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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황찬란’ 네온의 화려한 부활

‘휘황찬란’ 네온의 화려한 부활

빈티지적 특성에 예술적 기교 더해 인기몰이 … 음악 앨범 표지부터 영화 포스터까지 대중문화와 패션, 생활 전반에 스며들어
아케이드 파이어의 ‘Everything Now’ 앨범 표지
요즘 네온사인이 다시 인기다. 올여름엔 아케이드 파이어(캐나다 인디록 밴드)의 ‘Everything Now’ 앨범 표지부터 영화 ‘잉그리드 고즈 웨스트’의 포스터,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글로우: 레슬링 여인 천하’의 타이틀 로고, 일렉트릭 팝 가수 케렐라의 ‘LMK’ 뮤직 비디오까지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반짝이는 네온사인이 유행했다.

획기적인 일은 아니다. 밀레니얼 핑크 색상이 주기적으로 유행을 반복하듯이 네온사인도 다시 한번 인기 주기에 접어들었다. 이번에는 1980년대에 대한 향수가 한몫했다. 하지만 최근 네온이 전례 없이 광범위한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그 빈티지적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예술적 기교, 혹은 적어도 그런 시도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영국 국립극장의 연극 ‘에인절스 인 아메리카’의 무대배경.
미술 평론가 조너선 존스는 최근 영국 신문 가디언에 이렇게 썼다. ‘한때 네온은 저속함과 (섹스가 개입된) 추잡함을 상징했지만 지금은 예술적 의미를 지닌다.’ 존스는 아케이드 파이어의 앨범 표지와 영국 국립극장의 연극 ‘에인절스 인 아메리카’의 무대배경 등 최근 네온을 이용한 이미지에서 개념미술의 경향이 강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존스가 예로 든 네온 작품 중엔 개념미술가 마틴 크리드의 ‘작품 번호 203: EVERYTHING IS GOING TO BE ALRIGHT’와 트레이시 에민의 자기고백적 내용을 담은 작품들이 포함됐다.

이런 양식화된 네온 레터링은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생활 주변에서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네온의 영향은 패션과 가정의 실내장식에까지 스며들었다. 니콜라스 윈딘 레픈 감독이 2010년대 초중반에 걸쳐 만든 영화 ‘네온 데몬’(2016)의 효과가 마침내 나타나는 듯하다.
마틴 크리드의 네온 설치미술 ‘작품 번호 203: EVERYTHING IS GOING TO BE ALRIGHT’.
네온사인은 발명가 조르주 클로드가 1910년 파리 모터쇼에서 처음 선보인 후 1940~5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화려한 뉴욕 타임스 스퀘어와 로스앤젤레스(LA) 브로드웨이의 호화 극장들이 네온 불빛으로 장관을 이뤘다. 하지만 네온은 1960년대 초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저널리스트 마걸릿 폭스는 2006년 네온 아티스트 루디 스턴이 사망했을 때 뉴욕 타임스 기사에 ‘제2차 세계대전 후 형광등 사용이 늘면서 네온사인의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썼다. 매혹적이던 타임스 스퀘어는 섹스숍이 늘어선 지저분한 거리로 변했고 LA의 호화 영화관들이 TV의 보급과 독점 영화사들의 몰락으로 파산하면서 네온 불빛도 꺼졌다.

그 후 약 10년 동안 네온사인은 허름한 술집과 싸구려 모텔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전락해 어두운 도로변에서 오아시스처럼 반짝였다. 그러다가 1972년 스턴이 뉴욕에 ‘렛 데어 비 네온(Let There Be Neon)’이라는 이름의 갤러리를 열었고 그로부터 7년 후엔 동명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 선언문에서 스턴은 네온이 잊혀진 예술 형식이 될 것을 우려했다. “최근 일부 건축가와 조명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조각가들이 네온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네온 공예를 배우려는 젊은이는 극소수다.” 스턴은 브로드웨이 공연과 상업 간판용으로 네온 설치미술을 디자인했다. 그의 마지막 걸작은 1999~2001년 뉴욕 주와 뉴저지 주 곳곳에서 공연된 ‘시어터 오브 라이트(Theatre of Light)’였다. 이 공연은 텐저린 드림(독일의 전자 음악 그룹)과 피터 가브리엘(영국 록 뮤지션), 에냐(아일랜드 출신 뉴에이지 음악가) 등의 음악을 배경으로 했다.
트레이시 에민의 자기고백적 내용을 담은 네온 작품.
‘렛 데어 비 네온’ 등 스턴의 프로젝트는 1980년대에 네온의 부활을 이끌었다. 당시 네온의 영향력은 예술세계를 뛰어넘어 문화 전반에 미쳤다. 그 시기에 대한 향수 어린 묘사에는 뮤직 비디오부터 나이트클럽까지 곳곳에서 네온사인이 빠지지 않는다. 또한 당시 비디오 게임 오락실과 ‘블레이드 러너’(1982) 같은 SF 영화의 인기는 어두운 배경에 화려한 색상으로 빛나는 네온의 이미지를 한층 더 각인시켰다.

