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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안전해지는 항공여행, 그 이유는?

갈수록 안전해지는 항공여행, 그 이유는?

승무원이 기장의 잘못된 결정 기탄없이 지적하고, 실수에서 교훈 얻으며, 투명한 디자인으로 항공산업 전반의 안전성 제고에 성공해
항공산업 성공의 열쇠는 권위적인 감독보다 통찰력이다. / 사진:GETTY IMAGES BANK
지난해 미국에서 여객기 사고에 따른 인명피해가 전혀 없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업적이라고 자랑했다. “나는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민간 항공에 아주 엄격했다. 좋은 소식이다. 2017년엔 사망자가 없었다고 한다. 기록상 가장 안전한 최고의 해였다.”

하지만 그 추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기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2013년 이래 미국 상업용 항공기 사고의 사망자가 없었다. 이륙하는 여객기 편당 사고 건수도 수십 년 동안 전반적으로 하향세를 보였다.

고도로 복잡한 시스템은 고장나거나 인적인 실수가 나오기 쉽다. 그러나 항공산업은 예외인 듯하다. 미국의 민간 항공은 1960년대 이래 훨씬 복잡해졌지만 운항은 더 안전해졌다. 우리는 신저 ‘멜트다운(Meltdown)’에서 이런 놀라운 추세의 이면에 관리와 디자인 측면의 몇 가지 ‘스마트’한 접근법이 있다는 점을 논했다. 우리 모두에게 교훈을 주는 솔루션이다. 그중 세 가지를 소개한다.
 1.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내고 또 경청하도록 가르친다.
지금까지 항공기 사고에서 흔히 발견되는 오류는 부조종사가 기장의 잘못된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기장이 비행기를 조종할 때 부조종사가 이의를 제기하기가 어려워 실수가 그대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관행이 1970년대 말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승무원 자원관리(CRM)’로 알려진 훈련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CRM은 조종실 내부만이 아니라 항공산업 전반의 문화에 혁명을 일으켰다. 안전을 팀워크 문제로 규정하고 기장부터 말단 승무원까지 모두를 좀 더 동등하게 관리하는 방식이다. 상관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무례한 행동’이 아니라 ‘의무적인 사안’이 됐다. CRM은 모든 승무원에게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방식을 가르친다. 이의를 제기할 때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고, 우려를 표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명시적인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상세한 매뉴얼을 사용한다.

핵심은 단순히 계급이 낮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고 높은 사람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대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반대 견해를 수용하는 능력은 우리의 성격이나 문화 배경에 내재돼 있는 게 아니라 교육을 통해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2. 사고가 날 뻔한 아슬아슬한 상황과 사소한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다.
지금까지 항공기 사고에서 흔히 발견되는 오류는 부조종사가 기장의 잘못된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 사진:GETTY IMAGES BANK
1976년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익명의 안전관련 보고를 수집하는 시스템을 고안해 업계 전체에 적용키로 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독립 부서가 운영하는 ‘항공안전보고시스템(ASRS)’이다. ASRS는 매달 수천 건의 보고사항을 수집한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보고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되며, 밝히더라도 그 신분은 보호되고, 심지어 그 실수가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해도 당사자는 보호 받을 수 있다(의도적이지 않았고, 범죄가 아닌 경우). 조종사에겐 ASRS 보고를 제출하는 것이 하나의 긍지로 자리 잡았다. 그 보고가 항공여행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보고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검색이 가능한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NASA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월간 뉴스레터 ‘콜백’에 항공 안전 추세를 요약해 소개한다. 예를 들어 착륙 직전 활주로 변경 지시를 받은 조종사의 경험담이 있다. 고도를 더 낮추기 위해 과도한 하강이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그 조종사는 시간에 맞게 고도를 낮추지 못했고 가까스로 착륙한 뒤 그와 관련해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보고를 접한 FAA는 곧바로 착륙시 접근 절차를 바꿨다.

