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한국의 ‘원격의료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한국의 ‘원격의료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들
수가와 의료전달체계부터 현실화해야… 막연한 사업성 기대는 금물 “원격의료 도입 주장이 ‘원격의료와 관련한 모든 것을 허용한다’를 전제로 한다면, 저는 반대 입장입니다.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한걸음씩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의료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해 보수적이고 정밀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재점화된 원격의료 도입 논란에 대해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 대표파트너는 이렇게 말했다. 최 대표는 미래의료학자이자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로 꼽힌다. 그가 설립한 DHP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스타트업을 엑셀러레이팅하고 투자한다. 투자한 회사 중엔 원격의료 관련 스타트업도 있다.
기업가로서 입장은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그는 오히려 ‘보수적인 접근’을 강조했다. 물론 원격의료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원격의료를 포함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전반에 ‘규제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원격의료 관련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최 대표는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원격의료를 전면적이고, 명시적으로 금지한 유일한 나라”라고 말했다. 국내 의료법 34조에 따라 한국에서는 의료인 간 원격의료만 가능하고,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는 불법으로 규정돼 있다. 다만 그는 ‘갈라파고스 규제이므로 이를 깨부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외국에선 합법인데, 한국은 왜 불법이냐, 불합리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라며 “모든 국가의 의료체계는 제각기 특수성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다른 규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료제도에 대한 논의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특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장 큰 특수성은 수가제도다. 우리나라에서 의료 서비스 가격은 정부가 정하고 병원은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됐다는 의료계의 불만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의료전달체계가 유명무실한 것도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눈에 띄는 특징이다. 가벼운 감기에도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어 동네병원이 종합병원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불거진 ‘원격진료’라는 거대 이슈는 의사들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최 대표는 “원격의료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되레 기자에게 물었다. 실제 원격의료가 무엇이냐는 논의에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는 무궁무진하다. 전화나 채팅 등을 통해 의사의 소견을 받을 수도 있고, 환자가 손목에 찬 웨어러블 장치에서 전송되는 데이터를 의사가 받아 진단할 수도 있다. 먼 지역의 의사가 원격 로봇을 조종해 수술을 하는 것도 원격의료다.
진행과정도 다양해 의료전달체계에 따라 1차 병원만 진료하게 할 수도 있고, 초진부터 원격으로 하는 것과 재진부터만 허용하는 것도 큰 차이가 있다. 변수가 더해지면 상황은 훨씬 다양해진다. 언론 등에선 해외사례를 언급하며 원격의료가 허용된 곳과 제한적으로 허용된 곳 등으로 구분하는데, 나라마다 허용 수준은 모두 다르고 심지어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최 대표는 “우리나라는 원격의료에 대해 제 각기 다른 그림을 머릿속에 놓고 이를 뭉뚱그린 채 논의하다보니 한 발짝도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논의하려는 원격의료의 정의와 허용범위를 우선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격의료에 대한 첫 발은 이해관계자들 간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누가,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어떻게 제공할 지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을 정하는 게 논의의 시작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현재의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해관계 조율에 대한 노력”이라며 “원격의료에 앞서 수가제도와 의료전달체계의 개선을 논의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월 정부가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며 사용한 ‘비대면 진료’라는 개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비대면 진료나 이전에 사용한 유헬스케어 등의 정체불명의 용어들은 원격의료의 본질을 다루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원격의료와 관련해 또 다른 측면에서 고민해볼 문제도 있다. 비즈니스로서 원격의료가 우리나라에서 사업성이 있느냐다. 의료는 산업이자 복지다. 의료취약자의 복지를 위해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것이라면 사업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려는 원격의료가 디지털 뉴딜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은 ‘산업 육성’의 맥락 속에서 원격의료가 논의되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최 대표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원격의료가 시장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미국 텔레닥과 같은 원격의료 플랫폼 회사가 우리나라에서 높은 사업성을 가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업성이 있으려면 환자 한 명당 벌어들이는 수익이 기존보다 늘어나거나, 보다 많은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한국의 의료시스템 안에선 이 두 가지 모두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환자당 수익을 늘리는 것은 의료 수가가 높아지거나, 국민건강보험이 영리화 혹은 다자화 되거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는 등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뒤집는 수준의 변화가 모두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는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진료 예약과 병원 방문이 어려운 해외와 달리 우리는 지근거리에 언제든 갈 수 있는 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 소비자들이 원격 의료를 선호할 지도 확실치 않다. 최 대표는 “의료접근성이 낮은 미국에서도 원격진료를 경험해본 환자는 10% 수준에 그친다”며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더라도 대면진료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사업성 높은 모델이 만들어 질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미국의 힘스(Hims)와 같은 ‘제한적 박리다매’ 모델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힘스는 탈모, 발기부전 등과 같이 제한적인 질병만을 진료·처방하는 방식이다. 환자가 병원에 가기 꺼려하거나 진단 및 처방이 비교적 명확한 질병만을 다룬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려면 ‘원격의료’가 상당히 넓은 의미로 허용돼야만 가능하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원격 2차 소견’등의 사업도 사업성이 있을 수 있지만 이른바 ‘닥터 쇼핑’에 남용될 우려가 있다. 최 대표는 “정부가 산업적 측면에서의 막연한 기대를 바탕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장려한다면 원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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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재점화된 원격의료 도입 논란에 대해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DHP) 대표파트너는 이렇게 말했다. 최 대표는 미래의료학자이자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로 꼽힌다. 그가 설립한 DHP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스타트업을 엑셀러레이팅하고 투자한다. 투자한 회사 중엔 원격의료 관련 스타트업도 있다.
