 큰돈이 들어간다. 남자의 초혼 연령은 이미 32세를 넘겼다. 결혼이 늦어지면 돈이라도 좀 모았어야 하는데 늦은 취업 탓에 은행 잔고는 부실하다. 그러나 전셋값은 천정부지. 우리나라 수도권 주택의 전세가격은 평균 2억원을 넘어섰다. 그래도 월세론 도저히 돈을 불릴 자신이 없으니 전세에 목을 맨다. 어쩔 수 없이 빚을 내 전셋집을 구한다. 소득 정체와 꽉 막힌 재테크 수단을 감안할 때 20~30대가 빚을 앉고 출발하는 건 100m 달리기에서 5초쯤 후에 출발하는 것과 같다.
쪼들리기 시작하니 애 하나 낳는 것도 부담이다. 한국은 15년 째 초(超)저출산국(1.3명)의 멍에를 쓰고 있다. 2005년부터 온갖 대책을 강구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양육비를 줄이든, 가계 소득을 높이든 둘 중 하나는 되야 하는데 둘 다 안 된다. 그래도 첫째는 낳는다. 둘째가 문제다. 첫째를 낳아 길러보니 도저히 둘째를 키울 엄두를 못 낸다. 한국에서 자녀 한 명을 낳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무려 3억원이 넘는다.
사는 내내 여윳돈이라곤 없으니 ‘내 집 마련’의 꿈도 포기한다. 한국의 월 평균 가구 소득은 약 400만원(3분위). 이 중 쓰고 남은 돈은 약 60만원 정도다. 보통은 저축하거나 부채를 갚는 데 쓴다. 이 돈을 그대로 다 모은다고 쳐도 집 한 채를 사려면 무려 417개월(34.8년)이 걸린다. 인플레이션과 소득 증가분을 감안해도 17.4년이다. 30세 가장이라면 48세가 돼서야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전국 주택 평균 매매가로 계산한 수치다. 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 1은 서울에 산다. 서울은 전국 평균보다 매매가격이 약 2배 높다. 게다가 30~50세가 대부분 자녀 양육과 부모 봉양 등으로 지출이 많은 시기임을 고려하면 내 집 마련의 꿈은 더욱 멀어진다.
일단 소득에 비해 집값이 너무 비싸다. 1996년 서울 군자동에 있는 1억원짜리 아파트(25평)를 구입한 A씨.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 살, 연봉은 약 2000만원이었으니 집값이 약 5배 수준이었다. 현재 이 아파트의 매매가는 4억2000만원. 요즘 30세 직장인이 40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고 쳐도 11배가 넘는다. 버블 시기를 지나면서 집값은 크게 상승했는데 소득 증가율은 그렇지 못한 탓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연간 가처분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높은 편이다. 미국의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인기 대도시의 PIR은 5~7배 정도지만 서울은 8~9배, 경기도 역시 6~7배 수준이다.
집을 ‘살 곳’이 아닌 ‘살 것’으로 본다는 얘기는 집을 투자 대상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투자는 오를 것이란 예상 또는 기대가 있을 때 한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면 적어도 대출 이자보다는 집값이 오르리란 예상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너무 비싼 가격, 부족한 거래량, 장기적 구조 변화를 고려하면 그런 기대를 갖기 어렵다. 가장 무서운 건 장기적 구조 변화다. 부동산은 누군가가 사줘야 가격이 지탱되는데 지금 20~30대에겐 그럴만한 돈이 없다. 소득증가율이 물가상승률 수준이니 앞으로 개선될 것이란 기대 역시 어렵다. 사정이 이러니 젊은 세대가 점점 돈에 무감각해진다. 지난해 취재 과정에서 만난 B씨. 그의 월급은 250만원, 실수령액은 220만원이다. 원룸 월세로 50만원, 부모님 용돈을 포함한 생활비로 90만원을 쓴다. 80만원이 남는데 그는 이 돈을 적금을 붓고 있었다. 적금에만 기대는 게 답답하긴 했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는 기자가 묻기 전까지,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적금 금리가 얼마인지, 현재까지 모은 돈이 얼마인지 몰랐다. 결혼을 안 했으니 주택청약통장 하나 정도는 있겠지 싶어 물었는데 없단다. 없는 것까진 괜찮은데 그에겐 주택청약의 개념 자체가 없었다. 당연히 CMA(종합자산관리계좌)나 ELS(주가연계증권) 같은 건 설명조차 못했다. 원룸 월세도 연말에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자 반색했다. 혹시나 싶어 물었다.
“전입신고는 하셨나요?”
“…….”
