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가난한 나라의 ‘코로나19 백신 아파르트헤이트’…두고만 볼 것인가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오미크론 사태로 ‘백신 격차’ ‘백신 불평등’ 재논란
G7의 “저소득 국가 백신 제공” 약속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서로 배척하고 눈감아서는 팬더믹 탈출 요원

 
 
새 코로나19 변이 오미크론으로 인해 유럽과 미국, 아시아 국가들이 남아공 등에 여행 규제를 가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요하네스버그 OR탐보 국제공항 입국장도 썰렁한 분위기다. [연합뉴스]
  
코로나19를 일으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새로운 변이인 오미크론(Omocron: 그리스 알파벳 Ο)이 출현해 빠른 속도로 확산하면서 전 세계가 새로운 변이 공포에 휩싸였다. 11월 11일 아프리카 남부 보츠와나에서 첫 사례가 보고된 오미크론은 11월 14일 남아프리카공화국 과학자들이 이를 분리‧동정해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오미크론 변이는 WHO 보고 뒤 불과 일주일 만에 6대주에 모두 퍼질 정도로 빠른 확산을 보였다.  
 
오미크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들어가는 것과 함께 백신 작용에서 필수적인 스파이크 단백질에 다른 변이보다 많은 32개의 유전자 이상이 관찰됐다. 이에 따라 확산이나 백신 작용에서 다른 변이보다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정확한 내용은 충분한 사례가 수집되고 이를 분석한 다음이 될 것이다. 오는 12월 31일로 코로나19가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첫 공식 보고된 지 2년을 맞게 되는 지구촌이 다시 새로운 시련을 겪을 것인가.  
 

저소득 국가에선 1회 접종 이상이 6%에 불과

사실 전 세계가 2020년엔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면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긴 하다.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도 있고, 효과가 제한적이지만 코로나19 치료제도 있다. 하지만 2020년 12월부터 전 세계가 백신을 접종해 상당한 접종률을 올린 상황에서 전파력이 높은 오미크론 변이가 나타나면서 전 세계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블룸버그 백신 트래커에 따르면 12월 1일까지 전 세계적으로 80억1000만 회분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 유엔 인구국 추산 전 세계 인구가 78억7500만명임을 고려하면 인구 100명당 102명이 접종을 받은 셈이다. 현재 하루 평균 3570만 회분의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백신 불평등이다. 불룸버그 백신 트래커는 전 세계 인구의 54.5%가 백신 접종을 1회 이상 받았다고 집계했다. 인구 3억2950만명의 미국은 4억6100만 회분의 접종이 이뤄져 인구 100명당 140명 접종 꼴이다.  
 
백신 접종이 대량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졌지만 전 세계에서 평등하게 접종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각지대가 발생했고 여기에서 변이가 나올 수 있는 빈틈을 제공했다.  
 
이는 수치로 드러난다. 아워월드인데이터는 저소득 국가에선 최소 1회 접종을 받은 사람이 인구가 6%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백신 트래커는 전 세계 인구의 20.5%를 차지하는 개발도상국 52개 국가‧지역이 백신 접종의 5.1%만 차지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국제사회는 가난한 나라가 ‘코로나19 백신 아파르트헤이트’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과거 남아공에서 소수의 부유한 백인 정권이 다수의 가난한 흑인에 대해 펼쳤던 차별과 분리정책을 가리킨다. 당시 남아공 백인 정권은 인종별로 서로 격리하고 거주지와 출입가능구역을 분리하면서 노골적인 차별 정책을 폈다. 현재의 글로벌 백신 격차, 백신 불평등은 당시 아파르트헤이트 못지않은 인간에 대한 차별 정책이라는 의미다. 이는 인권과 인도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으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부자 나라들은 글로벌 백신을 독차지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4.3%를 차지하는 미국의 백신 접종은 전체의 5.8%를 차지했다. 미국에선 현재 하루 평균 116만명이 백신을 맞고 있다. 편의점이나 거리의 접종소에서 누구나 무료로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이젠 모든 성인에게 부스터 샷도 제공한다.  
 
세계 인구의 18.2%를 차지하는 중국도 백신 접종에선 31.2%를 차지했다. 다만 세계 인구의 17.7%를 차지하는 인도는 백신 접종의 15.2%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인도는 백신 생산국이고 자체 백신도 개발했지만 인구가 워낙 많아 접종 확대에 애를 먹고 있다.  
 

