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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데이터를 만천하에 공개하라

유전자 데이터를 만천하에 공개하라

환자 정보 공개하지 않고 쌓아둔 거대 유전자 기업이 암 치료의 발목 잡아
2013년, 장기간에 걸친 법적 싸움 끝에 미국 대법원(사진)은 자연 발생 DNA 정보는 특허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만장일치 판결을 내렸다.
2014년 8월 아내, 아들과 푸에르토리코에서 휴가를 보내던 켄 도이치는 척추 쪽에서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이전에도 허리가 아픈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고 통증이 훨씬 심했다. 그는 진통제를 “미친 듯이” 먹었다고 말했다. 다른 증상도 나타났다.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온 것이다.

혈뇨가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4월 전립선 확장술을 받았을 때도 혈뇨가 나왔다. 그래서 주치의는 수술 관련 감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항생제를 먹어도 피가 그치지 않아 비뇨기과로 갔다. 영상촬영 등을 통해 샅샅이 상태를 살펴본 의사는 방광암 1기 진단을 내렸다. 방광 쪽에서 다수의 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도이치 가족 중에는 암 환자가 많다. 아버지는 52세에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개월 뒤 사망했다. 할머니도 같은 암을 앓았지만 훨씬 오랜 세월 고통스럽게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난 총알을 피했구나’라고 생각했다. 방광암이고 1기밖에 되지 않았다”고 도이치는 말했다. “조기에 발견했으니 치료도 충분히 가능했다.”

방광암 진단을 받았을 당시 52세였던 도이치는 비슷한 시기 페이스북에 올라온 6촌 친척의 글을 봤다. 얼마 전 난소암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6촌은 BRCA1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BRCA1 돌연변이는 여성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 위험을 크게 높이는 걸로 알려졌다. 아직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진 못했지만 BRCA1·2 돌연변이 유전자가 다른 암 발병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 또한 늘고 있다[메드젠메드(MedGenMed) 온라인판에는 BRCA 경로가 위암, 췌장암, 전립선암, 결장암 위험을 20~60%까지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도이치 가족의 병력을 알게 된 의료진은 미리아드 지네틱스(Myriad Genetics, 이하 미리아드)에서 유방암 및 난소암 위험 평가용으로 개발한 BRCA1 및 BRCA2 돌연변이 진단 테스트를 주문했다(미리아드는 1990년대 초반 BRCA 유전자 발견에 일조했다). 그 결과 도이치는 6촌과 동일한 희귀 BRCA1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BRCA 돌연변이 유전자와 방광암을 연관 짓는 과학 문헌은 없었다. 그러나 BRCA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환자는 특정 항암 치료에 반응이 좋다는 실험 증거가 있었다.

아직까지 그의 가족에게서만 발견된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다는 건 “희귀병”에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고 도이치는 말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미리아드가 지금껏 수집한 유전자 데이터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그가 아는 한, 자신과 동일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동일한 방광암에 걸린 다른 30명의 데이터가 미리아드에 있었다. 그 정보가 있다면 유전자와 방광암의 연결고리를 찾는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유전정보만으로 그가 방광암에 걸린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답답해진 도이치는 미리아드를 고소하기 위한 운동에 참여했다. 암 취약계층을 돕겠다고 주장하는 최고의 유전정보업체 중 하나가 그 의무를 다하고 있지 않음을 알리기 위한 싸움이었다. 지난 5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보건복지부(HHS)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유타 주에 본사를 둔 미리아드가 환자 요청 이후에도 환자 건강정보 분석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의료정보보호법(HIPAA)에서 보장하는 환자 권리 침해라는 내용이었다.

HHS 고소장 접수는 전문가들이 암 연구의 ‘신시대’라 부르는 변화의 움직임 속에 이뤄졌다. 이제는 정보 공유를 통해 혁신 및 암 치료법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시대가 왔다. 미리아드는 암 발병 위험이 있는 걸로 알려진 돌연변이가 테스트로 발견될 경우 당사자에게 통보한다. 고소에 참여한 사람들은 미리아드로부터 통보를 받은 후, 현재 임상적 중요성은 떨어지는 걸로 알려진 BRCA 변이를 포함해 모든 변이 유전자에 대한 상세 내용을 담은 정보를 요구했다. 도이치의 유전자처럼 이미 발견된 돌연변이가 종양 성장을 촉진할 수도 있어 이런 정보를 알게 되면 암 발병을 모니터링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자신의 조직 샘플을 유전자 저장소에 기부해서 암 연구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미리아드는 추가 정보를 제공하는 걸 주저했다.

