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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없는 한국거래소의 책임 논란] 돈 벌 땐 사기업, 권한 행사는 공공기업

[경쟁 없는 한국거래소의 책임 논란] 돈 벌 땐 사기업, 권한 행사는 공공기업

상장심사는 부실, 상폐심사는 대마불사 논란... “독점이 문제, 대체 거래소 필요” 지적도
코스닥 상장사 신라젠의 상장폐지 심사를 앞두고 한국거래소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신라젠 주주들은 신라젠이 상장할 때 문제없다고 판단했던 거래소가 인제 와서 상장폐지 여부를 다시 심사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나’ 하는 지적이다.

신라젠은 기술특례 제도를 통해 2016년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바이오 기업이다. 면역항암제 후보물질 ‘펙사벡’의 개발 기대감이 커지면서 2017년 코스닥시장에서 시가총액 기준 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당시 시가총액은 5조원을 웃돌았다. 그러나 2019년 펙사벡의 임상중단 사실이 알려지며 주가가 급락했고, 문은상 전 대표를 비롯한 전현직 임직원들이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되면서 거래소에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를 받고 있다.

거래소는 코스닥시장 상장폐지 실질심사 주요규정을 통해 ‘기업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의한 재무상태 악화 여부’ 등은 상장폐지 실질심사 주요 기준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심사결과에 따라 신라젠은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형평성 문제도 제기
사진:연합뉴스
상황은 거래소의 상장심사에 대한 신뢰성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을 책임지고 있다. 심사를 통해 신라젠을 코스닥시장에 올린 곳도 거래소다. 그런데 신라젠이 상장 이전에 발생했던 문제로 상장 폐지 심사를 받는다면 당시 제대로 심사를 진행한 게 맞느냐는 지적이다.

신라젠 행동주의 주주모임 300여명은 지난 7월 10일 거래소 서울사무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신라젠의 주식 거래 재개를 촉구했다. 주주 모임은 입장문을 통해 “거래소가 상장 이전에 발생한 문제로 신라젠의 거래를 정지하고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를 결정한 것은 17만 소액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거래소 코스닥시장 관계자는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지금 검찰에서 발표한 내용은 신라젠의 상장을 앞두고 이미 확인한 내용으로, LBO는 법적으로 문제없는 사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횡령과 배임 ‘혐의’로 신라젠 전·현직 임원을 기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범죄로 확정된 것도 아니고 상장폐지 결정은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내릴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6월 문은상 신라젠 대표를 비롯해 이용한 전 대표이사, 곽병학 감사 등 4명을 구속기소 했다.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자기 돈 한 푼 없이 차입매수(LBO, leveraged buyout) 방식으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하고 1918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다. LBO는 인수하려는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고 그 돈으로 해당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신라젠이 상장 이후에 문제가 생겨 논란이 됐다면 거래소 책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상장 이전 사건이 문제가 된 이상 거래소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신라젠의 상장 폐지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분식회계 논란이 된 기업과의 형평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4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데도 거래소는 상장 유지를 결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고의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고,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이 되면서 주식 거래가 정지됐었다. 현재까지 고의 분식회계에 대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삼성그룹 임직원 8명은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증거인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럼에도 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는 2018년 12월 삼성바이오에 대해 “경영의 투명성과 관련해 일부 미흡한 점에도 불구하고 기업 계속성, 재무 안정성 등을 고려해 상장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과거 대우조선해양도 5조원대의 분식회계 사실이 적발되며 논란이 됐지만 상장은 유지됐다. 제재는 약 1년3개월 동안 대우조선해양의 주식 매매가 정지되는 수준에 그쳤다.

불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덩치가 큰 대기업은 상장 적격성 심사를 통과했는데 신라젠이 상장폐지 된다면 ‘대마불사’ 논리를 따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유치를 담당했다는 거래소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당시 금감원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듣고 진행했는데 나중에 논란이 생겼다”며 “검찰이나 경찰처럼 직접 조사할 권한도 없는 거래소가 완벽하길 바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가 원칙이 아니라 시장의 눈치만 본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논란이 발생한 기업들도 투자자 보호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상장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1년 에너지기업 엔론이 1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혐의로 파산했다. 당시 분식회계에 가담한 담당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은 파산했고 엔론 CEO와 회장에게는 각각 24년4개월, 24년의 징역이 선고됐다.

2000년 이후 2018년까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상장폐지 된 종목은 각각 361개, 729개다. 투자회사 등 특수목적회사를 제외한 상장폐지는 연평균 43개 수준이다. WFE(World Federation of Exchanges) 자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나스닥(NASDAQ)시장에서만 매해 350여 개 기업이 상장폐지되고 있다.
 비경쟁 구도 독점 거래소의 문제점 많아
전문가들은 거래소의 독점 구조를 깨야 한다고 지적한다. 거래소는 국내 증권시장을 열어 수수료를 받는 독점사업권을 갖고 있다. 다른 거래소가 없어 경쟁도 하지 않는다. 여기에 시장을 감독하는 막강한 권한도 쥐고 있다. 민간기구로 이익을 취하면서 공공의 권한을 행사하는데, 문제가 터져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90개의 대체거래소가 있다. 유럽은 254개, 캐나다 8개, 일본 2개 등이 운영 중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체 주식거래의 약 30~40%가 대체거래소에서 이뤄지고 있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이 상장폐지 되면 감당해야 할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거래소도 상장폐지를 부담스러워 하는 측면이 있어 보인다”며 “다만 이런 문제가 반복될 경우 증권시장의 신뢰성이 흔들릴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거래소 한 곳이 증권시장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이런 문제가 비롯했다”며 “기업이 상장폐지되더라도 거래할 수 있는 장외 시장을 만들고 투자자들이 거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도록 다른 거래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이병희 기자 yi.byoung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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