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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하지 않고선 못 살아?

게임하지 않고선 못 살아?

WHO, 건강과 일상생활에 지장 줄 정도로 게임에 몰두하는 게임장애를 정신질환으로 규정
사진:ILLUSTRATION BY BEN FEARNLEY
머지않아 게임중독이 정신병으로 공식 인정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6월 18일 게임장애(gaming disorder)를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 중 하나로 지정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국제질병분류 11차(ICD-11) 개정안 최신판을 제시했다. 공개된 ICD-11 개정안에 따르면 게임장애는 중독성 행동장애(disorders due to addictive behaviors)로 분류된다. ICD는 각종 질병과 관련한 진단과 증상 등을 표준화한 통계분류로 ICD에 등재되면 공식적인 질병으로 인정받는다. WHO는 ICD-11을 내년 5월 세계보건총회를 통해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그 다음 회원국의 승인을 거쳐 2022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게임장애의 증상은 단순히 ‘게임을 매우 즐긴다’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이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은 게임하느라 끼니를 거르고 잠도 자지 않는다. 다른 것은 거의 다 하지 않고 오로지 게임에만 몰두해 신체 건강을 해칠 정도다. WHO는 이런 장애를 ‘집요하거나 되풀이되는’ 행동 패턴으로 규정했다. 다시 말해 ‘중독’이라는 뜻이다. 셰크하르 삭세나 WHO 정신건강·약물남용 담당 국장은 “과학적 증거에 기초해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였다”며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치료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단 기준은 게임하지 않고 참겠다는 자제능력의 상실,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최우선시 하는 생각과 행위,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해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현상, 또 가족과 대인관계에 손상을 초래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 등이다. WHO는 이 같은 현상이 최소 12개월 이상 나타날 경우 게임중독으로 진단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WHO도 게임장애 진단을 받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면서 전체 게임 이용자의 3%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의 보건 관리들은 게임장애 문제를 오래 전부터 인식하고 치료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13~29세 중 약 2400만 명이 게임에 중독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에선 가끔씩 전기충격요법이 사용되는 군대식 훈련소와 중독자가 엄격한 생활시간표를 따라야 하는 입원이 치료 프로그램에 포함되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국에선 정부가 게임과몰입 치료센터와 인식제고 캠페인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일부 IT업체는 개인적인 상담과 중독 핫라인을 제공한다. 네덜란드도 십대의 게임중독에 맞춘 치료센터를 운영한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그런 프로그램을 도입하지 않았다. 미국정신의학회(APA)는 2013년 정신장애진단 통계편람을 개정하면서 게임중독과 관련해선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며 그 증상을 특별한 장애로 규정하지 않았다. 현재 APA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동 중독은 도박장애뿐이다.

북미 게임 업계를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SA)는 만약 게임장애가 인정되면 산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우려한다. 그에 따라 EAS는 지난 1월 성명을 통해 “전 세계에서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20억 명이 넘는다”며 “연구 결과를 보거나 상식적으로도 게임은 중독 물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우울증, 사회불안장애 같은 진정한 정신건강 질환보다 게임을 더 중대한 문제로 보는 신중하지 못한 태도를 비판한다.” ESA는 WHO 결정의 바탕이 된 연구 결과가 “논란이 아주 많아 결론을 내릴 근거가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생물심리학자인 영국 배스스파 대학교의 피터 에첼 박사도 게임장애 진단의 증거가 “빈약하다”고 말했다. “WHO의 이번 결정은 대다수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위험을 무릅쓸 수 있다. 일종의 과잉진단에 해당한다. 일광욕 중독, 춤 중독, 운동 중독 등에 대한 연구가 있지만, 누구도 그것들을 게임중독처럼 ICD에 올려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또 그는 젊은이가 타락한다는 기성세대의 막연한 불안 탓에 게임이 죄악시되는 이른바 ‘도덕적 공황’이 정책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 러트거스 뉴저지 메디컬스쿨의 정신과의사 페트로스 르부니스 박사는 APA가 입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강박 행동과 그런 행동의 통제 불능이 약물·알코올 중독 증상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르부니스 박사는 자신이 중독된 듯하다고 생각하거나 주변에서 중독된 사람을 알 경우 12단계 중독치료 프로그램이나 심리요법 같은 전문적인 치료를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어떤 경우는 게임중독이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치료하는 약으로 효과를 볼 수도 있다.

심리치료 전문가로 저서 ‘화면에 중독된 아이들 일깨우기(Glow Kids: How Screen Addiction Is Hijacking Our Kids - and How to Break the Trance)’를 펴낸 니콜라스 카다라스는 게임중독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중독행위와 분리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게임 속의 삶과 무관한 새로운 정체성과 성취감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르부니스 박사는 게임중독도 다른 어떤 중독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치료의 첫걸음이라고 지적했다.

- 캐슈미라 갠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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