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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테마주 ①] ‘근거 없는 풍문’ 올해만 22번 경고 울렸다

올해 ‘사이버 얼럿’ 역대 최다의 절반 이미 초과
경고 주 모두 대선 유력 주자 이재명·윤석열 관련
지연·학연·혈연에 직장연까지, 마구잡이 아전인수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과 윤석열 전 검찰종장. [중앙포토]
 
증권가에는 선거철마다 도깨비시장이 선다. 시장에선 6하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학연·지연·혈연·직장연으로 거래가 일어난다. 존재 여부도 알길 없는 ‘카더라’ 통신사는 연일 풍문 뉴스를 찍어낸다. 사람들은 머리로는 손가락질하면서 몸은 장에 뛰어든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심정이다. 이 덕에 평소 존재감 없던 기업들이 뜬금없는 날개를 달기도 한다. 이에 감독관은 휘슬을 부른다. 올해만 5월까지 22번이나 불었다. 기업에겐 경고, 거래자에겐 주의다. 하지만 그 때뿐이다. [이코노미스트]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도깨비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일희일비 ‘정치인 테마주’를 진단했다. [편집자] 
 
5월 13일 2500원대였던 전자저울 제조업체 카스(CAS) 주가는 14일 돌연 장중 상한가(30%)를 기록했다. 카스 자체에 대한 호재는 없었다. 다만, 카스가 이재명 경기도지사 관련 테마주에 편입됐을 뿐이다. 14일 이 지사가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한국갤럽)에서 야권 유력 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앞서자 카스가 이 지사 테마주에 편입된 것이다. 카스 사외이사가 이 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라는 이유였다. 주말이 지난 17일 카스는 전년 대비 줄어든 1분기 당기순이익을 공시했다. 하지만 주가는 3930원, 재차 19% 올랐다.  
 
5월 17일 한국거래소는 카스 투자자를 향해 “풍문에 휘둘리지 말라”는 경고를 울렸다. 투자자들의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울리는 ‘사이버 얼럿(cyber alert·사이버 경고)’이었다. 한국거래소는 주가에 비정상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의 온라인 게시글이 최근 5일 평균보다 3배 이상 늘면서 주가가 급등한 기업 주식을 ‘풍문 관여 종목’으로 지정해 사이버 얼럿을 발동한다. 올해(5월 22일까지 기준)는 카스를 포함해 22건의 사이버 얼럿이 울렸다. 모두 ‘대선 관련 테마주’였다.  
 

인맥이란 연결고리에 얽혀 올해만 ‘경고등’ 수십 번

 
대통령 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오자 주식시장에 대선과 관련한 이른바 ‘정치인 테마주’가 난립하고 있다. 난립의 순간마다 한국거래소는 사이버 얼럿을 발동했지만, 테마주는 기업 대표 혹은 임원과 후보와의 연관부터 같은 성씨까지 풍문을 달리하며 테마주로 올라서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사이버 얼럿은 지난 2017년 도입 첫해 39건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벌써 20건이 발동했을 정도로 이미 2017년 건수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후 5월 22일까지 2건 더 울리며 최근 22건이나 됐다.  
 
현재까지 울린 22건 사이버 얼럿은 이 지사 관련 11건, 윤 전 총장 관련 11건으로 같다. 지난 1월 7일 자동차용 부품 제조 기업 SG&G를 향한 한국거래소의 투자주의 경고가 시작이었다. SG&G 사외이사가 2019년 이재명 지키기 범국민대책위원회 발기인으로 서명한 적 있다는 얘기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지며 SG&G 주가가 30% 올랐다. 이후 한 달간 토탈소프트, 티피씨글로벌 등이 제각기 이 지사와 연관되면서 이 지사 테마주를 향한 경고가 8건이나 쏟아졌다.
 
