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코로나 전쟁이 낳은 백신 양극화] 코로나 팬데믹이 부추기는 백신 이기주의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코로나 전쟁이 낳은 백신 양극화] 코로나 팬데믹이 부추기는 백신 이기주의
백신 싹쓸이로 국가 간 ‘부익부 빈익빈’… 국제협력 없으면 종식 어려워 2020년 12월부터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시대가 열렸다. 2019년 12월 31일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혹독한 2020년을 보낸 지구촌은 이에 대응할 백신을 개발하고 영국과 미국을 시작으로 임시사용 승인이 이뤄지면서 희망을 찾게 됐다.
2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제 백신 접종은 속도전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날까지 전 세계 52개국에서 5670만 회가 접종됐다. 문제는 백신 접종이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유능한 정부가 활동 중인 나라에 국한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사회에선 백신에 관한 이기주의와 자국 우선주의가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외쳤던 미국 우선주의의 국제사회판이나 다름없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서로 도우려고 애썼다. 노래나 악기 연주 등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방법으로 극복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인간적인 연대와 행동, 인내 같은 휴머니즘으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상일 뿐 백신을 앞에 두고 현실은 불편한 진실로 가득 찼다.
백신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사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보여준 백신 독점 시도다. 지난 2020년 3월 15일 독일 일요신문인 빌트암존탁은 트럼프가 독일 바이오 기업인 큐어백을 미국이 인수하고 개발한 백신을 전량 미국인에게 접종하려고 한다는 ‘백신 독점 시도’ 기사를 실었다. 큐어백은 2000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튀빙겐 대학의 학내 벤처기업으로 시작한 바이오 기업이다. m-RNA를 이용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코로나 백신을 개발해 영국과 미국에서 처음으로 임시사용 승인을 받은 바이오엔테크(독일에선 ‘비온테크’로 발음)나, 미국 바이오 기업인 모더나와 같은 새로운 바이오 기술을 적용한 백신이다. 보도가 나가자 독일 정치권은 들끓었다. 백신에 대한 접근은 전 인류를 위한 것이 돼야지 한 나라가 독점해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석 달 뒤인 6월 15일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독일 정부가 큐어백에 3억 유로(약 4150억원)을 들여 큐어백 지분 23%를 사들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백신 독점 시도로 번지자 독일 정부가 기술을 지키기 위해 직접 나선 셈이다.
문제는 코로나 백신을 세계적 대혼란 사태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보고 욕심을 낸 나라는 미국뿐이 아니라는 데 있다. 블룸버그 데이터를 살펴보면 실태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1월 22일을 중순을 기준으로 각국의 인구 대비 백신 계약 분량 데이터다. 각국이 확보한 백신과 인구 대비 확보율을 살펴보자. 캐나다가 1억2387만명 분으로 인구의 333%에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을 확보했다. 인구 대비 확보율이 세계 최고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성적표다.
영국이 2억184만인분으로 302%로 다음이다. 자신이 코로나19에 걸렸던 보리스 존슨 총리의 리더십이다. 저신다아던 총리가 이끄는 뉴질랜드가 1215만인분으로 246%를 기록했다. 2018년 8월부터 스콧 모리슨 총리가 이끄는 호주가 5867인분 229%다. 여기까지가 200%를 넘는 나라들이다. 백신 확보 최상위국가다.
150%가 넘는 국가로는 공동으로 9억3000만인분을 확보한 유럽연합(EU·183%), 5억5500만인분을 구해놓은 미국(169%), 55만인분을 사들인 아이슬랜드(156%), 1162만인분을 구한 홍콩(154%)이 있다. 100~150% 사이의 국가로는 2600만인분을 확보한 칠레(139%), 1245만인분의 이스라엘(137%), 1억5130만인분의 일본(119%), 1억5200만인분의 멕시코(119%), 3666만인분의 우즈베키스탄(110%)이 있다. 그 다음으로 837만인분을 확보한 스위스(97.5%), 63만인분을 확보한 마카오(93.2%), 2642만인분을 구해놓은 네팔(92.9%)이 있다. 한국은 4650만인분을 확보해 그다음인 90.1%를 기록했다.
