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치는 동남아의 미래
소용돌이 치는 동남아의 미래
미얀마 로힝야족의 위기부터 말레이시아·태국·캄보디아의 총선까지 올해 중대한 일정과 사안 많아 세계 여러 지역이 그랬듯이 동남아시아도 2017년 격동의 한 해를 보냈다. 특히 인권과 민주주의의 후퇴, 포퓰리즘의 기승이 큰 도전이었다. 특히 미얀마 서부 라카인 주에서 발생한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의 위기는 동아시아 최대의 인도주의 재앙으로 번졌다. 라카인 주에서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핍박받는 동족을 보호하겠다며 지난해 경찰초소 30여 곳을 습격했다. 미얀마 정부와 군은 ARSA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소탕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65만 명이 넘는 로힝야족 난민이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
난민들은 미얀마군이 반군 토벌을 빌미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방화와 성폭행, 고문을 일삼았다고 주장했고, 국제사회는 이런 주장을 근거로 이번 사태를 ‘인종청소’로 규정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국경 넘어 밀려오는 수많은 난민에 불안을 감추지 못하지만 로힝야족이 라카인 주로 안전하게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얀마군이 라카인 주를 계속 공격하는 한 귀향하는 로힝야족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지난해 필리핀에선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초법적인 마약과의 전쟁을 지속하면서 민다나오 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군이 점령한 남부 도시 마라위의 잔혹한 포위 작전을 지휘했다.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마약과의 유혈전쟁’으로 1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과 자경단 등의 무차별 마약용의자 사살로 법치를 무시하고 인권을 유린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정치는 바수키 차하야 푸르나마(일명 아혹) 자카르타 주지사 사건으로 소용돌이쳤다. 중국계 기독교도인 아혹 주지사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이 유대인과 기독교도를 지도자로 삼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말에 “해당 구절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이들에게 속았다면 내게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수했다가 논란에 휘말렸다.
이슬람 강경파는 그가 코란 자체를 부정했다고 주장하며 거듭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지지율이 급락한 아혹 주지사는 지난해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 결선투표에서 무슬림 후보에게 패했다. 자카르타 지방법원은 그에게 신성모독죄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그의 패배는 보수주의와 이슬람 단체들이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유력 집단으로 부상했다미래는 사실을 시사한다. 인도네시아 재계와 정계의 엘리트 중 일부가 그들을 지지한다.
캄보디아에선 오는 7월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11월 제1야당이 정부 전복을 꾀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해산되자 사실상 일당 체제가 구축되고 훈센 총리의 철권통치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훈센 총리는 대법원이 캄보디아구국당(CNRP) 해산을 명한 직후 TV 연설을 통해 대법원의 결정은 철저하게 법치에 근거한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차분히 일상생활을 하라고 요청했다. 또 총선은 정상적으로 실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훈센 총리는 “우리는 우리의 법을 집행한다고 국제사회의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다”며 내정 간섭을 하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다. 32년째 집권하고 있는 훈센 총리는 “10년 더 집권하겠다”며 정권 연장의 뜻을 밝혔다.
그 외에도 지난해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 트럼프 정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라는 신개념만이 아니라 중국의 갈수록 커지는 지역 패권을 목격하며 우려와 기대를 가졌다.
올해의 동남아 정치는 여러 나라에서 치러질 중요한 선거가 지배할 전망이다. 또 내년엔 동남아의 거대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대선이 예정돼 있다. 더구나 미얀마의 지속되는 위기, 올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의장국을 맡은 싱가포르에 거는 기대, 여러 무역협정의 성공 또는 실패, 중국과 북한을 향한 미국의 강경 정책 등이 동남아 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먼저 올해 동남아에서 치러질 주요 선거를 살펴보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원칙대로라면 오는 8월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총선이 더 빨리 치러질 수도 있다. 여당이 유리하다는 정부의 판단 때문이다. 나집 총리는 대규모 비리 스캔들로 거센 퇴진 압력을 받았지만 횡령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반대파의 음모라는 주장을 펼쳐 어느 정도 방어에 성공했다. 지지층도 생각보다 견고하다. 2년 전만해도 거의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는 스캔들을 계기로 여당 연합의 승리와 자신의 집권 연장을 위한 기초를 다진 듯하다.
