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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갑질 방지법 9월부터 ‘가동’…빅테크 독점 규제 ‘시금석’

여·야 31일 본회의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구글 인앱 결제 예고된 10월부터 적용 예정
구글·애플 “환불·사기 등 소비자 피해 우려”
세계 첫 규제, 미국·유럽 입법화에 ‘불쏘시개’

 
 
구글과 애플의 로고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수수료 인상을 추진하려는 구글과 애플의 행태에 제동을 거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일명 ‘구글 갑질 방지법’)이 오랜 진통 끝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로써 구글·애플 등 애플리케이션(앱) 마켓 사업자들은 자사 결제방식인 ‘인앱 결제’(In-app billing·앱 내 결제)와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 등을 앱 이용자나 콘텐트 개발자에게 강제할 수 없게 됐다.

국회는 31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앱 마켓 사업자가 자사에게 유리한 특정 결제 방식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내용을 담음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재석 188명 중 찬성180명, 반대 0명, 기권 8명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은 앱 마켓에 대한 규제를 법제화한 세계 첫 사례다.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도 앱 마켓에 대한 반독점 규제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이 지난해 7월부터 발의된 지 13개월여 만이다. 그동안 여러 규제 법안들이 나왔지만 여·야 갈등에 밀려 9개월여 동안 입법이 지연돼 왔다.
 
이번에 개정된 법은 구글 등이 자사 앱 장터에 등록한 앱 개발사들이 대금 결제 때 반드시 구글 프로그램을 쓰도록 한 조처를 금지한 것이 핵심이다. 전 세계 앱마켓 시장의 9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는 구글·애플 등이 이 법의 직접적인 적용 대상이 된다.
 
개정 법의 주요 내용은 앱 마켓 사업자가 거래상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앱 개발사에 ▶특정한 결제방식을 강제하는 행위 ▶경쟁 앱마켓에 앱을 등록하지 못하도록 강요·유도하는 행위 ▶등록된 앱을 부당하게 삭제하는 행위 ▶앱 심사의 부당한 지연 행위 등을 규제하는 내용이다. 다만 앱 개발사들이 국내 앱 마켓에도 반드시 등록토록 하는 ‘동등접근권’ 도입은 하지 않기로 했다. 국내 앱 마켓인 원스토어(통신 3사 공동 출자기업)에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해서다.
 
구글 갑질 방지법은 지난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30일 오후 5시 국회 본회의 상정까지 왔다. 하지만 언론중재법 처리를 두고 여·야가 대치하는 바람에 법안 통과까지 장시간 진통을 겪어야 했으며 31일로 연기됐다.
 
여당과 정보기술(IT)업계는 그동안 이달 내 반드시 구글 갑질 방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오는 10월 시작될 구글의 인앱 결제 강제 도입을 규제하려면 시행령 제정 기간을 감안해 늦어도 이달까지는 법안 통과를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7월부터 추진됐던 이 개정안은 온갖 빅테크 기업의 회유, 여·야의 갈등 등 각고의 진통 끝에 결국 국회 문턱을 넘게 됐다. 통상 시행령 제정에 2~3개월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본회의 통과는 오는 10월 구글 인앱 결제 강제가 이뤄지기 전 법안 처리가 가능한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던 셈이기 때문에 업계는 환영하고 있다.
 
임재현 구글코리아 전무가 지난해 10월, 2020년도 국회 정무위원회국정감사에서 이영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구글 인앱결제 강제 방침과 관련해 질의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미국·유럽에서도 구글에 반독점 소송 잇따라


그간 구글과 애플은 이용자들이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은 앱 안에서 결제할 때 구글이나 애플 결제 시스템을 사용하도록 했다. 이 대가로 구글과 애플은 최대 30%의 수수료를 가져갔다.
 
