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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시장 열리나…시대적 요구로 떠오른 ‘법률 문턱 낮추기’

플랫폼 등장으로 소액 사건, 생활 분쟁 등 개인 자문 수요 급증
소비자들 “법률 정보 비대칭 완화”, 변호사도 “수임 도움됐다”
변협-로톡 갈등에 공정위도 나서...변협 사업자단체 여부가 관건
변협, “로톡 사용 금지” 해놓고 내로남불 유사 플랫폼 설립 추진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법률 플랫폼에 가입한 변호사를 징계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 시행을 앞둔 4일 서울 교대역에 설치되어 있는 법률 플랫폼 '로톡'의 광고. '로톡 금지' 개정안은 5일 0시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연합뉴스]
 
변호사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그동안 잠재해있던 갈등과 수요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법률사무소 문턱이 높아 접근하기 어려웠던 생활분쟁 소액 사건에 대한 자문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법률 서비스와 시장의 확대가 기대된다. 하지만 기존 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변호사 3만명 시대. 송무(소송)는 정체일로인데 변호사는 증가하면서 업계 판세가 협회 중심에서 각자도생으로 변하고 있다. 심지어 소액 사건, 생활 분쟁은 물론 국선변호사 자리까지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이는 변호사들이 과거엔 돈이 안 된다며 거들떠도 안 봤던 수임들이다. 운영비를 절감하기 위해 1인 다역, 1인용 소호사무실, 온라인 카페 상담 등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이런 업계 분위기가 최근 단적으로 드러난 모습이 바로 ‘로톡’ 사건이다. 로톡은 온라인 상에서 변호사와 의뢰인의 만남을 연결해주는 법률서비스 온라인 플랫폼이다. 변호사가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고 분쟁사건 관련 광고 키워드를 구매하면 의뢰인(이용자)이 해당 키워드를 검색했을 때 관련 변호사가 노출되는 형태다.
 
대한변호사협회(변협)와 로톡과의 충돌이 3만명 변호사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변협은 법률시장의 공공성과 신뢰를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로톡을 이용하는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를 본격 착수했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그동안 공급자 중심이었던 법률 서비스 시장의 높은 문턱을 낮추기 위한 시대적 요구를 변협이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로톡은 그동안 포털사이트에서 프로필 위주로 내세우던 변호사 광고와 달리, 상담 후기까지 상세히 제공해 법률 시장의 높은 장벽을 낮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래 전부터 변호사업계는 로톡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2014년 출시된 로톡은 당시 변호사 회원이 50명에 불과했지만 7년 뒤인 올해 3월 기준 3966명의 변호사가 로톡에 가입했다. 변협에 등록된 전체 변호사가 3만여명임을 감안할 때 약 12%가 로톡에 가입한 셈이다.  
 

변협에 '위협'적인 로톡…공정위로 넘어간 갈등

우리나라에서 변호사로 개업하려면 변협에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변호사법 7조). 즉, 대부분 변호사들이 변협에 가입돼 있고, 로톡 변호사들 역시 변협에 속해 있다. 이런 가운데 변협은 로톡을 일명 ‘인터넷 사무장’으로 간주하면서 로톡이 법률 시장을 독점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법률 자격증이 없는 일반인인 사무장들이 변호사 사건 수임을 물어오는 이른바 ‘법조 브로커’가 온라인으로 옮겨 간 형태가 바로 로톡이라는 주장이다.  
 
변협 측은 “영리만 추구하는 법률 플랫폼 사업자들이 변호사법의 취지에도 전혀 맞지 않는 불법적인 온라인 사무장의 역할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변호사들을 종속시켜 지휘·통제하려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법률 플랫폼 사업자들은 영리 추구를 최고의 선으로 삼는 순수 사기업으로 가입 변호사들을 검증할 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채 경력과 전문성을 홍보•선전하고 있다”며 손가락질 했다.
 
법률 시장은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약자 중심의 사회적 자본 형식을 띄기 때문에 변협이 변호사의 공공성을 내세운 것으로 분석된다.  
 
변협과 로톡의 갈등이 커지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섰다. 로톡이 “변협이 공정거래법과 표시광고법을 위반했다”며 공정위에 신고한 상황이다.  
 