문제는 캐나다·영국·뉴질랜드·호주 등 국가 이미지가 좋고 인권과 인도주의 지원을 넉넉하게 하는 개발원조(ODA) 선진국도 백신 확보에 욕심을 낸다는 사실이다. 인권·민주주의·국제친선·공존·협력 같은 휴머니즘 구호는 코로나 백신 앞에선 무의미해 보인다. 개발원조 상위 국가는 2019년 기준 미국(346억 달러), 독일(238억 달러), 영국(193억 달러), 일본(155억 달러), 유럽연합(EU) 기관들(148억 달러), 프랑스(121억 달러)가 100억 달러를 넘는다. 캐나다(63억 달러), 스웨덴(54억 달러), 네덜란드(52억 달러) 등이 50억 달러 이상이다. 이탈리아(49억 달러), 스위스(30억 달러), 호주(29억 달러), 스페인(29억 달러), 덴마크(25억 달러), 대한민국(25억 달러)이 뒤를 잇는다. 평소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개발원조에 앞장 선 나라들이 백신 앞에선 자국 국민 몫을 먼저 챙긴 것이다. 국가의 목적이 국민의 안전과 복리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수준이 지나쳐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민주주의·인권에 앞장선다는 유럽연합(EU)은 앞선 과학기술·경제력·국제네트워크를 활용해 백신 ‘싹쓸이’ ‘사재기’에 나섰다. 이들은 인구의 2배 가까운 물량을 확보했다. 유럽연합(EU)은 기구 차원의 노력으로 백신을 대량 확보한 뒤 27개 회원국 전체에 고루 분배하고 동시 접종에 들어갔다. 우월한 조건과 지위를 활용한 이들의 백신 다량 확보는 전 세계 물량 부족이나 가격 상승을 부채질 했다는 비난을 받을 정도다.
인구 5억의 EU는 공식 확보 물량만도 9억3000만인분에 이른다. 계약이나 협상 종료를 포함한 전체 확보 물량은 24억인분이 넘는다. 2021년 1월 중순 유럽연합(EU)의 임사사용 승인을 받은 2개 품목을 보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을 6억인분, 모더나 백신은 1억6000만인분을 각각 확보했다. 개발 중인 미승인 품목도 입도선매했다. 스웨덴·영국 제약업체인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한 백신은 영국에선 2020년 12월 30일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지만 유럽연합(EU)에선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런데도 유럽연합(EU)은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 백신을 4억인분을 확보했다. 독일에서 개발하는 큐어백 백신은 4억5000만인분, 사노피GSK 백신은 3억인분, 존슨앤드존슨 백신도 4억인분을 확보했다. 최근 노바백스 백신과도 접촉해 2억인분 구매 협상을 마무리했다. 문어발식으로 다양한 백신을 확보한 셈이다.
중국은 시노백과 시노팜, 그리고 캔시노가 백신을 개발 중인데 시노팜 백신은 2020년 12월 31일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중국은 승인 전인 2020년 12월 15일부터 전국적으로 사실상 백신 접종에 들어가 허가 시점에 이미 450만 명이 접종을 받았다. 문제는 중국의 시노백과 시노팜 백신은 모두 고전적인 바이러스 불활성 기술을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실제 코로나바이러스를 배양해 포르말린 같은 화학물질이나 방사선을 쬐어 사멸시켜 독성을 불활성화한 뒤 이를 인체에 주입해 면역 체계를 작동시키는 원리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이를 통해 오히려 코로나19에 감염될 수도 있다. 소아마비 백신의 경우 파키스탄과 이집트 등에서 불활성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백신을 접종하는 바람에 접종이 오히려 질병을 유행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기술 격차만 전 세계에 확인시킨 셈이 됐다. 중국 백신을 쓰겠다는 제1세계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 이유다.
중국은 백신 개발 과정에서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백신 개발 과정이나 임상 시험 결과, 부작용 사례를 충실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바이오 분야에서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글로벌 백신 개발을 주도하지는 못했다. 다만 중국의 캔시노 백신은 전달체 기술을 활용했지만 아직 임상 시험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만만하지 않은 백신 가격도 문제다. 벨기에 예산부 장관이 실수로 유출해 르몽드 등에 보도된 유럽연합(EU)의 백신 구매가를 보면 가난한 나라에는 부담을 줄 수 있는 수준이다. 가장 비싼 모더나 백신은 1회분에 18달러(이 백신만 달러 가격으로 표시),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이 12유로, 독일 큐어백이 10유로, 존슨앤드존슨이 8.5달러, 사노피GSK가 7.56달러이며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백신은 1.78유로였다.
부유한 유럽의 지역연합체인 유럽연합(EU)은 공동구매를 통해 전 회원국에 백신 접종을 조기에 시작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다르다. 아프리카 연합은 55개 회원국에 13억 인구, 국내총생산(GDP) 합계 2조5870달러의 거대 연합체다. 하지만 1월 11일 시점에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나라는 기니 뿐이다. 그나마 러시아의 가말레야 백신을 지원받아 수십 명에 접종했을 뿐이다. 이집트는 중국 백신을 도입 준비 중이다.
