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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K바이오] 악재 수두룩하지만 희망도 보인다

[위기의 K바이오] 악재 수두룩하지만 희망도 보인다

‘인보사 사태’와 잇단 임상 실패로 홍역… 정부 컨트롤타워 구성 눈앞, 벤처캐피털 투자 급증



한국의 바이오산업을 지칭하는 ‘K바이오’는 높은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으면서 수년간 시장을 달궜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올 들어서다.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 신라젠 등의 임상 실패,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논란 장기화까지 악재가 겹겹이 쌓였다.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 속에 바이오 기업 주가는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성장통을 잘 극복하면 위기가 새로운 기회가 될까. 국내 벤처캐피털의 바이오 기업 투자는 여전히 늘고 있고 정부도 범부처 컨트롤타워를 구성해 신약 개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사진:© gettyimagesbank
‘-16조1091억원.’ 국내 증시에 상장된 주요 제약·바이오주의 지난해 말 대비 올 상반기 시가총액 감소분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헬스케어 테마 종목 73개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132조9186억원에서 올 상반기 116조8095억원으로 급감했다. 바이오주가 급락한 영향이 컸다. 같은 기간 코오롱생명과학(-72.5%), 파미셀(-33.4%), 신라젠(-28.8%), 삼성바이오로직스(-18.5%) 등이 맥없이 떨어졌다. 이들 주가는 8월 들어서도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바이오 기업 주가 급락
바이오주를 둘러싼 각종 악재가 쏟아졌다. 코오롱생명과학이 바이오 업계를 흔들었다. 국내 첫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에 종양 유발 가능성이 있는 신장세포가 포함된 사실이 지난 5월 밝혀지면서다. 수술 없이 무릎 관절에 주사를 놓아 치료할 수 있는 혁신적인 신약으로 여겨진 제품이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보사의 품목허가를 7월 최종 취소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식약처의 처분을 잠정 중단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법원은 8월 13일 이를 기각했다. 성장성이 부각되면서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2위까지 올랐던 신라젠 역시 추락했다. 난항 논란 속에도 미국에서 임상시험 마지막 단계인 3상까지 진행했던 면역 항암제 ‘펙사벡’이 현지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로부터 8월 2일(현지시간) 임상 중단 권고를 받은 후폭풍이 거셌다. 신라젠 주가는 이후 3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 회사 문은상 대표가 직접 임상 과정과 계획을 설명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펙사벡 여파로 임상 결과 발표를 앞둔 다른 바이오 기업에 대해서도 우려가 교차했다.

이보다 앞선 6월에는 코스닥 상장사 에이치엘비도 고배를 마셨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표적 항암제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임상 3상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삼성그룹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한때 코스피 시가총액 3위까지 올랐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 의혹에 휩싸여 고전하고 있다. 올 들어 회사 관계자 일부가 분식회계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태한 대표는 가까스로 구속을 면하기도 했다. 이런 영향으로 지난해 말 25조원대였던 시가총액은 8월 14일 기준 19조원대로 빠졌다.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통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주로 개발하고 있어 코스닥 바이오 기업처럼 신약 리스크에 휘말릴 확률은 낮다. 그러나 분식회계 의혹 수사로 회사 전체가 뒤숭숭한 가운데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애브비를 비롯한 글로벌 제약사의 저가 공세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기술수출이나 해외 판매 허가 사례가 늘었는 데도 한국 바이오산업을 가리키는 ‘K바이오’의 위기설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무건전성·현금창출력 등도 재정비 필요
전문가들은 흐트러진 K바이오의 전열을 서둘러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바이오 기업의 신약 개발 능력을 두고 의구심이 증폭된 상황”이라며 “임상 성공 가능성뿐 아니라 사업화 성사 여부,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현금창출력 등을 고루 되짚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모 연구기관 소속 바이오 전문가는 “K바이오는 수년간 고속성장하면서 시간에 쫓겨 기술력에 세밀함을 더하는 데 소홀해진 관행이 있었다”며 “몇몇 사례로 한계가 드러났으니 차제에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국내 바이오 기업을 둘러싼 우려는 과도하며, K바이오 전반의 장기 성장성은 유효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크게 다섯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K바이오의 선봉장 격인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호재가 있다. 글로벌 대형 바이오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잇따를 예정이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의 대장암 치료제 ‘아바스틴’이 지난 7월 미국에서 특허가 만료된 데 이어 내년 1월 유럽 특허도 끝난다. 연매출만 8조원에 이르는 블록버스터급 제품이다. 역시 시장성이 큰 황반변성 치료제 ‘루센티스(스위스 노바티스, 내년)’와 희귀질환 치료제 ‘아일리아(미국 알렉시온, 2021년)’도 특허 만료를 앞뒀다. 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삼천당제약 등이 이들 제품의 바이오시밀러를 만들어 각각 임상을 진행했고 기술수출에 나서고 있어 분위기 반전 카드로 꼽힌다.

