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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운동

표류하는 미국의 백인우월주의 운동

주류 보수주의 대안으로 등장한 알트라이트,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영향력 커졌지만 최근 반파시스트 시위대와 폭력 충돌하면서 지지 잃어
2016년 텍사스 A&M 대학 캠퍼스에서 연설하는 리처드 스펜서. 그는 극우파 알트라이트 운동의 간판 인물이다. / 사진 : AP-NEWSIS
“헤일 트럼프!” 리처드 스펜서가 외쳤다. 나치가 손을 들어 경례하며 ‘하일 히틀러’를 부르짖는 것과 다름없었다. “우리 민족(백인) 만세! 승리 만세!”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둔 직후, 스펜서는 워싱턴 D.C.에서 백인 민족주의자(백인 우월주의자를 자신들은 그렇게 부른다)들이 가득 메운 넓은 행사장에서 연설했다. 그는 소위 ‘알트라이트’(alt-right, 대안 우파) 운동으로 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알트라이트란 주류 보수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된 우익의 한 부류다. 극단적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미국의 온라인 보수 세력으로 반(反)세계화·이민·유대주의·이슬람·페미니즘을 기조로 한다. 스펜서의 그 연설은 가장 먼저 시사잡지 애틀랜틱의 온라인판에 실렸다가 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갔다. 트럼프 비판자들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두려움을 확인해주는 듯한 내용이었다. 트럼프 당선인이 비주류에 속하던 인종차별주의, 우익 급진주의 운동에 힘을 실어주면서 그들이 주류로 편입되고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지난 3월 5일에도 스펜서는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알트라이트 지지자들 앞에 섰다. 워싱턴 D.C. 연설 후 1년 반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청중은 그때보다 훨씬 적었다. 스펜서도 그때처럼 의기양양하지 못했다. 그는 줄어든 지지자를 의식한 듯 “이제 우리는 진정한 운동이 되기 위한 출산의 고통을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행사장 밖에선 일단의 ‘네오나치’(신나치주의자)들이 수가 훨씬 더 많은 좌익 성향의 시위대와 몸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스펜서의 미시간주립대학 연설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얼마 전까지 그의 옆을 지켰던 인물들이 그 자리에서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우선 스펜서의 변호사로 그날 연설을 주선한 카일 브리스토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브리스토는 바로 그 며칠 전 알트라이트 운동을 그만둔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팟캐스터로 유대인 음모론을 자주 들먹이는 스펜서의 동지 마이크 페이노비치도 그 자리에 없었다. 스펜서의 또 다른 동지 엘리엇 클라인도 보이지 않았다(지난 2월 뉴욕타임스 신문에 클라인이 자신의 이라크전 참전에 관해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 같다는 기사가 실린 이래 그는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전에 스펜서의 연설을 홍보했던 네오나치 웹사이트 데일리 스토머도 이번 연설 중계를 거부하고 대신 아카데미상을 조롱하는 특집 기사로 홈페이지를 장식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선출된 지 1년 반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알트라이트 운동이 표류하는 모습이다. 다시 말해 주류 편입이라는 목표에 한참 미달한 상태다. 그들의 연대는 한때 막강해 보였지만 지금은 내홍으로 혼란상을 보인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혐오스런 콘텐트를 생산하는 주요 계정을 차단하면서 그들의 온라인 영향력도 크게 줄었다. 일부 분석가는 알트라이트가 좌익 성향의 시위대와 폭력적으로 충돌하면서 그들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성취하려고 했던 목표 대부분이 빛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2016년 12월 텍사스 A&M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 스펜서의 알트라이트 운동 관련 연설 행사에 반대하는 시위대. / 사진 : AP-NEWSIS
지난해 8월만 해도 상황은 사뭇 달랐다.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에서 열린 백인 우월주의 집회 ‘유나이트 더 라이트’에 백인 남성 1000명 이상이 모여 남북전쟁 당시 남군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철거에 항의했다. 그들에 맞서 좌익 성향의 맞불 시위대도 등장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극우 성향의 오하이오 주민 제임스 필즈(20)가 차를 몰고 군중 속으로 돌진해 시위자 헤더 헤이어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류 언론 대부분은 그 끔찍한 사건의 충격을 전했고 샬러츠빌의 마이크 사이너 시장은 CBS 방송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 집회를 두고 “사회의 가장 저질적인 면을 축하한 악마의 축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그와 사뭇 달랐다. 그는 샬러츠빌 집회장의 충돌을 두고 “한쪽은 나쁜 사람들의 집단이었고 다른 한쪽도 아주 폭력적인 사람들의 집단이었다”고 말했다. 또 나중엔 “양쪽에 모두 아주 좋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 사건 이래 대다수 공화당 공직자들은 알트라이트 운동과 거리를 두려 했다. 스펜서가 미시간주립대학을 방문한 시점까지 알트라이트는 여러 차례의 좌절을 겪었다. 먼저 지난해 10월 플로리다대학에서 스펜서가 연설했을 때 경찰은 그의 지지자 3명을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그중 한 명이 군중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기 때문이었다. 그 다음 그달 말께 테네시 주에서 ‘백인의 삶도 중요하다(White Lives Matters)’는 행사가 열렸다. 그곳에 모인 네오나치와 백인 우월주의자 수는 맞불 시위대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러면서 알트라이트 내부에선 정체성을 둘러싼 자성적인 논쟁이 이어졌다.

