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동맹·중국무역 앞으로도 둘 다 계속할 수 있을까”
G7 정상회의 이례적으로 ‘반중(反中) 동맹’ 의결
NATO 역대 처음 “중국=안보 위협국”으로 규정
한국, 미국·중국 사이에서 안보·무역 고민 깊어져
G7 참석 막았던 중국, 한국 행보 변화 ‘예의주시’
“등돌릴 것인가 손잡을 것인가”
한국이 G7 정상회의(독일·미국·영국·이탈리아·일본·캐나다·프랑스) 후 중국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반중국(反中國) 동맹을 강화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앞으로 정치적·경제적 전략을 구상하는데 있어 중국을 예전보다 더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한국은 그동안 균형 외교를 나름 유지해왔지만, 주변은 한국에 양자택일을 압박하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1~13일(영국 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 베이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초청 손님 자격으로 참석했지만 각국 정상과 개별 면담하며 협력을 모색했다.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파스칼 소리오 아스트라제네카 회장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백신 생산 확대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백신 개발에 대해,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수소 경제에 대해,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그린 디지털 경제에 대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첨단 기술과 문화·교육에 대해 각각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청와대는 G7 정상회의의 주된 논의 주제 중 하나였던 반중국 대응방안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도 “G7과 초청국(한국·호주·인도·남아공)과의 회의에선 중국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보건 방역, 기후 변화, 열린 사회 경제를 주제로 한 확대회의에만 참석하고 G7과 반중(反中) 공동성명 논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G7은 반중 공동성명 발표에 뜻을 모았다. 신장 자치구 소수민족 박해, 홍콩 민주화 세력 탄압, 대만과의 충돌과 대만해협에서의 도발, 동중국해·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중국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건들을 열거 비판하며, 이에 대응해 상호 협력한다는 다짐을 공동성명에 담았다.
G7은 이와 함께 중국과의 경제 갈등도 다뤘다. “중국의 비시장적 경제정책과 일대일로(一帶一路) 경제전략이 투명하고 공정한 세계경제 운영을 저해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코로나19의 중국 우한 실험실 유출설을 집중 논의하면서 기원 재조사를 촉구했다. 중국의 비협조로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G7 정상회의의 초점이 과거엔 주로 북한과 러시아에 집중했으나 이번처럼 중국에 집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G7 정상회의의 폐막 성명을 ‘반중 동맹’으로 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G7 정상회의 결과에 대해 안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중국의 도전에 맞서 G7의 뜻을 통합했다. 모든 분야에서 우위에 서서 중국을 다뤄야 한다"고 평가하며 중국에 대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겉으로는 개발도상국에 기반시설 건설을 지원하면서, 속으로는 군사 거점을 확보해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주요국들 “반중 연대” VS 중국 “내정 간섭” 반발
이러한 G7의 결의에 비춰봤을 때 문 대통령이 G7과 더욱 밀접하게 교류하겠다고 밝힌 이상, 앞으로 한국의 행보가 G7의 반중 대열과 무관하다고 선을 긋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G7의 반중 기류는 올해 초부터 예견됐었다. 지난해 미·중 무역갈등은 국가안보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미국의 아시아 최전선인 대만과 홍콩에 대한 중국의 압박, 호주와 중국 간 무역갈등도 서방세계의 반중 기류를 자극했다. 호주는 미군이 인근에 주둔 중인 다윈항을 중국기업이 장기 임차하면서 불거진 국가안보 문제를 비롯해, 반덤핑 과세, 수입 제한 조치, 일대일로 사업계약 취소 등으로 중국과 무역갈등을 빚고 있다.
심지어 30개 회원국이 연대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까지 14일(벨기에 현지시간) 중국을 ‘안보 위협국’으로 규정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NATO는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미국·유럽 안보동맹체제여서 러시아 관련 대응방안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이번 NATO 공동성명은 중국에 초점을 맞춘 분위기가 역력하다. NATO가 1949년 설립 이래 중국을 표적으로 겨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NATO는 2년 전만해도 중국의 세계화 움직임을 서방세계엔 기회로 해석했었다.
G7 정상회의와 NATO의 중국 포위망 강화엔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국은 영국주재 중국대사관 대변인을 통해 "소수의 국가들이 이익을 취하기 위해 담을 쌓아 국제적 결정을 내리는 것은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라며 “내정 간섭을 중단하라”고 비판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G7 정상회의 전인 지난 9일 정의용 한국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국이 신 냉전주의로 전세계 집단대결을 부추기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었다. 왕이 부장은 또한 “한·중은 우호적 이웃이자 전략적 파트너로서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남의 장단에 끌려 다녀선 안 된다”며 한국이 G7 정상회의에 참여하지 말 것을 경고했었다.
한국 “미·중 사이에서 셈법 복잡해져” 기업들도 ‘촉각’
한국은 G7 정상회의 후 셈법이 복잡해졌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G7과 협력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청와대는 G7 정상회의 참여 성과 발표에서 중국을 언급하거나 중국을 자극할만한 단어들을 넣지 않았다. 대신 “문 대통령이 G7 확대정상회의 두 번째 세션 ‘열린 사회와 경제’ 회의에서 인권·민주주의·법치주의·자유무역·개방경제 등 열린 사회의 가치를 보호·강화하고 이에 대한 위협에 대응·공조할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G7과의 연대에 좀더 무게를 두겠다는 의미를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으로도 읽힌다. 향후 G7과 중국 간 대립의 골이 깊어질 경우 한국은 줄타기를 멈추고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 다만, G7 공동성명에 한국의 서명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외교부 관계자는 “한국은 G7 회원국이 아니라 초청받은 국가여서 공동성명 작성에 참여도 서명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 등 해외교역 관련 정부 부처와 관계기관에선 복잡한 심기가 읽힌다. “한국에게 미국은 최대 안보 동맹국이고, 중국은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미·중 사이에 신냉전 분위기가 뚜렷해질수록 한국 경제가 균형을 잡기 힘들 것”이란 시선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기관들과 기업들은 중국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례로 한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결정하자 2017년 중국이 한국기업들에 무역보복을 단행해 롯데마트 100여 곳이 중국시장에서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어서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입 의존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자료에 따르면 수출 비중은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지난해를 제외하면 2018년과 2019년 25%를 웃돌았다. 홍콩을 포함하면 30%를 넘는다. 석유화학 중간원료를 비롯해 반도체·디스플레이·합성수지·기초유분 등이 주요 수출품목을 차지한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수입도 많다. 한국 수입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2015년 20%를 넘기 시작해 최근까지 줄곧 20% 대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직접투자도 증가 추세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15년 29억8700만 달러(약 3조3358억원), 2017년 32억 달러(약 3조5737억원), 2019년 57억9400만 달러(약 6조4707억원)로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한국 기업과 중국 기업 간의 공급사슬도 긴밀하게 얽혀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 진출한 한국 제조기업들이 제품을 납품·판매하는 업체의 60% 이상은 중국 현지 기업과 중국에 있는 한국기업이다. 나머지 중 15% 정도도 한국에 있는 기업이 차지한다. 나머지는 북미·동남아·유럽·일본으로 각각 2~3% 비중이다. 중국의 대내외 환경이나 공급사슬이 악화되면 한국 기업(시장)도 함께 휩쓸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중국이 이번 일로 과거처럼 한국에 직접 무역보복할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G7 회의 후 중국 동향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한국이 중국 견제를 의결한 G7과의 교류 확대를 모색하고 있어 중국도 한국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중국의 불편한 심기가 한국과의 교역에서 어떻게 후폭풍을 일으킬지 고민스럽다”고 덧붙였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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