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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스카이캐슬은 ‘옆문’으로 통한다

미국판 스카이캐슬은 ‘옆문’으로 통한다

미국 명문대 초대형 입시비리 … 시험 감독관·코치 감독 매수하고 성적 바꿔치기에 운동경력 위조까지 수법 다양해
윌리엄 싱어는 입시 컨설팅업체를 운영하며 학부모와 대학 관계자 사이의 브로커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12일 미국 사상 최대 규모의 대학 입시비리가 밝혀지면서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그 충격파는 입시준비 업체와 표준시험 관리기관부터 대학 체육 코치, 할리우드, 실리콘밸리, 아이비리그, 대입 관리기관까지 모든 곳으로 전해졌다. 소셜미디어는 말할 것도 없다.

매사추세츠 연방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은 2011년부터 지난 2월까지 부정한 방법으로 예일대학·스탠퍼드대학·캘리포니아대학(LA 캠퍼스) 등 미국 명문대학에 학생들을 입학시키는 데 관여한 혐의로 입시 컨설턴트와 학부모, 학교 관계자 등 50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 대학입학을 둘러싼 만연한 뇌물과 대리시험 등 각종 속임수와 돈세탁이 적발되면서 새로운 의혹과 소문이 잇따르고 있다. 언론 보도와 수치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것을 정리해 본다.

수험생이 입학 요건에 맞는 자격과 실력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앞문’이 있다면, 그런 실력과 자격이 없을 경우 부자 부모를 둔 수험생에겐 ‘뒷문’이 있다. 부모가 대학에 거액을 기부하거나 캠퍼스 건물 건설에 막대한 기여를 함으로써 자녀를 대학에 들여보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옆문’을 통하는 방법도 있다. 불법적인 입학을 가리킨다. 이번에 밝혀진 입시비리의 핵심에는 그 ‘옆문’의 열쇠를 쥔 입시 컨설턴트 윌리엄 싱어가 있다. 싱어는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 소재 입시 컨설팅업체 ‘에지 칼리지 & 커리어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허위로 ‘키 파운데이션(Key Foundation)’으로 불리는 비영리재단을 설립해 입시 브로커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의 그럴 듯한 이름이 ‘옆문’을 여는 열쇠를 의미하는 듯하다.

싱어는 30년 가까이 입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대학 체육 코치 등에게 뇌물을 주고 부정시험을 알선하는 등 다양한 수법으로 숱한 부유층 자녀를 명문대에 들여보냈다. 뉴욕타임스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그가 지난 8년 동안 대학 체육 코치와 직원들, 입학시험 관계자를 매수하기 위해 자신의 가짜 재단을 통해 건넨 뇌물은 무려 2500만 달러(약 280억원)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우선 싱어는 부유층 자녀인 수험생의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미리 매수한 감독관들이 있는 휴스턴과 로스앤젤레스의 특별시험장에서 SAT(미국 대입시험)와 ACT(미국 대학 입학 지원을 위한 시험)를 치르도록 했다. 뇌물을 받은 감독관이 수험생의 답안지를 고쳐 원하는 성적을 받도록 해준 것이다. 법원에 제출된 수사 자료를 보면 싱어는 수험생이 학습장애자를 위한 특별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다면 “ACT는 30점대, SAT는 1400점대를 보장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ACT의 만점은 36점이고, SAT의 만점은 1600점이다. 그 대가로 학부모가 낸 돈은 7만5000달러였다.

뉴욕타임스는 싱어가 이렇게 말했다고 인용했다. “비유하자면 대학 입학에는 ‘앞문’과 ‘뒷문’이 있다. ‘앞문’은 학생이 자신의 실력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뒷문’은 부모의 재력을 이용해 거액을 대학에 기부하고 입학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 두 문을 통한 입학은 전적으로 보장된 게 아니다. 그래서 내가 입학을 완벽하게 보증하는 ‘옆문’을 만들었다. 그처럼 ‘완전 보증’을 제공했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가정이 ‘옆문’에 매력을 느꼈다.”
사진:GETTY IMAGES BANK
특히 명문대학 체육 코치들이 거액을 받고 유명인사 자녀들을 체육특기생으로 부정 입학시킨 것으로 드러나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뉴욕타임스는 입시 뇌물과 관련된 대학 스포츠 코치들이 파면되거나 정직됐다고 전했다. “스탠퍼드대학은 지난 3월 12일 요트팀 코치 존 벤더모어를 해직했다고 밝혔다. 텍사스대학(오스틴 캠퍼스)은 남자 테니스팀 코치 마이클 센터가 정직처분을 받았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선 육상팀의 도나 하이넬 부감독과 조반 바빅 폴로팀 코치가 파면당했다. 연방검찰에 따르면 하이넬 부감독은 130만 달러 이상의 뇌물을 받았고 바빅 코치는 25만 달러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주에서 발행되는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 신문은 실리콘밸리가 있는 베이 에어리어 주민 여러 명이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는다고 보도했다. 유명대학 여자배구팀과 수구팀에 자녀를 입학시키려고 뇌물을 준 사람도 있고, ACT 점수를 36점 만점에 34점으로 조작한 경우도 있으며, 운동 특기 수험생의 소속팀과 수상 경력을 지어내는 등 프로필이 조작된 경우도 발각됐다. 수험생이 스포츠 활동에 참여한 것처럼 사진을 위조하거나,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진짜 운동선수의 사진에 수험생 얼굴을 합성하기까지 했다.

기소된 학부모 중에는 할리우드 배우도 두 명 포함됐다. ABC 방송 인기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 출연한 펠리시티 허프먼과 시트콤 ‘풀하우스’에 나온 로리 러프린이다. 허프먼은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그녀의 변호사는 “허프먼은 이 문제 때문에 도주해 국제적인 도망자가 될 사람이 절대 아니다”고 폭스 뉴스에 말했다.

러프린은 패션 디자이너인 남편과 함께 두 딸을 서던 캘리포니아대학 조정팀에 넣어주는 대가로 입시 브로커에게 찬조금으로 가장한 사례금 50만 달러를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러프린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브로커에게 발송된 이메일 등을 증거로 확보했다고 말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에 들어간 러프린의 딸 올리비아 제이드 지아눌리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수백만 명의 구독자와 팔로워가 있는 소셜미디어 스타로도 유명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이니셜을 따 OJ로 알려진 그녀는 대학입학 체험기와 일상생활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큰 인기를 끌었다.

- 스콧 맥도널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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