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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라이프의 신세계 중국의 지배가 시작됐다

디지털 라이프의 신세계 중국의 지배가 시작됐다

알리바바·텐센트·JD닷컴 등 실리콘밸리보다 앞서… 미국과 유럽 인터넷 스타트업은 중국의 플랫폼 모방하려 안달
베이징 금융가의 번쩍이는 마천루. 중국이 곧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국 베이징 중심가의 마천루 꼭대기 층 라운지에 투자에 굶주린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가득했다. 중국의 한 벤처투자가가 연사로 나왔다. iD 테크벤처의 요크 천 대표였다. 그는 자신의 투자회사가 전자상거래 웹사이트 알리바바에 초기 투자를 유치하려는 젊은 사업가 마윈을 퇴짜 놓은 사례를 교훈으로 얘기했다.

기술업계 내부자, 실리콘밸리 베테랑, MBA 출신 등으로 구성된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잘못된 그 결정에 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사람들도 있었다. 나머지는 순간적인 실수나 행운이 엄청난 성공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천 대표는 알리바바에 대한 최종 결정이 실리콘밸리와 인도에 있는 위원들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에서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마윈 회장을 직접 만나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설명을 들어보지도, 그의 강렬한 눈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결정을 내렸다.”

중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일주일 집중 프로그램의 일부인 그 행사는 참가자들의 탐욕으로 달아올랐다. 베이징에 있는 장강경영대학원(CKGSB, 마윈 회장도 그곳에서 MBA를 받았다)이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은 투자 유치를 위해 벤처투자가들에게 자신의 사업을 설명하고 알리바바·텐센트·JD닷컴 등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본부를 돌아볼 예정이었다.

그들은 중국의 ‘디지털 라이프’에 발판을 구축하길 원했다. SNS와 상거래가 급속도로 통합돼 가는 신세계를 말한다.
선전의 텐센트 본부 로비에 설칭된 마스코트. 텐센트의 위챗은 중국 최대의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중국인의 스마트폰 앱 집착은 중국에서 진행되는 광범위한 변화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중국은 자본주의에 문호를 개방한 이래 새로운 아이디어나 ‘열기’의 잇따른 파도에 휩쓸렸다. 영어 배우기부터 온라인 데이팅과 프랑스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의 철학에 이어 이제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위챗(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가 운영하는 비즈니스 플랫폼)이 그 파도의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이 곧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08년의 ‘서구’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중국은 역사적인 변곡점을 급속도로 쉽게 넘어가 개도국이 선진국보다 외환보유액이 더 많은 시대를 앞당겼다.

그러다가 수출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중국은 내부로 눈을 돌려 건설 산업에 치중했다. 중국이 2010∼2013년 건설 현장에 쏟아부은 콘크리트는 미국이 20세기 내내 건설에 사용한 양보다 많다. 중국의 팽창하는 중산층 사이에선 부동산이 최고의 투자 대상이었다. 그 결과 2016년 10년 동안 부동산 가격은 4배 이상 올랐다.