캘리포니아 주민이었던 백인 여성 케이트 스타인리의 죽음을 둘러싼 파장도 컸다. 2015년 7월 샌프란시스코 부두에서 스타인리(당시 32세)를 총으로 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호세 이네스 가르시아 사라테는 지난해 12월 배심원단으로부터 무죄 평결을 받았다. 그러자 네오나치와 백인 민족주의자 약 20명(그중 다수는 샬러츠빌 집회에도 참석했다)이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그 평결에 항의했다. 스펜서 외 페이노비치를 비롯한 알트라이트 지도부가 연설로 그들의 시위를 이끌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스타인리 사건을 자주 인용했기 때문에 그 시위가 큰 효과가 있으리라고 분석가들은 판단했다. 그러나 다양한 집단의 반(反)파시스트 시위대가 나타나 소규모 백인 시위대를 압도했다. 그러자 시위가 시작된 지 30분도 안 돼 경찰이 네오나치와 백인 민족주의자들을 대피시켰다. 언론엔 거의 보도가 되지도 않았다.
지난 3월 5일 미시간주립대학 밖에서 시위대의 봉쇄로 스펜서의 연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남자가 독일 나치식 경례를 하며 “백인의 힘”을 외쳤다. / 사진 : AP-NEWSIS
비판자들은 알트라이트가 새로운 운동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분열됐던 다양한 증오단체들의 집단적 이름을 바꾼 데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미국이 샬러츠빌에서 본 그들의 단합된 모습은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증오단체를 감시하는 반명예훼손연맹(ADL)의 칼라 힐 연구원은 “백인 우월주의 운동은 그 시초부터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들은 단합된 적이 없기 때문에 샬러츠빌의 ‘유나이트 더 라이트’ 집회는 의아해 보일 수밖에 없다.”

한편 안티파(antifa, 반파시스트) 운동가들은 최근의 알트라이트 운동이 힘을 잃은 것이 자신들의 공로라고 주장한다. 운동가이자 학자로 저서 ‘안티파, 반파시스트 가이드북(Antifa, The Anti-Fascist Handbook)’을 펴낸 마크 브레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판단하건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나설 입지가 없어져서 낙관한다”고 말했다. 그는 샬러츠빌 집회와 그 이후의 김빠진 시위가 그런 행사는 체포와 반발, 내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머지않아 ‘안티파’에 관한 언급조차 필요 없어질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싶다.”

