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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롯데 어디로] 검찰 수사에 경영권 분쟁 겹쳐 사면초가

[위기의 롯데 어디로] 검찰 수사에 경영권 분쟁 겹쳐 사면초가

1967년 7cm 길이의 껌을 만든 회사가 49년 만에 555m 높이의 타워(제2롯데월드 타워)를 세워 올렸다. 굵직한 제조 기반 기업을 제치고 연매출 84조원을 올리는 재계 5위의 그룹으로 성장한 롯데의 성장 스토리는 눈부시다. 그런 롯데가 49년 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특정 계열사가 아닌 그룹 전체가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건 창사 이래 처음이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형제 간 경영권 분쟁과 의중을 확인하기 어려운 고령의 창업주, 악화된 여론에 이은 검찰의 집중 수사….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올드(old) 롯데’에서 ‘뉴(new) 롯데’로 가기 위한 성장통일까. 시련의 계절을 맞은 롯데 안팎을 살펴봤다.
검찰은 ‘오래 전부터 별러왔다’고 했지만 롯데그룹에 대해 이 정도 초고강도 수사를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당초 검찰의 롯데 관련 수사는 화장품 업체 네이처리퍼블릭의 정운호(51) 대표가 롯데면세점에 입점하기 위해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에 한정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정운호 게이트’가 또 다른 지옥문을 연 셈이다.

검찰의 칼날은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창립 이래 불과 2~3년 전까지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94) 총괄회장이 제왕적 지위를 지니고 주요 의사결정을 내려왔다는 점에서 그 역시 검찰 수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재계 일각에서는 롯데그룹을 신호탄으로 박근혜정부 말기의 대(對) 기업 사정이 자칫 재계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롯데가 반백년에 걸쳐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성장한 기업인 만큼 검찰이 들여다 보는 혐의도 광범위하다. 크고 작은 계열사만 90개가 넘고 대부분 비상장사라 공개된 정보도 극히 적다. 검찰의 수사가 장기화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사정 칼날 재계 전반으로 튈까 우려
검찰의 수사 대상은 크게 4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다. 롯데그룹은 그동안 크고 작은 인수·합병(M&A)를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 검찰은 신동빈 회장이 공격적인 M&A와 해외 사업 과정에서 수천 억원 대의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M&A 가격을 부풀린 후 뒤에서 돈을 챙기거나 회사가 사업상 손실을 본 것처럼 꾸미고 실제론 회사 돈을 밖으로 빼돌렸을 가능성을 있다는 것이다. 롯데의 M&A는 2000년대 들어서 활발했다. 특히 신동빈 회장이 롯데 정책본부장으로 취임한 2004년부터 2015년 5월까지 성공한 주요 M&A만 해도 35건에 달한다. 검찰은 롯데의 주요 M&A가 이명박정부 시절(2008년 2월~2013년 2월)에 집중돼 있는 점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이른바 ‘MB 특혜설’이다. 실제 MB정부 동안 성사된 롯데의 M&A는 26건에 이른다. 9건은 중국 홈쇼핑 업체 ‘럭키파이(LuckyPai)’를 포함한 해외 M&A, 17건은 국내 업체를 인수한 사례였다. 이 기간 대표적인 국내 M&A 사례로는 롯데칠성음료-두산주류BG(현 롯데주류, 5030억원), 롯데면세점-AK면세점(부채 포함 800억원), 롯데쇼핑-GS리테일 백화점·마트 부문(1조3000억원), 롯데쇼핑-하이마트(1조2480억원) 등이 있다. 잇단 M&A로 이 기간 롯데그룹의 자산은 40조원에서 두 배 수준인 84조원으로, 계열사 수도 46개에서 79개로 늘었다.