물론 나집 총리는 말레이시아 국부펀드 1MDB를 통해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횡령한 의혹만이 아니라 야당 정치인과 시민사회를 탄압해온 전력으로 적어도 일부 유권자와 국제사회 사이에선 이미지가 퇴색했다. 그럼에도 나집 총리와 집권여당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이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야당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는 수감돼 있고,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는 야권 연합을 이끌기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나집 총리와 UMNO는 지지 기반층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자금을 사용하고 선거구를 극단적으로 조정하는 게리멘더링에 아주 능하다.
더구나 그들은 중국계 소수민족을 비판하는 미묘한 메시지를 사용해 말레이계 지지층을 불러모았고 나집 총리를 보수적인 종교 가치와 말레이계의 최대 수호자로 내세움으로써 지지세력을 확대했다. 그런 전술은 온건파라는 나집 총리의 국제 평판에 흠집을 내겠지만 UMNO가 야권을 지지하던 말레이계 유권자를 끌어들여 나집 총리의 재선을 확고히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태국의 군사정권은 오는 11월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군사통치를 시작한 지 4년 이상이 지난 시점이 된다. 지난해 12월 군사정권은 정당들에 총선 준비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선거를 수년 동안 미뤄온 군사정권이 이번엔 총선 일정을 취소하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왜 이제 선거를 실시할까? 군부가 친나왓 가문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기 때문인 듯하다.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친나왓과 잉락 친나왓 두 전직 태국 총리가 해외도피 중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이번에는 탁신의 아들 판통태 친나왓까지 돈세탁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되면서 친탁신계 푸어타이당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또 군부는 2014년 5월 쿠데타 이래 태국 정치 시스템을 완전히 개조했기 때문에 다시는 단일 정당이 태국을 통치할 수 없다고 자신한다. 태국 국민 61%가 찬성한 새 헌법에는 총선 이후 5년간의 민정 이양기에 250명의 상원의원을 최고 군정기구가 뽑고, 이들을 500명의 선출직 의원으로 구성된 하원의 총리 선출 과정에 참여시키는 방안이 담겼다. 또 선출직 의원에게만 주어지던 총리 출마자격을 비선출직 명망가에게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더는 하원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친탁신계 푸어타이당이 하원에서 압승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그럴 경우 태국 정치는 혼돈에 휘말리게 된다. 친나왓 가문이 영향력을 발휘하든 않든 과거 푸어타이당은 적응력과 유연성이 뛰어남을 입증했다. 그들은 친나왓 가문이 아닌 다른 후보자를 내세워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후보로 나설만한 푸어타이당의 일부 인사들은 군사정권으로부터 각종 혐의로 기소당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푸어타이당의 힘이 더욱 약화될 수 있다. 게다가 만약 푸어타이당이 승리한다고 해도 그들이 하원을 지배하도록 군부가 허용할까? 캄보디아도 오는 7월 총선을 치른다. 그러나 지난해 훈센 총리와 집권 여당인 캄보디아인민당(CPP)은 올해 총선이 자유롭거나 공정한 선거가 되도록 허용하진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훈센 총리의 탄압 대상은 상당히 폭이 넓었다. 야당 지도부, 언론인, 시민단체, 외국 NGO 등 다양한 정부 비판자들이 그 표적이 됐다. 1990년대 말 이래 야권을 상대로 한 가장 가혹한 탄압이었다.