동남아 국가연합, 즉 아세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0개 회원국에 인구 6억6100만명, 그리고 GDP 합계 3조3300억 달러의 성장하는 연합체다. 하지만 백신 접종국가는 싱가포르뿐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중국 백신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아랍어와 이슬람 종교를 공유하는 22개국으로 이뤄진 아랍연맹도 마찬가지다. 아랍연맹 회원국 중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오만·쿠웨이트·바레인 등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한결같이 부유한 산유국이다. 동질성과 유대감이 아닌 경제력과 정부의 집요한 노력이 백신 확보와 접종의 관건이 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경제력이 떨어지거나, 효율적인 정부가 없는 나라는 백신 접종 기회에서 멀다는 사실이다. 백신 접근권에서 격차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백신 격차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 종식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전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면역력이 확보돼야 국내외 여행이 가능해지고, 모임과 자유로운 가게 이용을 할 수 있다.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전 세계에 7000만명으로 추산하는 난민과 국내 실향민, 그리고 내전이나 분쟁에 시달리는 지역의 주민들은 이런 기회에서 더욱 멀다. 방글라데시에 100만명 가까이 와있는 미얀마의 로힝야 난민(라카인 이주민), 시리아와 예멘 내전의 난민과 국내 실향민,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리비아 내전으로 인한 국내 실향민,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려고 대기하는 이주 희망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주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의 경우 자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방역에는 성공했지만 이주 노동자들 사이에서 확진자가 대거 나오면서 혼란과 고통을 겪었다. 국민보다 이주 노동자가 더 많은 페르시아만(아라비아 만) 연안 산유국에서도 이주민의 생활환경과 노동 조건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백신 격차를 줄이려면 백신 구매자금, 백신 확보를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 국내 백신 배송과 보관 시스템, 접종을 위한 보건의료 시스템과 인력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백신을 공급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백신을 공급해도 빠른 속도로 접종할 수 없는 나라도 많다. 종교나 풍습, 과학 교육 격차에 따른 국민의 백신에 대한 인식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시중에 도는 백신과 관련한 온갖 루머를 차단하고 국민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백신 접종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일부 국가는 백신 여권을 거론하고 있지만 이는 백신을 신속하게 접종할 수 있는 선진국 클럽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백신을 맞은 사람만 출입을 허락하는 행사나 지역, 국가의 등장은 결국 차별의 합리화로 이어질 수 있다. 코로나를 극복하려면 차별이 아니라 동등한 백신 접근권부터 보장할 필요가 있다.
국제 사회는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공평하게 보급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코벡스가 그것이다. 코벡스는 참여국의 인구 중 최소 20%에게 공급할 수 있는 백신 물량을 공동으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백신 구입과 보급을 위한 20억 달러의 초기 모금 계획은 초과 달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1년 말까지 최소한 백신 20억명 분을 확보해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2021년에 최소한 50억 달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2년을 끌었다. 당시는 바이러스가 원인인 줄도 몰랐고, 과학자들이 바이러스를 분리하지도 못했다. 지금은 당시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과학과 보건의료가 발달했다. 이런 인류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코로나바이러스를 이른 시일 안에 이기려면 다자간 협력을 통해 백신을 공평하게 나누면서 동시 면역을 꾀해야 한다. 백신이 욕심의 대상, 과시의 대상, 정치적 승리의 대상이 되어선 곤란하다. 코로나 해결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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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제 백신 접종은 속도전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날까지 전 세계 52개국에서 5670만 회가 접종됐다. 문제는 백신 접종이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유능한 정부가 활동 중인 나라에 국한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사회에선 백신에 관한 이기주의와 자국 우선주의가 도도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외쳤던 미국 우선주의의 국제사회판이나 다름없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서로 도우려고 애썼다. 노래나 악기 연주 등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방법으로 극복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인간적인 연대와 행동, 인내 같은 휴머니즘으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상일 뿐 백신을 앞에 두고 현실은 불편한 진실로 가득 찼다.
백신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사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보여준 백신 독점 시도다. 지난 2020년 3월 15일 독일 일요신문인 빌트암존탁은 트럼프가 독일 바이오 기업인 큐어백을 미국이 인수하고 개발한 백신을 전량 미국인에게 접종하려고 한다는 ‘백신 독점 시도’ 기사를 실었다. 큐어백은 2000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튀빙겐 대학의 학내 벤처기업으로 시작한 바이오 기업이다. m-RNA를 이용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다.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코로나 백신을 개발해 영국과 미국에서 처음으로 임시사용 승인을 받은 바이오엔테크(독일에선 ‘비온테크’로 발음)나, 미국 바이오 기업인 모더나와 같은 새로운 바이오 기술을 적용한 백신이다.