검찰이 롯데그룹 본사와 더불어 45개 계열사를 압수수색한 것은 내부 거래로 검은 돈이 만들어진 것을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텔롯데는 2008년 개발되지 않은 땅을 167억원을 받고 계열사인 롯데리조트제주에 팔았는데, 2013년 개발이 완료된 롯데리조트제주 전체를 34억원이라는 헐값에 흡수합병한 사실이 포착됐다. 롯데리조트제주가 미개발 부지를 시세보다 비싸게 매입하는 방법으로 한국롯데의 지주사격인 호텔롯데에 부당한 이익을 안겨줬다고 의심할 수 있다. 실제 지난 6월 14일 2차 압수수색을 받은 롯데 계열사는 모두 2008년 롯데리조트제주 지분을 보유했던 회사들이다.

롯데케미칼도 주요 수사 표적이다. 롯데케미칼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3357억원으로 그룹 전체 영업이익 비중의 33%를 차지한다. 롯데의 주력인 유통부문 전체 영업이익 1조697억원을 넘어섰다. 검찰은 롯데케미칼이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를 해외에서 수입할 때 일본 롯데물산을 중간에 끼워 넣어 거래 대금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케미칼은 “외환위기였던 1997년 말부터 일본 롯데물산과 거래를 해왔다”며 “당시는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이 신용장을 개설할 수 없어 일본 롯데물산과의 거래를 통해 신용도를 활용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계열사 M&A, 호텔롯데 상장 올스톱
둘째, 검찰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보유한 부동산 거래도 들여다 보고 있다. 이 또한 결과적으로 비자금 조성과 연결된다. 신 총괄회장의 ‘땅 사랑’은 유명하다. 신 총괄회장은 1948년 일본에서 일본롯데제과를 세워 사업을 본격 시작한 이후 번 돈을 꾸준히 일본 부동산에 투자했다. 1980년 대에는 부동산 자산으로 세계 4위 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홀딩스 본사가 있는 일본 도쿄 신주쿠 부지는 지금도 일본 최고 땅값을 유지하고 있다.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한국에 진출한 이후에도 서울 중구 소공동을 비롯해 영등포와 잠실 등 국내 알짜 부동산을 꾸준히 사들였다. 기업조사매체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그룹 중 롯데가 보유한 부동산은 10조7000억원 규모로, 현대차그룹(24조2000억원)·삼성그룹(14조1000억원)에 이어 3위다. 이 조사가 상장 계열사를 기준으로 이뤄졌고 롯데의 주요 계열사는 호텔롯데·롯데물산 등 비상장사인 점을 감안하면 롯데가 가진 부동산이 가장 많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실제 호텔롯데는 약 8조원 대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고, 롯데물산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부지 소유권의 75%를 가지고 있다. 검찰은 롯데 계열사들이 오너 일가 소유의 부동산을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사들였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 경우 롯데그룹 부동산이 비자금 조성의 통로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2007년 롯데쇼핑이 신 총괄회장 소유인 경기 오산 부지를 당초 사들이기로 한 가격인 700억원보다 비싼 1030억원에 매입한 일, 2008년 롯데상사가 공시지가 200억원 대였던 신 총괄회장의 인천 계양산 골프장 부지를 504억원에 사들인 일 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롯데그룹의 가족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다. 이를 통해 오너 일가가 부당하게 이득을 얻었는지, 이들 회사와의 거래에서 배임 혐의가 있는지, 비자금을 조성 수단으로 쓰였는지 등을 수사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는 이번 검찰 수사 이전부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나 국회 국정 감사에서 자주 오르내리던 이슈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너 일가가 소유한 회사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녀 신영자 이사장이 실질적 소유주로 알려진 BNF 통상, 신 총괄회장의 셋째 부인으로 알려진 서미경(57)씨와 서 씨의 딸 신유미씨가 지분 대부분을 가진 유원실업과 유기개발이 주요 수사 대상이다. 유원실업은 시네마통상·시네마푸드와 함께 오랫동안 롯데시네마 내 매점 운영권을 독점하고 있다가 최근에야 계약을 해지했다. 유기개발은 롯데백화점 10여 곳의 식당을 운영하는 업체로 서씨와 그의 딸 신씨가 이사로 등재돼 있다. 특히 유기개발이 소유한 건물에 롯데 계열사가 주변 시세보다 비싸게 입주해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롯데피에스넷이 2009년 현금인출기 구매 사업에서 롯데기공(현 롯데 알미늄)을 중간 사업자로 끼워넣어 ‘통행세’ 형태로 41억5000만원 상당의 이익을 안겨줬다는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2롯데월드 인·허가 특혜 의혹이다. 다만, 제2 롯데월드에 대해 검찰은 “수사에 착수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며 선을 긋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층 빌딩인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 타워는 이명박정부에서 최종 허가를 받았는데 이 때 로비가 이뤄지지 않았느냐는 의혹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롯데는 이에 대해 “제2롯데월드는 당시 일자리 창출과 경제살리기라는 사회적 합의 속에 전경련 등과 함께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추진한 사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제2롯데월드는 올 연말 완공될 예정이다.

