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만성 질환용 약 달이는 청동 초두
[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만성 질환용 약 달이는 청동 초두
삼국시대에도 소갈병(당뇨병) 처방 많아 … 망막증 등 합병증 주의해야 1000여년 전, 삼국시대에는 사람들이 어떤 병에 주로 걸렸을까요? ‘소갈병(消渴病)’ 즉 당뇨병으로 추정됩니다. 이 사실은 지난 1월에 연세대학교 박물관팀이 9세기 때 일본에서 발간된 [대동유취방(大同類聚方)]의 기록을 보고 알아냈습니다. [대동유취방]은 9세기 초인 일본 헤이안 시대에 일본 각지의 처방전과 의약기록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여기에 수록된 779가지의 의약기록 중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한의(韓醫)와 유민(遺民)들이 전해준 37개의 처방이 있습니다. 이 중에는 신라 5건, 백제 2건, 고구려 4건의 약 처방이 있는데, 각각의 처방 옆에는 이를 소개한 한의학자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신라의 처방은 인후질환, 종기, 더위 먹음 병, 나병에 대한 것이고 고구려의 처방은 주로 몽정이나 두창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외에도 가야 유민이 즐겨 써온 처방이 2건이 있으며 백제 유민이 써온 처방이 가장 많은 23건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처방들은 주로 소갈병·변독·천연두에 대한 것인데 소갈병에 대한 언급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소갈병, 즉 당뇨병은 잘 낫지 않고 여러 가지 합병증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성인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뇨병은 가장 오래된 중국의 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자세히 언급했을 뿐 아니라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도 적혀져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성 질환입니다.
옛 사람들은 당뇨병 등의 만성 질환을 치료하는 약은 세지 않은 불에 뭉근하게 오래 달였습니다. 반대로 감기 등의 급성 질환은 두께가 얇은 약탕기로 빨리 달였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약탕기는 초두라고 하는데, 술이나 약을 끓이거나 데우는 데 썼던 용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초두는 삼국시대나 고려 초기의 유물로 왕릉이나 큰 무덤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기록에 보면 중국 한나라 때에 제작된 것이 낙랑 등의 한사군에 처음 전래되었고 삼국시대 중기 때부터는 자체 제작했다고 합니다. 사진의 초두는 손잡이 부분에 용의 머리(龍頭)가 조각된 것으로 보아 왕실에서 쓰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초두는 다리가 셋 달리고 손잡이가 길기 때문에 ‘자루솥’이라고도 하고 당뇨병 등의 만성 질환에 쓰는 약을 달일 때 썼습니다. 다리가 없는 것은 조두라고 하는데 불과 바로 닿기 때문에 감기약 등의 급성 질환 치료제를 빨리 달일 때 사용했습니다. 우리말로는 ‘약두구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초두나 조두는 삼국시대에는 청동으로, 고려시대에는 무쇠로, 조선시대에는 놋쇠나 곱돌로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에 곱돌로 만든 약두구리는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데, 보약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에 쓰이는 약을 달이는 데에는 제격입니다.
당뇨병은 달달(糖)한 소변(尿)이 나온다는 뜻이고, 소갈병은 소모적(消)이고 갈증(渴)이 심한 병이라는 뜻입니다. 소모적이란 체중이 빨리 소모돼 야위고 음식물이 빨리 소모돼 헛헛해지고 소변이 자주 마렵게 되어 수분 소모도 빠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빨리 소모될까요?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위에서 소화를 시켜 장으로 내려 보내고 장에서는 흡수가 됩니다. 소장에서 흡수된 포도당은 혈관으로 보내지고 여기서 빠르게 세포 안으로 이동됩니다. 세포는 이 포도당을 원료로 해서 대사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세포의 영양물질이 되고 몸 안에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인슐린입니다. 그런데 인슐린이 아예 없거나 충분치 않을 때, 인슐린의 작용이 정상적이지 않아서 포도당이 쓰이지 못하고 소변으로 배설되면 기운이 없고 피로해지며 많이 먹어도 체중이 자꾸만 줄고 의욕도 떨어지게 됩니다. 당뇨병이 시작된 것이지요. 한의학에서는 당뇨병을 상소·중소·하소의 세 가지로 구분하고 여기에 환자의 사상체질을 감안해서 치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뇨병 처방은 환자 개개인에 따라 다르고 치료 과정도 복잡한 편입니다. 그 대신에 제대로 처방만 되면 오래된 당뇨병도 완치에 가깝게 치료가 가능합니다. 상소는 심폐의 열이 많기 때문인데 입이 마르고 혀가 붉고 흉선 등의 내분비계에 이상이 옵니다. 이 때에는 맥문동, 오미자. 뽕나무 잎(상엽)과 뿌리껍질(상백피)을 써서 심폐의 열을 풀어줍니다. 중소는 비위등의 소화기의 열이 많기 때문인데 식욕이 좋기 때문에 살찐 사람이 많습니다. 되도록이면 적게 먹고 운동을 적절히 해야 열이 풀어집니다. 인슐린 분비 이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마른 누에잠, 생지황, 칡뿌리가 치료약으로 쓰입니다. 하소는 신장의 열이 많아서 생긴 당뇨병인데, 정력이 떨어지고 소변이 잦으며 탁한 반면에 양이 많습니다. 부신 내분비계의 이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에는 구기자, 율무인, 인동덩굴을 많이 처방합니다. 세 가지 모두 이처럼 열을 식히고 진액을 돋우는 약을 쓰면 증상이 호전되고 합병증도 예방이 됩니다.