중국에서 부가 늘어나자 경제와 산업의 다각화 필요성이 커졌다. 벤처투자 신디케이트와 플랫폼이 수없이 생겨나면서 신생 기술업체가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미국보다 중국에서 더 높은 경향을 보인다). 예전부터 중국은 혁신보다 모방으로 이름을 떨쳤다. 기술을 사들이는 것도 늘 해오던 전략이다. 급성장하는 인터넷 무대 안에서 이런 접근법은 ‘억만장자가 되는 지름길’로 불린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중국은 이젠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지적재산(IP)과 연구개발(R&D) 비중을 늘리려 한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덴마크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은 스타트업 자금을 지출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돈다. 미국과 유럽의 인터넷 기업들이 요즘 중국의 디지털 플랫폼을 모방하려 한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어떤 면에서 구미의 기업들은 수많은 변화를 거친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디지털·모바일 생태계 조사업체 라디오 프리 모바일의 기술분석가 리처드 윈저는 “페이스북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을 보면 전부 개발자 컨퍼런스를 개최한다”고 말했다. “그 기업들의 플랫폼에서 자신들이 개발 중인 것이 무엇이며 앞으로 디지털 생태계가 어떻게 발전할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는 자리다. 그곳에선 모두가 SNS 플랫폼을 확대해 다른 사업에 연계시키는 얘기를 한다. 한마디로 중국의 위챗을 모방하려 한다.”
JD닷컴은 신속하고 정확한 배송을 중시한다. 2016년 6월엔 장수성에서 처음 드론을 이용해 상품 배달을 시도했다.
미국과 유럽에는 위챗 페이와 비슷한 디지털 결제 시스템조차 없다. 중국인은 위챗 페이 덕분에 현금이나 수표, 은행 이체 대신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화폐를 사용할 수 있다. 개인 은행계좌를 모바일 앱으로 대체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앱들은 공과금과 교통비를 지불하고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때 식당에서 계산서를 결제할 때 사용할 수 있다. 그뿐이 아니라 대출기관 역할도 한다. 시중은행보다 10배나 나은 금리로 대출 받을 수도 있다. 투자 상품과 자산관리 상품도 제공하며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할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이 모든 서비스를 스마트폰으로 즉시 제공 받을 수 있게 해준다.

백화점부터 좌판 음식점까지 모든 매장은 QR 코드 스캔을 통해 모바일 앱 결제 시스템을 사용한다. 지금 중국에서 그런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한편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로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추구한다. 아시아의 다른 시장을 장악하고 중국에서처럼 해외에서도 배송망을 통합하고 개조하느라 여념이 없다. 특히 인도와 아프리카 등 중산층이 크게 늘어나는 지역을 공략한다.

그들은 알리익스프레스(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를 통한 세계적인 전자상거래를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것 외에 좀 더 은밀한 전략도 갖고 있다. 메이시와 블루밍데일 같은 유명한 백화점을 유치해 부유한 해외 시장에 알리페이(알리바바의 결제 시스템)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알리바바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를 이용해 버스 요금을 내는 시민.
윈저 분석가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전부 알리페이를 사용한다면 알리페이를 완벽하게 지원하는 전자상거래 솔루션을 개발하기가 훨씬 쉽다”고 설명했다. “그게 그들의 해외 전략인 것 같다.”

제1차 산업혁명은 공장과 석탄 같은 천연자원을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지금의 산업혁명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다. 중국의 인터넷 대기업들은 자신의 플랫폼에 다른 업체들을 초청하는 동시에 상상 가능한 모든 관련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대단히 공격적이고 막을 수 없는 중국식 혁신이다. 중국은 유선 컴퓨팅의 등을 짚고 뛰어넘어 모바일 세계로 급속히 진입함으로써 실리콘밸리보다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모바일에선 애플의 운영체제 iOS든 구글의 안드로이드든 상관없고 누구든 어떤 것이든 사용할 수 있다.

세계는 중국이 부상하면서 갈수록 서양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의 플랫폼 주도는 새로운 기술 담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영국 학자 마틴 자크가 저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When China Rules the World: The End of the Western World and the Rise of the Middle Kingdom)’에서 말한 중국식 질서를 중심으로 하는 ‘대안적 현대성’이다.

베이징 외곽엔 영국 런던의 해크니 버러 정도 크기의 산업단지가 있다. 그곳의 한 건물에서 스타트업 행사 참가자들은 디지털 동굴의 벽과 바닥, 천장이 살아 있는 듯이 움직이며 거대한 우주선이 행성 사이에 물자를 실어나르는 장면을 얼빠진 듯 쳐다본다. JD닷컴의 본부다. 알리바바의 경쟁사로 브랜드를 중시하는 소비자에 초점을 맞춘 전자상거래 사이트다. 알리바바가 양적 성장에 치중한다면 JD닷컴은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고 말한다. 짝퉁의 천국인 중국에선 명품 브랜드가 큰 인기라는 점에 착안했다고 알려졌다(물론 고위 공무원 뇌물 수수 등 최근의 부패 척결 운동에 따라 버버리 같은 브랜드의 수요는 5%가량 줄었다).

