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트럼프의 연설이 먹히는 이유
유치한 트럼프의 연설이 먹히는 이유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같은 ‘흑색선전’과 막말 등이 뉴스 장악하면서 기성체제에 반발하는 미국민에게 어필 뉴욕타임스 기사 ‘도널드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모욕을 준 사람·장소·사물 258가지’는 오는 11월 실시되는 미국 대선에 나서는 공화당 후보의 화법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다. 트럼프의 모욕적 발언은 종종 애들 장난처럼 유치하게 들린다. 하지만 나는 그를 ‘선동연설가(orator)’로 부르고 싶다. 그를 그렇게 가볍게만 보는 건 실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선거유세에서 단순한 언어와 애들 놀이터의 막말을 구사한다. 그렇다고 그가 아주 뛰어난 웅변가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트럼프가 당초 불리하리란 예상을 깨고 공화당 후보가 된 일이나 (그의 선거운동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언론보도에도 불구하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정적 힐러리 클린턴과의 격차를 줄인 것도 어느 정도 그의 말솜씨 덕분이었다. 많은 사람이 기대하듯 오는 11월 이전에 그가 ‘자멸’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대선은 많은 사람의 생각보다 더 치열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그의 연설이 그렇게 효과적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발언의 타이밍은 언제나 중요하다. 물론 트럼프는 방송 출연을 통해 그런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도 타이밍은 중요하다. 올해는 트럼프가 선거정치 무대에 오르기에 완벽하면서도 불행하고 축복 받지 못한 해였다. 미국정치에의 환멸과 반 기성체제 인물을 요구하는 추세는 뿌리 깊은 분열을 반영한다. 이민, 성소수자 권리, 총기규제, 그리고 환경 문제를 둘러싼 갈등뿐 아니라 워싱턴 정계 엘리트들이 돈 많은 로비스트 손 안에서 놀아난다는 인식이 맞물린다.
중요한 차이점은 있지만 현 상황은 금융위기, 숨통 조이는 긴축, 실업, 임금하락, 궁핍화 등의 측면에서 1929년 대공황 당시와 유사하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는 지배계급 불신, 집단적인 불만, 희생양을 낳는다. 이 같은 환경에선 트럼프의 전매특허인 간단명료한 설명, 거창한 약속, 기성체제 때리기가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 양당(그리고 영국 EU 탈퇴 국민투표에서 양 진영) 간의 경계선은 반이민 슬로건에서 시작된다. 장벽을 세워라, 우리 나라를 되찾자, 국경을 지켜라, 참을 만큼 참았다 등. 이처럼 단순한 슬로건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데는 오히려 애들 같은 유치함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그런 구호의 내용이 ‘합리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암호화된 슬로건이다. 미국이나 영국 모두 말들의 전쟁이 아니라 정체성 전쟁을 치르고 있다. 슬로건에 내용이 없다고 공격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정책(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무슬림 입국 금지 등)을 실제 ‘정책’으로 받아들이는 건 실수다. 이런 주장이 효과적인 건 일정 부분 기존 선거 공약이나 ‘평소의 관행’과 크게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부 연설자는 토론 주제를 완전히 장악해 관중을 빨아들인다. 그들은 이슈의 프레임 또는 아젠다를 설정한다. 이번 선거운동은 ‘자넨 해고야!’(리얼리티 프로그램 ‘수습사원’에서 트럼프가 심사위원으로서 하던 말)로 상징되는 센세이셔널리즘으로 방향이 설정된다. 내용이나 정책과 관련된 문제가 인성과 정체성의 전쟁으로 계속 변질된다. 그런 선거운동에서 트럼프는 원칙을 파괴한다.