“전 세계인 동시 접종 노력 실패한 결과” 주장도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스위스 출신으로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컴퓨터 생물학 교수이자 이 대학 유전학연구소장인 프랑수아 발루 교수는 오미크론 변이가 생긴 과학적 배경을 이러한 백신 불평등에 따른 사각지대 형성에서 찾는다.  
 
발루 교수는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에 “오미크론을 비롯한 변이의 발생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으로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에 걸리는 등 만성 질환으로 면역 체계가 약해진 환자의 몸속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폭발적인 변이’를 일으킨 결과”라고 설명했다. 만성질환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이 백신을 맞지 않고 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그 몸속에서 변이했다는 이야기다.
 
뉴욕타임스(NYT)는 남아공 관료의 말을 인용해 “서방 부자나라들의 백신 독점이 오미크론 사태를 불러왔다”며 “전 세계인에 대한 (동시) 백신 접종 노력이 실패한 결과 이런 변이가 출현했다”고 지적했다. 부자나라들의 백신 독점은 수치를 보면 바로 파악할 수 있다. NYT는 지금까지 백신 제조사들이 공급한 전체 백신의 89%를 주요 20개국이 독점했으며, 현재 생산이 진행 중인 백신의 71%도 이들 부자나라와 계약이 돼 있다.  
 
영국의 진보적인 일간지인 가디언은 부자나라들이 그동안 경제력이 떨어지는 나라에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이 오미크론의 출현의 원인이 됐다고 내놓고 비판했다.  
 
주요 7개국(G7)은 지난 6월 영국에서 정상회의를 하면서 공동으로 앞으로 1년 내 10억 회분의 백신을 저소득 국가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주빈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를 통해 전 세계가 집단 면역을 이뤄 내년에는 코로나19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선언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 9월에는 미국의 조 바이든이 “12월까지 최빈국 92개국에서 백신 접종률이 40%에 이를 수 있도록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가디언은 생명과학 데이터분석회사 에어피니티의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은 11월 25일까지 기부를 약속한 백신의 25%, 유럽연합(EU)은 19%, 영국은 11%, 캐나다는 5%만을 공여하는 데 그쳤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부자나라 20개국이 백신의 대부분을 독점하고 자국에 비축하는 바람에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 퍼실리티는 빈곤국에 제공할 백신 20억 회분 중 겨우 3분의 1만 확보할 수 있었다”고 개탄했다. ‘코로나19 백신 글로벌 접근’의 약자인 코백스는 코로나19 백신의 공평한 접근을 목적으로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세계보건기구(WHO), 감염병유행대책혁신연합(CEPI),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글로벌 기구다. 가디언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창피한 상황”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1% 미만 접종률 국가 다섯 곳이나  

실제로 저소득 국가들의 백신 접종 상황은 절망적이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부룬디(인구 1190만)는 접종자가 불과 914명으로 접종률이 0%에 수렴한다. 민주콩고공화국(DRC‧8950만)의 접종률은 0.1%(11만521명),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603만)은 0.5%(3만2240명), 카리브해의 아이티(1140만)는 0.8%(9만6262명), 아프리카의 남수단(1120만)은 0.8%(8만4839명)까지 모두 다섯 나라가 1% 미만의 접종률에 그친다. 이들 나라는 백신을 자력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공급해도 이를 접종할 의료 인력과 시설, 유통망도 문제다. 국제사회가 돕지 않으면 안 되는 국가들이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1차 접종률이 1% 이상 2% 미만인 국가도 적지 않다. 아프리카의 차드(1642만)가 16만6793명으로 1.0%, 2015년부터 내전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의 외부 개입으로 인도주의 재앙을 겪고 있는 중동의 예멘(3050만)이 33만1778명(1.1%),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2770만)가 38만1633명(1.3%), 탄자니아(5970만)가 88만5579면(1.4%), 카메룬(2655만)이 41만8185명(1.5%), 말리(2025만)가 32만4713명(1.6%), 잠비아(1840만)가 31만1049명(1.6%), 부르키나파소(2090만)가 36만4565명(1.7%)으로 여기에 해당한다.  
 
