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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인 위치는 운명 아니다”

“지리적인 위치는 운명 아니다”

잦은 사이클론의 피해에 시달리던 방글라데시, 조기경보·대피 시스템 구축으로 기후변화 대응의 모범 사례에 꼽혀
지난 5월 4일 사이클론 파니가 닥쳤을 때 방글라데시는 조기경보와 신속한 대피로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 사진:EPA/YONHAP, XINHUA/YONHAP
지리는 운명이라는 말이 있다. 열대·아열대 지역에 속하는 방글라데시는 1970년 기록상 가장 치명적인 열대성 저기압인 사이클론 볼라의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사망자가 30만~50만 명에 이르렀다. 1991년 또 다른 극심한 사이클론이 방글라데시를 강타하면서 1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브라마푸트라 강과 갠지스 강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삼각주 저지대에 위치한 나라로 가난하고 인구가 많은 방글라데시는 주기적으로 무자비한 자연의 힘으로 파괴되도록 운명지어진 듯했다.

그러나 지난 5월 초 위력이 막강한 사이클론 파니가 방글라데시를 강타했을 때는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사망자가 12명뿐이었다. 더 정확한 예보와 개선된 대피 시설 덕분에 160만 명이 사이클론이 닥치기 전에 안전하게 대피했다. 방글라데시는 지리적인 위치든 다른 무엇이든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지구온난화가 가져올 것이 분명한, 더 맹렬하고 더 잦은 사이클론의 맹습에 대비했다는 말이다. 그 과정은 자연재해에 취약한 전 세계의 해안 지역사회에 소중한 교훈을 준다.

지역사회를 대비시키고 참여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주민들은 처음엔 최초 대응자로서, 그 다음엔 폭풍과 홍수에 좀 더 잘 견딜 수 있는 주택과 공동 시설의 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갈수록 잦아지는 사이클론에 맞서는 이런 필수적인 대응 과정에서 각계각층이 참여할 때만이 큰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그런 믿음의 첫 결과물이 2009년 마련된 ‘방글라데시 기후변화 전략과 행동 계획’이다. 국가 차원으로는 방글라데시 최초의 대응 전략이다. 방글라데시는 지금까지 약 5억 달러를 식량 안보부터 저탄소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치에 지출했다. 이 계획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자연재해 조기경보 시스템이다. 경보를 통해 해안 지역 주민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다.또 방글라데시 삼각주의 농민이 토양의 염도 증가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저지대 국가의 당면한 위험은 해수면 상승이다. 바닷물이 식수 우물과 지하 대수층, 경작지에 침투하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는 농민이 염분에 강한 벼를 재배하도록 돕고, 염도가 아주 높은 곳에서는 벼 경작 대신 새우 양식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해수면 상승에 대응했다. 아울러 해안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맹그로브 숲을 복원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방글라데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정부 단일 부처의 소관이 아니라 정부 전체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기후 재정 체계가 처음 발표된 2014년 이래 기후변화 대응은 농무부, 주택부, 에너지부를 포함해 방글라데시 정부 20개 부처에 골고루 할당됐고, 그에 따른 예산도 책정됐다.

방글라데시가 기후변화 대응에 지출하는 자금의 70% 이상은 국내에서, 나머지는 개발 파트너들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방글라데시가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훨씬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방글라데시는 해수면 상승에 매우 취약해 인구 중 약 3분의 1이 집을 잃을 위험이 있다.

방글라데시는 염분 관리 시스템을 강화하고 사이클론에 견딜 수 있는 주택을 건설하기 위한 기술과 전문 지식이 절실한 상황이다. 또 기후변화 대응 솔루션과 기법에 관한 지식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방글라데시는 그 문제와 관련해 가르쳐 줄 것도 많지만 비슷한 문제를 겪는 다른 나라의 경험을 통해 많은 점을 배우기 원한다. 아울러 방글라데시는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 지원도 더 많이 필요하다. 지난해 방글라데시 고등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연간 30억 달러가 있어야 다. 현재 이 분야의 지출은 연간 13억 달러다. 따라서 매년 17억 달러가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고소득 국가는 그렇지 않은 국가를 돕기 위해 기후기금에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 선진국들이 내년까지 개도국의 기후 재정 지원을 위한 ‘녹색기후기금’으로 1000억 달러를 모으기로 동의했지만 2017년까지 모금된 기금은 545억 달러였다. 현재 진행 중인 그 기금의 보충 작업은 공적 자원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한 필수적인 방편이다. 지난 7월 9~10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열린 ‘기후변화 글로벌 위원회(GCA)’ 회의에서 논의된 사안 중 하나가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이번 회의는 개도국에서는 처음 열렸다.

방글라데시는 소득이 낮은 지역사회가 기후변화 대응에서 가장 혁신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사례다. 이제 방글라데시는 지금까지 얻은 소중한 교훈으로 세계 여타 지역도 지구에 닥친 새로운 기후 현실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 반기문, 셰이크 하시나



※ [필자 셰이크 하시나는 방글라데시 총리이며, 반기문은 8대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고 현재 ‘기후변화 글로벌 위원회(GCA)’의 위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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