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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도는 자영업자 대책] 정부 대책은 본질 외면한 대증요법

[헛도는 자영업자 대책] 정부 대책은 본질 외면한 대증요법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 소상공인 요구사항 빠져… 영업비용 증가보다 매출 감소가 더 큰 문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일자리안정자금 대상 확대와 근로장려금·사회보험료 지원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최근 발표했다. 금융 지원 5조원을 제외하고도 혈세에서 직접 지원하는 액수만 ‘7조원α’에 달한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안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불 끄기에 급급한 임시방편에 매달린다는 비판이 거세다. 백화점식 대증요법이 아닌 자영업 구조조정과 이에 대비한 안전망 확충, 대체시장 확보 등에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영국 등지에서 논란인 ‘소매종말’이 자영업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치밀한 연구·분석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생태계가 흔들리는 위기의 자영업, 솔로몬의 해법은 무엇일까.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담 완화를 위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을 함께 모색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8월 22일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내놓으면서 꺼낸 말이다. 당정은 그러면서 이번 대책을 통해 2019년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7조1000억원 이상 지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4조8000억원보다 최소 2조3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그런데 숫자를 들이대며 ‘통 크게 썼다’는 정부의 생색과는 달리 현장의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하다. 소상공인·자영업자들도, 전문가들도 이번 대책을 두고 ‘효용성이 크지 않다’ ‘핵심이 빠진 응급처방이다’라고 비판한다. “몰락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살리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이라던 정부의 얘기와 정반대다. 왜일까.
 인건비·임대료·카드수수료에 초점
이번에 당정에 내놓은 자영업자 대책은 단기적인 자금 지원과 경영비용 부담 경감이 핵심이다. 장사가 안 돼 먹고 살기 힘든 자영업자들을 위해 재정을 투입해 각종 운영 비용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원 규모를 강조하기 위해 직접 지원과 간접 지원으로 분류하거나 편의상 관련 부처·법령별로 묶어 설명했지만, 정책 수용자 입장에서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를 보면 이런 특징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정부가 잡겠다는 자영업자의 첫 번째 영업비용은 인건비다. 이번 대책에서 여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부분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사업주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마련된 ‘일자리 안정자금’을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1인당 월 13만원에서 15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지원 대상도 늘린다. 현재 30인 미만 사업장뿐 아니라 30∼300인 사업장, 60세 이상 고용 위기지역 근로자, 30인 이상 장애인 직업 재활시설 근로자 등으로 확대한다. 지난해와 올해 잇단 최저임금 두 자릿수 인상 결정으로 불만이 커진 이들을 다독이려는 의도가 담겼다.

두 번째는 임대료다. 이번 대책에는 환산보증금 상향 조정이 포함됐다. 환산보증금이란 자영업자가 상가나 건물을 빌릴 때 건물주에게 내는 보증금과 월세 환산액(월세×100)을 합한 금액이다. 이 금액에 따라 상가 임대차 보호범위가 결정된다. 보호 대상 상가에는 연 5%의 임대료 인상 제한이 있다.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기간도 현재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된다. 현재 서울시의 경우 6억1000만원이면 보호 대상이 된다. 정부는 서울 기준 환산보증금을 30∼50%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상가 임대차 보호대상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출 이자다. 정부가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저금리 대출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기업은행을 통해 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2% 미만의 초저금리 특별대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1조8000억원 규모다. 카드 입금액으로 대출금을 자동 상환하는 특별대출도 2000억원 신규 제공된다. 또 소상공인 대상 지역신보 보증 규모를 올해 19조5000억원에서 내년 20조5000억원으로 확대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도 2조1000억원에서 2조6000억원으로 늘린다. 약 2% 수준인 특별대출로 3000만원을 빌리면 연 39만원,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을 통해 약 2.5% 이자율로 긴급융자자금을 7000만원 대출하면 연 48만원의 이자 부담이 줄어든다.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
네 번째는 세금이다. 공제 혜택을 늘리거나 사업자가 부담하는 준조세 성격의 사회보장비용을 줄여주는 방식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4000억원 증액해 두루누리(국민연금·고용보험료) 최대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일자리 안정자금 대상 건강보험 신규 가입자 보험료를 50% 경감하고 1인 자영업자의 경우 건강보험료를 줄인다. 또 음식점 등이 면세농산물 구입 시 적용하는 의제매입세액공제, 연 매출 10억원 이하 사업자 대상 카드매출 세액공제, 성실사업자의 의료비와 교육비 지출에 대한 15% 세액공제의 한도와 기한을 늘린다. 종합소득 6000만원 이하의 무주택 성실사업자도 월세의 10% 세액공제를 받는 방안도 담겼다.