미국 국무부는 캄보디아 정부가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며 일부 캄보디아 인사에 대한 미국 비자발급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훈센 총리가 그런 외부의 제재에 반응을 보여 야권에 대한 압박을 중단한다고 해도 야권이 오는 7월 선거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듯하다. 야권 정치인 다수가 해외로 피신했다. 그들은 훈센 총리가 공개적으로 어떻게 말하든 귀국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탄압으로 훈센 총리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중국의 원조와 투자가 캄보디아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만 훈센 총리는 유럽과 일본 같은 선진국들과 더 멀어지기를 원치 않는다. 유럽연합(EU)이 캄보디아의 특혜무역 지위를 취소한다면 캄보디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탄압과 회유를 번갈아 사용하는 데 뛰어난 훈센 총리는 오는 7월 총선이 치뤄지기 전까지 EU·일본·미국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는 동시에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기회를 허용치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CPP와 훈센 총리가 자유롭거나 공정하지 못할 게 뻔한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훈센 총리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 그런 시나리오는 도시의 젊은 캄보디아인 다수를 정치에서 멀어지게 할 것이다. 게다가 오는 7월 선거 후 만약 훈센 총리가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한다면 그들이 그냥 보고 있지 않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대선은 내년에 치러질 예정이지만 정치인들은 이미 선거 준비를 시작했다. 아혹 전 자카르타 주지사의 몰락에 따라 영향력 큰 정치 엘리트들을 등에 업은 포퓰리스트-이슬람주의 연합 세력이 2019 대선을 향방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연합은 군장성 출신 정치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인도네시아운동당 대표(지난 대선에서 패했다)가 출마할 경우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아혹을 상대로 승리한 현 자카르타 주지사 아니스 바스웨단이 그 전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다수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이 예비 후보들에 비해 크게 앞서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가 재선에 성공하려면 보수파 이슬람 단체들의 환심을 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이 조코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더구나 지난해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는 인도네시아의 엘리트층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패배하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아혹이 선거에서 승리했다면 당연히 터져나왔을 문제로 내년 대선에서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는 포퓰리스트-이슬람주의 연합세력이 아혹을 비판하고 악랄한 반중국계 음모설을 제기한 시위가 펼쳐진 뒤 실시됐다. 그 시위는 아혹의 정책을 비판하기보다 그를 악마로 그려내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가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시위대와 그들을 후원하는 인도네시아 엘리트층이 그의 승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아혹은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서 패했고 그 결과에 승복했다. 그러나 일부 관측통은 아혹을 향한 공개적인 적대감을 감안할 때 만약 그가 승리했을 경우 바스웨단이 승복할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프라보워 대표가 내년 대선에 출마해 자신의 메시지를 증폭시키기 위해 대규모 거리 시위를 활용한 뒤 패배한다면 그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엘리트층, 특히 그중 브라보워 대표를 지지하는 집단은 브라보워 대표의 패배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해당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여러 중요한 선거 외에도 올해 동남아의 경제와 안보, 지역 정치에 영향을 미칠 다른 사안도 많다. 올해 주목해야 할 사안들을 정리해본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자국으로 밀려든 로힝야족 난민을 송환하는 문제를 미얀마 정부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방글라데시 언론은 우선적으로 송환될 난민 10만 명의 명단을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송환이 조만간 이뤄질 것 같지는 않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하루빨리 난민 수를 줄이고 싶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난민 수용소는 과밀한 상태로 질병 전염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가 라카인 주에서 진정한 개혁을 실시하고 로힝야족의 안전을 보장하거나 대량학살의 책임을 인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방글라데시 정부가 로힝야족 난민을 돌려보내는 유일한 길은 국경 너머로 강제 추방하는 방안일지 모른다. 그러나 로힝야족 대다수는 라카인 주로 돌아가면 미얀마군과 경찰에 의해 핍박 받을 게 뻔하다고 우려한다.
진정한 송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방글라데시 난민 수용소의 인원은 올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장기적인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무장단체들이 수용소에서 대원을 포섭하고 있다.
한편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언론인과 인권단체들이 라카인 주에서 자행된 추가적인 잔혹행위를 폭로할 가능성도 크다. 최근 밝혀진 학살 희생자의 집단 매장지가 그 예다. 미얀마 당국이 로이터 기자 2명을 체포한 것도 그런 폭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폭로는 국제사회가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더 강한 조치를 취하도록 추가적인 압력을 가할 것이다. 아울러 주요 민주화 지도자들은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다)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녀는 라카인 주에서 로힝야족을 상대로 자행된 범죄 행위의 증거와 관련해 국제단체와 논의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동남아에서 외교 수완이 가장 뛰어난 싱가포르는 아세안을 효과적으로 이끈 적이 많다(아세안 의장국은 매년 순번제로 돌아간다). 동남아 국가들이 집단으로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의 남중국해 전략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다. 그러나 지난해 필리핀이 의장국을 맡은 동안 그 문제는 더욱 꼬였다. 이제 아세안 회원국들은 올해 의장국인 싱가포르에 기대를 건다.