공정위는 우선 변협이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정의에 부합한지 살펴보고 있다. 변협이 회비를 걷고, 변호사 개업 시엔 변협에 반드시 등록해야 하는 점 등에서 변협이 사업자단체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변협이 사업자 단체로 인정되면 변협의 행위가 ‘부당한 공동행위’와 ‘사업활동 방해 행위’ 등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게 된다.  
 
변협의 표시광고법 위반 여부도 쟁점이다. 사업자단체는 법령에 따르지 않고는 그 사업자단체에 가입한 사업자에 대해 표시ㆍ광고를 제한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즉 변협의 행위가 변호사법에 근거한 것인지를 가리는 것이 핵심이다.  
 

공급자 중심의 법률 시장 ”이젠 접근성 높일 때”

그러나 업계 안팎에선 그동안 공급자 중심으로 유지됐던 폐쇄적 법률 시장이 시대적 비판을 받고 있다. 일반인에게 법률 시장은 여전히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며, 정보비대칭도 유달리 큰 분야다. 이 때문에 로톡과 같은 플랫폼의 등장으로 법률 서비스 시장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었는데 ‘변호사들 밥그릇 싸움’으로 기득권 유지에만 치중한 것 아니냐며 수요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로톡을 이용해 고소한 경험이 있다는 박모(35)씨는 “법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고 도움도 청할 곳이 없어 로톡에 가입해 서비스를 이용했다”며 “이용하기 전엔 상담료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는데 정작 이용해보니 상담료와 수임료 등이 공개돼 있어 선택의 폭이 넓었고 이용하기도 편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이용자 김모(42)씨는 “이혼 소송 건이라 누구에게 물어보기가 불편했는데 로톡이 심리적 부담을 덜어줬다”며 “법률 상담에 온라인 플랫폼을 적용하는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 편리하고 좋은데 왜 문제가 되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말했다.  
 
플랫폼이 역으로 변호사 포화 시장의 돌파구로 떠올라 긍정적이란 평가도 있다. 의뢰인 입장에선 과거 낮은 수임료 때문에 변호사들이 기피했던 단독·소액 사건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는 손쉽게 선임할 수 있어서다. 의뢰인이 플랫폼을 통해 알아서 찾아오니 변호사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예전엔 거리로 직접 나가 영업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있었는데 로톡이 사건 수임을 높여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법률 서비스 플랫폼에 대한 요구는 한 설문조사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3명은 법률서비스에 IT 기술이 도입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편리성(27.9%), 투명성과 신뢰성 제고(25.3%), 접근성 개선(21.6%) 순이 그 이유다.
 

학계 “정보 제공 확대하고 전관 변호사 구조 개선을”

학계에서도 변호사에 대한 정보 제공이 확대돼야 법률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단 주장이다. 한국 형사·법무정책 연구원의 '법조비리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는 '접근성이 뛰어난 법률 서비스'가 '전관 변호사'를 찾는 구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또 변협이 문제로 삼는 '법조 브로커'를 없애기 위해서는 오히려 변호사 광고규제를 완화하고 변호사 중개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변호사 정보 제공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정보격차를 해소해야 법률 시장의 저품질 서비스만 횡행하는 이른바 '레몬마켓'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이에 따라 ‘법조 브로커’도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러한 요구를 의식한 듯 변협은 로톡과 비슷한 자체 유사 플랫폼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변협 상임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변협은 유사 플랫폼인 ‘변호사 공공 정보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변협의 유사 플랫폼은 변호사 이력 등 정보 제공과 온라인 법률상담 등을 골자로 한다.  
 
노 의원은 “변협이 로톡 금지 규정을 만들어 놓고 자신등이 자체 유사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겠다는 것은, 결국 스타트업의 기술을 탈취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이율배반적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변협은 기득권 지키기에 연연하는 것에서 벗어나, 법률 서비스에 대한 서비스 품질 개선 및 대국민 접근성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변호사협회는 19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변호사소개 플랫폼 관련 법령 해석, 입법 방향성 및 대안에 대한 언론설명회’를 개최했다. 서울변협은 “변호사소개 플랫폼은 합법이라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어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변호사소개 플랫폼의 위법성을 다시금 분명히 전하고자 한다”고 설명회 개최 취지를 밝혔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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