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주자니 업체 먹튀, 안 주자니 사업 지체…‘보조금 딜레마’ 빠진 태양광

발전설비 늘고 공급 증가하자 REC 가격 곤두박질
사업자의 수익성 제고 위해 해마다 수조원 보조
서울시, 베란다형 태양광업체에 7년 간 536억 지급
보조금 118억 받고 3년내 문 닫은 업체 14곳 ‘형사고발’

 
 
2018년 11월, 문재인 대통령(맨 왼쪽)이 전북 군산시 유수지 수상태양광부지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 행사를 마치고 수상태양광 시설을 돌아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가 태양광 에너지를 보급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예산을 비롯해 설비 보조금과 금융지원을 늘리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보조금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정부가 올해 태양광 관련 신재생에너지핵심기술개발 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785억원이다. 내년도 예산은 더욱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태양광 수요를 늘리기 위해 주택·일반건물 등에 대한 자가용 신재생에너지 설비 보조금(3133억원), 사업용 태양광 설치시 1.75%의 저금리 금융지원(5340억원)도 각각 늘릴 계획이다.  
 

REC 가격 하락하자 보조금으로 사업자 수익 보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는 가운데 한때 11만~12만원에 달했던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현물가격은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태양광 공급이 늘어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REC은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공급했다는 인증서로, 일종의 보조금 제도다. 소규모 사업자는 전력 생산 외에도 정부가 발급한 REC을 현물시장에서 판매해 이익을 얻는데, 가중치가 높아질수록 REC을 많이 얻을 수 있다.
 
전력거래소 신재생 원스톱사업정보 통합 포털에 따르면 지난 19일 마감한 REC 현물가격은 3만40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REC 가격은 2만9542원으로 REC 거래의 근거가 되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가 시행된 2012년 후 처음으로 2만원대까지 내려갔다. 2017년 REC 평균 가격 12만3000원과 비교하면 4분 1 수준으로 토막 난 것이다. 지난해 7월 평균 가격(4만4545원)과 비교해도 1년 만에 30% 넘게 하락했다.  
 
태양광은 전력가격인 계통한계가격(SMP)에다 보조금에 해당하는 REC 현물가격을 얹어서 판매가격을 책정한다. 한국전력 산하 발전 공기업들은 이 가격에 태양광 전력을 사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에 따라 할당 받은 신재생에너지 공급량을 맞춘다. REC 가격이 하락하면 태양광 발전사업자의 수익성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태양광 발전설비는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12년 4229㎿에 불과했던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올해 7월 기준 2만2739㎿로 5배 넘게 늘어났다. 하지만 REC 수요는 이에 미치지 못하면서 판매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REC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면 발전사업자의 투자회수 기간도 늘고 있다. 전국태양광발전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100㎾ 미만 태양광 발전사업자가 시설투자비를 회수하는 데 드는 시간은 11.8년으로 집계됐다. 2018년 말 7.6년과 비교하면 4.2년 늘어난 수준이다.  
 
시장 수급에 따라 REC 가격이 떨어지자 정부는 20년간 동일한 가격에 계약하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고정가격계약 물량을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현물시장 비중을 줄이고 고정가격계약을 늘려 시장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장 가격에 상관없이 보조금을 지급해 수익성을 보전해주겠다는 얘기다.  
 
고정가격계약 확대는 이미 진행 중이다. 태양광 설비를 통해 발전된 전력을 20년 가격고정계약으로 한국전력거래소에 판매하는 ‘한국형 FIT(소형 태양광발전 고정가격계약)’가 해마다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시행 첫해였던 2018년, 8183억원이던 보조금은 이듬해엔 1조133억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조9245억원까지 불어났다.  
 
공급이 늘어나면 업체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연쇄 도산이 이어지면 태양광 산업은 무너지게 된다. 결국 태양광 시장이 자생력을 갖기 전까지 보조금 명목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단지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중앙포토]
 

보조금 118억 받고 폐업 후 다시 사업 참여한 얌체 업체들

보조금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악용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고(故) 박원순 전 시장 재임 시절 이뤄진 베란다형 태양광 보급 사업에 참여해 보조금을 받은 뒤 폐업한 업체 14곳에 대해 서울시가 형사 고발하기로 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서울시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실시한 베란다형 태양광 보급 사업에 참여한 업체를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모두 68개 업체가 이 사업에 참여해 보조금 총 536억원을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68개 업체 가운데 14개는 보조금을 받고 3년 안에 폐업했다. 이들 업체들에 지급한 보조금은 총 118억원에 달했다. 폐업 업체 중 협동조합 형태는 4개였고, 이 4개 업체가 118억 중 77억원(65%)을 수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14개 업체 중 11곳은 보조금을 수령한 뒤 1년도 안 돼 문을 닫았다. 2년 내 폐업은 2개, 3년 내 폐업은 1개였다. 폐업하고 다른 법인 명의로 해당 사업에 다시 참여 중인 업체도 3곳이나 있었다.  
 
폐업 부작용도 발생했다. 태양광을 설치한 가구에서 하자보수를 의뢰할 곳이 사라진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로 인해 발생한 민원은 연간 2만6000여건이다. 최근 1년간 폐업업체가 설치한 베란다 태양광과 관련한 A/S 요청도 총 113건에 달했다.  
 
서울시는 이들 폐업업체가 보조금 수령 후 5년간 정기 점검과 무상 하자보수 의무가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고의로 폐업한 것으로 보고 사기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 할 계획이다.  
 
아울러 하자보수 의무를 수행하지 않아 서울시 산하 서울에너지공사에 끼친 손해에 대한 배상도 청구하기로 했다.  
 
보조금 타용도 사용 등과 관련해서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형사고발을 진행할 뿐 아니라, 보조금 환수조치에도 나설 예정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법률 대응팀’을 구성해 이달부터 법적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폐업한 후 명의를 변경해 신규 사업에 선정된 3개 업체는 선정·계약을 즉시 취소하고, 향후 5년간 서울시에서 실시하는 보조금 관련 사업에 참여할 수 없도록 배제한다.  
 
서울시는 향후 유사한 사례의 재발 방지를 위해 부정당 업체의 입찰·계약 등 참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퇴출하고, 타 지자체 사업에도 참여할 수 없도록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퇴사-취업' 반복하면...실업급여 '최대 50%' 삭감

2치킨값이 금값...배달비 포함하면 1마리에 3만원

3"대화 의지 진실되지 않아"...의대생단체, 교육부 제안 거부

4부광약품 "콘테라파마, 파킨슨병 치료제 유럽 2상 실패"

5"불황인데 차는 무슨"...신차도, 중고차도 안 팔려

6큐라클 "떼아, 망막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반환 의사 통보"

7'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 논란에...정부, 하루 만에 발표 수정

8‘검은 반도체’ 김, 수출 1조원 시대…티맥스그룹, AI로 ‘품질 관리’

9이제 식당서 '소주 한잔' 주문한다...주류면허법 시행령 개정

실시간 뉴스

1'퇴사-취업' 반복하면...실업급여 '최대 50%' 삭감

2치킨값이 금값...배달비 포함하면 1마리에 3만원

3"대화 의지 진실되지 않아"...의대생단체, 교육부 제안 거부

4부광약품 "콘테라파마, 파킨슨병 치료제 유럽 2상 실패"

5"불황인데 차는 무슨"...신차도, 중고차도 안 팔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