JD닷컴은 특히 배송을 중시한다. 중국 내 123개 물류 창고와 3210개의 배송 거점을 구축했다. 중국 전역을 아우르는 배송 시스템으로 50% 이상의 상품을 ‘하루 만에’ 배송할 수도 있다. 중국 주요 도시에서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수많은 배달 차량은 주문한 상품을 며칠이 아니라 몇 시간 안에 전달한다. 현재 JD닷컴의 최단 배송 시간 기록은 7분이다.

JD닷컴의 투자·전략 담당 이사 브루스 양은 크라우드소싱으로 이뤄지는 배송 플랫폼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배송 담당자를 후하게 대우한다. 월급이 5000위안(약 80만원)으로 대졸자의 평균 초임보다 많다.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다르다. 기본적인 배송 시스템이 없어 독자적으로 구축해야 했다. 요즘은 중국의 배송 시스템이 이전보다 크게 발전했다.”
알리바바의 시각화 체험실. 알리바바는 자사 플랫폼을 이용하는 중소기업을 중시하며 주주보다 고객을 앞세운다.
중국의 전자상거래는 지금까지 침투율이 15%에 불과하지만 2018년까지 1조 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다른 플랫폼처럼 JD닷컴도 클라우드 컴퓨팅·빅데이터·인공지능·사물인터넷 허브 쪽으로 발빠르게 움직인다. 모바일 기기와 음성 인식을 통해 스마트홈을 비디오·오디오·냉장고, 심지어 침대와 연결시키는 것이 목표다.

스타트업 행사 참가자들은 시속 300㎞인 고속철도를 타고 베이징에서 중국 남부에 위치한 항저우로 갔다. 알리바바의 고향이다. 그들은 작은 영화관 같은 대회의실로 안내됐다. 갑자기 한쪽 벽이 거대한 실시간 대시보드로 변하면서 세계 각지를 점으로 연결한 불빛이 켜지고 숫자가 급속히 늘어난다. 지난 24시간 동안 배송된 패키지가 2568만9089개로 집계됐다.

알리바바는 자사 플랫폼을 이용하는 중소기업을 중시한다. 고객이 1위, 직원이 2위, 주주가 3위라는 게 알리바바의 철학이다. 디지털 대시보드가 사라지면서 동영상이 나타났다. 알리바바의 B2B 시장인 타오바오에 참여한 농민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농민은 연근을 재배해 타오바오를 통해 판매함으로써 큰 이익을 얻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농민 부부는 어린 자녀를 안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활짝 웃었다. 아래의 자막은 ‘행복한 농민들’이었다.

동영상이 끝나자 알리바바의 사업개발팀장인 브루스 키안은 “앞으로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이런 사업을 하는 게 마윈 회장의 꿈”이라고 말했다. “우리 자산은 고객이다. 그들의 성공이 곧 우리의 성공이다.”

그들의 다음 도착지는 기술 붐타운 선전이었다. 스타트업 행사 참가자들은 텐센트 타워로 안내됐다. 마케팅을 담당하는 중국인 여성이 “위챗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흔들었다. 그렇게 하면 위치 정보에 기반한 마케팅 메시지(할인 쿠폰)가 위챗 앱으로 수신된다. 참가자들은 “중국의 소비자는 사생활 보호나 스팸에 개의치 않는가?”라고 물었다.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잘라 대답했다.

버스로 돌아온 그들은 벤처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다음 사업 설명을 준비했다. 버스 안에서 화두는 마윈의 투자 요청을 거절한 운 없는 벤처투자사 쪽으로 돌아갔다. CKGSB 차이나 스타트 프로그램 국장 바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iD 테크벤처와 달리 일본 소프트뱅크의 투자자들은 마윈을 직접 만나면서 5분만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그 유명한 마윈의 ‘거부할 수 없는 마법’을 직접 체험한 것이다.

바지 국장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통이 커야 한다”고 조언했다. “투자금을 조금만 요청하는 건 좋지 않다. 두려워하지 말고 대규모 투자를 원한다고 대담하게 말하라. 이곳은 중국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 이언 앨리슨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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