선진국들의 백신 사재기 경쟁 과열 양상
문제는 코로나 백신을 세계적 대혼란 사태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보고 욕심을 낸 나라는 미국뿐이 아니라는 데 있다. 블룸버그 데이터를 살펴보면 실태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1월 22일을 중순을 기준으로 각국의 인구 대비 백신 계약 분량 데이터다. 각국이 확보한 백신과 인구 대비 확보율을 살펴보자. 캐나다가 1억2387만명 분으로 인구의 333%에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을 확보했다. 인구 대비 확보율이 세계 최고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성적표다.
영국이 2억184만인분으로 302%로 다음이다. 자신이 코로나19에 걸렸던 보리스 존슨 총리의 리더십이다. 저신다아던 총리가 이끄는 뉴질랜드가 1215만인분으로 246%를 기록했다. 2018년 8월부터 스콧 모리슨 총리가 이끄는 호주가 5867인분 229%다. 여기까지가 200%를 넘는 나라들이다. 백신 확보 최상위국가다.
150%가 넘는 국가로는 공동으로 9억3000만인분을 확보한 유럽연합(EU·183%), 5억5500만인분을 구해놓은 미국(169%), 55만인분을 사들인 아이슬랜드(156%), 1162만인분을 구한 홍콩(154%)이 있다. 100~150% 사이의 국가로는 2600만인분을 확보한 칠레(139%), 1245만인분의 이스라엘(137%), 1억5130만인분의 일본(119%), 1억5200만인분의 멕시코(119%), 3666만인분의 우즈베키스탄(110%)이 있다. 그 다음으로 837만인분을 확보한 스위스(97.5%), 63만인분을 확보한 마카오(93.2%), 2642만인분을 구해놓은 네팔(92.9%)이 있다. 한국은 4650만인분을 확보해 그다음인 90.1%를 기록했다.
문제는 캐나다·영국·뉴질랜드·호주 등 국가 이미지가 좋고 인권과 인도주의 지원을 넉넉하게 하는 개발원조(ODA) 선진국도 백신 확보에 욕심을 낸다는 사실이다. 인권·민주주의·국제친선·공존·협력 같은 휴머니즘 구호는 코로나 백신 앞에선 무의미해 보인다. 개발원조 상위 국가는 2019년 기준 미국(346억 달러), 독일(238억 달러), 영국(193억 달러), 일본(155억 달러), 유럽연합(EU) 기관들(148억 달러), 프랑스(121억 달러)가 100억 달러를 넘는다. 캐나다(63억 달러), 스웨덴(54억 달러), 네덜란드(52억 달러) 등이 50억 달러 이상이다. 이탈리아(49억 달러), 스위스(30억 달러), 호주(29억 달러), 스페인(29억 달러), 덴마크(25억 달러), 대한민국(25억 달러)이 뒤를 잇는다.
중국 백신은 기술 격차로 안정성 의심 받아
인구 5억의 EU는 공식 확보 물량만도 9억3000만인분에 이른다. 계약이나 협상 종료를 포함한 전체 확보 물량은 24억인분이 넘는다. 2021년 1월 중순 유럽연합(EU)의 임사사용 승인을 받은 2개 품목을 보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을 6억인분, 모더나 백신은 1억6000만인분을 각각 확보했다. 개발 중인 미승인 품목도 입도선매했다. 스웨덴·영국 제약업체인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한 백신은 영국에선 2020년 12월 30일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지만 유럽연합(EU)에선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런데도 유럽연합(EU)은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 백신을 4억인분을 확보했다. 독일에서 개발하는 큐어백 백신은 4억5000만인분, 사노피GSK 백신은 3억인분, 존슨앤드존슨 백신도 4억인분을 확보했다. 최근 노바백스 백신과도 접촉해 2억인분 구매 협상을 마무리했다. 문어발식으로 다양한 백신을 확보한 셈이다.