다섯 번째는 자영업자들이 카드사에 내는 가맹수수료다. 정부는 결제대행업체(PG)를 이용하는 영세·중소 온라인 판매업자에 대한 카드 수수료율을 3.0%에서 매출 규모에 따라 1.8∼2.3%로 인하하기로 했다. PG사를 이용하는 개인택시사업자의 수수료도 1.5%에서 1.0%로 내린다. 또 영세 사업자에 0% 수수료를 작용하는 소상공인 간편결제 ‘제로페이’를 내년까지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이용금액에 대해 40%를 소득공제 한다. 온누리상품권(2조원)과 지역상품권(3000억원) 등 상품권을 ‘제로페이 포인트’로 전환하도록 지원한다. 공무원 복지포인트를 ‘제로페이 전용 포인트’로 지급하고 공공기관의 업무추진비도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언뜻 보면 자영업자를 위한 꽤 많은 방안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현장의 분위기가 차가운 건 일차적으로는 최저 임금 차등 적용이나 카드수수료 인하 등 업계의 핵심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영향이 크다. 정부 대책 발표 후 소상공인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최저임금제도 개선의 직접적 방법인 5인 미만 규모별 소상공인 업종 최저임금 차등화 방안에 대한 대략적인 로드맵 제시도 없는 이번 대책은 본질을 외면한 일시적인 처방”이라고 혹평했다.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 대책에 대해 “편의점주들이 요구 ‘편의점 매출에서 담배 세금 제외’ 등이 반영되지 않은 속 빈 대책에 불과하다”며 “한마디로 언 발에 오줌 누기”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들 일부 자영업 단체·협회의 의견과는 별도로, 현장의 목소리와 통계를 통해 나타나는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자영업자의 영업비용 감소를 통한 연명에만 초점을 맞추고 정작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나 구조조정의 안전망 확충에는 미흡했다는 점이다. 서울 영등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희영씨는 “직원들 월급 늘어난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건 매상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이런저런 지원을 한들 지금처럼 장사가 안 되면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사하는 데 드는 비용을 아무리 줄여봤자 자영업자의 매출 자체가 줄어들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영세 도소매 업체 매출 2년 새 반 토막
8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제도 개선 촉구대회를 열었다. / 사진:연합뉴스
실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분석을 보면 올 1분기 전국 자영업자 한 곳당 월평균 매출은 3372만원으로 지난해 1분기 월평균 3846만원에 비해 12.3%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주요 카드 3사로부터 받은 가맹점 매출액 통계를 기반으로 현금 결제 비중을 반영해 전체 매출액을 추산했다. 중기부는 이 통계에 대해 “소진공의 상권정보시스템은 신용정보회사 나이스(NICE)에서 조사한 매출흐름일 뿐 정확한 소상공인 통계자료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통계청 ‘도소매업조사’에 따르면 직원 5인 미만 도소매 업체의 매출은 2011~2016년 10% 증가했다. 음식점·숙박업의 매출은 31% 늘었다.