당뇨로 인한 합병증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눈에 오는 망막증입니다.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겁니다. 또한 피에 당분이 많이 흘러들어가 걸쭉해지면 혈관이 막히고 약해져서 협심증, 심근경색증 같은 관상동맥질환, 뇌경색을 일으키는 뇌혈관질환, 팔다리가 저리고 당기는 말초혈관질환 등의 각종 혈관질환을 일으킵니다. 그 밖에 신장 기능이 안 좋아져서 생기는 단백뇨·고혈압·부종 등이 많고 심해지면 발가락이 괴사될 수도 있어서 개인 위생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조선왕실의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 임금님 중에서 당뇨로 가장 고생을 많이 한 분은 세종대왕인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은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엄청난 대식가였고 심한 비만인데다 부인이 6명에 18남 4녀를 뒀습니다. 거기에다 여러 가지 업적을 이룬 만큼 과로와 스트레스가 많았고 운동도 거의 못했을 겁니다. 합병증도 많아 말년에는 망막증으로 눈이 잘 안보이고 피부병으로도 많이 고생을 하다 54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종대왕이 적당히 운동하고 과음·과식을 피하고 표준체중을 유지했으면 합병증은 많이 예방했을 겁니다. 거기에 과로와 과색을 조심하고 음식을 기름지지 않고 소박하게 먹었다면 더 오래 살아 더 많은 업적을 쌓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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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에도 당뇨 언급
옛 사람들은 당뇨병 등의 만성 질환을 치료하는 약은 세지 않은 불에 뭉근하게 오래 달였습니다. 반대로 감기 등의 급성 질환은 두께가 얇은 약탕기로 빨리 달였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약탕기는 초두라고 하는데, 술이나 약을 끓이거나 데우는 데 썼던 용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초두는 삼국시대나 고려 초기의 유물로 왕릉이나 큰 무덤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기록에 보면 중국 한나라 때에 제작된 것이 낙랑 등의 한사군에 처음 전래되었고 삼국시대 중기 때부터는 자체 제작했다고 합니다. 사진의 초두는 손잡이 부분에 용의 머리(龍頭)가 조각된 것으로 보아 왕실에서 쓰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초두는 다리가 셋 달리고 손잡이가 길기 때문에 ‘자루솥’이라고도 하고 당뇨병 등의 만성 질환에 쓰는 약을 달일 때 썼습니다. 다리가 없는 것은 조두라고 하는데 불과 바로 닿기 때문에 감기약 등의 급성 질환 치료제를 빨리 달일 때 사용했습니다. 우리말로는 ‘약두구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초두나 조두는 삼국시대에는 청동으로, 고려시대에는 무쇠로, 조선시대에는 놋쇠나 곱돌로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에 곱돌로 만든 약두구리는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데, 보약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 질환에 쓰이는 약을 달이는 데에는 제격입니다.
당뇨병은 달달(糖)한 소변(尿)이 나온다는 뜻이고, 소갈병은 소모적(消)이고 갈증(渴)이 심한 병이라는 뜻입니다. 소모적이란 체중이 빨리 소모돼 야위고 음식물이 빨리 소모돼 헛헛해지고 소변이 자주 마렵게 되어 수분 소모도 빠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빨리 소모될까요?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위에서 소화를 시켜 장으로 내려 보내고 장에서는 흡수가 됩니다. 소장에서 흡수된 포도당은 혈관으로 보내지고 여기서 빠르게 세포 안으로 이동됩니다. 세포는 이 포도당을 원료로 해서 대사활동을 합니다. 그래서 세포의 영양물질이 되고 몸 안에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인슐린입니다. 그런데 인슐린이 아예 없거나 충분치 않을 때, 인슐린의 작용이 정상적이지 않아서 포도당이 쓰이지 못하고 소변으로 배설되면 기운이 없고 피로해지며 많이 먹어도 체중이 자꾸만 줄고 의욕도 떨어지게 됩니다. 당뇨병이 시작된 것이지요.
세종대왕도 당뇨로 고생
당뇨로 인한 합병증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눈에 오는 망막증입니다.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겁니다. 또한 피에 당분이 많이 흘러들어가 걸쭉해지면 혈관이 막히고 약해져서 협심증, 심근경색증 같은 관상동맥질환, 뇌경색을 일으키는 뇌혈관질환, 팔다리가 저리고 당기는 말초혈관질환 등의 각종 혈관질환을 일으킵니다. 그 밖에 신장 기능이 안 좋아져서 생기는 단백뇨·고혈압·부종 등이 많고 심해지면 발가락이 괴사될 수도 있어서 개인 위생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조선왕실의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 임금님 중에서 당뇨로 가장 고생을 많이 한 분은 세종대왕인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은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엄청난 대식가였고 심한 비만인데다 부인이 6명에 18남 4녀를 뒀습니다. 거기에다 여러 가지 업적을 이룬 만큼 과로와 스트레스가 많았고 운동도 거의 못했을 겁니다. 합병증도 많아 말년에는 망막증으로 눈이 잘 안보이고 피부병으로도 많이 고생을 하다 54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종대왕이 적당히 운동하고 과음·과식을 피하고 표준체중을 유지했으면 합병증은 많이 예방했을 겁니다. 거기에 과로와 과색을 조심하고 음식을 기름지지 않고 소박하게 먹었다면 더 오래 살아 더 많은 업적을 쌓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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