클린턴은 정책과 관련해 트럼프를 체계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그녀로선 불행하게도 트럼프는 이번 캠페인(그리고 아마도 앞으로의 선거운동)을 흑색선전으로 바꿔 놓았다. 트럼프는 미국 프로레슬링 WWE의 ‘악당’에게 붙여주는 별명과 똑같은 방식으로 정적들에게 모욕을 준다. ‘미치광이 버니’ 샌더스, ‘거짓말쟁이 테드’ 크루즈, 그리고 ‘사기꾼 힐러리’ 같은 식이다. 트럼프의 정적들은 그의 경험을 ‘수습사원’ 14개 시즌으로 압축해 보잘것없는 수준으로 치부한다. 사람들은 그것이 대통령 직무 수행에는 무관한 경험이라고 번번이 얕잡아 보지만 대통령 당선을 위한 선거운동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간과한다. 트럼프는 ‘수습사원’을 통해 누구나 아는 유명인사가 됐고 성공의 아우라를 띠게 됐다.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하고 대비하지 못한 저급한 코믹 만화 같은 캠페인에 안성맞춤의 트레이닝을 받았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수습사원’ 덕분에 어쩌면 트럼프만이 이끌어갈 수 있는 캠페인이 탄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 같은 트레이닝의 가치에 충분히 우려를 품을 만도 했다. 그는 이번 대선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 아니다”고 경고한 뒤 클린턴을 역사상 대통령에 가장 적합한 후보로 묘사하며 그녀에게 포커스를 집중시키려 애썼다.
이런 노력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백악관 기자단과의 만찬에서 트럼프의 ‘경력과 경험의 폭’을 비웃었다. 당시 트럼프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 메시지는 유효기간이 지난 듯하다. 트럼프는 마음대로 훌륭한 뉴스거리를 기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듯하다. 튀는 발언(가령 지난 2월 “나는 교황과의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해괴한 해명)은 시선을 사로잡는 기사 제목을 낳고 복사나 클릭을 유도하기 쉽다.
이런 능력이 클린턴보다 자금력 딸리는 그의 선거운동에 공짜 실탄을 공급했다. 클린턴은 지난 8월 말 트럼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전술을 바꿨다. 연설 중 그의 ‘인종차별적인 이념’을 공격하면서 그의 이름을 무려 80번이나 거명했다.
관행상 정치인들은 정적의 이름을 광고해주지 않으려고 ‘내 적수’라고 부른다. 그러나 클린턴은 트럼프의 이름을 부르는 방법으로 그를 공화당과 별도의 존재로 설정할 수 있었다. 공화당 온건파나 이전 공화당 후보들과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를 극단주의자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프로답고 탁월하고 교묘하고 과학적이었다. 트럼프의 반응이 어땠냐고? 그는 또 다른 스캔들을 만들었다. 클린턴을 ‘편협한 인간’으로 부르며 저명한 아침 방송 앵커와 또 다른 언쟁을 벌였다.
이 같은 역공이 상당히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은 균형이 맞춰지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트럼프를 인종차별주의자로, 트럼프는 클린턴을 ‘편협한 인간’으로 부른다. 두 사람 모두 똑같이 나쁘다. 아이들의 옛날 놀이터 수법이다.
올해 초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지지자를 조롱하는 것은 논쟁에서 지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클린턴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성공 요인을 간과하거나 조롱할 경우에도 비슷한 실수를 범하는 셈이다. 선동 연설가 트럼프의 효력이 오래 못 갈지도 모르지만 분명 놀랍고 위력적이다.