이 사안에서도 더 널리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작은 실수 또는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 항공산업 시스템에서 크게 잘못될 수 있는 문제점에 관한 데이터의 풍부한 원천이 될 수 있다. 실수는 절대로 비밀에 부쳐선 안 된다.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과 실수에 관한 경험과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실수를 마녀사냥의 계기가 아니라 배움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사회학자 찰스 페로는 “그런 시스템을 실행하는 것이 강력한 인식적인 깨달음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것이 엔지니어에겐 시스템 결함에 관한 반직관적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는 데이터 베이스를 제공하며, 조직엔 누군가가 실제로 항공안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3. 복잡성에 투명성으로 맞서라.
보잉 737의 조종실에는 각 조종사 앞 약 1m 높이의 제어대 위에 ‘W’ 형태의 투박한대형 조종간이 붙어 있다. / 사진:FLICKR
항공산업은 디자인에서도 스마트한 접근법을 취했다. 항공기 엔지니어들은 날렵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이 반드시 더 나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아하지 못한 디자인이 투명성이 높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다.

보잉 737의 조종실을 예로 들어보자. 각 조종사 앞 약 1m 높이의 제어대 위에 ‘W’ 형태의 대형 조종간이 있다. 여객기 기장 겸 사고 수사관인 벤 버그먼은 “보잉 737기를 조종할 때 우리 앞엔 이런 커다란 조종간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장이나 부조종사가 밀거나 당기면 조종간이 움직인다. 기장이 조종간을 세게 당기면 부조종사의 조종간도 함께 당겨져 무릎이나 배에 닿을 수 있다.”

일반인에겐 이런 조종간이 너무 크고 불편해 보인다. 그러나 아주 기발한 면이 있다. 일어나는 일을 확실히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종실에선 누가 무엇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 조종간을 밀어야 할 때 부조종사가 겁에 질려 조종간을 당긴다면 기장의 조종간도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곧바로 실수를 알 수 있다. 조종간이 바로 얼굴 앞으로 다가와 배를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보잉 여객기의 엔지니어들은 좀 더 우아한 디자인으로 조종실을 설계할 수도 있다. 일부 차량처럼 멋진 첨단 터치 스크린으로 대체하거나 에어버스 A330 비행기처럼 작은 사이드스틱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우아한 디자인은 투명성을 확보할 수 없다. 투박해도 작동이 확실히 드러나는 디자인이 더 안전하다.

이런 사례에서 더 널리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은 복잡성의 해결책이 단순성이 아니라 투명성이라는 사실이다. 육안으로 시스템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가치 또한 크다. 투명한 디자인은 조종사가 실수하기 어렵게 만들어준다. 또 실수했을 때 그 상황을 인식하기도 더 쉽다.

항공산업의 성공은 대통령의 ‘아주 엄격한’ 정책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런 엄격하고 징벌적인 접근법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 항공산업 성공의 열쇠는 권위적인 감독보다 통찰력이다. 미국의 항공산업은 학습에 초점을 맞춘 접근법을 받아들여 독자적인 해결책을 찾았다. 승무원이 반대 견해를 기탄없이 표명하고 누구나 그런 견해를 경청하도록 가르치는 것, 모두가 실수와 오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시스템화하는 것, 우아함보다 투명함에 가치를 두는 것이 바로 그 솔루션이다. 그러나 그런 교훈은 많은 희생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항공산업은 수많은 사고를 겪은 뒤에야 이런 문제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좋은 소식은 이런 교훈이 폭넓은 분야에 적용될 수 있으며 우리는 이제 예전처럼 큰 대가를 치르지 않고 그 교훈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 크리스토퍼 클리어필드, 안드라스 틸치크



※ [필자들은 저서 ‘멜트다운: 우리 시스템은 왜 실패했으며 어떻게 고칠 수 있나(Meltdown: Why Our Systems Fail and What We Can Do About It)’를 공동으로 펴냈다. 이 글은 그 책의 일부를 요약한 것으로 영국 런던정경대학(LSE) 비즈니스 리뷰 웹사이트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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