진보파와 심지어 극좌파의 일부도 안티파의 전술에 비판적이었다. 대표적인 좌파 저술가 노암 촘스키는 안티파를 두고 “우파에 선물을 갖다 바쳤다”며 “특히 그들 때문에 군국주의 우파가 활기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안티파 때문에 극우파가 더욱 대담해졌으며, 안티파의 행동이 정부 기관에 좌익 운동가를 탄압할 구실을 제공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급진 우파의 몇몇 인사는 안티파로 인해 자신들의 운동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본다. 네오나치 단체인 전통주의노동자당의 공동 창립자 맷 패럿은 “주류 진보파가 할 수 없었던 일을 안티파가 해냈다”고 말했다(그는 지난 3월 중순 알트라이트 간부직에서 사임했다). “안티파는 알트라이트 지지자 대다수를 거리와 광장에서 몰아내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스펜서도 미시간주립대학 연설 후 “안티파가 이기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지난 3월 11일 밤 대학측과 안티파의 반발 때문에 계획된 대학 순회 연설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푸념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그는 그런 상황으로 인해 알트라이트 운동의 접근법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상황이 우리에게 상당히 불리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일부 관측통에 따르면 알트라이트는 자신들의 행동과 발언으로 인해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간다고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샬러츠빌 집회에서 최루가스와 최루액 분사기를 사용한 혐의로 가택연금에 처해진 크리스토퍼 캔트웰은 지난해 12월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래디컬 어젠다’에 앤드루 아우언하이머를 초대했다. 네오나치 웹사이트 데일리 스토머의 기술책임자인 아우언하이머는 대담이 40분쯤 지났을 때 샬러츠빌 집회 후 그 웹사이트가 폐쇄된 데 대한 복수로 유대인을 살해하라고 촉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캔트웰도 충격 받은 듯했다. 아우언하이머는 유대인 엘리트층의 음모로 자신이 언론의 자유를 빼앗겼다고 믿는다며 “누군가 나서서 그들을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롭게 반대할 수 있는 우리의 권리를 그들이 빼앗는다면 우린 그들을 살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자녀와 가족 전부를 죽이는 게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이다.”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다. 알트라이트 관련자들이 연루된 폭력 사건이 눈에 띄게 증가세다. 올해 초 ADL은 1970년 이래 지난해가 극단주의 폭력이 5번째로 많은 해 였다며 전체 살인 사건의 71%가 우익 극단주의와 관련됐다고 발표했다. 그에 비해 극단 이슬람주의와 관련된 살인은 26%로 그 절반에도 이르지 않았다.
지난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기 하루 전 반트럼프 시위에 알트라이트 운동을 독일 나치에 견주는 표지판이 등장했다. / 사진 : AP-NEWSIS
그런 폭력 사건으로 알트라이트 지도부조차 당황하는 듯하다. 그들은 준법 정신이 투철한 백인 보수주의자들을 알트라이트 운동에 끌어들여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트라이트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인 브래드 그리핀은 최근 아우언하이머를 비난했다. 그는 아우언하이머 같은 사람들 때문에 자신을 비롯해 선의를 가진 알트라이트 지도자들이 위험한 인물로 지목돼 연방 요원들의 주목을 끌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텍사스 주에서 활동하는 저술가로 안티파 운동가인 키트 오코넬은 ‘궁지에 몰린 쥐’ 현상을 우려했다. 알트라이트 지지자들이 궁지에 몰려 영구적인 정치 운동으로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포기하고 폭력으로 좌절감을 표출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궁지에 몰렸든 그렇지 않든 알트라이트의 백인 지상주의 꿈은 여전히 살아 있다. 샬러츠빌 집회에서 행진한 백인 우월주의 단체 아이덴티티 에브로파는 지난 3월 10일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행사를 개최했다. 거기에 모인 군중이 스펜서가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연설했을 때 참석한 인원의 3배나 됐다. 이 단체는 대학 캠퍼스를 적극 공략한다. 조사에 따르면 상아탑 내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운동가 모집 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스펜서는 3월 11일 동영상에서 이렇게 인정했다. “지금 우리는 어려운 투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승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 마이클 에디슨 헤이든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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