- 케빈 모렐
필자는 영국 워릭대학 워릭 비즈니스 스쿨 전략학 교수이자 연구원이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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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당초 불리하리란 예상을 깨고 공화당 후보가 된 일이나 (그의 선거운동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언론보도에도 불구하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정적 힐러리 클린턴과의 격차를 줄인 것도 어느 정도 그의 말솜씨 덕분이었다. 많은 사람이 기대하듯 오는 11월 이전에 그가 ‘자멸’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대선은 많은 사람의 생각보다 더 치열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그의 연설이 그렇게 효과적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1. 타이밍
중요한 차이점은 있지만 현 상황은 금융위기, 숨통 조이는 긴축, 실업, 임금하락, 궁핍화 등의 측면에서 1929년 대공황 당시와 유사하다. 그런 점을 고려할 때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는 지배계급 불신, 집단적인 불만, 희생양을 낳는다. 이 같은 환경에선 트럼프의 전매특허인 간단명료한 설명, 거창한 약속, 기성체제 때리기가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2. 깃발 흔들기
그런 구호의 내용이 ‘합리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암호화된 슬로건이다. 미국이나 영국 모두 말들의 전쟁이 아니라 정체성 전쟁을 치르고 있다. 슬로건에 내용이 없다고 공격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정책(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무슬림 입국 금지 등)을 실제 ‘정책’으로 받아들이는 건 실수다. 이런 주장이 효과적인 건 일정 부분 기존 선거 공약이나 ‘평소의 관행’과 크게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3. 원칙 파괴
클린턴은 정책과 관련해 트럼프를 체계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그녀로선 불행하게도 트럼프는 이번 캠페인(그리고 아마도 앞으로의 선거운동)을 흑색선전으로 바꿔 놓았다. 트럼프는 미국 프로레슬링 WWE의 ‘악당’에게 붙여주는 별명과 똑같은 방식으로 정적들에게 모욕을 준다. ‘미치광이 버니’ 샌더스, ‘거짓말쟁이 테드’ 크루즈, 그리고 ‘사기꾼 힐러리’ 같은 식이다.
4. 경험
‘수습사원’ 덕분에 어쩌면 트럼프만이 이끌어갈 수 있는 캠페인이 탄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 같은 트레이닝의 가치에 충분히 우려를 품을 만도 했다. 그는 이번 대선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이 아니다”고 경고한 뒤 클린턴을 역사상 대통령에 가장 적합한 후보로 묘사하며 그녀에게 포커스를 집중시키려 애썼다.
이런 노력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백악관 기자단과의 만찬에서 트럼프의 ‘경력과 경험의 폭’을 비웃었다. 당시 트럼프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지만 5년이 지난 지금 그 메시지는 유효기간이 지난 듯하다.
5. 언론 플레이
이런 능력이 클린턴보다 자금력 딸리는 그의 선거운동에 공짜 실탄을 공급했다. 클린턴은 지난 8월 말 트럼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전술을 바꿨다. 연설 중 그의 ‘인종차별적인 이념’을 공격하면서 그의 이름을 무려 80번이나 거명했다.
관행상 정치인들은 정적의 이름을 광고해주지 않으려고 ‘내 적수’라고 부른다. 그러나 클린턴은 트럼프의 이름을 부르는 방법으로 그를 공화당과 별도의 존재로 설정할 수 있었다. 공화당 온건파나 이전 공화당 후보들과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를 극단주의자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프로답고 탁월하고 교묘하고 과학적이었다. 트럼프의 반응이 어땠냐고? 그는 또 다른 스캔들을 만들었다. 클린턴을 ‘편협한 인간’으로 부르며 저명한 아침 방송 앵커와 또 다른 언쟁을 벌였다.
이 같은 역공이 상당히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은 균형이 맞춰지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트럼프를 인종차별주의자로, 트럼프는 클린턴을 ‘편협한 인간’으로 부른다. 두 사람 모두 똑같이 나쁘다. 아이들의 옛날 놀이터 수법이다.
올해 초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지지자를 조롱하는 것은 논쟁에서 지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클린턴 지지자들이 트럼프의 성공 요인을 간과하거나 조롱할 경우에도 비슷한 실수를 범하는 셈이다. 선동 연설가 트럼프의 효력이 오래 못 갈지도 모르지만 분명 놀랍고 위력적이다.
- 케빈 모렐
필자는 영국 워릭대학 워릭 비즈니스 스쿨 전략학 교수이자 연구원이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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