검찰 수사가 3주째에 접어들며 롯데그룹은 사실상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불가능한 상태다. 특히 그룹의 핵심 의사결정처인 정책본부와 주요 계열사 핵심 임원들이 소환되기 시작하면서 각종 계약이나 국내외 M&A는 올스톱됐다. 당장 올해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혔던 호텔롯데 상장이 무기한 연기됐다. 호텔롯데 상장은 신동빈 회장이 약속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그룹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프로젝트다. 신 회장은 지난해 형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호텔롯데를 상장해 일본 측 지분율을 낮추고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호텔롯데는 한국롯데의 지주사 격이나 일본 계열사 지분이 99%에 달한다. 일본 소재 12개 L투자회사들의 지분율이 72.65%이며 일본 롯데홀딩스(19.07%)·광윤사(5.45%) 등이 주요 주주다. 하지만 상장이 마무리되면 일본 측 지분율이 65% 아래로 떨어진다. 롯데의 ‘국적 논란’을 잠재우고, 공모 자금으로 그룹 계열사 간 인수합병을 추진해 거미줄처럼 얽힌 순환출자를 해소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인 셈이다.

신 회장은 검찰수사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 6월 14일(현지시간) 미국 출장지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무기한 연기가 아니고 연말 정도까지는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호텔롯데의 연내 상장 추진을 언급했다. 그러나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호텔롯데 측이 상장 철회를 한데다 관련 규정(상장심사 유효기간 6개월)과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연내 재상장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롯데는 검찰 수사 직후 의욕적으로 준비하던 미국 석유화학업체 엑시올 인수도 포기했다. 검찰 수사에 주요 계열사 채권 발행도 막혔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물산·롯데건설·롯데칠성음료는 하반기에 만기도래하는 채권과 기업어음(CP)을 상환하기 위해 1000억~3000억원 규모의 공모채 발행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정상적인 공모채 발행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경영 시계가 멈춘 반면 경영권 분쟁의 시계는 다시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한국 검찰의 대대적인 롯데 수사는 신동주 전 부회장에겐 신동빈 회장을 물러나게 할 좋은 명분이 된다. 신 전 부회장은 한·일 롯데의 지주사격인 롯데홀딩스 지분의 약 30%를 지닌 대주주다. 그는 주주 자격으로 향후 지속적으로 롯데홀딩스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해 ‘신동빈 해임안’을 올릴 계획이다. 현재 신 회장의 일본 우호 세력은 굳건한 상황이지만 경영권과 관련해 끊임없이 잡음과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 마감 목표는 추석 연휴 직전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의 수사 마감 목표는 추석 연휴 전(9월 14일 시작)이다. 최소한 두 달 이상은 더 수사가 이어진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주요 계열사 대표는 물론 롯데 정책본부 ‘빅3’로 알려진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 황각규 운영실장(사장), 소진세 대외협력단장(사장)의 소환이 예상된다. 검찰은 이미 신영자 이사장의 소환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동빈 회장이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입장에서도 속도를 낼 필요성이 커졌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데 의혹만 무성할 뿐 결정적인 ‘한 방’이 나오지 않아 자칫 수사를 지지하던 여론의 기류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검찰 수사의 방점이 오너 일가의 비자금 조성 여부 및 규모에 찍힌 만큼 사실상 그룹의 총수인 신동빈 회장의 소환이 필수라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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