기업가로서 입장은 ‘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그는 오히려 ‘보수적인 접근’을 강조했다. 물론 원격의료를 허용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원격의료를 포함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전반에 ‘규제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원격의료 관련 논의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해관계 조율 없으면 한 발도 못나가
의료제도에 대한 논의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특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장 큰 특수성은 수가제도다. 우리나라에서 의료 서비스 가격은 정부가 정하고 병원은 따라야 한다. 그런데 이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됐다는 의료계의 불만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의료전달체계가 유명무실한 것도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눈에 띄는 특징이다. 가벼운 감기에도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어 동네병원이 종합병원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불거진 ‘원격진료’라는 거대 이슈는 의사들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최 대표는 “원격의료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되레 기자에게 물었다. 실제 원격의료가 무엇이냐는 논의에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는 무궁무진하다. 전화나 채팅 등을 통해 의사의 소견을 받을 수도 있고, 환자가 손목에 찬 웨어러블 장치에서 전송되는 데이터를 의사가 받아 진단할 수도 있다. 먼 지역의 의사가 원격 로봇을 조종해 수술을 하는 것도 원격의료다.
진행과정도 다양해 의료전달체계에 따라 1차 병원만 진료하게 할 수도 있고, 초진부터 원격으로 하는 것과 재진부터만 허용하는 것도 큰 차이가 있다. 변수가 더해지면 상황은 훨씬 다양해진다. 언론 등에선 해외사례를 언급하며 원격의료가 허용된 곳과 제한적으로 허용된 곳 등으로 구분하는데, 나라마다 허용 수준은 모두 다르고 심지어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최 대표는 “우리나라는 원격의료에 대해 제 각기 다른 그림을 머릿속에 놓고 이를 뭉뚱그린 채 논의하다보니 한 발짝도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논의하려는 원격의료의 정의와 허용범위를 우선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격의료에 대한 첫 발은 이해관계자들 간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누가, 누구에게, 언제, 무엇을, 어떻게 제공할 지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을 정하는 게 논의의 시작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현재의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이해관계 조율에 대한 노력”이라며 “원격의료에 앞서 수가제도와 의료전달체계의 개선을 논의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월 정부가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허용하며 사용한 ‘비대면 진료’라는 개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비대면 진료나 이전에 사용한 유헬스케어 등의 정체불명의 용어들은 원격의료의 본질을 다루는 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원격의료와 관련해 또 다른 측면에서 고민해볼 문제도 있다. 비즈니스로서 원격의료가 우리나라에서 사업성이 있느냐다. 의료는 산업이자 복지다. 의료취약자의 복지를 위해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것이라면 사업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려는 원격의료가 디지털 뉴딜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은 ‘산업 육성’의 맥락 속에서 원격의료가 논의되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원격의료가 높은 사업성을 갖기는 어려울 것”
사업성이 있으려면 환자 한 명당 벌어들이는 수익이 기존보다 늘어나거나, 보다 많은 환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한국의 의료시스템 안에선 이 두 가지 모두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환자당 수익을 늘리는 것은 의료 수가가 높아지거나, 국민건강보험이 영리화 혹은 다자화 되거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는 등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을 뒤집는 수준의 변화가 모두 일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는 정부가 가격을 결정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진료 예약과 병원 방문이 어려운 해외와 달리 우리는 지근거리에 언제든 갈 수 있는 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 소비자들이 원격 의료를 선호할 지도 확실치 않다. 최 대표는 “의료접근성이 낮은 미국에서도 원격진료를 경험해본 환자는 10% 수준에 그친다”며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더라도 대면진료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사업성 높은 모델이 만들어 질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미국의 힘스(Hims)와 같은 ‘제한적 박리다매’ 모델이라면 가능성이 있다. 힘스는 탈모, 발기부전 등과 같이 제한적인 질병만을 진료·처방하는 방식이다. 환자가 병원에 가기 꺼려하거나 진단 및 처방이 비교적 명확한 질병만을 다룬다.
하지만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려면 ‘원격의료’가 상당히 넓은 의미로 허용돼야만 가능하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원격 2차 소견’등의 사업도 사업성이 있을 수 있지만 이른바 ‘닥터 쇼핑’에 남용될 우려가 있다. 최 대표는 “정부가 산업적 측면에서의 막연한 기대를 바탕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장려한다면 원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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