특히 서부극과 네오-누아르의 영향을 받은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네온이 서서히 밝아오는 글로벌 시대와 친숙한 과거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하이테크 우주선과 고층건물 아래 해리슨 포드가 누비고 다니는 네온 불빛 가득한 골목들은 ‘차이나타운’(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1974년 영화)에서 잭 니콜슨이 돌아다니던 거리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런던의 네온 갤러리 ‘갓스 오운 정크야드 (God’s Own Junkyard)’.
195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뮤지컬 ‘그리스’가 15~20년 주기로 인기를 끌듯이 요즘 사람들은 잊혀져 가는 과거의 음악과 영화에 대한 추억에 빠져든다. 프리랜서 기자 매리앤 엘로이즈는 지난 7월 음악 잡지 ‘노이지’에 최근 뮤직 비디오에서 유행하는 네온사인 이미지에 대해 ‘궁극적으로 모든 예술은 주기적으로 순환한다’고 썼다. ‘우리는 1980년대와 90년대, 2000년대(특히 그 시대의 미학)에 대한 동경이 삶의 모든 국면에 스며드는 향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은 1980년대에 만들어진 ‘블레이드 러너’가 지금 와서 우연히 다시 주목 받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들 시대는 밀레니엄 세대와 일부 Z세대까지도 그 문화를 쉽게 알아볼 만큼 가까운 과거이기도 하다. 1984년생인 잭 안토노프는 드럼의 리버브(울림) 효과를 자주 사용하는 등 1980년대 팝 음악의 경향을 되살리는 뮤지션으로 유명하다. 또 저스틴 비버처럼 뮤직 비디오에 네온 불빛과 안개 뿜는 기계를 동원하는 것은 마이클 잭슨의 스타일뿐 아니라 스턴의 최면을 일으킬 듯한 네온 아트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영화 ‘잉그리드 고즈 웨스트’의 포스터.
네온 아트는 인스타그램의 시대에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문화·기술 전문 기자 앨리사 베레즈낵이 최근 링어(대중문화 전문 웹사이트)에서 지적했듯이 ‘인스타그램은 이제 예술 경험의 새로운 장’이 됐다. 네온과 LED 설치미술은 밀레니얼 핑크 색상의 벽이나 거울이 끝없이 이어지는 방처럼 인스타그램 이용자의 편안한 사진 배경이 됐다. 또한 갤러리와 각종 축제의 기획자들이 온라인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는 손쉬운 수단이 됐다.

“이것은 일시적인 트렌드라기보다 하나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영화 ‘잉그리드 고즈 웨스트’의 미술 디자인에 참여한 ‘캐니언 디자인’ 의 햄비스 캐럴램버스가 말했다. “우리는 단순하고 상징적이며 예술적인 뭔가를 원했다. ‘잉그리드 고즈 웨스트’의 디자인이 특정 인스타그램 포스트나 해시태그에 바탕을 두진 않았지만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구성됐다.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원하는 게 이런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글로우: 레슬링 여인 천하’의 타이틀 로고.
인스타그램에 관한 영화의 포스터를 인스타그램처럼 디자인하는 것은 마케팅 측면에서 완벽한 아이디어다. 하지만 그것은 젊은 관객의 주목을 끄는 방식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그들은 네온처럼 예술적으로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비록 겉으로 멋있게 보이는 것 외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네온은 현대성과 혁신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적 발명품의 쇠락을 나타내기도 한다. 반짝이는 네온사인은 과거에 영광스럽게 빛났지만 지금은 쇠퇴한 뭔가, 하지만 그 힘을 완전히 잃지는 않은 뭔가를 나타낸다. 그것은 아름다우면서도 조잡하다. 네온의 유행이 얼마 안 가 사그라진다 해도 몇 년 후면 우리는 다시 그 화려한 불빛 속에 몸을 적시게 될 것이다.

- 클레어 섀퍼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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