극단적인 예가 아니다. 요즘 한국의 20~30대는 ‘돈’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어린 시절 결핍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세대적 특성이 있다. 못 먹고, 못 입은 기억이 별로 없으니 ‘돈 욕심’이 덜하다. 자연히 ‘어떻게든 이 가난을 벗어나겠다’며 허리띠를 졸라맸던 조부모 세대의 ‘악착같음’을 지금 20~30대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더 핵심적인 원인은 시원찮은 벌이와 꽉 막힌 재테크 수단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천재 바둑소년으로 등장하는 ‘택’이 우승 상금으로 받은 5000만원을 두고 이웃끼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에서 한일은행 직원으로 나오는 성동일은 이렇게 말한다. “은행 금리가 쪼까 내려가지고 15%여. 그래도 목돈은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 따박따박 받는 게 최고지라.” 이 말을 듣던 한 이웃이 “은행에 뭐 하러 돈을 넣어. 금리가 15% 밖에 안 되는데”라며 맞받아친다. 15%가 ‘밖에’라니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980~2000년 사이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은 연평균 약 18%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1988년엔 24.7%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의 비현실적 가계저축률을 이끈 건 바로 두 자릿수에 달하는 고금리였다. 굳이 투자처를 고민하지 않고 은행에만 넣어도 돈이 자연스레 불어났다. 돈이 불어나는 걸 눈으로 목격하면 사람들은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아낀다. 저축이 절약의 목적이 된다는 의미다. 그렇게 모으고, 불린 가계의 금융자산은 소득 증가와 맞물려 주택 구입 자금으로 쓰였다. 적어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적금 부어 집을 사는 게 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의 20~30대는 기본적으로 돈 모으는 재미를 느껴보지 못했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1.5%다. 초유의 사건이다. 그만큼 경제 구성원 모두에게 당황스런 일이다. 중력이 클수록 시간 흐르는 속도가 느려지듯 초저금리로 갈수록 자산 증식에 걸리는 시간은 가속적으로 느려진다. 적금에 돈을 넣고, 2배가 되는 시간을 따져보자. 금리가 5%일 때는 14년이 걸린다. 하지만 금리가 4%면 18년, 3%면 23년, 2%면 35년이란 시간이 필요하다. 각각 1%포인트의 격차지만 소요 시간은 금리가 낮아질수록 더 길다. 금리가 1%면 무려 70년이다. 0.1%면 693년이다. 그게 현실에서 가능하냐고? 옆 나라 일본이 약 20년째 걷고 있는 길이다. 일본에서 1995년부터 정기예금에 돈을 묻어둔 사람의 자산은 지금까지 고작 7% 늘었다.
‘어떻게 해도 큰 차이 없다’ ‘대충 먹고 살자’는 무기력증이 지금 젊은 세대를 휘감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상황적 고단함이 무관심의 합리적 이유는 아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자주 한다. “어려운 것과 길이 없는 것, 안 되는 것과 안 해본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데 젊은 세대가 아예 돈 불릴 고민조차 안 하는 게 가장 안타깝다.” 이럴 때일수록 더 공부하고, 길을 찾으려 해야지 포기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자꾸 은행만 쳐다본다. 최근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는 1%대다. 이자소득세 15.4%까지 떼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 수십·수백억원대 자산가가 보관 목적으로 돈을 맡긴다면 모를까,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겠다면서 은행만 고집하는 건 앞으로도 티끌만 갖고 살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예·적금은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삼고, 다른 ‘뭔가’에서 묘수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목돈이 없으니 부동산은 어렵고, 어쩔 수 없이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같은 금융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배당을 늘리겠다’고 하면 최소한 배당주펀드라도 사보는 성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지식이 좀 있어야 한다. 펀드나 각종 금융상품에 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고, 거시경제 흐름도 어느 정도 익힐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요즘 20~30대는 배우려 하지 않는다. ‘재테크 좀 해봐야겠어!’ 결심은 있는데 실천이 없다. ‘공부 좀 하라’고 하면 ‘어차피 맡길 건데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묻는다.
금융회사는 ‘A부터 Z까지 자산관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홍보하지만, 진짜 A도 모른 채 찾아가면 엄청난 환영을 받는다. 그게 바로 ‘호갱님(호구+고객님)’이다. 불행히도 금융회사는 그리 착하지 않다. 1990년대 말 ‘바이코리아 펀드’라는 게 있었다. 첫해에 무려 7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당연히 너도나도 몰렸다. 설정액이 무려 12조원에 달한 때도 있었다. 당시 이 펀드를 팔던 증권사 회장은 ‘2005년 코스피지수가 6000포인트까지 오를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이 펀드는 불과 1년 뒤 IT 버블 붕괴와 함께 원금의 55%를 까먹고 휴지통에 들어갔다. 2007년 인사이트 펀드 대란이나 2013년 브라질 국채 폭락, 지난해 ELS(종목형) 폭락 등도 비슷한 사례다. 손실이 발생했다고 돈을 돌려주는 금융회사는 어디에도 없다. 소송에서 졌다고 수임료 되돌려주는 변호사가 없는 것과 같다.