구글과 애플은 개정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커질 때마다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구글은 지난해 9월 처음으로 한국콘텐트업계를 위해 상생 지원금 1000억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인앱 결제 확대·강제 시기를 연기한다고까지 했다. 정치권 압박이 거세진 올해 3월에는 연간 100만달러 미만의 앱 매출에 대해선 수수료 15%만 받는다며 한발 물러서는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의 수수료 ‘갑질’에 대한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세계적에서 제기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근 미국 상원과 하원에선 우리나라와 유사한 규제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한·미 통상 마찰이 우려된다는 시각에 미국의 다국적 법률사무소(로펌) 셰퍼드 멀린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개정안 통과는 구글에 대한 규제 방안을 논의 중인 미국·유럽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란 분석이다. 인앱 결제를 둘러싼 논란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주요국 중에서 아직 ‘구글 갑질 방지법’ 같은 장치를 입법화한 곳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에픽게임즈 등 앱 개발사들이 애플을 반(反)독점법 위반 혐의로 고소해 관련 소송을 벌이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지난 4월 앱마켓 경쟁 방해 혐의로 애플을 기소했다. 유타주·뉴욕주 등 미국 36개 주와 워싱턴DC도 최근 구글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심지어 안드로이드 오토 시스템에서 전기차 충전 앱을 차단한 구글에 이탈리아 공정거래위원회(AGCM)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혐의로 1억 유로(한화 약 1370억원)을 부과하기도 했다. 대부분 구글의 독단적인 행태에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다.
 
이에 우리나라의 입법 사례가 전세계 규제 움직임에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빅테크 기업 규제를 골자로 한 반독점법안 5개를 지난 6월 통과시키는데 앞장선 미국 하원의원 데이비드 시실리니(David N. Cicilline) 의원도 한국의 이번 규제 법안에 지지를 보낸 바 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26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구글 갑질 방지법은 세계가 주목하는 최초 법안”이라며 “향후 규제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우월지위·부당성 법 적용 여부 검토 숙제

일각에선 법 개정이 되더라도 구글이 정책을 바꾸지 않는 이상 오는 10월 예고된 인앱 결제 강행을 막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의견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개정안에 담은 문구인 ‘거래상 우월적 지위’와 ‘부당성’ 등이 적합한지를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방통위 관계자는 “어떻게 적용할지는 앞으로 다각도로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빠른 시일 안에 방통위가 부당성 요건 작업 등을 끝낸다 하더라도 구글이 행정소송 등으로 맞대응 할 가능성도 있다. 구글 입장에선 새 방침을 적용하는데 있어 한국만 예외로 할 경우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 형평성 논란이 일어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구글과 애플은 인앱 결제를 쓰지 않는 앱들이 늘어나면 발생할 소비자 피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앱 마켓 바깥에서 결제가 이뤄지면 환불 문제나 사기 피해 등에 앱 마켓 사업자가 관리·대응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윌슨 화이트(Wilson L. White) 구글 공공정책 부문 총괄은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충분한 분석이 선행되지 않았다”며 성급한 법안 처리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애플도 입장문을 내고 “앱스토어에 장착된 고객 보호 장치들의 효과를 떨어트릴 테고 앱스토어 구매에 대한 이용자 신뢰가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은 수익적 측면에서도 소비자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애플 측은 “한국에 등록된 48만2000명 넘는 개발자들이 지금까지 애플과 함께 약 8조55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해 왔는데 그들이 앞으로 더 나은 수익을 올릴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실시한 앱 마켓 수수료 정책 변화 관련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구글이 인앱 결제를 강제할 경우 국내 기업이 내는 수수료가 약 885억원에서 많게는 약 1568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도 연간 약 6000억원에 달할 추가 수익이 구글에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웹툰산업협회는 국내 콘텐트 산업에서 2025년 약 5조원의 매출이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피해를 우려해왔다. 미국에서도 인앱 결제를 금지할 경우 국내 소비자들이 연간 77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란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이번 개정안 통과로 국내 업계는 앱 제작 환경과 소비자 후생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콘텐트 업체 관계자는 “법안이 앱 마켓 사업자들의 금지 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어 수수료 걱정을 덜게 돼 다행”이라며 “구글·애플뿐만 아니라 스타트업을 상대로 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이용정책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하늬 기자 kim.ho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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