백신 접종률이 2% 이상, 10% 미만인 나라도 모두 23개국이다. 전 세계 접종률이 10% 이하인 나라는 유엔 회원국 193개국 가운데 36개국에 이른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아예 하지 않은 아프리카의 에리트레아와 북한 등은 뺀 숫자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는 백신 접종률이 현저히 낮은 이들 나라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흉작과 기아를 겪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사실이다. 2021년 제26회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회의(COP26)가 190개국 이상이 참가한 가운데 2021년 10월 31일부터 11월 13일까지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러 기후변화를 의논했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에 백신을 제공해 전 세계가 동시에 집단면역을 확보하고 사각지대 발생으로 인한 변이의 출현을 막자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이에 따라 올 초부터 부자나라와 개도국 사이의 백신 격차‧불평등으로 코로나19 문제의 해결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류가 백신에 이어 치료제라는 무기를 갖췄지만 가난한 나라들이 백신‧방역의 ‘아파르트헤이트’가 되고 있어 변이 문제가 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가 처음 발견된 보츠와나(접종 완료율 19.58%)와 남아공(28.35)도 백신 접근성이 낮은 편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백신으로 집단면역에 접근하다가도 새 변이종이 출현하고 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부스터 샷을 보급하고, 이로 인해 백신의 공평한 접근이 다시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끊임없이 반복할 수도 있다.  
 
결국 백신을 국제안보 과제로 지정하고 개발원조(ODA)를 늘려 전 세계 동시 면역을 시도해야 코로나19 팬더믹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유입을 차단하겠다며 입국 규제를 강화했다. [연합뉴스]

UN 안보리가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 나서야

문제는 코로나19 해결을 어렵게 만든 원인을 부자 나라들이 제공했음에도 아프리카 등의 가난한 나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사실 오미크론 변이가 남아공에서 발견된 건 그나마 과학기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신속히 보고해 전 세계에서 즉시 대응하게 한 것은 초기 발생과 자료 등을 숨긴 중국과 대조적이다.  
 
그런데도 미국과 유럽 등이 즉각 아프리카 남부 국가들에 입국 금지를 내린 건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평가다. 대상국은 처음 변이가 발생한 남아공과 보츠와나는 물론 인근의 짐바브웨, 나미비아, 레소토, 에스와티니, 모잠비크, 말라위 등 8개국이다.  
 
특히 이스라엘‧일본은 외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이는 과학과는 거리가 멀고 다만 외국인 혐오‧차별 경향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어차피 전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 상황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발견된 남아공과 보츠와나 인근국만 막아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심지어 보고가 되지 않았을 뿐 이 변이가 퍼진 나라도 있을 수 있다.  
 
아프리카의 경우 에티오피아항공이 아프리카 각국과 전 세계를 잇는 혈맥 역할을 한다. 아디스아바바공항은 아프리카의 허브 공항으로 항상 승객으로 복작거린다. 이 환승 공항에선 오미크론 변이 감염자가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를 퍼뜨릴 수 있다. 아직 발생 보고가 없는 나라에서 출발한 사람이 이런 허브 공항에서 변이에 감염될 수 있다.  
 
더욱 우려되는 건 남아공에서 이를 보고하기 전에 벌써 전 세계 곳곳에 이 변이가 퍼져있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오미크론 변이는 전 세계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19를 이기려면 국제사회가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며 협력해야 한다. 서로 배척하고 눈감아서는 팬더믹 탈출은 요원할 뿐이다. 이젠 인류 전체가 나설 때다. 유엔이 나서고, 특히 힘을 가진 안전보장이사회가 코로나19와 백신 불평등을 인류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안보 문제로 인식해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정부 눈치 보기 급했나...‘만족’ 없는 배달 상생안

2수수료 상생안에 프랜차이즈 점주들 난리 난 까닭

3김천 묘광 연화지, 침수 해결하고 야경 명소로 새단장

4"겨울왕국이 현실로?" 영양 자작나무숲이 보내는 순백의 초대

5현대차 월드랠리팀, ‘2024 WRC’ 드라이버 부문 첫 우승

6'1억 4천만원' 비트코인이 무려 33만개...하루 7000억 수익 '잭팟'

7이스타항공 누적 탑승객 600만명↑...LCC 중 최단 기록

8북한군 500명 사망...우크라 매체 '러시아 쿠르스크, 스톰섀도 미사일 공격'

9“쿠팡의 폭주 멈춰야”...서울 도심서 택배노동자 집회

실시간 뉴스

1정부 눈치 보기 급했나...‘만족’ 없는 배달 상생안

2수수료 상생안에 프랜차이즈 점주들 난리 난 까닭

3김천 묘광 연화지, 침수 해결하고 야경 명소로 새단장

4"겨울왕국이 현실로?" 영양 자작나무숲이 보내는 순백의 초대

5현대차 월드랠리팀, ‘2024 WRC’ 드라이버 부문 첫 우승