K바이오가 규모의 경제에서 경쟁국 대비 우위를 점한 것도 경쟁 격화 추세에서 방어막이 될 전망이다. 주요 바이오 기업이 밀집한 인천 송도국제도시는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 기지로 꼽힌다. 2030년 바이오클러스터로 확대 조성까지 예정됐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규모의 경제는 효율성으로 직결돼 언제든 위기를 기회로 바꿀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생산 설비가 부족한 해외 경쟁사들은 한국에 위탁생산(CMO)을 맡기고 있다. K바이오는 위탁생산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한편, 마케팅 강화로 시장점유율 확대를 노릴 수 있다.

K바이오 위기의 진원지인 바이오 신약 분야에선 벤처캐피털(VC)이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의 바이오·의료 분야 신규 투자액은 2017년 3788억원에서 지난해 8417억원으로 급증했다. 악재가 잇따른 올해도 투자는 늘었다. 올 상반기까지 5233억원을 기록했다. 벤처캐피털의 신규 투자액은 연간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에서 K바이오의 성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의 고강도 지원책도 호재다. 정부는 최근 사실상 첫 컨트롤타워 구성 초읽기에 들어갔다. 2021년부터 10년간 총 3조5000억원 규모로 추진하는 범부처 개념의 바이오신약 연구·개발(R&D) 통합 지원 프로젝트다. 올 들어 특히 신약 개발에서 한계를 보인 K바이오의 장기 성장을 국가적으로 지원한다는 청사진이다.
 정부, 바이오 신약 R&D 적극 지원 방침
신약 R&D 경쟁력 강화가 K바이오의 장기적 성공으로 직결될 전망이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는 관련 없음.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7월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범부처 ‘국가신약개발연구사업’ 기획 공청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어 8월 초순 계획안 수립을 확정했고, 국가재정법에 따른 예비타당성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예비 타당성조사는 조만간 통과될 전망이다.

사업 기획 총괄위원장을 맡은 정성철 이화여대 의대 생화학교실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 등이 산발적으로 운영하던 바이오산업 지원 체계를 하나의 컨트롤타워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라며 “바이오시밀러가 아닌 신약 R&D만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바이오의약품은 크게 신약과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로 나뉜다.

이보다 앞서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과학기술정보통신 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 전신은 재단법인을 세우고 지금과 비슷한 ‘범부처 전주기 신약개발사업’을 운영한 바 있다. 7년간 기술이전액 7조3600억원(43건)을 달성하는 성과를 냈지만 범부처 사업이라는 타이틀과는 달리 부처별로 집중 지원한 세부 분야가 달라 ‘바이오산업에서 유기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이 사업은 내년 9월 종료될 예정이어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이어받을 신사업 기획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 교수는 “지금껏 신약 개발에서 기초 R&D는 과기정통부, 사업화 인프라 구축은 산업부, R&D 컨설팅은 복지부가 맡는 식으로 부처별 칸막이가 있었다”며 “앞으로는 범부처 컨트롤타워에서 좀 더 효율적으로 사업을 지원하도록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바이오시밀러가 지원 대상에서 빠진 이유는 국내 바이오시밀러 R&D와 생산이 셀트리온·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대기업 주도로 이뤄진다고 봐서다. 이보다 신약 개발에 몰두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중견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기존 범부처 사업단의 투자심의위원회처럼 장점이 많은 조직은 그대로 흡수해 활용할 방침이다. 전체 인력 구성 방안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비임상·임상·사업화 등 분야별로 ‘전문성 강화’라는 기조를 이어갈 계획이다. 정부에서 연구비로 2조4000억원, 민간에서 1조1000억원을 각각 투입해 10년간 운영한다.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2상까지 감염성 질환과 치매를 제외한 전 질환이 지원 대상이다. 임상 최종 단계인 3상 지원 여부에 대해 정 교수는 “국내 시판 때는 문제가 없지만 수출 때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될 가능성이 있어 3상 지원은 배제하기로 했다”며 “3상에서 중요한 개념이 상업성인데, 이런 민간의 영역을 국가가 지원하면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5월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충북 오송에서 직접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하면서 K바이오 육성 의지를 보였다. 2025년까지 바이오헬스 전 분야의 연간 R&D 비용을 4조원 규모로 늘려 연 수출액 500억 달러를 이룬다는 목표치를 제시했다. 다만 최근까지 K바이오에서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제2의 ‘인보사 사태’나 임상 실패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가 후속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업계 숙원이던 첨생법 3년 만에 국회 통과
마지막으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과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첨생법)’이라는 호재다. 8월 2일 업계 숙원이던 첨생법이 3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신약 심사의 기간 단축과 절차 간소화로 기존 최장 15년 걸리던 신약 개발 기간이 줄어들 전망이다.