필리핀은 중국의 남중국해 정책을 갈수록 인정하는 쪽으로 돌아섰지만 싱가포르는 그와 달리 적어도 아세안 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논의될 수 있도록 회원국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울러 아세안과 중국이 동의하는 ‘남중국해에서 우발적 충돌 등 영유권 분쟁 악화를 막기 위한 행동준칙(COC)’을 제정하고 그 규정을 법적 구속력을 가진 협정으로 발전시키는 협상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끄는 역할에는 싱가포르가 적격이다(물론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싱가포르는 남중국해에서 특정 구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가들 사이의 긴장이 위험한 충돌로 증폭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장치가 실제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들 역량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으로 TPP에서 탈퇴하고 백악관이 중국에 대한 새로운 무역 조치를 취할 준비를 한다고 알려진 상황에서 동남아 국가들은 그와 다른 식의 무역협정을 추진하려 한다. TPP는 싱가포르·베트남·브루나이·말레이시아 등 여러 국가가 적극 지지한다. 한편 필리핀을 비롯한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지지한다. TPP가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캐나다는 자국 ‘문화산업 저작권 보호’를 위해 TPP의 예외조항을 요구하며 합의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동남아 국가들은 올해 RCEP를 더 적극적으로 수용할 전망이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양자 무역협정을 원하지만 미국과 단독 협정을 적극 추진할 의사를 가진 동남아 국가는 없는 듯하다. 필리핀 정부는 민다나오 섬의 마라위 포위 작전을 종료했지만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연계 조직의 위협은 줄어들지 않았다. IS 연계 단체들은 올해도 필리핀 남부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여러 지역에서 계속 대원을 모집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더 규모가 크고 보수적인 이슬람 단체들이 주요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무장단체들의 대원 포섭 노력도 더욱 강화될 수 있다.
- 조슈아 쿨란치크
※ [필자는 미국 외교협회(CFR)의 동남아시아 전문 선임 연구원이다. 최근 그의 저서 ‘라오스 내부의 미국과 군국주의 CIA의 탄생(A Great Place to Have a War: America in Laos and the Birth of a Military CIA)’이 발간됐다. 이 글은 CFR 사이트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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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은 미얀마군이 반군 토벌을 빌미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방화와 성폭행, 고문을 일삼았다고 주장했고, 국제사회는 이런 주장을 근거로 이번 사태를 ‘인종청소’로 규정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국경 넘어 밀려오는 수많은 난민에 불안을 감추지 못하지만 로힝야족이 라카인 주로 안전하게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얀마군이 라카인 주를 계속 공격하는 한 귀향하는 로힝야족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지난해 필리핀에선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이 초법적인 마약과의 전쟁을 지속하면서 민다나오 섬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군이 점령한 남부 도시 마라위의 잔혹한 포위 작전을 지휘했다.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마약과의 유혈전쟁’으로 1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과 자경단 등의 무차별 마약용의자 사살로 법치를 무시하고 인권을 유린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정치는 바수키 차하야 푸르나마(일명 아혹) 자카르타 주지사 사건으로 소용돌이쳤다. 중국계 기독교도인 아혹 주지사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이 유대인과 기독교도를 지도자로 삼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말에 “해당 구절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이들에게 속았다면 내게 투표하지 않아도 된다”고 응수했다가 논란에 휘말렸다.
이슬람 강경파는 그가 코란 자체를 부정했다고 주장하며 거듭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지지율이 급락한 아혹 주지사는 지난해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 결선투표에서 무슬림 후보에게 패했다. 자카르타 지방법원은 그에게 신성모독죄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그의 패배는 보수주의와 이슬람 단체들이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유력 집단으로 부상했다미래는 사실을 시사한다. 인도네시아 재계와 정계의 엘리트 중 일부가 그들을 지지한다.
캄보디아에선 오는 7월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11월 제1야당이 정부 전복을 꾀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해산되자 사실상 일당 체제가 구축되고 훈센 총리의 철권통치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훈센 총리는 대법원이 캄보디아구국당(CNRP) 해산을 명한 직후 TV 연설을 통해 대법원의 결정은 철저하게 법치에 근거한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차분히 일상생활을 하라고 요청했다. 또 총선은 정상적으로 실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훈센 총리는 “우리는 우리의 법을 집행한다고 국제사회의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다”며 내정 간섭을 하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다. 32년째 집권하고 있는 훈센 총리는 “10년 더 집권하겠다”며 정권 연장의 뜻을 밝혔다.
그 외에도 지난해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 트럼프 정부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라는 신개념만이 아니라 중국의 갈수록 커지는 지역 패권을 목격하며 우려와 기대를 가졌다.
올해의 동남아 정치는 여러 나라에서 치러질 중요한 선거가 지배할 전망이다. 또 내년엔 동남아의 거대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대선이 예정돼 있다. 더구나 미얀마의 지속되는 위기, 올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의장국을 맡은 싱가포르에 거는 기대, 여러 무역협정의 성공 또는 실패, 중국과 북한을 향한 미국의 강경 정책 등이 동남아 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먼저 올해 동남아에서 치러질 주요 선거를 살펴보자.
