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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위기’에 빠진 미국 캘리포니아] 집값 급등에 저소득층 재정파탄

[‘홈리스 위기’에 빠진 미국 캘리포니아] 집값 급등에 저소득층 재정파탄

IT기업 덕에 재정흑자, 낮은 실업률에도 홈리스 증가... 지역사회 혐오 등 사회문제 발생
사진:© gettyimagesbank
미국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가 지난 1월 15일(현지시간) 종가 기준으로 사상 처음 2만9000을 돌파했다. 지난해 11월 2만8000을 돌파한 지 고작 두달 만이다. 뿐만아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나스닥 지수도 사상최고치를 연일 갱신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는 2.3%로 한국(2.0% 내외)보다 높다. 미국의 호황은 11월 대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위해 경제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란 듯 트윗에 “(증시호황을)즐겨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처럼 미국인들은 초호황을 즐기고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뉴욕타임즈, 더가디언, 워싱턴포스트, NBC, 월스트리트저널 등에는 연초부터 ‘홈리스’라는 단어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특히 미국 최고의 경제권인 캘리포니아주에서 ‘홈리스 위기’라는 기사가 쏟아진다. 로스앤젤레스, 새너제이,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가 자리한 캘리포니아주는 GDP 규모 세계 5위에 달하는 거대 경제권으로 ‘골든 스테이트’라 불린다.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엔비디아, 우버 등 글로벌 IT기업이 몰려있어 이번 증시 폭등의 대표적 수혜지역이다.

하지만 가디언 미국판에 따르면 2019년말 새너제이의 홈리스는 전년 대비 무려 42%가 증가했다. 인근 오클랜드는 47%, 새크라멘토 카운티는 52% 증가했다. 로스앤젤레스(LA)는 16% 증가해 홈리스 숫자가 3만6000명을 넘어섰다. 샌프란시스코도 두자릿 수로 증가했다. 캘리포니아주 전체 홈리스는 15만명을 넘었다. 미국 홈리스 5명 중 1명이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셈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홈리스 위기는 실제하는 긴급상황”라고 밝혔다.
 시설·청소·운전 종사자 내몰려 텐트, 캠핑카 거주
부자동네 캘리포니아에 유독 집없는 사람이 넘쳐난 이유는 무엇일까. 온화한 기후와 관광객을 꼽는 시각도 있지만 근본 원인은 집값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글로벌 IT기업이 몰려들면서 고연봉을 받는 사람들이 급증했고, 이들이 거주지를 찾으면서 집값이 폭등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저금리와 만성적인 신축주택 부족은 집값 거품을 부채질했다. 집값은 임대료도 끌어올렸다.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면서 그대로 홈리스가 됐다.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10명 중 7명은 원래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뉴섬 주지사는 NBC와의 인터뷰에서 “홈리스 위기의 근원은 높은 주거비”라며 “주정부 재정흑자, 낮은 실업률, 높은 기업가정신에도 불구하고 주거비가 너무 뛰면서 저소득층이 재정파탄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부동산협회 데이터를 보면 샌프란시스코의 중위가격 집값은 170만 달러. 한화로 20억원 정도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가구의 17%에 불과하다. 한 사람이 집을 사면 세 사람이 홈리스가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우리 식의 원룸도 월세가 2000달러(230만원)에 달한다.

캘리포니아 홈리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직장을 갖고도 거리에 와앉게 된다는 데 있다. 연간소득 2만5000달러(연 2900만원)가 되지 않는 글로벌 기업의 시설유지, 청소·운전 등 지원 인력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비영리단체인 캘리포니아 주택파트너십에 따르면 임대료 상승에 따라 저소득자가 감당할 주택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데, 140만 가구가 잠재적인 홈리스 위험에 빠져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미 이들 중 상당수는 거리의 텐트, RV나 캠핑카 안에 거주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공원의 대규모 야영장에 장기주차된 상당수의 캠핑카에는 홈리스가 산다는 얘기다. 이들 중에는 시간제 강사, 목사, 예술가 등도 있다.

홈리스 증가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홈리스들이 화장실을 찾지 못해 길거리에 ‘실례’를 하면서 위생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다가 전염병이 도는 게 아니냐”는 주민의 불만이 빗발치자 샌프란시스코시는 ‘배변 순찰대(Poop Patrol)’를 만들어 노상방뇨를 치우고 있다. 술과 마약에 중독된 홈리스들이 증가하면서 치안 우려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에 대한 지역사회의 혐오도 증가추세다. LA타임즈에 따르면 지난해 ‘집’있는 주민이 홈리스에게 가연성 물질이나 폭발물을 던진 사건은 최소 8건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대규모 야영지인 스키드로우 텐트에 살던 뮤지션 라렐 필드(62)씨는 방화로 추정되는 불에 사망했다. 주민들이 RV 주차를 막기위해 콘트리트 장벽을 설치하거나 텐트 치는 것을 막기 위해 보를 설치한 사례도 있다.
 대선 앞둔 트럼프 ‘강제이주’ 카드 만지작
캘리포니아주의 부담도 급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2018년 홈리스 긴급구호를 위해 5억 달러(5800억원)를 썼고, 장기 임대주택 건설에 40억 달러(4조6000억원), 정신질환이 있는 홈리스의 주거지원에 20억 달러(2조3000억원)를 쓰기로 결정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올해만 홈리스의 임대료와 의료비 지원에 14억 달러(1조6000억원)를 쓸 예정이다.

캘리포니아주는 반 트럼프 기류가 강한 곳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은 곱지 않다. 최고의 고속도로, 최고의 빌딩, 최고의 거리가 홈리스로 인해 가로막히는 것을 허용한다며 캘리포니아주를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가 홈리스 대책에 실패할 경우 중앙정부가 개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다. 행정명령을 통해 도심 내 야영지를 없애고, 홈리스를 연방시설로 강제로 이송시키는 방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연말 트윗을 통해 “(캘리포니아주는) 홈리스 대책을 정리하거나 중앙정부 대책에 협조하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홈리스를 강제이주 시키는 것은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캘리포니아 법원은 ‘정부가 충분한 보호소를 설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홈리스들을 범죄시 해서는 안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연방정부는 이미 홈리스 수용지를 물색하기 위해 미국 서부해안지역을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홈리스 대책 실패를 민주당의 실정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2020년 대선을 앞둔 정치적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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