위기의 K바이오는 이런 호재를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남은 것은 업계의 분투다. 특히 기업들은 최근 차별화 전략으로 경쟁력 강화와 위기 탈출을 노려 주목된다. 예컨대 셀트리온은 기존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를 피하주사(SC)제형으로 바꿔 새로 개발한 ‘램시마SC’로 해외 판매 허가를 앞뒀다. 램시마 자체는 미국 존슨앤드존슨이 만든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이지만, 램시마SC는 일종의 바이오베터(기존 신기자약을 업그레이드한 약)다. 병원에서 정맥주사로 2시간 투여했던 약 성분을 환자가 집에서 2분간 직접 투여할 수 있다. 이건혁 셀트리온 팀장은 “자가 주사법을 선호하는 환자 수요를 반영해 개발한 제품”이라며 “환자 편의성과 제품 확장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구자용 DB금융투자 연구원은 “SC제형과 같은 바이오베터가 K바이오 경쟁력 강화의 첨병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제품 차별화가 위기 극복의 중요한 열쇠”라고 덧붙였다.
 [박스기사]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 인터뷰 | “신약 개발 중 임상 디자인에도 공 들여야”
‘K바이오 위기론’을 바이오 산업 현장에선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바이오협회의 이승규(58·사진) 부회장은 “위기라면 위기지만, 더 냉정히 봐야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의 말은 이렇다. “5년 전만 해도 K바이오는 어떻게든 라이선싱 아웃(기술수출)을 해내자는 게 목표였다. 요즘은 스타트업이 2000억원대 규모의 기술수출도 한다. 증시에서의 과대평가 문제는 따져봐야 하지만 산업 자체는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위기론의 중심엔 신약 임상 3상 단계에서 고배를 마신 일부 기업이 있었다. 아쉬워도 아주 충격적인 결과까지는 아니라는 게 이 부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해외에서도 3상에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받는 경우는 전체의 약 62%뿐”이라며 “신약 개발 경험이 풍부하더라도 3상에서 주저앉는 경우가 많은데 경험이 부족한 K바이오는 15~20%의 확률만 기록해도 훌륭한 성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어떻게 성공 확률을 높이느냐다. 이 부회장은 전략적 접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지금 K바이오는 좋은 신약 후보물질을 찾아서 특허를 내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물질만 좋다고 임상을 통과하는 건 아니다”라며 “해외 선진 기업들은 3상으로 갈수록 ‘임상 디자인’에도 많은 공을 들이는데 K바이오도 그런 면에 힘쓸 시점이 됐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개발한 신약에 최적화한 질환을 앓는 환자를 잘 선별해서 모집하거나 ▶해당 신약을 잘 다룰 수 있는 병원을 파악해 택하는 것 등을 임상 디자인이라고 한다. 신약 효능의 최대치가 나올 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임상 디자인에 성공할수록 임상 통과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임상수탁기관(CRO)을 신중하게 골라 선진국처럼 체계적으로 육성할 필요도 있다. 최적의 임상 환경을 구축하려면 경험이 풍부한 전문 인력의 도움이 필수여서다. 이 부회장은 “정부 지원과 벤처캐피털 투자 확대로 좋은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업계가 경험 부족이라는 약점만 보완하면 승산은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국내 대표 바이오 기업 외에도 한미약품을 비롯한 대형 제약사까지 350여 업체를 회원사로 뒀다. 이 부회장은 연세대 공대 석·박사, 일본 도쿄공대 연구원을 거쳐 바이오 신약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해 13년간 운영했던 현장 전문가다. 2012년 협회에 합류해 정부 산하 스마트헬스정책자문단 자문위원과 바이오특별위원회 민간 전문가로도 활동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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