“이들이 내세운 근거라고는 우리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돈을 더 많이 벌겠다는 뜻이었다”고 도이치는 말했다.ACLU가 미리아드와 싸움에 돌입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5월, ACLU는 암 환자와 권익보호기관 등을 대표해 미리아드의 BRCA 유전자 특허 출원을 중단하라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2013년 6월, 장기간에 걸친 법적 싸움 끝에 대법원은 자연 발생 DNA 정보는 특허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만장일치 판결을 내렸다.

켄 도이치(오른쪽)의 부인과 아들. 그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환자 건강정보 분석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유전정보업체 미리아드를 고소하는 데 참여했다.
무엇보다 특허를 통해 미리아드는 해당 유전자의 임상 진단 테스트를 제공하는 독점적 권한을 가질 수 있었다고 ACLU 과학 자문이었던 타니아 사이먼첼리는 말했다. 대법원 판결로 경쟁이 허용되면서 미리아드의 주가는 25% 가까이 급락했다. “일시적으로나마 시장을 독점한 미리아드는 엄청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고 사이먼첼리는 뉴스위크에 보낸 이메일 답변서에서 밝혔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미리아드는 공개 데이터베이스에 자료를 공유하지 않았다.”

사이먼첼리를 비롯해 뉴스위크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암 연구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환자들은 과학자 및 의학센터, 생명공학 기업에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질병 연구에 참여하고 진단 및 치료법 개발에 힘을 실어준다. 오바마 행정부 또한 이런 노력을 지원한다. 올해 초 백악관은 ‘암 정복 프로젝트(Cancer Moonshot)’를 시작하고, 지난해 5월 장남을 뇌암으로 잃은 조 바이든 부통령을 대표로 임명했다. 발족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프로젝트 목표가 “연구진을 세상에서 고립시키고 연구팀간 정보 공유를 막는 벽을 무너뜨리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과학자, 대학, 시민기관,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 등의 기관이 유전자 검사와 치료 반응, 개인적 경험에 관한 데이터를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전파할 수 있는 포털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미리아드처럼 정보 공유가 아주 복잡해질 때도 있다. 지난 2월 미리아드의 론 로저스 기업홍보 부사장은 환자로부터 동일한 7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모두 “한 변호사가 작성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들 환자의 BRCA 유전자 분석 과정에서 밝혀진 모든 돌연변이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표준 테스트 결과 1개만 보낸 미리아드가 환자에게 추가적 정보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답변하자 ACLU는 미리어드가 HIPAA 개인정보 규정을 위반한다는 고소장을 작성했다. 고소장은 환자가 요구할 경우 이들에게 “(실험실) 테스트의 일환으로 얻게 된 모든 제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를 구체적으로 거론한다. 이 경우 현재로선 종양 발병과 관련 없다고 알려진 각종 유전자 변이도 제반 정보에 포함된다.

HHS는 2014년 2월부터 유전자 연구소에 해당 책임이 있음을 알리고 이를 이행할 것을 권고해 왔다. 그러나 미리아드는 2년 뒤 환자로부터 정보 요구를 받은 후에야 HHS 지침 내용을 알게 됐다고 로저스는 말했다. 그는 4월 미리아드의 다른 대표와 함께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워싱턴 DC로 가서 HHS 시민권한실 공무원을 만나 미리어드의 의무사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미리아드는 지난 5월 18일 더 많은 정보를 넘겨줬다. ACLU가 고소장을 정식 제출하기 하루 전이었다. 로저스 부사장은 고소장이 제출되기 직전 데이터를 공유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다. “수주 전부터 데이터 공유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자마자 데이터를 보냈다.”