중국은 시노백과 시노팜, 그리고 캔시노가 백신을 개발 중인데 시노팜 백신은 2020년 12월 31일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중국은 승인 전인 2020년 12월 15일부터 전국적으로 사실상 백신 접종에 들어가 허가 시점에 이미 450만 명이 접종을 받았다. 문제는 중국의 시노백과 시노팜 백신은 모두 고전적인 바이러스 불활성 기술을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실제 코로나바이러스를 배양해 포르말린 같은 화학물질이나 방사선을 쬐어 사멸시켜 독성을 불활성화한 뒤 이를 인체에 주입해 면역 체계를 작동시키는 원리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이를 통해 오히려 코로나19에 감염될 수도 있다. 소아마비 백신의 경우 파키스탄과 이집트 등에서 불활성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백신을 접종하는 바람에 접종이 오히려 질병을 유행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기술 격차만 전 세계에 확인시킨 셈이 됐다. 중국 백신을 쓰겠다는 제1세계가 쉽게 나타나지 않는 이유다.
중국은 백신 개발 과정에서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백신 개발 과정이나 임상 시험 결과, 부작용 사례를 충실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바이오 분야에서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글로벌 백신 개발을 주도하지는 못했다. 다만 중국의 캔시노 백신은 전달체 기술을 활용했지만 아직 임상 시험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백신 가격 비싸 가난한 나라는 확보에 어려움
부유한 유럽의 지역연합체인 유럽연합(EU)은 공동구매를 통해 전 회원국에 백신 접종을 조기에 시작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다르다. 아프리카 연합은 55개 회원국에 13억 인구, 국내총생산(GDP) 합계 2조5870달러의 거대 연합체다. 하지만 1월 11일 시점에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나라는 기니 뿐이다. 그나마 러시아의 가말레야 백신을 지원받아 수십 명에 접종했을 뿐이다. 이집트는 중국 백신을 도입 준비 중이다.
동남아 국가연합, 즉 아세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0개 회원국에 인구 6억6100만명, 그리고 GDP 합계 3조3300억 달러의 성장하는 연합체다. 하지만 백신 접종국가는 싱가포르뿐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중국 백신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아랍어와 이슬람 종교를 공유하는 22개국으로 이뤄진 아랍연맹도 마찬가지다. 아랍연맹 회원국 중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오만·쿠웨이트·바레인 등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한결같이 부유한 산유국이다. 동질성과 유대감이 아닌 경제력과 정부의 집요한 노력이 백신 확보와 접종의 관건이 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경제력이 떨어지거나, 효율적인 정부가 없는 나라는 백신 접종 기회에서 멀다는 사실이다. 백신 접근권에서 격차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백신 격차가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 종식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전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면역력이 확보돼야 국내외 여행이 가능해지고, 모임과 자유로운 가게 이용을 할 수 있다.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게다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전 세계에 7000만명으로 추산하는 난민과 국내 실향민, 그리고 내전이나 분쟁에 시달리는 지역의 주민들은 이런 기회에서 더욱 멀다. 방글라데시에 100만명 가까이 와있는 미얀마의 로힝야 난민(라카인 이주민), 시리아와 예멘 내전의 난민과 국내 실향민,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리비아 내전으로 인한 국내 실향민,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려고 대기하는 이주 희망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주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의 경우 자국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방역에는 성공했지만 이주 노동자들 사이에서 확진자가 대거 나오면서 혼란과 고통을 겪었다. 국민보다 이주 노동자가 더 많은 페르시아만(아라비아 만) 연안 산유국에서도 이주민의 생활환경과 노동 조건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백신 격차를 줄이려면 백신 구매자금, 백신 확보를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 국내 백신 배송과 보관 시스템, 접종을 위한 보건의료 시스템과 인력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백신을 공급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백신을 공급해도 빠른 속도로 접종할 수 없는 나라도 많다. 종교나 풍습, 과학 교육 격차에 따른 국민의 백신에 대한 인식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시중에 도는 백신과 관련한 온갖 루머를 차단하고 국민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으로 백신 접종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백신 여권’ 주장하는 편협주의도 등장
국제 사회는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공평하게 보급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코벡스가 그것이다. 코벡스는 참여국의 인구 중 최소 20%에게 공급할 수 있는 백신 물량을 공동으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백신 구입과 보급을 위한 20억 달러의 초기 모금 계획은 초과 달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1년 말까지 최소한 백신 20억명 분을 확보해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2021년에 최소한 50억 달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2년을 끌었다. 당시는 바이러스가 원인인 줄도 몰랐고, 과학자들이 바이러스를 분리하지도 못했다. 지금은 당시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과학과 보건의료가 발달했다. 이런 인류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코로나바이러스를 이른 시일 안에 이기려면 다자간 협력을 통해 백신을 공평하게 나누면서 동시 면역을 꾀해야 한다. 백신이 욕심의 대상, 과시의 대상, 정치적 승리의 대상이 되어선 곤란하다. 코로나 해결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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