금융회사에 대한 젊은 세대의 맹목적 신뢰는 보험과 연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보험사의 최우량 고객은 사회초년생이다. 보험과 연금을 사회생활의 전제 조건으로 여기는 탓인데 언제나 그렇듯 과잉이 문제다. 없어서도 안되지만 과해서도 안 된다. 보험이나 연금은 주식·펀드보다 훨씬 신중해야 한다. 한번 가입하면 중간에 빠져 나오는 게 어렵다. 짧아도 10년, 길면 종신이다. 20~30대는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나이다. 한창 돈을 모아야 할 20~30대에 보험과 연금 등에 과하게 돈을 쓰면 나중에 큰돈이 필요할 때 적절한 대응이 어렵다. 그런데도 이 초저금리 시대에 월급의 약 20~30%를 보장성 보험에만 쓰는 이들이 있고, 소득 수준에 비해 보험이나 연금에 너무 많이 가입해 어려움을 겪는 이가 적지 않다. 이른바 ‘보험푸어’다.
그릇된 믿음은 저축은행, 대출회사로 번져간다. ‘친구가 돼 주겠다’는 말을 덜컥 믿어버린다. 돈을 그냥 빌려주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빚 무서운 줄 모르는 한국의 20~30대는 돈을 너무 쉽게 빌린다. 그것도 상당수는 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다. 금융감독원의 ‘금융업권별 신용대출 연령별 이용 비중’ 자료를 보면 40~50대는 약 80%가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만 20대는 61.5%만 은행을 이용한다. 20대의 16.2%는 저축은행에서, 14.6%는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고정적인 벌이가 없고, 신용이 낮으니 은행에 가도 대출이 힘들다. 반면 ‘휴대전화만 있으면 된다’는 대부업체는 300만~500만원 정도는 쉽게 빌려준다. 저축은행은 대학생에게 평균 27.7%, 대부업체는 평균 36.6%의 금리로 돈을 빌려준다. 돈 좀 번다는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고금리다. 사실 20~30대가 이렇게 ‘돈에 무지한 삶’을 택한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바로 부모다. 결혼을 앞두고 20~30대 대부분은 약간의 기대를 한다. ‘결혼할 때 아버지가 좀 도와주겠지’ ‘엄마가 나 주려고 조금 챙겨뒀을 거야’와 같은 식이다. 실제로 20~30대에게 부모는 ‘믿는 구석’이다. 한국은 건강보험과 연금도 부모가 대납해주는 나라다. 26세 이하 국민연금 임의가입자(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지만 본인 의사로 가입하는 사람)는 2010년 이후 급증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학생이나 군입대자로 소득이 없다. 그러니 월 20~30만원가량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부모가 대신 낸다. 20대 건강보험 피부양자 역시 2004년 이후 매년 최고치를 깨고 있다. 지난해 약 262만 명으로 2007년 이후 11.7% 증가했다. 같은 기간 20대 건강보험 가입자는 4.6% 줄었다. 취업은 늦고, 소득은 없으니 부모가 보험료까지 대신 내주는 거다. 자식사랑이 유별한 한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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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만 봐도 어느 정도 답은 나온다. 한국의 연간 신규고용 규모는 약 40만~50만 명. 그런데 대학 졸업자는 50만~55만 명이다. 이 중 절반이 취업 재수를 하니, 다음 해엔 80만 명이 된다. 회사에 다니다 취업 시장에 새로 뛰어드는 올드 루키(경력직 신입 사원)까지 포함하면 대략 100만 명. 대기업이 고용을 1만~2만 명 늘린다고 해봐야 절반은 허탕 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돈 벌 나이가 됐는데 소득이 없으니 생활이 불편하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 생각하는 사람, 즉 ‘프리터(Free+Arbeiter)족’이 늘어간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약 20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절반이 취업난에 밀려 비자발적 프리터족으로 전락한 20~30대다.
