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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양안의 ‘애정 식은 결혼’

대서양 양안의 ‘애정 식은 결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탈퇴로 유럽-미국 관계가 더욱 삐걱거린다
트럼프 대통령(왼쪽 사진)은 지난 5월 8일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를 공식 선언하는 각서에 서명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메이 영국 총리,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 사진 왼쪽부터)는 이란 핵합의를 지키기 위해 공동 대처한다. / 사진:AP-NEWSI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8일 이란 핵합의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 합의는 오바마 행정부의 주도로 2015년 7월 14일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그리고 독일(5P+1)과 이란 사이에 체결된 것이다. 이란은 향후 10년 이상 핵 관련 시설을 감축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 대신 6개 조인국은 대이란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탈퇴 결정은 중동의 안정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동맹국의 관계에도 상당한 타격을 안겨줄 전망이다. 이제 프랑스·독일·영국은 이란 핵합의를 지켜내고 거의 유럽을 무시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계속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수년 동안 이란 핵협상을 추적해온 미국·유럽 관계 전문 학자인 나로선 유럽이 그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다는 데 솔직히 회의적이다.

그동안 영국·프랑스·독일은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를 막으려고 애썼다. 10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외교 노력을 쏟아부은 유럽연합(EU) 외교정책의 중요한 업적이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고위 관리들은 지난 1월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반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인사들과 자주 만났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선거운동을 할 때부터 중동 전역에서 이란의 호전적인 행동을 비난하며 이란 핵합의를 최악의 합의였다고 주장했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내용도 없고, 10~15년이 지나면 이란의 핵개발을 막을 보장도 없기 때문에 이 합의는 폐기돼야 한다고 말했다.미국은 이란 핵합의 탈퇴를 선언한 뒤 지난 5월 21일에는 이란을 향해 우라늄 농축 중단 등 한층 까다로워진 12개 요구사항을 담은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자고 요구했다. 만약 이란이 새로운 합의를 수용한다면 기존제재 해제는 물론 외교·경제적 관계를 복원하고 현대화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만약 거부한다면 이란이 협상에 나설 때까지 역대 최고로 강력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박했다.

테헤란의 옛 미국 대사관 앞에서 이란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핵합의 탈퇴 선언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 사진:AP-NEWSIS
그에 대해 이란은 “굴복은 없다”고 정면 반발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각국은 독립적인 만큼, 지금 세계는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을 수용하지 않는다”면서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날에도 “미국과 이를 지지하는 다른 열강은 이란을 무릎 꿇릴 수 없다”면서 “오히려 우리는 두 발로 서서 우리의 길을 거침없이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간 이란이 일관되게 보인 태도를 고려하면 ‘굴욕’이나 다름없는 핵합의 재협상장에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다. 미국의 제재를 근 40년간 받으면서 경제를 거의 자력으로 지탱해 온 이란에 경제적 지원이라는 반대급부는 협상 성사 가능성을 높이는 ‘당근’이 아니라 모욕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EU도 미국의 새로운 합의 제안을 두고 “기존 합의의 대안은 없다”며 이란을 거들었다.

유럽의 관점에서 보면 이란 핵합의는 효과가 있었다. IAEA는 이란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하고 엄격한 국제 사찰에 따르면서 합의 조건을 지켰다고 확인했다. 그에 따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 1월 미국 의회에 이란 핵합의를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4월 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이란 핵합의 탈퇴 결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이제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서명국(유럽 3국과 러시아·중국)은 합의 유지를 위해 외교 활동을 서두른다. 미국이 완전히 탈퇴하면 합의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미국의 경제력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이란에서 사업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최고 수준의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런 위협은 합의를 쉽게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이란 핵합의는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것이다. 이란이 핵프로그램의 축소에 동의하면 서명국들이 제재를 해제하고 이란에 경제적 기회를 열어주는 식이다. 미국이 빠진 상황에서 유럽이 경제적 혜택을 주지 못하면 이란은 합의 폐기를 선언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이란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크다. 위태로운 중동에서 더 많은 폭력 사태가 촉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유럽 남부에서 아주 가까운 중동에서 더 많은 폭력이 발생하면 유럽도 불안정에 빠지게 된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합의 탈퇴와 관련해 “지금 세계는 미국의 일방적인 결정을 따르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 사진:AP-NEWSIS
백악관은 이란에 제재를 다시 부과하는 것에 더해 이란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에 180일 내로 사업을 접지 않으면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조치는 특히 유럽의 주요 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프랑스 정유회사 토탈과 독일의 전기·전자 기업 지멘스 등 유럽의 많은 대기업이 최근 이란에서 대규모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어쩌면 그들은 사례별로 미국 정부에 제재 면제를 요청할 수 있을지 모른다.

