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괴리①] 바뀌는 도시재생 관점…결국 민간개발이 답?
개발 부작용 줄이려 보전 택했는데 또 다른 부작용 낳아
한계 부딪힌 보전 재생사업, 슬럼화 부추겨 주민들 떠나
“민간 주도로 사업성 높이고 재개발 나쁘다는 인식 바꿔야”
‘젠트리피케이션’은 순환 재개발과 주민참여 유도로 극복을
도시 정비의 관점이 개발→보전→개발로 다시 돌아왔다. 서울시장이 오세훈→고(故) 박원순→오세훈으로 돌아오면서다. 개발 부작용을 줄이고자 보전을 택했는데 한계에 부닥치면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자 개발로 다시 방향을 바꿨다. 대신 추진 방식이 바뀌었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등 과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오세훈 시장의 개발 정책 이번엔 잘될까. [편집자]
서울시가 '보전'에 치우쳤던 도시재생을 개발과 정비에 초점을 둔 ‘2세대 도시재생’으로 대전환을 예고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도시재생실을 없애는 등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대표 정책이던 도시재생 업무의 방향을 대폭 변경했다.
도시재생은 박 전 시장의 대표적인 개발 정책 중 하나다. 2012년 ‘뉴타운 출구전략’으로 시작한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은 지역 원형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골목길 등 낙후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데 방점을 뒀다. 2015년 1월 도시재생본부(2급 상당)를 출범시키고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일대를 1호 도시재생사업지구로 선정했다. 2019년에는 도시재생실(1급 상당)로 조직을 격상해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의 도시재생 사업은 수천억 원을 들인 ‘페인트칠 사업’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도시재생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앵커시설’(도시 재생의 거점 공간 역할을 하는 시설)도 주민 생활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수 차례 제기됐다.
그동안의 도시재생 사업은 쇠퇴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 성과도 있었지만, 지나친 정부 주도의 사업이 여러 한계와 모순을 누적시켰다는 진단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간기업과 공공, 도시재생지원센터 등의 선순환 플랫폼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주민 삶과 동떨어진 사업 ‘원성’…관 중심 도시재생 한계
이를 통해 2026년까지 주택 2만4000가구 공급과, 8400여명의 직·간접적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6년 간 시비·국비 7300억원, 민간투자 6조3600억원을 포함해 총 7조9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오 시장이 민간 투자를 늘린 이유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으로 추진해 도시재생 효과를 높이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태희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원은 “그동안 도시재생사업은 민간과 주민 참여가 제한적이었다”며 “그 결과 사업 종료 후 유지·관리비를 충당하지 못해 문 닫은 공공시설도 상당수다”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도시재생에 있어 수익성 추구와 민간기업 투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예로 서울 종로구 창신동 주민들은 “그동안 보전 방식의 도시재생사업은 주거환경 개선 효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낡은 건물이나 골목을 보존하다 보니 슬럼화가 더욱 심화됐다”는 입장이다. 이곳 주민들이 오 시장 당선 후 “재개발로 돌아가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창신동에는 그동안 도시재생사업을 위해 약 11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마중물 사업 예산(약 200억원) 중 78%는 앵커시설 건립에 사용됐다. 원각사도서관 23억6000만원, 봉제역사관 18억원, 백남준기념관 14억원, 채석장 전망대 7억6000만원 등이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이 시설들로 인해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반응이다. 이는 주민들의 이탈을 가속화시켰다. 원주민들마저 하나 둘 동네를 떠났다. 2016년 2만2845명이던 인구 수는 2020년 2만372명으로 줄었다.
강대선 도시재생폐지연대 위원장은 “기존 도시재생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주민 참여가 부족했다는 점”이라며 “쾌적한 주거 환경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을 뿐인데 보존 박물관 같은 시설은 주민의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도시재생 구역 중 기반시설이 열악한 곳에 민간 주도 재개발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이번 서울시의 결정으로 창신숭인·가리봉·장위동 등 주거지 재생형 도시재생구역 32곳에서 민간 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강 위원장은 “현재 오 시장에게 도시재생 지정 해제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상태”라며 “서울시가 발표한 민간 재개발 공공 기획이 구체화되면 민간 재개발을 선택할지, 공공재개발을 선택할지 주민들에게 물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만 재개발이 능사는 아니라는 목소리도 있다. 손경주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상임이사는 “도시재생 목적은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창신숭인에서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꼭 필요한 곳에 자율주택정비, 가로주택정비 등 소규모 정비를 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도시재생 사업은 쇠퇴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 성과도 있었지만, 지나친 정부 주도의 사업이 여러 한계와 모순을 누적시켰다는 진단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간기업과 공공, 도시재생지원센터 등의 선순환 플랫폼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는 조언한다.
“보전할 곳은 보전하고 개발할 곳은 개발해야”
김 교수는 “주민들의 주거환경이 슬럼화에 빠질 정도로 낙후되고 있는데도 기존 도시재생사업은 제대로 된 사업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2세대 도시재생이 무턱대고 모든 재생 사업들을 재개발로 가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도 “지역에 따라 보전이냐, 개발이냐에 따른 도시재생 논의가 있어야 했는데 최근 10년 간은 그런 논의가 하나 없어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주거 생활이 중요한 지역이 주거환경이 낙후돼 있다면 재개발이 필요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다만, 원주민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한 대책은 마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도시재생의 주체이자 수요가 곧 주민이기 때문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한국에서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로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면서 “다만 주거 젠트리피케이션의 경우 보전할 것은 보전하고 개발할 것은 개발한다는 관점에서 유연한 접근방식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을 맡고 있는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도 “문화‧보존 중심의 도시재생이 실효성 면에서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부작용에 대해선 순환 재개발 방식을 통해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주민들이 주도적인 주체가 돼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대한 지원체계를 갖춰 개발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도시재생 사업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지역주민들의 만족도는 그렇지 않은 지역주민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강맹훈 한양대 도시대학원 연구원은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추진 주체별 인식차이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도시재생활성화지역 모두 새롭게 개발되는 곳이 아닌, 오랫동안 유지된 내부에는 다양한 조직들과 상호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주민협의체를 구성할 때 기존 모임과 충분히 소통하고 그들의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는데 보다 효율적"이라고 분석했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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