늦은 취업과 소득 정체가 만든 가난한 청년들
쪼들리기 시작하니 애 하나 낳는 것도 부담이다. 한국은 15년 째 초(超)저출산국(1.3명)의 멍에를 쓰고 있다. 2005년부터 온갖 대책을 강구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양육비를 줄이든, 가계 소득을 높이든 둘 중 하나는 되야 하는데 둘 다 안 된다. 그래도 첫째는 낳는다. 둘째가 문제다. 첫째를 낳아 길러보니 도저히 둘째를 키울 엄두를 못 낸다. 한국에서 자녀 한 명을 낳아 대학까지 졸업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무려 3억원이 넘는다.
사는 내내 여윳돈이라곤 없으니 ‘내 집 마련’의 꿈도 포기한다. 한국의 월 평균 가구 소득은 약 400만원(3분위). 이 중 쓰고 남은 돈은 약 60만원 정도다. 보통은 저축하거나 부채를 갚는 데 쓴다. 이 돈을 그대로 다 모은다고 쳐도 집 한 채를 사려면 무려 417개월(34.8년)이 걸린다. 인플레이션과 소득 증가분을 감안해도 17.4년이다. 30세 가장이라면 48세가 돼서야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전국 주택 평균 매매가로 계산한 수치다. 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 1은 서울에 산다. 서울은 전국 평균보다 매매가격이 약 2배 높다. 게다가 30~50세가 대부분 자녀 양육과 부모 봉양 등으로 지출이 많은 시기임을 고려하면 내 집 마련의 꿈은 더욱 멀어진다.
일단 소득에 비해 집값이 너무 비싸다. 1996년 서울 군자동에 있는 1억원짜리 아파트(25평)를 구입한 A씨.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 살, 연봉은 약 2000만원이었으니 집값이 약 5배 수준이었다. 현재 이 아파트의 매매가는 4억2000만원. 요즘 30세 직장인이 4000만원의 연봉을 받는다고 쳐도 11배가 넘는다. 버블 시기를 지나면서 집값은 크게 상승했는데 소득 증가율은 그렇지 못한 탓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연간 가처분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높은 편이다. 미국의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인기 대도시의 PIR은 5~7배 정도지만 서울은 8~9배, 경기도 역시 6~7배 수준이다.
집을 ‘살 곳’이 아닌 ‘살 것’으로 본다는 얘기는 집을 투자 대상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투자는 오를 것이란 예상 또는 기대가 있을 때 한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면 적어도 대출 이자보다는 집값이 오르리란 예상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너무 비싼 가격, 부족한 거래량, 장기적 구조 변화를 고려하면 그런 기대를 갖기 어렵다. 가장 무서운 건 장기적 구조 변화다. 부동산은 누군가가 사줘야 가격이 지탱되는데 지금 20~30대에겐 그럴만한 돈이 없다. 소득증가율이 물가상승률 수준이니 앞으로 개선될 것이란 기대 역시 어렵다.
저금리 탓에 돈 모으는 재미 못 느껴
“전입신고는 하셨나요?”
“…….”
극단적인 예가 아니다. 요즘 한국의 20~30대는 ‘돈’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 어린 시절 결핍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세대적 특성이 있다. 못 먹고, 못 입은 기억이 별로 없으니 ‘돈 욕심’이 덜하다. 자연히 ‘어떻게든 이 가난을 벗어나겠다’며 허리띠를 졸라맸던 조부모 세대의 ‘악착같음’을 지금 20~30대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더 핵심적인 원인은 시원찮은 벌이와 꽉 막힌 재테크 수단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천재 바둑소년으로 등장하는 ‘택’이 우승 상금으로 받은 5000만원을 두고 이웃끼리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에서 한일은행 직원으로 나오는 성동일은 이렇게 말한다. “은행 금리가 쪼까 내려가지고 15%여. 그래도 목돈은 은행에 넣어놓고 이자 따박따박 받는 게 최고지라.” 이 말을 듣던 한 이웃이 “은행에 뭐 하러 돈을 넣어. 금리가 15% 밖에 안 되는데”라며 맞받아친다. 15%가 ‘밖에’라니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1980~2000년 사이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은 연평균 약 18%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1988년엔 24.7%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의 비현실적 가계저축률을 이끈 건 바로 두 자릿수에 달하는 고금리였다. 굳이 투자처를 고민하지 않고 은행에만 넣어도 돈이 자연스레 불어났다. 돈이 불어나는 걸 눈으로 목격하면 사람들은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아낀다. 저축이 절약의 목적이 된다는 의미다. 그렇게 모으고, 불린 가계의 금융자산은 소득 증가와 맞물려 주택 구입 자금으로 쓰였다. 적어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적금 부어 집을 사는 게 가능했다는 얘기다.