 
윤 총장 관련 테마주를 향한 경고는 지난 3월부터 본격화했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이 지사와 윤 전 총장의 양자구도가 형성되면서다. 특히 윤 전 총장의 검찰 총장직 사임에 대선후보 적합도 1위라는 여론조사(한국사회여론연구소) 결과까지 맞물리면서 윤석열 관련 테마주들의 난립은 극에 달했다. 한국거래소는 3월에만 윤석열을 키워드로 잡힌 8종목에 사이버 얼럿을 발동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지지율과 주목도에 따라 테마주도 달리 움직였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나 주목도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 테마주는 단순 ‘인맥’이란 연결고리에 주요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가 올해 정치인 테마주에 대해 발동한 사이버 얼럿을 22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대선후보와 기업 간 고리는 검찰 등 ‘같은 직장이나 조직 출신’이라는 게 10건으로 가장 많았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동문’이란 고리와 ‘동일 고향 등 지역’ 고리가 각각 6건, 4건으로 뒤를 이었다. 남은 두 건은 성씨와 같은 ‘혈연’을 연결고리로 내세웠다.  
 

아내 변호인에서 아버지 동문까지 동원, 헐거운 연결고리

 
연결고리는 그러나 헐거웠다. 한국거래소가 1월 15일 속옷 제조 기업 비비안에 대해 내린 사이버 얼럿이 대표적이다. 비비안은 회사 사외이사가 이 지사와 같은 직장이나 조직 출신이란 이유로 1월 13일 상한가를 쳤다. 이후 사흘간 상승세는 계속됐다. 하지만 해당 사외이사는 이 지사와 같은 직장이나 조직이 아니었다. 그저 이 지사 부인 사건을 맡은 변호인이었다. 비비안은 1월 18일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당사는 과거와 현재 사업적 관련성이 없다”고 공시했다.  
때아닌 윤씨 성(姓) 경영인 찾기 해프닝 뒤에도 헐거운 연결고리가 자리했다. 지난 3월 5일과 9일 각각 사이버 얼럿을 받은 NE능률과 웅진은 최대주주와 회장이 윤 전 총장과 같은 파평 윤씨라는 이유로 주가가 급등했다. 재계 관계자는 “윤씨의 80%가 파평 윤씨”라며 “같은 파평 윤씨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3월 23일 포장용기 제조 기업 승일에 울린 사이버 얼럿의 뒤에는 승일 대표가 윤 전 총장 아버지와 대학 동문이라는 고리가 작용했다. 
 
 
실제 사이버 얼럿에 닿은 22건 정치인 테마주 중 사실에 기반을 둔 급등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거래소가 사이버 얼럿을 발동하면 해당 기업은 유언비어에 대해 공식 해명해야 한다. 유력 대선 후보와 관련됐다는 소문으로 주가가 급등, 사이버 얼럿에 따른 해명 요구를 받은 22개 종목 가운데 “관련이 있다”고 응답한 곳은 한곳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풍문이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 상승과 연결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은 그대로인데 연관되는 정치인만 바뀌는 경우도 등장했다. 지난 5월 4일 사이버 얼럿을 받은 비료 생산 기업 효성오앤비는 이른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테마주가 됐다. 효성오앤비는 올해 초 대표이사가 고려대 법대 출신이란 이유로 오세훈 서울시장 관련주에 속했다가, 지난 4월 같은 이유로 정세균 관련주로 옮겨갔다. 그러다 5월 효성오앤비 본사가 윤 전 총장 아버지 고향인 충남 논산이란 이유로 윤석열 테마주로 탈바꿈했다.

 

뜬소문 탄 정치인 테마주 주가 변동성 커 투자자 피해

 
정치인 테마주는 되레 투자자에게 피해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소문으로 뜬 주가는 주가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는 탓이다. 실제 지난 1월 중견 섬유 기업 성안은 이재명 테마주로 묶이며 300원대였던 주가가 1385원까지 치솟았지만, 지난 3월 22일 계열사 횡령 사건으로 거래가 정지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투자자들이 성안의 5년 연속 영업이익 적자에도 박상완 성안 부사장이 이 지사와 중앙대 동기라는 것만 듣고 투자했다”면서 “이제는 상장폐지 불안에 놓였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학연·지연·혈연, 심지어 직장연 등의 인맥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일 거라는 의심이 작전 세력을 만나 테마주로 뜨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유튜브 증권 방송 등을 통해 엉뚱한 종목을 정치인 테마주로 지목하고, 각종 거짓 정보를 퍼뜨려 테마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가치의 본질적 변화 없이 정치인과의 미미한 연관으로 가격이 뛰는 종목은 결국 투자자들을 위험에 내몰 뿐”이라고 지적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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