1. 말레이시아 총선
물론 나집 총리는 말레이시아 국부펀드 1MDB를 통해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횡령한 의혹만이 아니라 야당 정치인과 시민사회를 탄압해온 전력으로 적어도 일부 유권자와 국제사회 사이에선 이미지가 퇴색했다. 그럼에도 나집 총리와 집권여당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이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야당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는 수감돼 있고,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는 야권 연합을 이끌기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나집 총리와 UMNO는 지지 기반층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자금을 사용하고 선거구를 극단적으로 조정하는 게리멘더링에 아주 능하다.
더구나 그들은 중국계 소수민족을 비판하는 미묘한 메시지를 사용해 말레이계 지지층을 불러모았고 나집 총리를 보수적인 종교 가치와 말레이계의 최대 수호자로 내세움으로써 지지세력을 확대했다. 그런 전술은 온건파라는 나집 총리의 국제 평판에 흠집을 내겠지만 UMNO가 야권을 지지하던 말레이계 유권자를 끌어들여 나집 총리의 재선을 확고히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2. 태국 총선
그렇다면 왜 이제 선거를 실시할까? 군부가 친나왓 가문의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기 때문인 듯하다. 군부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친나왓과 잉락 친나왓 두 전직 태국 총리가 해외도피 중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이번에는 탁신의 아들 판통태 친나왓까지 돈세탁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되면서 친탁신계 푸어타이당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또 군부는 2014년 5월 쿠데타 이래 태국 정치 시스템을 완전히 개조했기 때문에 다시는 단일 정당이 태국을 통치할 수 없다고 자신한다. 태국 국민 61%가 찬성한 새 헌법에는 총선 이후 5년간의 민정 이양기에 250명의 상원의원을 최고 군정기구가 뽑고, 이들을 500명의 선출직 의원으로 구성된 하원의 총리 선출 과정에 참여시키는 방안이 담겼다. 또 선출직 의원에게만 주어지던 총리 출마자격을 비선출직 명망가에게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더는 하원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됐다.
그러나 친탁신계 푸어타이당이 하원에서 압승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그럴 경우 태국 정치는 혼돈에 휘말리게 된다. 친나왓 가문이 영향력을 발휘하든 않든 과거 푸어타이당은 적응력과 유연성이 뛰어남을 입증했다. 그들은 친나왓 가문이 아닌 다른 후보자를 내세워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후보로 나설만한 푸어타이당의 일부 인사들은 군사정권으로부터 각종 혐의로 기소당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푸어타이당의 힘이 더욱 약화될 수 있다. 게다가 만약 푸어타이당이 승리한다고 해도 그들이 하원을 지배하도록 군부가 허용할까?
3. 캄보디아 총선
훈센 총리의 탄압 대상은 상당히 폭이 넓었다. 야당 지도부, 언론인, 시민단체, 외국 NGO 등 다양한 정부 비판자들이 그 표적이 됐다. 1990년대 말 이래 야권을 상대로 한 가장 가혹한 탄압이었다.
미국 국무부는 캄보디아 정부가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며 일부 캄보디아 인사에 대한 미국 비자발급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훈센 총리가 그런 외부의 제재에 반응을 보여 야권에 대한 압박을 중단한다고 해도 야권이 오는 7월 선거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 듯하다. 야권 정치인 다수가 해외로 피신했다. 그들은 훈센 총리가 공개적으로 어떻게 말하든 귀국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탄압으로 훈센 총리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중국의 원조와 투자가 캄보디아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만 훈센 총리는 유럽과 일본 같은 선진국들과 더 멀어지기를 원치 않는다. 유럽연합(EU)이 캄보디아의 특혜무역 지위를 취소한다면 캄보디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탄압과 회유를 번갈아 사용하는 데 뛰어난 훈센 총리는 오는 7월 총선이 치뤄지기 전까지 EU·일본·미국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는 동시에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기회를 허용치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CPP와 훈센 총리가 자유롭거나 공정하지 못할 게 뻔한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훈센 총리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 그런 시나리오는 도시의 젊은 캄보디아인 다수를 정치에서 멀어지게 할 것이다. 게다가 오는 7월 선거 후 만약 훈센 총리가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한다면 그들이 그냥 보고 있지 않을 수 있다.