금융회사가 과연 선의로 내 재산 불려줄까
‘어떻게 해도 큰 차이 없다’ ‘대충 먹고 살자’는 무기력증이 지금 젊은 세대를 휘감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상황적 고단함이 무관심의 합리적 이유는 아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사석에서 이런 얘기를 자주 한다. “어려운 것과 길이 없는 것, 안 되는 것과 안 해본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데 젊은 세대가 아예 돈 불릴 고민조차 안 하는 게 가장 안타깝다.” 이럴 때일수록 더 공부하고, 길을 찾으려 해야지 포기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자꾸 은행만 쳐다본다. 최근 시중은행 예·적금 금리는 1%대다. 이자소득세 15.4%까지 떼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다. 수십·수백억원대 자산가가 보관 목적으로 돈을 맡긴다면 모를까,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들겠다면서 은행만 고집하는 건 앞으로도 티끌만 갖고 살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예·적금은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삼고, 다른 ‘뭔가’에서 묘수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목돈이 없으니 부동산은 어렵고, 어쩔 수 없이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같은 금융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배당을 늘리겠다’고 하면 최소한 배당주펀드라도 사보는 성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지식이 좀 있어야 한다. 펀드나 각종 금융상품에 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고, 거시경제 흐름도 어느 정도 익힐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요즘 20~30대는 배우려 하지 않는다. ‘재테크 좀 해봐야겠어!’ 결심은 있는데 실천이 없다. ‘공부 좀 하라’고 하면 ‘어차피 맡길 건데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묻는다.
금융회사는 ‘A부터 Z까지 자산관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홍보하지만, 진짜 A도 모른 채 찾아가면 엄청난 환영을 받는다. 그게 바로 ‘호갱님(호구+고객님)’이다. 불행히도 금융회사는 그리 착하지 않다. 1990년대 말 ‘바이코리아 펀드’라는 게 있었다. 첫해에 무려 7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당연히 너도나도 몰렸다. 설정액이 무려 12조원에 달한 때도 있었다. 당시 이 펀드를 팔던 증권사 회장은 ‘2005년 코스피지수가 6000포인트까지 오를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이 펀드는 불과 1년 뒤 IT 버블 붕괴와 함께 원금의 55%를 까먹고 휴지통에 들어갔다. 2007년 인사이트 펀드 대란이나 2013년 브라질 국채 폭락, 지난해 ELS(종목형) 폭락 등도 비슷한 사례다. 손실이 발생했다고 돈을 돌려주는 금융회사는 어디에도 없다. 소송에서 졌다고 수임료 되돌려주는 변호사가 없는 것과 같다.
금융회사에 대한 젊은 세대의 맹목적 신뢰는 보험과 연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보험사의 최우량 고객은 사회초년생이다. 보험과 연금을 사회생활의 전제 조건으로 여기는 탓인데 언제나 그렇듯 과잉이 문제다. 없어서도 안되지만 과해서도 안 된다. 보험이나 연금은 주식·펀드보다 훨씬 신중해야 한다. 한번 가입하면 중간에 빠져 나오는 게 어렵다. 짧아도 10년, 길면 종신이다. 20~30대는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나이다. 한창 돈을 모아야 할 20~30대에 보험과 연금 등에 과하게 돈을 쓰면 나중에 큰돈이 필요할 때 적절한 대응이 어렵다. 그런데도 이 초저금리 시대에 월급의 약 20~30%를 보장성 보험에만 쓰는 이들이 있고, 소득 수준에 비해 보험이나 연금에 너무 많이 가입해 어려움을 겪는 이가 적지 않다. 이른바 ‘보험푸어’다.
그릇된 믿음은 저축은행, 대출회사로 번져간다. ‘친구가 돼 주겠다’는 말을 덜컥 믿어버린다. 돈을 그냥 빌려주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빚 무서운 줄 모르는 한국의 20~30대는 돈을 너무 쉽게 빌린다. 그것도 상당수는 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다. 금융감독원의 ‘금융업권별 신용대출 연령별 이용 비중’ 자료를 보면 40~50대는 약 80%가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만 20대는 61.5%만 은행을 이용한다. 20대의 16.2%는 저축은행에서, 14.6%는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 고정적인 벌이가 없고, 신용이 낮으니 은행에 가도 대출이 힘들다. 반면 ‘휴대전화만 있으면 된다’는 대부업체는 300만~500만원 정도는 쉽게 빌려준다. 저축은행은 대학생에게 평균 27.7%, 대부업체는 평균 36.6%의 금리로 돈을 빌려준다. 돈 좀 번다는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고금리다.
‘부모님이 좀 도와주겠지?’ 청년들의 믿는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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