HHS가 ACLU 고소장을 검토하는 동안 미리아드는 사건이 종결된 걸로 생각했다고 로저스 부사장은 밝혔다. 그는 회사가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으려 했다는 비난에 대해 동료 과학자들이 검토하는 과학저널을 통해 결과를 공개하는 방식을 선호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ACLU 소속 선임 변호사 산드라 파크는 미리아드의 회사 규정이 여전히 환자 2차 정보 제공을 막고 있다고 비난하며 고소를 계속 진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미리아드가 아직 HIPAA를 위반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환자 정보는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손쉽게 업로드될 수 있게 편집 가능한 포맷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변호인 측은 주장했다. 대신 미리어드는 차트와 그래프로 채워진 20여 쪽의 PDF 파일 형식의 보고서를 도이치에게 보냈다.

“정보를 요청해서 정보를 줬다. 정보를 갖고 뭘 하든 그들의 마음”이라고 로저스 부사장은 말했다. “데이터베이스에 정보를 올리고 싶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정말 올리고 싶으면 손으로 입력해서 직접 올리면 된다.”

푸에르토리코 비뇨기과 전문의에게 연락을 하고 얼마 후, 도이치는 방광 종양을 제거하는 경요도적 절제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 방광암 환자에게 시행하는 표준 비입원 수술이다. 최초 진단 이후 절제술을 받았지만 방광암은 재발 가능성이 커 2차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2014년 10월이었다. 마취에 들어가기 직전에 주치의가 수술전 준비실을 박차고 들어왔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스캔으로 여러 개의 또 다른 종양을 발견한 것이다.

암세포는 도이치의 뼈로 퍼져 있었다. 그래서 허리가 그렇게 아팠던 거다. 이전처럼 1기도 아니었다. 가장 심각한 4기였다.

주치의는 근방에 있는 다나파버 암 연구소로 그를 보냈다. 세계 최고 암센터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도이치는 백금제제를 이용한 항암 화학치료를 곧바로 시작했다. BRCA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환자가 특히 좋은 반응을 보이는 걸로 알려진 항암치료였다.

도이치는 항암 치료로 기운이 빠지고 괴롭긴 하지만, 자신의 유전정보를 알았기 때문에 결과에 희망을 품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BRCA1 양성이라서 기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현재 그는 어떤 암 증상도 보이지 않는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일종의 아마추어 족보학자도 됐다.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은 사촌 바바라 조이그하우저다. 암에 걸린 적은 없지만 테스트 결과 동일한 희귀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결과를 받았다(조이그하우저 또한 ACLU 고소장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은 부모님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할머니를 모두 암으로 잃었다.

가족 병력에 암이 많아 둘은 휴대전화 번호나 페이스북 프로필을 통해 친척들에게 연락했다. 이들 또한 유전자 검사를 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조이그하우저를 포함해 7명의 생존자를 확인했다. 모두 해당 돌연변이에 대해 BRCA1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도이치는 말했다. “8명은 사망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해당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족보를 따진 결과 사망자들 또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었음을 확신하게 됐다.”

도이치와 조이그하우저는 형제자매의 도움을 받아 암에 걸린 친척의 가계도를 그렸다. 아버지 쪽에서만 25명이 있었다. BRCA1 희귀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살아가는 7명 중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도이치를 포함해 2명이었다. 암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친척이라도 유전자 정보를 알게 되면 좀 더 나은 건강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검사를 좀 더 자주 받는다거나 암 예방을 위한 유방절제술이나 난소절제술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이치는 친척들과 공유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자신의 가계를 벗어나서도 존재하는지 너무 궁금해졌다. 비영리재단 포스(FORCE: Facing Our Risk of Cancer Empowered)가 구축한 변이유전자데이터베이스(Genetic Mutation Database) 등 공공 데이터베이스에서 그가 가진 돌연변이 유전자를 검색하면 딱 2개 결과가 검색된다. 환자 개인정보는 알려주지 않지만, 도이치는 그 2명이 누군지 짐작할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망한 그의 6촌이다.

“BRCA1과 2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암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안다”고 도이치는 말했다. “어떤 돌연변이가 어떤 암을 유발하는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확보되지 못했다. 아직 많은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미리아드가) 데이터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 니킬 스와미나탄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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