하지만 자영업자를 매출 규모를 기준으로 보면 상황이 전혀 다르다. 같은 조사에서 연매출 5000만원 이하 영세 도소매 업체의 전체 매출액은 2016년 3조8000억원으로 2014년 7조8000억원(-51.4%)으로 떨어졌다. 연매출 5000만~1억원 사업자의 변동폭(-47%)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전체 전체 도소매 매출은 25% 증가했다. 도소매 업체 중에서도 연매출 10억원 이하 업체 매출이 감소하는 동안, 매출이 그보다 많은 업체의 매출은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다. 음식점·숙박업 사정도 비슷하다. 같은 기간 연매출 5000만원 업체와 5000만~1억원 업체의 매출이 각각 60%, 50% 줄어드는 동안 1억원 이상 매출 업체의 매출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건 자영업자들의 영업이익이다. 정부의 설명대로 영업비용 증가가 자영업자 소득이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이라면 매출보다 영업비용의 증가폭이 더 커야 한다. 실제 직원 5인 미만 도소매업은 2011~2016년 업체당 매출이 10% 느는 동안 영업이익은 14% 증가했다. 매출 규모를 기준으로 영세 도소매·음식점·숙박업을 보면 이들 업종의 연매출 1억원 이하 업체의 영업비용은 같은 기간 24% 감소했다. 매출 감소폭(-28%)보다 변동폭이 적은 만큼 영업비용 부담이 커진 셈이다. 또 본지가 통계청 서비스업조사를 토대로 2006~2016년 50개 생활밀접업종의 매출과 영업비용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자영업의 평균 매출이 75% 증가하는 동안 영업비용은 112%가 늘었다. 매출보다 영업비용이 훨씬 큰 폭으로 늘면서 평균 영업이익은 25% 감소했다.
 구조조정 안전망 확충하고 대체시장 물색해야
8월 2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기부·기재부·금융위 등 각부처 실무 대표자들이 ‘7조원+α’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단순히 영업비용만의 탓일까. 시각을 바꿔보면 영업비용이 늘어난 게 아니라 매출이 적게 오른 게 문제일 수 있다. 물가나 임금상승으로 인한 영업비용을 따라갈 만큼 매출이 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지금처럼 비용 줄이기에 ‘올인’하는 정부의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당장 이런식의 지원은 오히려 자영업자의 공급 과잉을 부추기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계상황에 놓인 자영업자도 적기에 퇴출하지 못한 채 지원에 의지해 ‘좀비’ 형태로 유지될 수 있는 문제점도 갖고 있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대책은 연명치료를 위한 모르핀 처방은 되겠지만, 그 다음에 와야 할 경쟁력 강화나 자활·재활 방안은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자영업 위기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김영란법’ ‘최저임금’ ‘갑질’ ‘미투운동’ 등 그때 그때의 이슈를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자칫 사회 갈등을 지나치게 키울 수 있다”며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다른 경제 연구기관 관계자는 “구조적 변화로 인해 시장에서는 이미 도소매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며 “자영업자들의 단기적인 요구를 받아서 자잘한 정책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할 게 아니라,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대신 여기서 탈락되는 이들을 흡수할 대체 시장과 안전망을 마련하는 데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자영업자 폐업의 주요 문제점 및 정책적 지원 방안’ 보고서는 “쇠퇴기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상공인재기지원 세부사업(희망리턴패키지, 재창업 패키지)의 확대를 통해 폐업위기의 영세 소상공인이 재창업 시에도 과밀한 업종으로 진입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소상공인 공제 가입확대 및 영세 소상공인 대상 사회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 가입 확대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자영업자의 대표격인 도·소매업과 음식점·숙박업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진의 원인이 다르면 해결책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소매 자영업자의 부진은 온라인쇼핑과 대형마트 등으로 수요가 이동한 영향이 크다. 실제 국내 소매 판매액 중 온라인쇼핑의 비중은 2016년 6월 16.4%에서 올해 6월 23%로 증가했다. 2006~2016년 전체 도소매업 시장 규모는 110% 커졌는데, 여기엔 181% 커진 무점포(전자상거래 등) 업체의 영향이 컸다. 반면 오프라인 소매 점포의 폐업은 늘고 있다. 동네 철물점, 장난감가게, 이불가게가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이런 변화는 국내에서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이미 ‘소매종말’이라는 형태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상이다(관계 기사 34쪽).

이에 비해 음식점·숙박업의 어려움은 온라인 쇼핑 같은 소비패턴 변화보다는 연쇄 효과로 인한 공급 과잉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된다. 도소매 업종에서 폐업하는 이들이 늘고, 다른 업종으로의 진출이 어려워지자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음식·숙박업으로 창업이 몰린 것이다. 더구나 베이비부머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늘어난 자영업자 대다수는 바뀌는 환경에 취약한 장년·노년층이다. 50대 이상 자영업자 비율은 2007년 8월 47.1%에서 지난해 8월 58.9%로 커졌다. 이들 간 차별되지 않은 자영업은 출혈경쟁만을 부추겨 수익성을 떨어뜨린다.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점 수는 2014년 19만개에서 지난해 23만 개로 증가했다. 심지어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 업체도 소매업 부진을 피해 그나마 장사가 된다는 맛집으로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도소매는 ‘소비패턴 변화’, 음식점은 ‘과당 경쟁’
정부가 내놓은 이번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책에는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는 여러 방안이 ‘조용히’ 포함됐다. 다만 투입하는 예산의 규모나 비중을 봤을 때 핵심 대책에서는 벗어나 있다. 정부는 소상공인 교육 등 지원 규모를 내년에 200억원으로 올해의 두 배로 확대한다. 무분별한 창업을 막고 창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사업자등록 이전에 경영·기술 등 창업교육을 지원한다. 판로 지원을 위해 공영홈쇼핑 등에 소상공인 전용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홈쇼핑 입점 수수료도 내년에 기업당 1500만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편의점 과당 출점경쟁 자율 축소를 유도한다. 온누리상품권 발행을 늘리고, 정부와 지자체 구내식당 의무 휴무일을 늘리는 것도 자영업자의 경영개선안에 포함됐다.

자영업자 일부를 노동시장의 편입시키려는 넓은 의미의 구조조정 대책도 담겼다. 전통시장 시설 지원에 3000억원을 투입하고 재창업·재취업 등 재기 지원을 위해 지원금을 올해 115억원에서 400억원으로 늘린다. 자영업자가 근로자로 전환할 때 지원하는 폐업·철거 비용과 대상도 확대한다. 전직 장려 수당은 75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한다.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중위소득 50% 이하)가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시 월 30만원 한도로 3개월 간 구직촉진수당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극심한 취업난이 지속되는 상황이라, 일자리 문제가 얼마나 빨리 개선되느냐에 따라 이 대책의 효과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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