EU는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합의 탈퇴와 이란에 대한 제재 재부과와 관련,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지난 5월 17일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열린 EU-발칸반도 정상회의에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미국의 제재로부터 유럽 기업을 보호하는 법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우리는 이란이 핵합의를 전적으로 준수하는 한 핵합의에 남겠다고 만장일치로 합의했다”며 “거기에 더해 EU 집행위는 어디든지 유럽의 이익이 악영향을 받는 곳에서 행동할 태세를 갖추는데 청신호를 보냈다”고 말했다.

미국의 징벌적 제재로부터 유럽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1996년 법제화한 ‘방어 조항(blocking statute, 대항 입법이라고도 한다)’을 되살리거나 수정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가 이란과 리비아를 상대로 제재를 가한 뒤 통과된 이 조항은 유럽 기업들이 관할권을 넘어선 미국의 제재에 따르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에 따라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까지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으로부터 유럽 기업을 보호할 수 있었다. 유럽투자은행도 더 작은 업체(미국 시장에 지분이 없는 회사)에 신용을 제공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이란과의 사업에 더 안정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가장 극단적인 보복 조치는 EU가 유럽의 미국 자산에 제재를 부과하는 것이다. 유럽외교협회(ECFR) 제러미 샤피로 연구실장은 최근 뉴욕타임스 신문에서 유럽은 이제 “이란 핵합의를 고수할지 여부가 아니라 그 합의를 파기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맞설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궁극적으로 나는 유럽 기업이 미국의 제재를 피하는 쪽으로 행동할 것으로 본다. 이란 핵합의가 2016년 발효된 이래 유럽과 이란의 무역이 급속히 증가했지만 아직 대이란 무역은 EU의 글로벌 무역 중 1%에도 못 미친다. 반면 미국은 EU 전체 무역의 약 17%를 차지하는 최대 무역 파트너다.

외교적 무시를 제쳐두고 순전히 사업적인 측면만 보면 프랑스·독일·영국은 미국의 영향력을 잘 안다. 유럽은 미국에 각을 세움으로써 이란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보다 그에 따르는 피해가 더 크다는 사실 말이다.

따라서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메르켈 총리, 영국의 메이 총리는 딜레마에 빠졌다. 자신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미국 대통령과 어떻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탈퇴 결정은 그의 잇따른 유럽 무시 조치 중 가장 최근의 사례일 뿐이다. 그는 EU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리 기후협정에서 탈퇴했고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산 철강·알루미늄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고자 한다.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기 끝날 때까지 그를 달래면서 불협화음을 최소화하는 쪽을 택할지 모른다. 유럽은 여전히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며 미국에 대한 징벌적 조치에 28개 EU 회원국 전부를 동의하게 만들기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정책은 유럽이 중시하는 다자간 국제질서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런 모든 점을 따져볼 때 미국-유럽 관계는 갈수록 ‘애정 없는 결혼’이 될 듯하다. 물론 미국과 유럽은 테러 방지와 무역 같은 공동 관심사 분야에서 서로 주고받는 거래를 기반으로 협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래 대서양 양안의 파트너십을 규정해온 공동의 세계 비전은 되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 개릿 마틴



※ [필자는 아메리칸대학 국제관계대학원 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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