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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 풀까 대미견제 요구할까” 왕이 외교부장 오늘 방한

미·중 무역갈등 고조되던 2019·2020년에도 방한
당시 “중국과 안보 네트워크 구축” 제안하기도
최근 한·미 동맹 강화하자 또 방한, 정·재계 관심
왕이, 앞서 베트남 방문에선 “함께 미국 견제” 촉구

 
 

왕이 중국외교부장이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를 방문해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만나 회담 전 코로나 방역을 위해 팔꿈치로 인사를 대신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 중국의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방한을 앞두고 정·재계가 다시 긴장 분위기다. 한국과 미국이 경제적·안보적 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해진 상황에 오늘 14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하는 왕이 외교부장의 발걸음이 심상치 않은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 입장을 명확히 정하라고 압박할지, 일대일로와 자유무역협정에 적극 참여해 중국과의 연대를 강화하자고 강조할지, 아니면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협력을 요청할지 등 한·중 간 다양한 이슈에 정·재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왕이 외교부장의 방한이 남긴 전례가 있어서다. 중국의 주변국 정세가 서방세계에 기울어지거나, 미·중 간 갈등이 심화될 때마다, 중국은 표면적으로 내세우진 않았으나 왕이 외교부장을 보내 ‘한국 단속’에 나선바 있다. 그 때마다 한·중 양국간 동등한 교류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보단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담은 메시지를 전하는 데만 열을 올렸었다.    
 
왕이 외교부장은 2019년 12월 4~5일에도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했다. 2017년과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을 약속했으나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지금껏 방한 일정을 미룬 채 왕이 외교부장을 한국에 보내고 있다.  
 
당시 미·중 분위기는 2018년 1월 무역분쟁을 시작으로 양국 갈등이 경제·정치·안보 등으로 확산되던 때였다.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우선주의 정챙과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의 일대일로·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충돌했다. 이로 인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난처해하던 상황이었다.  
 
왕이 외교부장은 코로나19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11월 25~27일에도 방한해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한·중외교장관회담을 가졌다. 당시에도 미·중 무역갈등이 고조되면서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로 인해 화웨이 등 중국 5세대(5G) 이동통신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퇴출 당하던 때였다.  
 
트럼프는 중국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SMIC를 비롯해 중국해양석유(CNOOC)·중국국제전자상무중심그룹(CIECC)·중국건설기술(CCT)·차이나텔레콤·차이나모바일·하이크비전 등 중국 정부가 쥐고 있는 중국 기업 35곳을 블랙리스트로 지정하며 규제 수위를 높이던 때였다. 게다가 당시 미국은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바이든으로 정권이 이양되는 시기였다.  
 

중국 대미 견제 강화, 베트남 이어 한국에도 제안할까 

이런 상황에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아와 “중국의 일대일로와 RCEP에 대한 참여를 서두르고 중국과 국제 데이터 안보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에도 왕이 외교부장은 한한령(限韓令·중국 내 한류문화를 금지한 조치) 같은 한·중 간 이슈에 대한 대한 언급 없이 중국의 생각만 일방적으로 전달했다.  
 
한한령은 비단 한국의 문화콘텐트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는 삼성·SK·LG·롯데 등 한국 기업들에게 큰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중국에서 한한령이 어떤 위협으로 돌변할지 내심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지난달에도 제2 한한령으로 불리는 ‘공동부유정책’(모든 인민이 함께 부유해지자라는 중국 정부의 경제 정책 슬로건)의 일환으로 중국 내 한국연예인 팬클럽 계정들을 무더기 폐쇄 조치했다. 중국 정부는 “‘청랑’(淸朗·중국 내 인터넷 정화 운동)일뿐 한류를 겨냥한 조치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2017년 사드(THAAD) 배치 사건 이후로 불거진 반한(反韓) 감정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시진핑 주석은 최근 서방세계를 배척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영어 교육과 학원 입시과외를 금지하고 공산주의 사상교육에 다시 몰두하고 있다. 베트남·한국·캄보디아·싱가포르 아시아 4개국 순방에 나선 왕이 외교부장은 앞서 11일 베트남 방문에서 “역외 세력의 간여에 공동 저지하자”고 촉구해 노골적인 미국 견제를 드러냈다.  
 
왕이 부장의 방한이 그동안 보여준 발자취를 봤을 때 그의 이번 방한도 예사롭지 않다. 최근 주변 상황은 한·미 동맹 강화, 북한의 도쿄올림픽 불참과 순항 미사일 발사 실험, 한국의 사드(THAAD) 추가 배치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 편입, 내년 중국의 베이징 동계 올림픽, 아시아 4개국을 순방하고 있는 중국의 외교 전략, 중국과 대만 간 긴장관계 고조, 중국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방역 등이 얽혀 있다. 특히 중국 내 한국 기업들의 경제활동에 대한 한·중 간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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