4. 인도네시아의 2019 대선
그런 연합은 군장성 출신 정치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인도네시아운동당 대표(지난 대선에서 패했다)가 출마할 경우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아혹을 상대로 승리한 현 자카르타 주지사 아니스 바스웨단이 그 전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다수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이 예비 후보들에 비해 크게 앞서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가 재선에 성공하려면 보수파 이슬람 단체들의 환심을 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이 조코위 대통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더구나 지난해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는 인도네시아의 엘리트층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패배하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아혹이 선거에서 승리했다면 당연히 터져나왔을 문제로 내년 대선에서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는 포퓰리스트-이슬람주의 연합세력이 아혹을 비판하고 악랄한 반중국계 음모설을 제기한 시위가 펼쳐진 뒤 실시됐다. 그 시위는 아혹의 정책을 비판하기보다 그를 악마로 그려내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만약 그가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시위대와 그들을 후원하는 인도네시아 엘리트층이 그의 승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아혹은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서 패했고 그 결과에 승복했다. 그러나 일부 관측통은 아혹을 향한 공개적인 적대감을 감안할 때 만약 그가 승리했을 경우 바스웨단이 승복할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프라보워 대표가 내년 대선에 출마해 자신의 메시지를 증폭시키기 위해 대규모 거리 시위를 활용한 뒤 패배한다면 그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 엘리트층, 특히 그중 브라보워 대표를 지지하는 집단은 브라보워 대표의 패배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해당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여러 중요한 선거 외에도 올해 동남아의 경제와 안보, 지역 정치에 영향을 미칠 다른 사안도 많다. 올해 주목해야 할 사안들을 정리해본다.
1. 미얀마 로힝야족의 위기
방글라데시 정부는 하루빨리 난민 수를 줄이고 싶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난민 수용소는 과밀한 상태로 질병 전염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가 라카인 주에서 진정한 개혁을 실시하고 로힝야족의 안전을 보장하거나 대량학살의 책임을 인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방글라데시 정부가 로힝야족 난민을 돌려보내는 유일한 길은 국경 너머로 강제 추방하는 방안일지 모른다. 그러나 로힝야족 대다수는 라카인 주로 돌아가면 미얀마군과 경찰에 의해 핍박 받을 게 뻔하다고 우려한다.
진정한 송환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방글라데시 난민 수용소의 인원은 올해 더욱 늘어날 것이다. 장기적인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무장단체들이 수용소에서 대원을 포섭하고 있다.
한편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언론인과 인권단체들이 라카인 주에서 자행된 추가적인 잔혹행위를 폭로할 가능성도 크다. 최근 밝혀진 학살 희생자의 집단 매장지가 그 예다. 미얀마 당국이 로이터 기자 2명을 체포한 것도 그런 폭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폭로는 국제사회가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더 강한 조치를 취하도록 추가적인 압력을 가할 것이다. 아울러 주요 민주화 지도자들은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다)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녀는 라카인 주에서 로힝야족을 상대로 자행된 범죄 행위의 증거와 관련해 국제단체와 논의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2. 기대되는 올해의 아세안 의장국 싱가포르
필리핀은 중국의 남중국해 정책을 갈수록 인정하는 쪽으로 돌아섰지만 싱가포르는 그와 달리 적어도 아세안 회의에서 남중국해 문제가 중요한 의제로 논의될 수 있도록 회원국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울러 아세안과 중국이 동의하는 ‘남중국해에서 우발적 충돌 등 영유권 분쟁 악화를 막기 위한 행동준칙(COC)’을 제정하고 그 규정을 법적 구속력을 가진 협정으로 발전시키는 협상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끄는 역할에는 싱가포르가 적격이다(물론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싱가포르는 남중국해에서 특정 구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국가들 사이의 긴장이 위험한 충돌로 증폭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장치가 실제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들 역량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3. 동남아의 무역블록 파워
트럼프 정부가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양자 무역협정을 원하지만 미국과 단독 협정을 적극 추진할 의사를 가진 동남아 국가는 없는 듯하다.
4. 동남아로 손 뻗친 IS
더구나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더 규모가 크고 보수적인 이슬람 단체들이 주요 세력으로 부상하면서 무장단체들의 대원 포섭 노력도 더욱 강화될 수 있다.
- 조슈아 쿨란치크
※ [필자는 미국 외교협회(CFR)의 동남아시아 전문 선임 연구원이다. 최근 그의 저서 ‘라오스 내부의 미국과 군국주의 CIA의 탄생(A Great Place to Have a War: America in Laos and the Birth of a Military CIA)’이 발간됐다. 이 글은 CFR 사이트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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